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어머니 영면하시다

노동사회

노동자의 어머니 영면하시다

편집국 0 3,379 2013.05.30 09:36

이 나라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세상을 뜨셨다. 병원을 옮기기 직전 찾아 뵌 어머님의 모습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 “이원보 이사장님 오셨어요.”라고 전순옥 따님이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려 하기에, 한참 달게 주무신 듯하니 깨우지 말라고 하고 팔다리를 주물러드렸다. 아들과 두 딸들과 함께 눈을 뜨시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그대로 주무시기만 했다. 무거운 마음이지만 또 오면 그 때는 알아보시겠지 기대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섰다. 언젠가 창신동 집에서 뵈었을 때 “나이 들면 가야지.”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다른 분들은 구십 세를 훨씬 넘겨서 오래도 사시는 시대다. 이제 한가위가 꼭 열흘 밖에 안 남았는데 무엇이 급해 그리 서둘러 가셨는지 안타깝고 슬픈 마음 가누기 어렵다.

스물 둘 아들 보내고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아온 사십여 년

 

하 기는 당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너무도 무겁고 힘들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평생을 그토록 사랑하시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이렇다 할 해결책 하나 제시하기 어려운 판이니 얼마나 괴로우셨겠는가? 몸이 아파 운신도 어려운데, 부산 한진중공업행 희망버스를 타야 한다고 조바심을 하시다가 병석에 누우시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님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다.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의 지독한 가난과 맞닥뜨려야 했던 어릴 적 삶은 웬만한 글줄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이거니와, 아들 전태일의 죽음 이후의 삶은 노심초사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결코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시대와 맞서셨다. 아들의 당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머님은 혼신의 힘을 다했다. 아들이 꿈꾸었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면 언제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함께 했다. 그러면서도 어머님은 죽음까지도 불사할 참혹한 고통 겪는 노동자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노동자의 죽음은 아들 전태일 하나로 족하다. 어쩌든지 살아서 싸워 이겨야 한다.”

그 렇게 그녀는 먼저 떠나보낸 아들을 낳아 키운 22년보다 두 배에 가까운 41년 세월을 올곧게 살아오셨다. 그 작은 체구에서 당차고 용감한 투지가 어떻게 솟아나는지, 남정네들도 흉내 내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어머님은 새로 낳아 키워내셨다. 노동운동이 사회변화와 역사발전의 중심에 서도록 전태일 열사가 불을 댕겼다면, 민주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을 확장시키는 견인차는 어머님의 몫이었다.

1970년대 이후 자주 민주의 원칙을 내건 노동자투쟁, 연행 수배 구속 고문의 반인권 만행에 항의하고 규탄하는 투쟁, 민주화항쟁 끝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을 끌어안은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의 설립과 운영 등등 현대사의 고비마다 어머니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 동안 그가 참가한 집회 시위와 농성이 몇 번이나 되는지 헤아릴 수도 없거니와, 공권력에 의한 숱한 연행이나 구금 끝에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지만 그 때마다 의지는 더욱 강해질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더없이 따뜻하고 겸손했다. 자칫 투사들에게서 느껴지는 강경함이나 결연함보다는 포근하고 자상한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무수한 가난과 병마로 고통이 그치지 않았지만,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난 괜찮다고 언제나 평온한 얼굴로 오히려 상대를 위로하고 격려하시곤 했다. 깊디깊은 사람에 대한 사랑, 거친 세상에 팽개쳐진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 대한 애정, 혼자 열 걸음보다 여럿이 한 걸음으로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보려는 열망의 결과일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고마워 한 “조선 질경이 이소선”

 

이 런 삶을 후배 후손들은 “조선 질경이 이소선”이라 명명했다. 2008년 12월5일 펴낸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팔순기념 헌정문집』 제목이었다. 질경이란 크지도 예쁘지도 않고, 우리 땅 어디서나 마구 짓밟히면서도 자라나, 어릴 때는 나물로 먹고 배 아플 때 다려먹으면 직방이라는 풀, 어쩌면 어머님의 형상 그대로이었다. 이렇듯 헌신적인 삶을 살다보면 가끔은 으스대고 싶을 때도 있으련만, 언제든 자신이 버티어온 삶을 주변사람들의 덕으로 돌린다. 속표지에 “고맙습니다. 2008-125 이소선”이라고 직접 써서 주신 책 『이소선-여든의 기억,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서 어머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가 살며 못한 것도 있지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 사람도 많은 거야. 못난 사람이 이제껏 살았으니 얼마나 옆에 고마운 사람이 많겠냐. 그래서 지금까지 나를 아껴준 사람한테 고맙다는 말을 쓸라면 쓰라고 했지. 소설처럼 지어내지 말고. …… 건달이한테 글 써서 남 아프게 하지 말라고 했어. 내가 잘난 것 없이 못된 짓만 했으니 괜히 내 이야기를 쓰다가 남 아프게 해서야 쓰겠냐. …… 내 흉은 괜찮아도 남 흉 될까 싶은 거는 그것도 내 잘못이니 빼라, 그랬지. …… 아무튼 모든 사람들 고맙습니다. 내 말은 이거뿐입니다.”

억눌린 자,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한 지난한 여정에도, 그녀는 언제나 같이 해온 사람들에게 그렇게 겸손하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하셨다. 그러면서 잘못된 글 때문에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례들을 경계했다.

글 로는 속속들이 표현하기 어려운 팔십여 평생이었다. 하지만 불의를 보고는 못 배기는 그녀의 눈에 노동현장은 좌절과 분노로 가득 차 보였을 것이다. 당신의 아들 전태일 열사가 최소한의 노동기준을 지키라고 목숨을 던진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죽음으로 저항했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쳐 선진화로 내닫자고 하는 최근에 이르러서도 노동현장의 큰 목소리는 여전하고, 소리 없는 아우성까지 더하면 노동문제의 심각성은 더 깊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불안과 낮은 노동조건 및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이다.

돌파구 열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노동 현실

하지만 “노동귀족”으로까지 지탄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이라고 모두 온전한 것도 아니다.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이랜드, 기륭전자, 코오롱, KTX, KEC, 콜트 콜택, 발레오공조코리아 등에서 벌어진 구조조정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들과 더불어 재능교육이나 유성기업,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 등에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년 동안 항변해왔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스레 해결된 예가 없다.

노 동조합은 지혜를 모아내고 투지를 내세워 나름대로 대안을 내지만,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해묵은 논리 앞에 가차 없이 거부된다. 각급 노조는 자신의 생존과 조합원의 현실적 이해에 매달려야 하고, 대단위의 연대투쟁은 위력을 잃은 지 오래이다. 집회, 시위, 위협적인 성명서와 생명을 거는 고공농성이나 단식투쟁이 잇따르지만, “불가피한 정리해고가 자본의 생존전략”이라는 강변 앞에서 기업별노조의 허약한 조직력은 오래갈 수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단결의 자유를 확대해야 할 복수노조제도는 제 살 뜯기가 아니면 사용자 주도의 노조 결성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자주 지적되고, 타임오프제도는 슬금슬금 자리를 잡아가면서 현장 조직력 약화의 주요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사면초가의 노동조합운동은 여러 방면으로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하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처럼 노동조합운동이 시민운동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새로운 모습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민주진영의 대통합을 위한 시도가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를 질시하고 방해하는 세력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어머님이 그처럼 강조해 마지않던 진보진영의 통일 단결도 위태롭게 휘청거리고 있다. 절대적 상대적 빈곤에 밀린 수백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 양극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노동유연화와 구조조정의 공세가 시도 때도 없이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경쟁과 위기감을 촉발시킨다.

이제 산 자들의 몫, “골고루 사람답게 사는 세상”

그 러나 이 모든 문제들의 해결은 이제 산 자들의 몫이다. 전태일 열사가 그리고 어머님이 이어 꿈꾸고 만들고자 했던 “골고루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뒤에 남은 모든 사람들의 근원적인 숙제다.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노동운동은 변화 발전하기 마련이고, 사회는 진화하기 마련이다. 더디고 많은 굴곡을 굽이굽이 거쳐 오지만 우리 역사는 참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가, 어머님이 염원하던 사회는 저절로 굴러들어오지 않는다. 변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한데 뭉쳐 앞으로 나아갈 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한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제 어머님 영전에 다짐하자. 어머님, 1500만 노동자의 어머님, 당신이 뿌린 씨앗들이 곳곳에서 질경이처럼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평생을 지고 오셨던 무겁고 힘 든 짐 모두 훌훌 털어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잠드소서. 그토록 사랑하고 오래 그리워하던 아드님과 내내 편히 지내소서.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