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자기변신을 향한 진지한 여정

노동사회

노동운동의 자기변신을 향한 진지한 여정

admin 0 2,844 2013.05.07 11:04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급물살이 지구촌 구석구석에 넘나들면서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특히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에는 한줌의 관대함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잔혹하다. 이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은 저마다 온 몸으로 부딪히고 있지만, 자본의 포악성은 갈수록 그 도를 더해 갈 뿐이다. 그렇다면 유럽 선진국 노동조합들은 이 악몽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을까? 여러 가지 자료와 정보들을 보면 그들 나름대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감을 갖기에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런 판에 지난 6월 11일∼15일 네덜란드 방문은 선진국 노동조합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었다. 

네덜란드를 가게 된 것은 원래 한국의 민주노총·브라질의 CUT·남아프리카공화국의 COSATU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를 비롯한 세 나라의 연구소들이 모여 앞으로의 연대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 3국연대 방안은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재단(FES)의 지원 하에 1995년 시작되었고, 이제 둘째 단계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여기에 네덜란드 노동조합총연맹(FNV)이 참가 의사를 밝혔고, 그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FNV 총회에 초청을 한 것이다. 그러나 당초 계획했던 협의는 FES가 참가하지 않아 진전되지 못하였고, FNV와 세 나라 노총 사이의 공동활동계획만을 협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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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걸 함께 하자" FNV 총회의 슬로건. 사진은 FNV 총회 장면 ]

네덜란드의 오늘 

네덜란드는 하얀 풍차의 나라, 튤립의 나라, 국토의 1/3이 바다보다 낮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정치체제는 여왕을 상징적 정점으로 입헌 군주제이고, 지금은 사회민주당이 다수당이으로 수상은 건설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네덜란드는 사회복지 수준이 상위급에 속하며, 실업률은 80년대 초반 10%대에서 지금은 2.5% 수준까지 낮아져 인력난을 겪고 있다. 노동시간은 매우 짧아 금요일 오후부터는 휴일로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고, 파트타임 노동자들도 정규직 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완전고용에 가까운 낮은 실업률과 사회복지 상황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대량 실업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비하면 특이한 현상으로 지적되고 있고, 그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그 하나가 이른바 '네덜란드 모델'이 성공한 결과라는 것인데, '네덜란드 모델'의 핵심은 '사회적 합의'로 설명된다. 곧 노사정 3자협의기구인 '사회경제위원회'(SER)와 노사공동위원회인 '노동재단'을 중심으로 '합의'를 이끌어내서 1970년대 이후 심화된 복지병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번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의 설치 근거와 타당성을 정당화하는데 많이 활용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으며 '네덜란드 모델'이 우리에게 맞는 방식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와 네덜란드는 역사발전 단계와 경제·정치·사회적 조건, 그리고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이 다를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아예 복지병이라는 것이 생겨날 여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덜란드 모델'은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선택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총회 전날 밤 외국대표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FNV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네덜란드 모델은 없다. 그것은 네덜란드 역사가 낳은 산물일 뿐이며, 다른 나라에서 흉내를 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한 노조간부는 "모델이란 미리 꾸며서 만들어낸 것인데 네덜란드 모델이란 변화한 상황에 대응하여 네덜란드에 있어왔던 오랜 동안의 관행을 조직화하고 제도화한 것일 뿐"이라고 규정하였다. 

네덜란드 노동조합 상황

네덜란드 인구는 약 1,500만명으로 우리나라의 1/3이며, 노동자수는 모두 700만 여명으로 우리나라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다. 이 가운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190만명이고, 조직률은 27%이다. 이들 조직노동자들은 세 개의 전국중앙조직에 속해 있다. 가장 큰 조직은 네델란드노동조합총연맹(FNV)으로 조직노동자의 60%인 120만명을 포용하고 있다. 나머지 조합원의 18%는 기독교노동조합총연맹(CNV)에, 그리고 8%는 숙련공노동조합연맹(MHP)에 분포되어 있다. 

원래 네덜란드에는 로마 가톨릭 교도의 조직인 NKV와 사회주의자 그룹인 NVV가 있었는데 1970년대이래 협력관계를 유지해오다 1982년 1월 FNV로 통합하였다. FNV에는 14개 산업별노조가 가입해 있다. 이 가운데 일반노조(495,000명), 공무원노조(360,000명), 건설노조(160,000명)는 규모가 커서 조합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교원노조(75,000명), 예술 문화인노조(50,000명)는 중간 수준이다. 그밖에 요식업노조가 28,000명, 군인노조가 26,000명, 경찰노조가 19,000명이며, 미용사노조(9,200명), 여성노조(7,000명), 언론인노조(7,400명), 선원노조(6,300명), 스포츠노조(1,500명), 프로축구선수노조(850명) 등도 있다. 

FNV는 전형적인 산업별노조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노동조합에는 실업자와 파트타임 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직노동자, 실업자, 퇴직자까지 가입해 있으며, 공무원에게도 단체교섭권과 쟁의권을 보장하고 있다. 단체교섭은 전국적 또는 업종별 사용자단체와 하고 있으나, 파업투쟁보다는 교섭에 중심을 두어 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파업건수가 극히 적을 뿐 아니라, 지난 5년간 1995년에 공공운수와 건설산업에서 파업을 한 것 밖에 없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FNV는 "평등·연대·자유·정의·영속성"을 내세웠다. 그리고 목표로는 △ 매력있는 일자리와 소득 보장, △ 모든 사용자와의 단체협약 체결, △ 경제민주주의 실현, △ 유럽 통합, △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적인 역할과 위상 확립, △ 집단적 개인적 서비스 제공과 이익의 보호, △ 균형 있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 상호지원과 개입, △ 참가에 기초한 총연맹과 노조사이의 사업과 활동의 배치 등을 내걸고 있다.

FNV의 최고의결기구는 총회다. 총회는 최소한 1년에 한번 열리며, 산별노조에서 파견된 대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 의결기구는 FNV 의회라고 불리는 중앙협의회(Confederation Council)다. 우리나라 중앙위원회와 유사한 수준인 이 협의회는 산별노조 대표자와 집행위원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집행기구는 6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와 사무총국을 두고 있다. 임기는 4년이다. 현재 위원장은 50세의 보험사무직 출신인 로드빅 드 발(Lodewijk de Waal)씨로 1996∼97년 우리나라 총파업 때 다녀간 적이 있다. FNV는 특히 국제활동이 활발한데 현재 제3세계의 100개국과 관계를 맺어 지원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노동조합도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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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NV 위원장과 민주노총. 연구소 대표단이 함께했다. ]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걸 함께 하자"

FNV총회는 6월 12일과 13일, 우트레히트 시에 있는 문화회관 비슷한 곳에서 열렸다. 우트레히트 시는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조그만 도시다. 이번 총회에는 40명의 외국 대표들이 초청되었는데 대부분은 유럽 각국 노총의 대표들과 폴란드, 체코, 헝가리, 리투아니아 등이었고, 아시아에서는 터키와 한국의 민주노총, 아프리카에서는 이디오피아와 남아프리카의 COSATU, 남아메리카에서는 브라질의 CUT 대표단이 참석하였다.

극장식인 회의장에는 총회를 나타내는 현수막이나 구호는 보이지 않았고 화환도 없었다. 총회 의장석은 대의원 의석과 같은 높이의 무대에 설치되어 있고, 스크린이 걸려 있는 정도로 단순하고 소박했다. 다만 대의원 등록 장소 부근에 두 세 가지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포스터는 FNV위원장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그림과 FNV본부 건물에 붉은 색 ×자를 그려놓은 그림이었다. 그 벽보 밑에는 "노총 위원장이 감옥에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노총 본부건물이 정부에 의해 폐쇄된다면?", "노동조합 대표를 정부가 임명한다면?" 이라는 글귀가 씌어져 있었다.

총회는 6월 12일 오전 10시 30분 시작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전에 외국 대표단에 대한 일정 안내가 있었는데, 총회 각 프로그램에 참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200여명의 대의원 등록이 이어졌다. 총회는 10시 30분 건설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시작되었다. FNV위원장의 소개로 50여명의 오케스트라가 30분 정도 연주한 곡은 총회를 축하하는 내용이라고 하였다. 이어 본회의가 시작되었는데, 사회자도 없고 내빈축사나 외국대표단에 대한 소개도 없었다.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하고 바로 개회사에 들어갔다. 위원장은 지금까지 각 기업의 고위직 임금소득이 조합원의 소득보다 몇 배나 많이 올라 소득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올해 4% 임금인상 요구는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한 적정한 수준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회사측이 경제위기 가능성을 내세워 임금인상 억제를 위한 여론조성에 애쓰고 있지만, 적극적인 교섭을 통해 노동자들이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요구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다음 사무총장 활동보고는 겨우 10분 정도로 당면문제가 조합원 감소, 조합비 인상, 정치적 활동강화 등이라는 내용으로 하여 간단히 끝났다. 이처럼 활동보고를 간단하게 처리한 것은 이미 활동보고를 각 조직에 내려보냈고 중앙협의회에서 검토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대신 조합원들과의 인터뷰가 비디오로 상영되었다. 그 내용은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 시민들의 인상과 평가 같은 것이었다. 

활동보고가 끝나자 그 내용을 갖고 토론이 시작되었다. 토론은 대의원전원이 9명씩 조를 이루어 진행되었다. 분위기는 매우 진지해 보였다. 여기에는 외국 참가자들도 5개조로 편성되어 참여하였다. 내용은 주로 상황변화에 따라 나타난 노동조합운동의 현상과 문제점을 정리한 것이었다. 동구와 아시아 나라의 참가자들은 세계화의 악영향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그로 인한 고통을 토로하였다. 토론 결과 발표는 시사 코미디언이라는 여성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이 여성은 매우 시니컬한 비평으로 유명하다는 사람이었는데, 사회자의 지명에 따라 각 그룹별로 대표의 보고가 끝나자 사회자는 총회가 축제분위기이어야 하는데 딱딱하고 재미가 하나도 없어서 조합원들의 관심을 갖겠느냐고 일침을 놓았다.

오후 1시 점심을 먹고 대의원들의 그룹토론이 계속되었다. 토론 주제는 이번 총회의 슬로건 인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걸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오전 토론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토대로 앞으로의 운동방향을 세운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토론은 다섯 개의 소주제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 서비스와 대표성: 개인·집단·개인화, △ 정책조정·로비활동·전략적 동맹, △ 세계 및 유럽수준에서의 노동조합운동, △ 의사소통·상호관계와 이미지·질, △ 노총과 노동조합의 조직적 결합 등이 그것이었다. 토론은 2시간 정도 진행된 후 그룹별로 발표하고, 그 내용은 대자보 방식으로 회의장에 게시되었다. 

이 사이에 외국참가자들은 따로 마련된 회의장에서 "세계화와 유럽"이라는 주제의 모임을 가졌다. 그 내용은 유럽의 단체협약, 유럽은행 통합, 다국적기업 감시체제 등이었다. 단체협약과 관련하여 대체로 유럽국가들은 국제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한 자본측의 공세 아래 1981년이래 실질임금 증가율이 노동생산성 상승률을 밑돌아 GDP 중 임금 비중이 매년 감소했다고 보고하고, 물가상승률과 노동생산성 상승률을 합한 것만큼 임금을 올리기 위해서는 각국 간에 솔직한 정보교환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특히 유럽노총(ETUC)을 중심으로 단체교섭 기구를 창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강조되었다. 

총회 첫날의 마지막 순서는 노동조합상 수상식이었다. 노동조합상은 FNV가 제3세계의 민주노동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정한 것으로, 첫 번째 수상자는 남아공화국 COSATU 사무총장 나이두(Naidoo)이었고 두 번째는 한국의 병원노조 김유미 위원장이 받았다. 이번에 상을 받을 사람은 이디오피아 교원노조 위원장(Dr. Taye Woldesmiate)이었지만 감옥에 갇혀 있어 영국에 망명 중인 교원노조 간부가 대신 참석하였다. 이디오피아 교원들은 교육 민영화 반대, 교원평가제도 폐지, 정권연장을 위한 이용 등에 반대하여 교원노조를 만들고 시위를 벌인 바 있었다. 그러자 이디오피아 정부는 1996년에 위원장을 내란 및 소요죄로 몰아 16년형을 선고하고, 교원 700여명을 구속하거나 해고하였다. 이 과정에서 교원노조 사무총장이 죽음을 당하였다. 또 최근에는 대학에 군대를 투입하여 무차별 폭력을 가하고, 76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수상자는 구속자 석방, 사무총장 의문사 규명, 최근 폭력살인진압사태 규탄, 신교육정책 철회, 노조에 대한 지배 개입 중단, 국제협약 존중을 요구하며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호소하였다. 

총회 둘째 날도 대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다시 모여 토론을 계속하였다. 이번 토론은 의회식 토론이라는 것으로 수정제안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제안자들은 산별노조별로 대표들이 나와 저마다 그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열변을 토하기도 하였다. 대의원들은 자료를 보면서 경청하였는데, 표결은 없고 제안은 대부분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으로 사업계획에 대한 심의는 끝이 났다. 

이어 대의원들에게는 세 가지 토론 프로그램 가운데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는 한가지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해외 참가자들도 희망에 따라 참가하였다. 세 프로그램의 주제는 "사이버노동운동은 가능한가?", "네가 노조를 만들어? 감옥갈래?", "FNV총회를 위한 여정"이었다. 한국대표단은 두 번째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 여기서는 한국을 비롯하여 남아공화국, 브라질, 이디오피아 등 주로 제3세계 노동운동의 엄혹한 상황이 보고되었고, 특히 이디오피아의 탄압상황에 관심이 모아졌다. 참가자들은 제3세계 노동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FNV를 포함한 유럽 노동조합들이 실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나머지 두 프로그램에는 참가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하나는 인터넷시대 노동조합운동의 방향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FNV총회를 어떻게 준비해가는가와 관련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토론과 심의가 끝나자 임원선출 순서가 돌아왔다. 대상은 집행위원 6명이었고, 임기는 4년, 올해가 임기대회였다. 그런데 임원선출은 이미 중앙협의회에서 현재의 임원 6명 가운데 정년이 다된 재정 담당 임원을 제외한 전원을 그대로 유임시키기로 결정을 본 상태이었다. 그래서 유임에 대한 신임을 묻는 자리가 되어버렸고, 선거의 열기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긴장감은 감돌고 있었다. 임원 선거장은 그룹토론이 벌어진 곳이었다. 단상에 5명의 임원이 앉고 정년퇴임 예정인 재정담당 임원이 사회를 보았다. 사회자는 임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질문을 던졌고 답변이 끝나면 대의원들은 박수로 호응하였다. 때로는 웃음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질문에 답하는 임원들은 바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맨 마지막 순서인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총회 시작부터 진행을 도맡아 하면서 시종 활기 넘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던 그도 질문에 답할 때는 매우 조심스러워 하였다. 임원 선출은 대의원들의 박수와 함께 끝났다. 이후 간단한 내빈 연설과 위원장의 폐회선언으로 이틀에 걸친 총회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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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노조원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

형식보다 내용 중심의 총회

노동조합 총회 또는 대의원대회는 그 나라 노동운동의 상황과 노동조합의 역량,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 때문에 각국의 대의원대회는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기 마련이다. FNV총회 역시 나름대로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첫째, 총회는 형식을 벗어나 매우 소박했다. 플래카드도 구호도 걸려 있지 않았고, 다른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인들의 연설은 있지도 않았다. 노조 출신 수상도 초청하지 않았고, 내빈 축사는 맨 마지막에 간단히 끝냈다. 회순을 알려주는 사회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회의순서가 되면 의장이 나서 회의를 진행하였다. 의장은 보충설명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룹토론까지 안내하였다. 총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툼한 사업보고서도 배부되지 않았고, 사업보고나 결산보고도 극히 간단하였다. 사업계획서와 예산안도 보이지 않았고, 그에 관한 심의도 없었다. 회의 자료는 회의 안내와 토론에 관련된 얇은 몇 권의 소책자가 전부였다. 사업보고와 결산보고는 이미 각 대의원에게 배포되어 산업별노조를 통하여 평가가 끝났고, 매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은 중앙협의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 최대의 조직으로서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하기 때문에 형식을 갖추어 권위를 과시할 듯도 하지만, 이미 그런 단계는 지났다는 인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였다. 

둘째, 회의분위기가 극히 차분하다는 점이었다. 회의는 자유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회의의 절도나 규칙은 매우 엄격하였다. 회의 시작과 끝나는 시간은 거의 정확하게 지켜졌고, 참석자들은 누구의 안내도 없이 제 시간에 자리에 앉아 의견들을 경청하였다. 둘째 날이라고 해서 비어 있는 자리는 거의 없었다. 특히 그룹토론 때는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서 모여 있는데도 소란스럽지가 않았고, 정해진 시간에 토론을 끝내고 있었다. 집행부는 일정에 따라 회의를 진행하고 대의원 스스로가 알아서 참석하고 있었다. 토론과 심의과정에서도 격렬한 선동이나 주장을 펴는 대의원은 한 사람도 볼 수가 없었다. 대회장의 열기와 긴장감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맥빠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였다. 

셋째, 총회는 대부분 토론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집행부가 주도하는 순서는 전체 회의 시간 중 10%도 안되었고, 나머지는 모두가 토론이었다. 집행부가 한 일이라고는 간단한 보고와 토론 요령을 안내하는 정도였고, 토론 결과를 유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토론 도중에 들락날락하는 대의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발언하고 스스로 결정하여 책임지는 참여 민주주의를 철저히 이행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넷째, 토론 주제는 총회에 맞춰 제시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하고 철저한 준비를 거쳐 결정하였다는 사실이었다. FNV는 올해 총회를 위해 2000년 8월부터 올 6월까지 준비를 해왔다. 그 목적은 "향후 4년 동안 조합원이 추구하는 사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최상의 전략방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런 목표들이 추구되었다. 첫째, 2010년 미래사회의 시나리오에 초점을 맞춰 논의한다. 둘째, 조직 체계상의 지혜와 역량을 활용한다. 셋째, 광범한 이해 당사자들을 참여시키고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그들의 정보와 지식 및 전망을 발휘하도록 하고 상호관련성과 공통적인 입장을 찾아낸다. 넷째, 민주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적극적이고 역동적이며 도전적이고 고무적인 결과를 도출하며 다섯째, 스스로 효과적인 학습조직이 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FNV는 몇 가지 계기를 마련하여 실행에 옮겼다. 미래탐색회의, 집행위원회와의 회합, 모든 조직에 전략적 대안 발송, 대의원들과의 대화, 피드백의 결합, 수정안과 기본 권고안을 포함한 최종 전략대안의 준비, 총회의 구성 등이 그것이며, 그 결과로 나온 주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같이 하자(SDWSK)"였다. 그 가운데 출발점이 되는 미래탐색회의에서는 논의 범위를 이렇게 잡고 있었다. 즉 우리 사회는 변화하고 있고 우리 역할과 조직도 변화할 것이다, 우리가 당면할 미래는 어떤 것이며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다가오는 해에 모든 이해관련자와 함께 우리들이 해야 할 역할과 활동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내일의 사회에 FNV가 서있을 곳은 어디인가, 2001∼2005년 사이에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과 성취하려는 것들은 어떤 것인가, 조직 안팎을 불문하고 가장 잘 조직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장래 변화에 대한 대비는 이번 총회에서도 추진되고 있었다. 대의원들이 선택하여 참가한 프로그램 가운데 "FNV총회를 향한 여정"이 그것이다. FNV는 이 프로그램의 도전과제를 이렇게 잡고 있었다. 곧, 4년 후 총회를 조직하기 위한 것, 지루하지 않고 강제성을 띄지 않으면서 보다 의미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 지난 4년 간의 평가에서 교훈을 얻어 내는 것, FNV 이념과 목표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것, 사회와 노동, 노동관계에서의 변화에 대한 전망을 세우는 것, 현대사회에서의 노동조합의 역할 변화,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 사회와 조합원에 대한 최적의 기여도 탐색, 4년간 노동조합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경로의 설정 등이었다.

부단한 자기변신 추구

이틀 간의 총회만을 보고 네덜란드 노동조합의 상황을 깊이 있게 알아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총회를 지켜보면서 가진 느낌은 유럽의 다른 노동조합과 비슷하게 FNV도 매우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1.5%의 실업률과 최고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갖고 있는 네덜란드의 상황에 비추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NV는 나름대로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고민이란 상황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조직률이 감소하고 있는데 그 가장 큰 원인은 노동자들의 무관심에 있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이번 총회 때 있을 법하지 않은 내용을 표현한 벽보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위원장이 감옥에 간다면?", "노총 본부 건물이 정부에 의해 폐쇄된다면?", "노조대표를 정부가 임명한다면?"이라는 질문은 그냥 나온 선동문구가 아니었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사이에 노동조합운동이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으므로 스스로 자각하여 변신해야 한다는 경구로 보였다. 이같은 FNV의 문제의식을 2000년 12월 15일 위원장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었다. "우리는 FNV의 변신을 창조할 필요에 직면해 있다".

이번 총회는 그 반영인 것 같았다.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기회를 활용하여 총회를 준비한 것, 권위를 상징하는 과거의 형식을 깨고 내용을 중시한 것, 미래지향적인 과제를 제기하고 대의원 스스로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한 것 등은 노동조합운동의 자기혁신을 위한 진지한 시도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이번 총회 결론이 어떤 실천 과정을 거쳐 노동운동의 목표에 기여할지를 가늠하기는 아직 이르다. 또 상황변화에 따라서는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회가 던진 명제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조직률도 우리보다 두 배 이상 높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도 우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높아져 있는 이 나라에서도 노동조합운동의 미래를 위한 자기혁신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노동조합 운영의 기본원칙 대로 장기간에 걸친 철저한 준비와 충분한 대중토론을 통해서 이루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네덜란드와 꼭 같을 수는 없다. 저들은 전통적으로 투쟁보다 협상 중심으로 운동을 해왔다고 하지만, 우리는 투쟁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저들은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내용을 중시하면서도 형식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저들은 운동의 이념보다 현실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듯 하지만, 우리는 이념과 현실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것을 하든 간에 노동조합의 조직·이념·투쟁·운영의 여러 측면에서 낡은 것을 과감히 청산할 때만이 거센 도전에 맞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동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더 절박한 것일 수도 있다. 모쪼록 6∼7월 민주노총 투쟁이 운동의 자기혁신과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투쟁 기간동안 외국을 다녀온 미안함에 대신하는 기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