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 투쟁 4년, 반올림 활동 돌아보기와 내다보기

노동사회

삼성 백혈병 투쟁 4년, 반올림 활동 돌아보기와 내다보기

편집국 0 4,944 2013.05.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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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의 시작은, 이제는 제법 알려진 바처럼, 19살에 삼성반도체 공장에 입사해 불과 2년 만에 백혈병이 발병하여 2007년 3월 스물 셋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고자 했던’ 그녀의 아버지의 외로운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고 황유미의 죽음

“내 딸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화학약품을 취급하는 일을 하다가 2년째 되던 해에 백혈병이 걸렸어요. 그런데 함께 2인 1조로 일하던 동료도 똑같이 백혈병에 걸려 둘 다 죽었어요. 그런데 삼성은 이게 개인질병이고 우연의 일치라고 합니다. 또 단지 2명이 아니라 제가 알기로는 5~6명쯤 됩니다. 백혈병이 감기도 아니고, 이게 산업재해가 아니면 뭐가 산업재해겠습니까?”

당시의 아버님은 큰 방송사와 여러 정당들, 큰 단체들에 이렇게 호소를 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진지하게 호소를 해도, “산업재해로 주장할 만한 그렇다 할 진실의 증거를 가져올 것”을 요구 받았을 뿐, 큰 단체들은 모두 아무런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언론사들이 아버님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첫 취재를 한 『민중의소리』, 바통을 이어받아 심층취재를 한 『수원 시민신문』 등은 반올림이 결성되기 이전에 이 문제를 다뤘다. 그리고 이러한 기자들의 활동은 ‘건강한노동세상’, ‘다산인권센터’의 활동가에게로 이어졌다.

반올림의 출범

이러한 노력들이 이어 이어져 마침내 대책위의 필요성을 여러 활동가들이 함께 깨닫게 되었다. 몇 차례 어려운 준비모임 끝에 2007년 11월20일, 유미 씨가 다녔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앞에서 19개 노동·인권·정당·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대책위원회가 조촐하게 출범을 하였다. 당시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문은 우리가 어떤 문제의식과 어떤 목표를 가지고 출범을 하는지 잘 드러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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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오늘 우리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의 발족을 알리기 위해 모였다.

우 리가 모여 있는 이 곳, 삼성전자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지난 7년간 최소한 여섯 명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쓰러졌고,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백혈병으로 고통받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난 20여 년 간 이 공장을 거쳐 간 수만 명의 노동자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똑같은 고통을 받아야 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수 십 수백 가지의 유해 물질을 사용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자연유산과 암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외국의 경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원인을 명확히 파헤치기 위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반도체 산업은 더 값싼 노동력과 더 느슨한 환경 규제 지역을 찾아 국제적으로 이동해왔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에 신경 쓸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이윤을 찾아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반도체 산업에 얼마나 짙게 드리워져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확히 어떤 물질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입증하기 어렵더라도, 일터에서 건강과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치료와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산재보험제도는 이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며, 이들의 질병이 업무와 관련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않는 한, 근로복지공단은 지체 없이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한 공장 안에서 여러 명의 노동자들이 같은 질병에 걸렸다면, 사업주는 최소한 그 공장의 작업 환경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찾아내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러나 삼성은 사업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병든 노동자에게 퇴사를 종용하고, 현장에 한 발짝도 들어설 수 없는 유족들에게 작업환경의 문제점을 찾아낼 테면 찾아내 보라며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이런 고통이 수십 년 동안 고수해온 무노조 경영 방침 아래 노동 3권을 짓밟힌 채 지내 온 수많은 삼성 노동자들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거침없이 외면하는 삼성의 모습은,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어 썩은 내가 진동하는데도 공권력조차 손대지 못하는 절대 권력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건강하게 일할 권리, 인간답게 일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반노동 기업 삼성, 절대 권력 삼성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산재 은폐에 맞서 삼성전자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생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수 있도록 싸울 것이다. 또한 삼성의 노동자들이 삼성 자본의 무노조 경영방침에 맞서 노동기본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고 연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세계화 시대의 첨단 산업’, ‘국가 경제의 일등공신’으로 미화되기만 했던 반도체 산업의 뒷면에 숨겨진 ‘직업병과 환경오염의 세계화’에 대해 세상에 알리고, 이에 맞서 싸울 것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환자, 즉시 산재 승인하라!
노동3권 없이 건강권 없다, 무노조 삼성을 규탄한다!
노동자 목숨 위협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한다!

 

2007년 11월 20일
-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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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제보

제 아무리 좋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피해자들이나 노동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피해사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들이 없었더라면 반올림 활동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반올림이 제기한 산재신청 이슈가 온라인 언론에 잠시 보도되거나 어쩌다가 운 좋게 방송까지 보도가 되거나 하면, 거짓말처럼 피해 제보가 한 명씩 두 명씩, 어떤 날은 여러 명씩 들어왔다.

그렇게 하여 지난 3년간 삼성 반도체를 비롯해, 삼성의 전자 계열회사에서 일하다 직업병 의심 질환에 걸렸다고 반올림에 제보해 온 피해자들의 수는 120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이중 50여 명이 사망했다. 거의 대부분 20대, 30대 젊은 노동자들이었다. 암에 걸리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나이에, 백혈병이나 흑색종, 뇌종양과 같은 매우 드문 암에 걸린 것이 특징이었다.

장애물 - 정부와 삼성

120 여 명에 달하는 피해제보에도 -제보된 피해규모이기 때문에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실제 산재신청까지 연결된 경우는 현재까지 22명으로 20%가 채 못 된다. 이렇듯 제보된 모든 사람들이 산재신청을 하지 못한 이유는 ‘3년 시효’라는 법률적 한계와, ‘어차피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좌절감, 삼성에 맞서야 한다는 부담감, 제보의 불안정함 등 여러 제약들 때문인 것 같다.

나아가 산업재해보상보험을 관장하는 정부기관인 근로복지공단(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은 산재신청을 한 22명 중 최종 판정을 내린 18명 모두에 대하여 억울하게도 불승인 처분을 내렸고, 이 중 9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 중이다. 그리고 지난 6월23일, 4년 만에 처음으로 고 황유미, 이숙영 님이 1심 재판에서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되었다. 4년 만에 단 2명이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재인정 판결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끝내 고등법원에 항소를 하였고, 따라서 해당 판결은 미확정된 채로 법정싸움이 계속되는 중이다. 형식적인 상대는 근로복지공단이나, 근로복지공단을 보조해서 소송에 실질적인 당사자로 참여하는 삼성과의 싸움인 것이다.

산업재해 신청과 승인은, 아픈 노동자들의 치료받을 권리와 그 가족들의 생계에 대하여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최소한의 보상 등의 의미에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재해 예방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재가 아니라면, 즉 백혈병이 운이 나빠 생긴 개인질환일 뿐이라면, 굳이 번거롭게 반도체 사업장의 재해예방 정책이 세워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진정으로 제대로 된 정부라면 이번 삼성백혈병 산재인정 판결에 대하여 항소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노동•시민사회와 함께 제대로 된 반도체 사업장 안전보건 정책을 펼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산하의, 혹은 삼성공화국 산하의 고용노동부는 산재인정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하고, 삼성이 내놓은 엉터리 안전보건대책을 칭찬하는 정도의 대책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반올림과 노동시민사회단체에게 주어진 소명은 참으로 중요하고도 무겁다.

피해자나 노동자들의 제보의 힘은 삼성도 잘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처음 시작 때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활동을 멈추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제보를 차단하기 위한 삼성의 노력 또한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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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고통은 안 된다!

앞 서 소개한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문에 잘 나타난 것처럼, 반올림의 목표는 크게 △산업재해 진상규명과 보상쟁취, △삼성노동자들의 노동3권·건강권 등 노동기본권 쟁취,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점 폭로 등이다. 이런 목표 아래 반올림은 연대(Solidarity), 피해자 지원(Help), 실천(Action), 연구(Research), 홍보(Propaganda) 활동을 벌여왔다. 그래서 반올림의 영문 명칭은 각 활동들의 영문 표기 첫 글자를 따서 모은 ‘SHARPs’이다. 이를 조금 더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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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반도체 노동자들의 불건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내외 연대, 삼성 민주노조건설 연대
H: 반도체산업 피해노동자 상담 및 산재인정을 위한 법적 대응
A: 노동건강권 확보를 위한 직접행동, 노동부, 근로복지공단 대응
R: 국내외 반도체 산업 관련 연구논문, 문헌자료 수집 및 번역, 출판
P: 사회 이슈화를 위한 각종 홍보, 언론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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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러한 다방면의 활동들은 단지 반올림 회의에 참여하는 몇 명의 활동가들이 다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지난 4년간 노동, 예술, 의료, 법률, 지역, 인권, 여성, 시민사회 등등 다방면에 걸친 사람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결합되면서, 현재의 반올림 활동이 가능할 수가 있었다.

이는 바로,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더 이상의 고통은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 대한 깊은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이것이 바로 거대 권력 삼성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낸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피 해자의 노력과 노동안전보건 전문가(여기서 ‘전문가’라 함은 의사나 변호사, 노무사와 같은 제도권이 주어진 전문직 자격증 소지자도 포함되지만, 수년 이상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하여 책임감을 갖고 활동해 온 노동안전보건 영역의 활동가들도 포함된다.)들의 노력이 결합된 산물이 현재의 반올림 활동이며, 아주 다양한 부문과 개인으로의 연대 확산도 반올림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산재피해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으로서 반올림

따 라서 반올림의 활동은 쉽게 분류하면 엔지오(NGO: 비정부기구) 활동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서툴고 부족하지만 산재피해 노동자들과 결합된 노동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운동과의 결합은 여러 시도는 있었지만 아직은 쉽지 않다. 그리고 아직은 반도체 현장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부족하지만,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을 한다면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도 속담에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는 ‘방법’을 찾고, 회피하려는 자는 ‘구실’을 찾는다.”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적어도 반올림 활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각자 주어진 조건과 영역에서 피해자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끊임없이 ‘방법’을 찾아온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힘으로 앞으로도 삼성 혹은 반도체 자본과 정부에 맞선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