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제도의 갈 길을 묻다

노동사회

최저임금제도의 갈 길을 묻다

편집국 0 2,954 2013.05.30 09:34

매년 6월 익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심의의 장에 쏟아지는 관심이 뜨겁다.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정치권, 언론, 국민 그리고 무엇보다 최저임금 당사자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된다. 한 푼도 올릴 수 없다는 사용자측과 조금이라도 더 올려야 하는 노동계의 어찌 보면 접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협상장은 흡사 소(小)전쟁터다. 그러나 갈수록 이런 전쟁터를 바라보는 시선들에서 긴장감 대신 탄식과 우려가 묻어나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최저임금 심의과정에서 드러난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다.

mws_01.jpg

시작부터 삐걱댄 최저임금 협상, 날치기로 마무리

올 해 최저임금 협상을 맞이하는 노동계의 각오는 남달랐다. 경제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고, 작년 말부터 이어진 물가 고공행진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를 파탄 직전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 상승률이 저조했던 데다 심지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뒷걸음 친 경우도 있어, 올해 최저임금 인상의 사명은 노동계에도 막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도 최저임금 심의를 둘러싼 지형은 여전히 녹록치 않았다. 몇 년째 ‘동결’을 외쳐온(심지어 2년 전에는 -5.8% 삭감안 제출) 사용자 측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동결안을 내밀고, 심지어 공식적인 회의를 몇 차례 남겨두지 않은 막바지 시점까지 동결을 고수한 채 버텼다. 버티면 조금이라도 덜 올릴 수 있다는 그간의 학습이 나쁜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인지, 객관적인 경제상황이나 법률이 정하고 있는 최저임금 결정기준 등은 애초부터 안중에 없었다.

예년 같았으면 수정안이 몇 차례는 제출됐을 시기인 7차 전원회의에 이르러서야 양측은 처음으로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측이 제시한 것은 단 30원, 0.7% 인상안에 불과했고, 그 후로 양쪽의 입장은 더 이상 좁혀지지 못한 채 협상은 진통을 겪었다. 노사는 공익위원에게 적극적으로 역할해줄 것을 요청했고, 공익은 ‘협상촉진구간’이란 이름으로 2.9%~10.9%의 조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생계비 인상률조차 고려하지 않은 공익의 조정안을 거부하며 민주노총 위원들이 퇴장했고, 어떻게든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개선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보고자 한국노총 위원들이 남아 협상에 임했지만 사측은 겨우 3%로 움직일 뿐이었다.

법적 의결기한을 넘겨 밤샘협상을 이어갔지만 소득은 없었다. 공익위원이 다시 6.0~6.9%의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노동계 위원들은 수적, 전술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무능력하고 불합리한 결정 구조에서 최저임금 결정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린 한국노총이 전원 사퇴서를 제출하면서 퇴장하였고, 사측 또한 공익을 비난하며 사퇴를 표명, 퇴장하면서, 올해 최저임금 협상은 파국을 맞이했다.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노사 위원 모두가 사퇴함으로써 최저임금을 결정하지 못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노사 위원들의 사퇴로 최저임금 심의의 향방이 안개 속에 갇히는 듯 했으나, 사퇴를 선언했던 사용자 측 위원들이 이를 번복하고 슬며시 회의에 참가함에 따라, 지난했던 심의과정은 ‘날치기 처리’라는 어이없는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공익위원과 사용자 측만으로 결정한 2012년 최저임금은 시급 4,580원이었다. 현행 최저임금 대비 6.0% 인상된 것으로 애초 노동계 요구인 5,410원에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금액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노동계가 배제된 채 강행 처리된 과정은 우리나라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에 근본적인 물음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파행의 단초, 결여된 최저임금위원회의 독립성

양 대 노총이 협상장에서 모두 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현재의 최저임금 결정 구조에 근본적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노사 이해당사자와 ‘공익’을 위해 중심을 잡아야 하는 공익위원, 이렇게 삼자가 최저임금위원회라는 틀 속에서 제대로만 굴러간다면 협상 구조에는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립성이 결여된 틀 속에서 협상 주체들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너무나 한정되어 있다 보니, 최저임금 심의가 파행으로 치달은 것은 예고된 수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최저임금위원회의 독립성 문제는 올해 본격적인 최저임금 심의를 시작하기 전부터 불거져 나왔다. 정부가 위원장 자리에 특정인을 사실상 내정하며 최저임금위원회의 운영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노동계는 사측 편향적 인사를 위원장으로 선임한 데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회의 참석까지 불사하며 위원장 선출을 보다 공정하게 추진할 것을 촉구하였다. 위원장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 현재의 위원회 구조상, 여러 명의 중립적 공익위원보다 한 명의 편향된 위원장의 입김이 최저임금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 재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위촉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실상 정부의 입김이 작용될 수 있는 구조가 갖추어지는 것이 큰 문제이다. 공익위원 선정을 고용노동부 임의로 하는 것은 지금처럼 공정성과 중립성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게 만들 것이므로, 노사의 의견이 적절히 반영하거나 아니면 별도의 중립적 방식으로 공익위원을 선출하는 방법으로 대체하는 것이 시급하다.

법으로 규정된 결정 근거들, 그러나 무시해도 그만

최저임금 심의 파행의 또 다른 원인은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이 그저 노사 협상에 의지해 결정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몇 가지 항목들을 고려토록 규정하고 있는데,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근거들은 말 그대로 고려기준이지 절대적 결정기준은 아니기에 이외에도 다양한 경제여건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을 때는 기대에 못 미치는 인상에도 노동자들이 이를 수용하기도 하고,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가 치솟을 때는 조금 ‘후한’(?) 수준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자들이 희생하고 양보하는 대가가 번번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심지어 경제가 호전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각종 구실을 둘러대 동결을 정당화시키거나, 물가가 폭등하는 상황에서도 노동자에게 고통 전담을 강요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연출되기 일쑤이다.

사 측은 영세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최저임금 인상이 곧 기업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처럼 호도하고, 기업이 망하면 결국 최저임금 노동자의 고용도 보장할 수 없다는 반(半)협박을 일삼는다. 법으로 규정된 근거들이 고려사항일 뿐이다 보니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이다.

올해도 좌초된 최저임금 현실화의 꿈

최저임금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연 천만 원에 달하는 대학등록금, 매년 오르는 전세비용에, 이집 저집 전전해도 남는 것은 높은 이자비용, 아프면 기댈 곳 없이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병원비……. 이런 힘든 현실이 이제는 비단 빈곤층이나 저소득층의 고충만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로 다수에게 젖어든 데 기인한다. 변변한 사회복지제도나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그저 낮은 임금에 기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이 이제 우리 자신, 우리 어머니, 우리 자식의 일이 된 것이다.

사 실 최저임금이 꾸준히 높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국제적으로는 꼴찌 수준이다. 그런데도 사용자들은 그들의 잣대로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물가를 고려한 실질최저임금은 2000년 이래 지난 10년간 6.4% 상승했을 뿐이고, 2010년에는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인상에 미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실질최저임금 상승률은 같은 기간 생산성 증가율(7.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GDP를 기준으로 기업의 소득 증가율은 1990년대 대비 2000년대 6배 가까이 증가한 반면, 가계의 소득 증가율은 오히려 절반이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또한 소득 가운데 노동에 분배되는 몫인 노동소득 분배율 역시 2006년 이래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노동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제조업 및 서비스), 단위노동비용의 감소로 기업 경쟁력은 강화되고 있는데도, 노동에 그만큼의 몫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많이 올랐다”라는 주장의 근거가 사실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이다.

올해도 우리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한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상식적인 수준으로 현실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그 목표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복지. 힘들고, 지저분하고,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시장에서 평가받는 노동의 대가는 최저수준인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의 현실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복지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mws_02.jpg

‘최저임금 현실화’를 정말로 현실화하기 위하여

최 저임금을 현실화시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정도가 되어야 현실적이라는 것일까? 노동계가 설정한 기준이 바로 전체 노동자 임금 평균의 50%이다. 이런 요구는 매년 되풀이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요구가 단칼에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장은 요원하게 느껴지는 현실화가 사실은 우리 사회의 관심과 목소리에 정비례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따 라서 사회의 관심을 높여내기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전체 노동자 임금 평균의 절반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으면 “최저임금이 이미 많이 올랐으니 이제는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사측의 우롱과 기만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바람직한 최저임금의 수준 달성을 목표로 지향한다는 것을 법으로 명확히 밝혀 놓을 필요가 있다.

또, 이러한 목표를 법에 명문화했다 하더라도 목표에만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사항들이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한선을 두어 기준 없이 최저임금을 깎을 수 있는 여지를 없애야 한다. 예컨대 매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하회하여 결정되지 못하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소득분배가 매년 조금씩 완화될 수 있도록 일정정도 반드시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설정된 최저임금 인상률의 하한선은 평균임금의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최저임금 수준을 높여 노동계의 정책목표인 전체 노동자 임금 평균의 절반을 확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여줄 것이다.

최 저임금의 현실화와 동시에 일단 정해진 최저임금은 반드시 엄정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 또한 시급하다. 최저임금법이 정하고 있는 처벌규정이 절대 가볍지 않음에도,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00만 명에 달한다는 것은 그만큼 법이 엄정하게 집행되고 있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부는 법 위반에 대다수 시정조치로 끝나는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라 무겁고 강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위반신고를 좀 더 쉽게 하고, ‘신고=처벌’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여, 사업주로 하여금 최저임금 위반은 곧 엄청난 비용이라고 인식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 협상과정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올해 날치기 처리로 귀결된 것은 현재 시스템이 제도 자체의 문제점이든 운영의 문제점이든 상당한 개선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 한들 제대로 맛을 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고, 반대로 아무리 실력이 있다하더라도 부족한 재료로는 제대로 맛을 낼 수 없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