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천국?

노동사회

아시아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천국?

편집국 0 3,581 2013.05.3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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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아시아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천국?

사회: 오동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발표: 윤효원 국제화학에너지광산일반노련(ICEM) 컨설턴트

일시: 2011년 4월11일 오후 6시30분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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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우리가 그동안 잘 모르고 있던 아시아 노동운동 현황을 알고자 이번 포럼을 기획해봤습니다. 발제를 듣고 자유로운 질문과 토의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발표>

반 갑습니다. 윤효원입니다. 제가 아시아 노동운동을 잘 알고 있다기보다는 주로 하는 일이 아시아의 노동 현장을 방문하고 교육도 하고 접촉을 자주 하다 보니 이런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제목이 ‘한국의 노동운동은 천국?’인데, 그렇다고 다른 아시아 노동운동이 지옥은 아닙니다. 이 시간에는 아시아 노동운동이 어떤 상황이고 어떤 고민과 과제를 갖고 있는지, 제가 이해하는 범위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5개 나라를 중심으로 볼 텐데, 이 5개국은 제가 1년에 5~6회, 많게는 10회 정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방문하는 나라입니다. 우선 일본의 유리회사가 태국에 지은 호야타일랜드라는 공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컴퓨터 유리, LCD, 평면TV의 유리를 만드는데 아시아 개도국에 여러 공장을 가지고 있고,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노동자 4천 명 정도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장에서는 여자 노동자 탈의실, 여자 노동자 화장실, 남자노동자 탈의실 가릴 것 없이 CCTV로 24시간 감시하고 있습니다.

노조 에서 왜 CCTV로 감시하냐고 회사에 항의하니 태국 노동자들이 너무 폭력적이라 시도 때도 없이 싸워서 예방차원에서 했다고 답변을 했는데요. 태국법에 따르면 이런 CCTV 설치는 불법입니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주의 주지사도 오고 인권위원회에서도 나왔는데 아무 해결도 안 되었고, 노조도 불만을 갖고는 있지만 항의나 시위는 못하고 있습니다. 극단적 상황이긴 하지만, 이 사진이 아시아 노동자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같 은 계열사인 베트남 공장의 노동자 간부를 만나 물어봤더니 베트남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예외적이고 극단적 사례이긴 하지만 이런 CCTV 문제처럼 노동자로 하여금 사용자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는 정책이나 노조나 아시아 국가들이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아시아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이 곧 오지 않을까요? 노조의 힘이 점점 약화되고 민주주의도 약화되면서 사용자의 현장 장악력, 공포심을 유발하는 정책들이 현장 차원에서 확산되는 게 아닌가 싶어 우려됩니다.

‘회사 무서운 줄 알아라’ 아시아에 확산되는 사용자 중심주의

이 제 구체적으로 5개국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다른 나라와 비교를 위해서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경제상황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인구가 4천 8백만, 면적은 9만 9천㎢, GDP는 2만 달러, 노동자가 190만 명이고요, 두 개의 노총이 있고 노조 조직률은 10% 정도입니다. 노동조합 조직은 산별로 가는 추세인데 기업별 교섭이 아직 많이 행해지고 있고, 친노동자 정당이 2개인데 국회 영향력은 미미합니다. 사회 전체로 반공·반노동자주의가 횡행하지만, 노동운동의 기풍은 이에 침묵하고 복종하기보다는 도전하고 응전하여 투옥이나 해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민족적 특수성으로는 1천년 동안 핏줄이 섞여 단일민족=국민이라는 특징이 일본과 두 나라에서만 보이고요. 노동운동이 국제연대에 관심은 있으나 활발하지는 않고, 국내 문제와 내부 과제에 집중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또 외국 노동운동의 지원을 받았다기보다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노동운동이 커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 조합주의에 경도된 인도 노동운동

우 선 첫 번째로 인도를 보죠. 인도는 남한보다 훨씬 광대한 나라입니다. 노조 교육을 조직하면 기차타고 기본 25시간, 멀리는 4천㎞를 1박2일 걸려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4억 노동자 중에 4천만 정도가 조직되었으니 조직률은 8~9%정도인데 노조비를 내고 활동하는 사람은 이보다 적습니다. 정부에 등록되어 있는 노총은 13개이고요.

[그림1] 인도 현황 개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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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도는 영국의 식민지로 수백 년 동안 식민지 경제체제를 유지해오면서 발전했으나 식민지가 끝날 때는 인도 자본가도 상당수 나왔을 정도로 자립적 형태도 보여줍니다. 인도는 영국이 우리가 잘 아는 간디, 네루, 자왈루 등의 인도 지도자들이 있었던 국민회의라는 정당에 선거를 통해 권력을 이양하는 방식으로 독립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적으로는 다당제와 연방제, 경제적으로는 중앙집권식 사회주의 정책을 실행하는데 1990년대까지는 폐쇄경제로 운영하다가 그 이후부터 민영화, 시장화, 세계화라는 흐름을 따라 세계경제에서 급부상하고 있죠.

인 도 노동운동은 정치적 조합주의라고 표현됩니다. 각 노총이 정당과 긴밀한 영향을 맺고 있으며, 대부분의 노조 간부가 일정한 경험을 쌓으면 지방자치의원이나 중앙의원이 되죠. 그리고 노동조합이 현장 활동에 인력과 자원을 투자하기보다는 정당과 정치활동에 상당한 시간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또 인도는 연방제여서 지방자치가 잘 되어 있어 지방마다 정당들의 지지 정도가 다릅니다. 따라서 노동조합도 정당별로 갈라져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힌두 극단주의부터 공산당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 도는 인구와 자원이 많고 IT·자동차 등 분야에서 첨단 기술력도 있어서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상급단체가 많아 서로 분열이 심하고, 정치적 조합주의에 경도되어 작업장이나 현장 이슈에 대해서는 무능하거나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현장의 실무, 교섭능력은 상당히 부족하더군요. 1990년대 이전 국가계획경제 시절에는 노조가 대우를 받았지만 이후 찬밥 신세로 전락하면서 지역별·부분별·산업별 교섭에서 기업별 교섭으로 하향하고 있습니다. 물론 광산이나 시멘트 같은 산업에서는 초기업별 교섭도 하긴 하는데, 이게 기존 교섭 수준을 더 낮추기도 합니다.

혈연·지연과 언어장벽,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또 간부들이 실무에 무능하고 부패한 경우가 많습니다. 서남아시아의 노조들에게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한데, 노조 위원장은 시아버지, 사무총장은 남편, 지역노조 위원장은 며느리, 노조 회계감사는 시어머니 등 실제로 한 집안에서 다 간부를 맡는 경우도 있죠. 제가 진행했던 교육에 참가한 연맹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부부였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단순히 노조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인도 초대 총리가 네루였는데 후임 총리는 딸인 인디라 간디가 맡았고 그 뒤에는 아들이, 그 다음은 며느리 차례였는데 며느리가 이탈리아인이라서 다른 친인척에게 넘겼죠. 아직도 중앙정치가 네루 일가에 의해 통치되는 상황을 볼 때, 인도의 특수한 풍토로 보입니다.

인도는 나라가 큰 만큼 언어도 많습니다. 20km 갈 때마다 언어가 달라져 통역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만큼 자부심도 크고 장벽도 높습니다. 힌디어와 타밀어는 완전히 달라서 통역이 없으면 서로 소통이 안 될 정도죠. 또 노조 간부들은 대부분 영어를 능숙하게 쓰는데 현장 간부나 조합원은 영어가 서툴거나 거의 못합니다. 그런데 법원에서나 노조 상층 회의, 교육에서는 영어만 쓰거나 영어 통역을 하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가 참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영어를 쓰는 사람이 노동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고, 이 사람들이 특수 계층처럼 되어서 현장 문제보다는 자기들 이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는 맹점이 있죠.

또 노조를 만들 때도 현장 단위노조부터 만들어져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유지 한 사람이 지역 맹주가 되어 지역 내 노조를 조직하고 “내가 여기 위원장인데 당신네 조직에 가입하겠다”고 상급단체에 연락을 하는 식입니다. 그러니 상급단체는 현장을 직접 관장하지 못하고 지역노조위원장이 평균 10~20개 노조를 장악해서 교섭도 하고 상급단체에 연락도 해주고 그럽니다. 때문에 이 사람들이 어떻게 활동하느냐가 인도 노조 활동의 성패를  결정합니다. 인도 노조의 과제 중 하나가 세대교체를 어떻게 하느냐일 것입니다.

민주화의 기억을 현재로 이어내야 할 인도네시아

인 도네시아는 G20에 포함되는 나라죠. 공식 노총은 3개가 있습니다. 수하르토 독재 체제에서는 SPSI가 유일노조였는데 1997~98년 민주화투쟁 이후에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KSPI가 분리돼 나왔고, 새로 생긴 KSBSI는 기독교 계통의 노동조합입니다. 독재 정권에서는 탄압을 많이 받았는데 요즘은 그렇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법외로 마르크스주의, 좌파적 노총 등이 있는데 조합원 수는 2만 명 정도 됩니다.

[그림2] 인도네시아 현황 개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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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부에 등록된 산별연맹은 90개이고, 이 중 50개가 주요 노총이 아닌 무소속이나 법외노총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화학과 제약업종이 한 산별노조에 가입되어 있는데 인도네시아는 분열되어 있고 그만큼 재정상황도 열악합니다. 조합비가 전체 재정의 절반 정도, 외국의 지원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죠. 상급단체 사무실에 가보면 위원장과 사무직원 2명 정도 있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 위원장은 급여가 없어 자기 생활비를 알아서 벌어야 한답니다. 교육, 정책 담당도 없어서 상급단체라 해도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고 부정부패도 심합니다. 노동조합에 관한 기초 자료도 노조에서 조사한 것이 아니고,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죠. 제일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금속연맹도 재정의 절반은 외국 지원을 받는 취약한 상황입니다.

물 론 인도네시아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민주화 투쟁의 기억이 상당히 남아 있습니다. 일반 노동자들도 ‘자본주의’, ‘자본가’ 이런 표현을 쉽게 쓰더군요. 민주화투쟁의 영향으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8개를 모두 비준해서 ILO에서 인도네시아에 사무소를 내어 100여 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또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투쟁도 열심히 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젊고 활기찬 노조도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 노조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노령화되어 있어 세대교체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방치해 온 이주노동자 문제가 자국노동자의 현실로

말 레이시아는 인구가 2천 8백만 명밖에 안 되고 5개국 중 가장 가난합니다. 대다수 대기업은 노조가 조직되어 있고 중소 영세사업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강요받고 있기 때문에 노총은 단일노총인데, 그 안에 어용세력과 개혁세력이 한 데 모여 있어 내부 갈등이 있습니다. 산별연맹도 우리나라는 석유와 고무제조 업종이 한 산별로 묶여 있지만, 말레이시아는 정부가 정책으로 소산별, 소기업을 강요해서 다 나눠져 있습니다. 굉장히 파편화되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럼에도 현장의 노조 간부들은 산별노조 지향성이 굉장히 확실하기는 한데, 한편으로 초기업별 노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더군요.

[그림3] 말레이시아 현황 개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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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레이시아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가 가장 큰 이슈인데 520만 명 민간부문 노동자의 34.6%인 180만 명이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정부 공식 정책은 모든 부분에서 내국인 21명에 외국인 1명 고용입니다. 그 전에는 파견이나 비정규직 자체가 없었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노조가 이들을 보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방치를 하니 비정규직 문제가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처음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만 차별 대우를 했던 사용자들이 말레이시아인 노동자들도 비정규직으로 아웃소싱, 명예퇴직 시키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노동조합이 작년, 올해 들어 관심을 갖고 대처를 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공포감은 큰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체계적 인식이나 정책은 없다시피 했으니,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야기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아직까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조원으로 조직된 노조는 한 군데도 없고, 비정규직 조합원을 둔 노조도 없습니다.

말 레이시아 역사를 잠깐 살펴보자면, 1957년에 식민지에서 독립했습니다. 당시에는 공산당 세력이 강했고 공산당의 집권을 우려한 영국과 미국이 정글로 몰아놓고 게릴라전을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온건한 사민주의 정책을 실시해서 이를 무마했죠. 말레이시아에 가보시면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인프라가 좋은데 이게 다 1950~60년대 사민주의 정부의 산물입니다.

노조 지도부의 관료화와 부패 극복해야

그 러나 마하티르가 총리로 등장한 이후로 노조 탄압이 시작됐습니다. 기업별 노조 체계가 도입, 확산되고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투쟁력 약화를 위해 소산업, 업종별로 쪼개는 세분화가 시도됐습니다. 노조 지도부의 관료화, 부패도 같이 진행되었죠. 이번에 들어보니 말레이시아 노동자 평균연봉이 2,500링깃, 많이 받으면 3,000링깃인데 노조로부터 월급을 받는 노조 사무총장 기본급이 9,000링깃입니다. 여기에 차량수당으로 1,500링깃을 따로 받고 노조 문제로 법원에 가면 법정수당을 또 받습니다.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노조 고위급이 되면 평균 노동자의 5~6배를 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 사람들이 정부 여당과 관계를 맺는다든가 노조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폐해가 심각합니다. 그럼에도 작년 12월 말레이시아 노총 선거에서 이 부패 그룹이 위원장, 사무총장을 석권해 버리고 말았죠.

때 문에 현장 간부들을 만나면 다 공포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회사는 날 해고할 수 있고 노조는 날 못 지켜준다, 이런 공포감 말이죠. 말레이시아 노조에서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훌륭한 지도부는 돈을 모아서 건물을 사고, 어용 지도부는 그 건물을 팔아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들 합니다. 여기도 언어 문제가 심각해 2천 8백만 인구 중에 400만 명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고, 8만 명만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합니다. 그런데 법정에 가면 영어를 써야 합니다. 그러니 노조 상층은 이 8만 명이 장악하게 되는 거죠. 이런 특성도 노동운동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풍부한 자원 갖춘 베트남 노동운동

베 트남은 우리가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죠.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있고요.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나라가 됐습니다. 베트남의 웬만한 도시에는 한국인이 모여 사는 지역이 있고, 한국 드라마가 매일 TV로 방영되고 한류열풍도 뜨겁습니다.

[그림4] 베트남 현황 개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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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구가 9천만이니 상당히 많은데, 15세 이상 비율도 높아 노동력 인구가 많고, 농촌 인구도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베트남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라서 유일 노총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노조 회의에 가면 “공산당의 지도를 받아…”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노동조합을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게 드물거나 낯설죠. 베트남 노동총연맹은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식민지 해방투쟁에 노동자를 동원하기 위한 역할을 했고, 아직도 당과의 관계 속에서 그런 활동이 유지됩니다.

단 일 노총 아래 이원체계로 시도연맹과 산별노조가 있어, 민간부문은 시도연맹에서, 공공부분은 산별노조에서 총괄하고 있습니다. 민간부문은 노총→시도연맹→시군구연맹→산업단지노조(기초단위)→기업노조 체계이고요, 산별노조는 그 아래 국영기업노조가 속해있는 시스템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이다 보니 통계는 확실한데요, 680만 조합원 중에 380만 명이 공공부문입니다. 최근 들어 외국 기업이 들어오면서 노조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베 트남은 굉장히 활기찬 나라이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석유, 가스, 석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젊은 층이 많아 노동력이 풍부하죠. 노동조합도 자원과 인력이 대단한데, 조합 건물뿐만 아니라 호텔(게스트하우스), 상근자가 다 따로 있습니다. 노조가 가진 인력과 자원이라는 측면에서는 중국을 빼면 아시아 최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 지만 정당과 국가로부터 독립성과 자주성을 갖지 못하고 국가의 눈치를 보고 공산당의 권력을 따릅니다. 노조 간부들도 현장 경험과 상관없이 공산당과의 우호적 관계로 간부가 되기도 합니다. 공공부문만 있었을 때는 괜찮았지만 민간부분이 커지면서 일상적인 노사관계, 즉 단체교섭·협상 등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상급단체가 적절히 지도하거나 개입하지 못하고요.

시장경제 적응과 민간부문 발전이 과제

한 편으로는 노조 상급단체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상위 계층처럼 되면서 자기 이익을 챙기고 부패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젊은 간부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는 구조여서 간부가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시장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노동조합 자체가 찬밥 신세가 되고 있는데, 민간부분이 커지면서 공공부문 주축인 산별노조 운동이 맥을 못 추는 상황입니다. 특히 베트남은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공공부문에서는 회사에 당 조직을 갖추게 되는데, 경영진이 당 간부도 맡고 노조 간부도 겸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노조 간부교육을 하는데 인사 담당을 겸임하는 노조 간부가 참석한 경우도 있었죠.

또 한 가지는 사회주의 체제이다보니 이론적으로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법으로 보호할 필요도 없으니 노동법이 굉장히 후진적입니다. 현재의 노동법은 아주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수준일 뿐입니다. 그래서 ILO같은 기구가 노동법 자문을 해주며 시장경제체제에 맞는 법으로 변화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 노동법에 따르면 간접노동은 불법이고 1~2년 정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게 되어 있는데, 시장흐름에 따라 사내하청을 합법화 하는 법안을 추진중이라고 합니다. 베트남을 보면 우리가 북한의 개혁개방 이후 직총을 어떻게 변화케 할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모 든 노조사무실, 학교, 회의실 등에는 당 깃발, 베트남 국기, 호치민 흉상이 갖춰져 있습니다. 또 시도연맹 정도면 게스트하우스를 반드시 갖고 있지요. 모기도 많고 화장실은 물도 줄줄 새지만 사용하기엔 괜찮습니다. 별도로 노총 건물도 갖고 있고요. 자원으로 보면 대단한데, 이걸 국가 보조금을 받아 유지하다가 최근 들어 자율경영으로 방침을 바꿔서 외국 자본과 경쟁해야 하니 오히려 노조운영에 짐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파편화된 노조와 복잡한 국내정치 문제 혼재된 태국

마 지막으로 태국을 보겠습니다. 인구가 6천 7백만, 국토는 남한의 5배 면적입니다. 비공식 경제가 2,300만 명인데 아마 농민이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공무원들은 노조가 허용되지 않지만, 복지나 임금은 민간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경우는 단결권은 허용되고 단체교섭권도 상당한 부분까지 허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민영화 압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림5] 태국 현황 개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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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국도 정치적으로 활발한 지역인데 탁신 총리가 물러나면서 노동자들의 경제적, 정치적 수준이 악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경우는 분열되고 파편화돼 있습니다. 13개 전국노조, 18개 연맹이 있는데 연계성 없이 노총 따로, 연맹 따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노선보다는 인맥 중심으로 상급단체가 활동하는데, 이런 경향을 부추기는 게 국제기금입니다. 외국기금이 하나 들어가면 산별노총이 하나 만들어지는 거죠. 외국에서 지원금이 들어오면 사무실 차리고 직원 채용해서 일하고, 지원이 끊기면 흐지부지되는 모습도 보입니다. 단위노조에서는 비정규직을 조직하거나 보호하려는 투쟁, 열악한 환경을 이겨보려는 투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상급단체가 없으니 투쟁의 교훈과 성과가 단절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국 내 정치적으로는 군주제 문제가 있습니다. 태국은 왕정국가인데 공항부터 식당, 일반 가정 등 곳곳에 왕과 왕비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태국 왕은 권한이 대단해서 판사 임명권도 있고 법안 거부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왕실모독제가 있어서 예를 들어 “왕이 바보다” 라고 외치면 징역 2년에서 15년까지 형을 살아야합니다. 1년에 1천 명 이상이 이 죄로 기소당하고 감옥에 갑니다.

이런 상황은 탁신 축출 이후로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탁신은 통신회사를 갖고 있는 현대적 자본가이고, 왕은 전통적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자본인데 탁신이 깨진 겁니다. 얼마 전에 태국에서 옐로셔츠와 레드셔츠가 각각 시위를 했는데 왕을 상징하는 색이 노란색이어서 공공부분 노동자들은 옐로셔츠였습니다. 철도노조 위원장이 교육에 와서 세계혁명을 외쳤는데, 옐로셔츠 지지자여서 국회의원도 왕이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러더군요. 민간부문은 환경이 열악하니 노동자들 중에 레드셔츠 지지자가 많습니다.

아시아 전역에서 후퇴하는 노동조합, ‘식민지의 귀환’?

오 늘 살펴본 나라들은 국토도 넓고 인구도 많아 인종도 다양합니다. 노동교육 한 번 하려면 말 그대로 산 넘고 바다 건너서 가야합니다. 교육에 참여할 때도 기차 타고 2박3일씩 걸려서 옵니다만, 대도시 구경 기회가 별로 없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온다고 합니다. 단위노조에서는 열심히 활동하려 하는데, 상급단체가 지도력도 없고 부패하다보니 별다른 역할을 못하죠. 산별노조에 대한 이해도 떨어지고요. 기업별 노조 활동이 중심이어서 노동법보다도 못한 단체협약도 횡행합니다. 임금을 발설하면 처벌하겠다는 조항도 있고 현장의 안전이나 기계 도입 같은 문제를 모두 사용자에게 일임하는 조항도 있습니다.

상 급단체 활동도 없지만 사업장 단위의 현장활동도 거의 없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소산별 노조이기 때문에 조합비가 100% 어용노조로 갑니다. 자연히 현장활동할 돈이 없어 일반조합원을 교육할 수도 없습니다. 반면 현장노동자들의 상황은 암담합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확산되어 10시간, 12시간 노동도 있고 연장근로라며 강제노동을 시키기도 합니다.

인 도네시아는 노조사무실이 있는 경우가 다수 있지만, 다른 나라는 노조사무실이 공장 안에 있는 경우가 없습니다. 경영참여는 개념도 없고요. 단체협약이나 노동법의 개선을 요구하는 캠페인도 없습니다. 외국의 다국적 기업 경영자도 국제 노동기준에 입을 다물어 유럽자본이라고 해서 아시아나 현지보다 나은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현지 자본이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경우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는 나라마다 약간 다릅니다. 인도네시아는 민주화 투쟁 경험이 커서 우리가 언제 한 번 뒤집어엎을 수 있다 이런 게 있다면, 태국은 공포심에 젖어 있습니다. 베트남은 아직 ‘당과 국가는 우리 편이다’라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도 외부 세력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경찰도 노사 관계에 개입하진 않습니다.

이 렇게 5개국을 돌아보면, 식민지가 귀환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20~30년 열심히 투쟁했는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현장은 억압과 착취의 체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작업장에서의 민주주의, 자주성의 수호자로서의 노동조합의 역할이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반적으로 약화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부터, 실질적 도움 될 연대를

제 가 제안을 하자면, 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링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시아 연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회의나 연대 주제는 반민영화, 반신자유주의였는데 이건 높은 수준의 얘기이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필요한 주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쉽지만 우리가 잘 아는 것, 그리고 현장에서 중요한 것을 중심으로 단체교섭이나 일상활동 등을 핵심 주제로 잡으면 어떻겠나 싶습니다. 우리나라 학력이 세계 최고인데 영어로 뭘 하자 그러면 안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영어로 발표가 가능하니 영어공부 좀 해서 국제회의에 남이 아니라 내가 가서 발표를 하자 이런 노력들 하면 좋겠습니다.

국 제연대도 외국 사람들 불러오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우리가 가면 싸죠. 우리가 잘 하는 주제 가지고 토론하고 교육한다고 하면 150만 원이면 한 사람이 가서 1주일 정도 활동하고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큰 돈 안들이고 내용 있는 국제연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국제사업은 내 영역이 아니라는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일본노총과 중국노총과의 관계인데, 한국노총은 양쪽과 활발히 교류하는데 민주노총은 교류가 없습니다. 한·중·일 정부 간 교류도 중요하고 조합원 수도 무시할 없는 상대입니다. 베트남노총 같은 경우는 한국노총과 교류를 해오고 있는데 투쟁 부분이 약하다보니 민주노총과 관계를 트고 싶다는 얘기도 하더군요. 한국노총은 교류에 내실을 가져야 할 것 같고, 민주노총은 관심을 갖고 교류를 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이 거의 선진국 경제 수준이라서 한국의 다국적 기업이 외국에 많이 나와 있는데 한국 자본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챙겨야 합니다. 상급단체를 중심으로 한국 자본이 얼마나 노동법을 잘 지키는지, 어떤 것을 잘 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국제산별노조에 내는 의무금도 잘 좀 챙겨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질의 응답>

오동진: 아시아 5개 나라의 노동운동 현황에 관한 발표를 들어봤습니다.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궁금한 점들이 많이 있으실 것 같은데 자유롭게 질문과 토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 석자: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송출국 노총과의 교류협력이나 공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네팔과 필리핀의 노총과 사업을 했는데 여기는 국제노총에 속해 있지 않고, 다른 동남아시아 노총은 만나 봐도 노동조합 간부 같은 느낌이 안 나더군요.

윤효원: 일종의 딜레마죠. 자기 나라 정부에 개입하고 힘을 쓸 수 있는 곳은 대부분 부패하고 허울뿐인 노조이고, 제대로 활동해서 교류할 만한 곳은 자국에 영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정책에 개입할 수도 없으니 어려운 문제입니다.

참석자: 한국의 노동조합이 유난히 아시아 쪽과는 연대사업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윤 효원: 일단 아시아에 일본, 싱가포르, 대만, 한국 정도를 제외하면 자기 돈으로 교육하거나 조직을 운영하는 노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조직이 취약하죠. 국제연대라는 것도 어느 정도 노조가 여유가 있고 잘 돌아가야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인데, 노조 존립자체가 어려운데도 있고 운영이 안 되는 곳도 있고…. 그러다보니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국제사업을 챙기지 못한 면이 큽니다. 우리나라도 국내 문제에 관한 투쟁이나 내부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또 국제 교류가 잘 되려면 상급단체가 튼튼해야 하는데, 투쟁으로 투옥되거나 개인적 문제로 그만두거나 해서 유지가 안 됩니다. 또 많은 훌륭한 헌신적 활동가가 노력은 하는데 상급단체의 강화로 연결이 안 되니 현장의 투쟁과 개인의 노력만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 사람이 노력을 안 하거나 현장 투쟁이 패배하면 아무것도 안 남는 결과가 되는 거죠. 핵심은 우리가 산별노조, 상급단체를 어떻게 강화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아시아 전체로 봐도 같은 고민이 있다는 겁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아시아에 엄청난 국제적 지원이 있었는데도 이게 운동의 성과로 모이지 않은 이유를 분석해보면 상급단체 문제인 겁니다.

오동진: 우리도 그리 녹록치는 않은 상황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국제적 연대와 책임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양한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한 얘기를 들려주신 윤효원 컨설턴트께 감사드립니다.

윤효원: 감사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