파업투쟁 백일 넘어선 시그네틱스노조

노동사회

파업투쟁 백일 넘어선 시그네틱스노조

admin 0 3,422 2013.05.07 11:06

염창동 공장에는 지난 9월8일에 있었던 회사와 용역깡패의 강제적인 기계반출 흔적이 남아있다.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고, 유리창은 깨진 채 공장은 텅 비어있다. 그러나, 스산한 공장 모습과 달리 공장 옆 한켠에는 10월30일 파업 100일째를 맞는 시그네틱스 노조(지회장 정혜경) 천막이 탄탄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왜 파업인가

jyoung_01_3.jpg한국시그네틱스는 서울과 파주, 안산에 공장을 두고 있는 반도체 조립가공 업체다. 1997년 파주공장을 세울 때의 빚 때문에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회사는 서울공장을 매각해서 부채를 갚고, 시설과 장비는 파주로 이전하겠다는 약정서를 산업은행과 체결한 바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파주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전제로 임금동결, 상여금 반납 300%, 복지중단 및 축소, 퇴직금 누진제 폐지, 호봉승급 6개월분 반납 등 고통분담에 동의했다. 

3년간의 고통 끝에 2000년 6월 영풍그룹에서 한국시그네틱스를 인수했고, 8월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공장이전 조건 및 장소가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11월말부터 이주불가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어 12월에는 안산에 제3공장 부지를 매입하여, 2001년 2월1일 안산으로의 공장이전을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갑작스런 안산이전도 문제였지만, 이는 명백한 단협위반이었다. 단협상 공장이전 6개월 전 통보하고, 실제 이전작업은 그 후부터 시작해야 했는데도 회사는 이전통보 전부터 이주불가자를 모집하는 등 실제 이전작업을 해온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노조는 2001년 4월부터 회사와 교섭을 시작했다. 그러나 회사와의 논의가 진전되지 않을 뿐 아니라 회사가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무단 장비반출을 시도하자 노조는 5월11일부터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회사는 7월2일 일방적인 휴업을 실시하고, 7월23일로 안산발령을 통보하는 공문을 노조에 보냈다. 그러나 잠시 생각을 바꾼 듯 남부노동사무소의 중재로 마련된 자리에서 회사는 노조와 교섭에 집중하기로 약속하고, 파주로의 이주희망자를 검토해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다음날 바로 이 약속을 파기한 회사는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이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회사측 남성사원이 노동조합 여성간부를 성추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통보했던 것처럼 7월23일 회사는 서울공장 전 조합원을 안산공장으로 인사발령냈고, 노조는 이날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법원이 회사가 제출한 장비이전 방해금지가처분을 수용함에 따라 8월9일 회사는 250여명의 용역직원을 동원하여 강제적인 기계반출을 강행했다. 농성중인 50여명의 여성조합원들이 공장밖으로 끌려나왔고, 이 과정에서 임신부 등 10명의 조합원들이 크게 다쳤다. 기계반출 후 노조는 8월18일 서울공장에 재진입하여 현재(2001.10.30) 100일째 파업을 진행중이다. 

파주공장으로의 이주를 보장하라

시그네틱스노조는 평균 13년 이상 근무한 여성조합원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장기근무자로, 숙련된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회사는 서울공장을 정리하면서 노조와 함께 이들까지 정리하려 했다. 이는 노조가 6월15일 공개한 회사문건 중 '장비이전에 따른 노사관계 진행계획표'에 그대로 나와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회사는 올초부터 조합반대 입장을 여론화하기 위한 핵심조합원 포섭, 개인적인 인사조치 실시 등뿐만 아니라 노조의 파업돌입시 생산장비철거, 유관기관에 협조요청, 정문봉쇄 및 대체인력투입계획을 세워놓고 하나씩 실행해온 것이다.

jyoung_02_4.jpg회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불법 용역직원들을 고용하여 강제로 기계를 반출했으며, 시험가동 수준밖에 안되는 안산공장으로의 이전을 계속 종용했다. 이에 노조는 회사와의 교섭결렬 후 영풍그룹을 상대로 항의집회를 전개해왔다. 그러나 파주공장 농성과정에서 파주공장 직원들과 충돌했다는 이유로 지회 편집부장 가족이 구속됐으며, 금속산업연맹 이석행 부위원장을 비롯해 지회장, 부지회장, 이규희 상황실장, 김유신 부상황실장 등에 대한 긴급체포영장도 발부됐다. 또, 회사는 파업참가 조합원 134명 전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10월5일에는 파업참여가 무단결근이라며 1차로 29명을 해고한 상태다.

노조는 파주공장으로의 이주 희망자를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이미 회사는 1998년 12월 서울공장에 잉여인력이 생길 경우 파주공장으로의 전직에 합의했고, 1999년 단체교섭에서는 회사가 스스로 서울공장 매각에 따른 이전 시, 파주공장으로의 이전희망자 수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약속에 따라 노조는 3년간 고통을 감수하며 회사를 정상화시켰다. 그러나 회사는 지난 해 12월부터 기존공장의 1/3정도의 규모밖에 되지 않는 안산공장으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올해 전 조합원을 안산공장으로 발령낸 것이다. 

노조와 논의 없이 공장이전을 추진한 점, 일방적인 휴업을 강행한 점, 불법 용역직원을 동원하여 노조에 폭력을 행사한 점은 노조의 요구가 정당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노조는 투자계획과 생산계획이 전혀 없는 안산공장으로의 이전은 기혼여성이 대부분인 조합원들을 정리해고하려는 의도며, 노조를 없애려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안산공장으로의 이전은 오히려 현재의 경영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염려한다. 

또한, 노조는 조합간부 및 조합원에 대한 징계를 철회하고, 조합원 91명에 대한 임금가압류를 해지하라고 요구한다. 특히 지난 6월 단협상 장비이전 시, 노조와 합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이를 어기고 일방적으로 장비를 반출하려는 것을 노조가 막은 것은 당연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조합원 91명을 상대로 평균 30만원을 가압류했다. 대부분의 조합원이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이들에게 임금 가압류 및 징계는 이들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하고 있다. 

파업 백일을 넘어

공장이전은 작업공간이 바뀌는 것 뿐 아니라 생활공간까지 바뀌는 중요한 문제다. 특히 시그네틱스노조는 공장이전으로 인해 자신들의 터전을 잃어버린 어려운 조건에서도 노조는 회사의 휴업조치 후 하루도 쉼없이 교육을 실시하여 조합원들과의 결속을 다져왔으며, 그 결과 용역깡패의 폭력과 오랜 농성에도 139명의 조합원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여성조합원의 남편들로 구성된 가족대책위원회가 이들의 옆에서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노조는 현재 산업은행 압박투쟁을 진행중이다. 이는 시그네틱스를 인수한 영풍이 1998년 워크아웃 당시 산업은행에서 빌린 1천억원을 아직 갚지 않았는데도 산업은행이 연간 41억원의 이자를 탕감해주고, 1백억원의 운영자금을 대출해주었을 뿐 아니라 상환기간까지 연장해주었기 때문이다. 

시그네틱스노조와 투쟁을 함께 해온 금속산업연맹도 파주공장에 노조를 세워 서울공장 및 파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그네틱스 구조조정 과정에서 잘못 시행된 정책들을 산업자원부와 재정경제부에 항의하는 투쟁을 전개할 방침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