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활동가의 눈에 비친 남미 및 유럽 노동조합운동

노동사회

민주노총 활동가의 눈에 비친 남미 및 유럽 노동조합운동

편집국 0 4,997 2013.05.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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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민주노총 활동가의 눈에 비친 남미 및 유럽 노동조합운동
발표: 김태현 전 민주노총 정책실장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일시: 2011년 2월18일(금) 오후 7시~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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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 결된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며칠 전에 귀국해서 아직 잘 적응이 안 되네요. 간단하게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개인적인 일정으로 특별한 준비 없이 간 것이라, 사실 각국 사정을 자세히 살펴본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제가 각 나라 노총 및 산별조직, 지역조직을 방문하고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미에서는 주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활동가들을 만났고,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활동가들을 만났습니다. 먼저 각국의 노동조합을 방문해서 들은 것과 느낀 점을 말씀드리고, 이후에 각 사례들을 종합해서 감상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아르헨티나: 지역사회 뿌리내린 ‘불법’ 노조 CTA

남 미 노동운동 중 브라질의 CUT(브라질 노총)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만, 아르헨티나의 CTA(아르헨티나에서 세 번째 규모의 노총)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도 2년 전 세계 사회포럼에 참석했을 때 CUT 활동가의 소개로 이 조직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우 적극적이고 민주노총에게 호의를 보였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번에 만나보니까 상당히 재미있는 조직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1990년대 남미 전체가 신자유주의 개혁의 열풍 속에서 민영화와 노동시장 유연화가 강제되었죠. 심지어 의료보험도 민영화되어서, 저를 안내했던 CTA 국제담당자 같은 경우는 애가 둘이 있다 보니까 월급의 3분의 1이 의료보험료로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아르헨티나는 페론주의 전통이 매우 강합니다. 때문에 페론주의 노총이 아르헨티나의 공식노총, 제1노총이죠. 그런데 이 노총을 포함한 기존 노조들이 과거 일정하게 부패 커넥션 비슷한 것에 연루되어 있어서, 말하자면 1990년대 국가와 자본이 구조조정이나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용인해주고 한 자리를 받는 식으로 일을 처리해왔다는 거죠. 1990년대 초반에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CTA를 결성했다고 합니다. 그게 1992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민주노총보다도 먼저 결성된 CTA가 아직까지도 합법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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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에서 세 번째 규모의 노총 CTA  ·▷ 출처: 김태현 ]

요 즘 아르헨티나 경제가 잘 나갑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년에 대통령이 5번이나 바뀔 정도로, 누가 와도 해결 못한다고 할 정도로 엉망이었는데, 2003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어떻게 된 건지 희한하게 잘 풀려서 집권당인 페론주의 정당이 현재까지 세 번 연임을 하고 있죠. 현재 대통령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는 전임 대통령의 부인이기도 한데요. 이 사람은 세계노총 총회에 참석해서, 신자유주의 안 된다, 노동기본권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연설을 할 정도입니다.

그 렇지만 이 정부도 페론주의 정당과 페론주의 노총의 연결 관계 때문에 새로운 노총인 CTA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거죠. 물론 CTA가 합법화되지 못한 데는 복잡한 노동법이나 여러 가지 다른 조건들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합법성이 없다보니까 CTA는 현장대의원 활동 같은 데서, 공공부문은 좀 괜찮은데 제조업 같은 민간부분에서는 애로사항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그 리고 한편으로, 아시다시피 남미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그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 있는 비공식부문의 문제가 굉장히 크게 작용하는데요. 새롭게 노총을 만들면서 CTA가 초점을 맞춘 것도 이런 부분입니다. CTA 간부가 저한테도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것이, 브라질이나 남아공, 한국처럼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을 실현하기 위해서 CTA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공식부문을 포괄할 수 있도록 ‘노동자 개념’을 대폭 확대했다고 합니다. 즉, 자본가 아니면 다 노동자다, 하는 식이죠. 그렇게 노동자 개념을 확대 해석해서 시민운동, 빈민운동, 원주민운동 등과 CTA가 적극적으로 관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거죠.

실업자, 빈곤층, 섹스노동자 등을 지원하는 CTA

제 가 CTA 지역본부 한 군데를 방문했는데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시간 반가량 떨어진 곳으로 대학도시로 유명한 동네랍니다. 그 지역본부 벽에는 군정 시절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수백 명의 실종 노동조합 간부 명단이 적혀 있더라고요. 그런데 가서 조금 놀란 게, 지역본부가 연 1천 명 정도의 수료생을 배출하는 직업교육시설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방문한 날이 마침 직업교육시설 교육생들이 작품 발표회 비슷한 걸 하는 날이었습니다. 소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나 요리 학교 졸업생들이 만든 음식들이 죽 진열되어 있는 것을 봤는데, 꽤 수준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 부근엔 간호학교가 없대요. 그래서 이 직업교육시설을 수료한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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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TA 지역본부에서 운영하는 직업교육시설의 졸업 전시회 모습 ·▷ 출처: 김태현 ]

이 정도면 지역사회에서 상당히 신망이 있는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노동조합이 지역 빈민층에게 빵과 우유를 무상급식을 하는 사업도 하고 있더라고요.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빈곤 아동을 위한 급식을 직접하고 있는 거죠. 총연맹이 법외단체임에도 이러한 지역사업들을 안정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지역본부 건물도 노동조합의 소유고, 직업교육 재정도 선생들 월급을 빼면 노동조합에서 상당부분을 부담한다고 합니다. 재정 상태도 상당히 튼튼한 것 같았습니다.

한 편, 제가 앞서 CTA가 노동자 개념을 매우 확대해서 적용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 확대된 노동자 개념에는 성 노동자, 즉 섹스 노동자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이 사람들의 조직이 CTA에 가입되어 있어요. 이 노조는 물론 성 노동자들이 중심이지만 일반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개방되어 성병이나 가족폭력 상담 같은 것들도 한답니다. 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섹스 노동은 인간 그 자체를 파는 것이 아니다, 성 노동에 있어서도 인권적인 대우를 해야 한다, 뭐 그런 겁니다.

이 조직은 남미 지역 각국 섹스 노동자 조직 중에서도 유일하게 자국 노총에 가입한 조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CTA에서도 이 조직을 터부시하지 않는 게, 이 노동조합에서 만든 다양한 포스터들이 총연맹 조직 사무실 벽에 붙어 있어요. 또, 우파 지역정부가 집권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노숙자와 섹스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안 보이는 곳으로 몰아내기 위해 압박하는 것이라는데, 이 조직이 여기에 맞서 토론회도 나가고 활동을 많이 했대요. 그러한 활동을 벌어진 지역에서는 아무래도 이러한 이들의 인권 상황이 더 낫다고 하더라고요.

jhlee_03.jpg다 음으로, CTA의 정치세력화 문제인데요. 우리로 치면 전국연합이나 상설전선체와 비슷한 건데, ‘Constituyente Social’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회적 헌법(social constitution)’ 운동 같은 거냐고 물어보니, 통역하는 사람이 그건 아니라면서 정확한 영어식 표현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페론주의 정당과 우익 정당이 주요 양당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CTA는 정치적 역량이 상당히 취약합니다. 때문에 노동조합이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 Constituyente Social을 통해서 다양한 사회세력 및 운동단체들과 함께 사회운동을 광범하게 벌이고 있는 거죠.

이 를 테면 빈곤아동에게 국가가 책임지고 일정하게 지원을 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걸고 아르헨티나 북부에서부터 Constituyente Social의 틀 속에서 광범한 세력들이 집회와 캠페인을 벌이며 죽 내려오는 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노동운동의 사회적 영향을 확대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고, 또 노총 내에도 이 부분을 담당하는 별도의 부서가 중요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CTA는 겉으로는 불법인데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각인이 된 것 같아요.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곳곳에 CTA의 주장을 담은 포스터들이 붙어 있습니다. 지금 민주노총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죠. 또 마침 제가 간 때가 CTA 위원장 선거가 있을 시기였는데,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가려지니까 기자회견을 크게 하더라고요.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떠나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이슈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라질: 양극화 개선하고 최저임금 인상한 룰라 정부   

다 음으로 브라질 이야긴데요. 룰라의 정책에 대해서 하도 논란이 많아서, 가서 한 번 물어봤습니다. 룰라가 3수 끝에 대통령이 됐지만 요즘 거시정책 방향을 보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런 질문에 룰라가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내가 세 번 사회주의 걸고 선거에 나섰는데 떨어졌다, 네 번째는 다른 것 들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 어쨌든 정권을 잡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원론만 떠들다가 말거냐”라는 거죠.

그렇게 사회주의에서 사회개혁적인 방향으로 전환을 했고, 어쨌든 CUT 내부에서도 이런 부분을 다수가 찬성을 하고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CUT에서 일부가 떨어져 나갔죠. 그렇게 떨어져 나간 조직들은 또 자기끼리 분화해서 그 사이에서도 당과 노총이 각각 두 개씩 만들어지기도 했답니다.

한 편, 작년 말에 우리나라 신문에도 많이 나왔는데, 룰라가 들어선 이후에 빈부 격차 해소정책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다수 국민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당장 지표로만 봐도 2004년 0.572였던 지니계수가 2008년에는 0.547로 떨어졌죠. 물론 룰라 이전에 빈곤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룰라가 추진한 볼사 파밀리아(조건부 소득이전) 정책이 그 효과 면에서 탁월했다고 합니다. 볼사 파밀리아는 우리 기초생활보장제도 비슷한 것 같은데,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지급이 아니라, 아동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등 가족에게 건강과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조건을 달고 지원을 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1,000만 이상의 가구들이 이 정책의 혜택을 받았고, 돈은 주로 여성에게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야 가족을 위해 알뜰살뜰 쓰인다는 거죠.

또, 최저임금에 대해서 물어봤는데요. 브라질의 최저임금은 미국과 비슷하게 의회에서 결정을 한답니다. 그런데 의회에서 논의하기 전에, 어쨌든 노동자당이 집권당이니까, 정부가 노총이랑 먼저 이야기를 해서 안을 확정하게 되죠. 이 안을 국회로 넘기면 노총이 다른 당들을 압박해서 원안에 가깝게 통과시키려고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그 결과 룰라 집권 동안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습니다. 명목 임금은 거의 몇 배가, 실질 임금으로도 룰라 집권기 동안 74% 인상이 됐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시기에도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서, 2009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2.05%, 2010년에는 9.68%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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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CUT 국제국 내부 모습 ]

브 라질도 아르헨티나와 마찬가지로 비공식부문이 굉장히 큰데요. 룰라 집권기 동안 이러한 비공식 부문도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룰라 집권기 동안 전체 노동자 중 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급격히 늘어서, 수치로는 약 1,200만 명이 공식 부문으로 옮겨가 종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브라질 공공의료는 남미에서는 그래도 공공성이 강하고 좋은 편이라고 하는데요. 무상은 무상인데 질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어쩌다보니 제가 체류 중에 시립 병원 갈 일이 있었는데요. 가보니까 건물도 많이 낡았고, 일손도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실제로 CUT의 직원들을 위한 복지혜택 중에 하나가 민간의료보험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공공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브라질에서도 일반적인 인식이고, 큰 병이 걸리면 민간의료보험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민간병원에 간다는 거죠. 전체 의료부문 중에서 공공의료 비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질 않더라고요. 대략 미국과 비슷한 정도 같았습니다.  

한편, 제가 여행 중에 만난 어느 브라질 교원노조 조합원에게 CUT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비판받을 부분은 없냐고 물어봤더니, 좀 더 강하게 자본을 압박하고 통제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CUT가 룰라 눈치를 너무 보는 거 아니냐, 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대안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 이야기를 해요. 비슷한 조건의 베네수엘라 차베스는 군인 출신이라 약간은 독재적 성격이 있는 거 같고, 사회운동 속에서 성장해서 대통령이 된 모랄레스는 좀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자본을 통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압도적 다수가 룰라에 대해서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게 현실이죠.

대륙적 관점과 공존 의지 저력이 느껴지는 남미 노동운동

2 년 전에 제가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 사회포럼을 다녀 온 적이 있는데요. 그 때 남미 좌파 대통령들이 다 모였어요. 체육관에서 몇 만 명이 모여서 집회를 하는데, 룰라가 연설을 하니까 무토지농민운동 등 룰라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일어나서 막 뭐라고 시끄럽게 떠드는 거예요. 그래도 대통령이 연설하는데……. 그러니까 또 CUT 쪽에서도 일어서서, 야 조용히 못해, 이런 식으로 한참을 떠들고요. 그렇게 한 20분을 서로 떠들다 조용해지더라고요. 우리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당시 저는 이러한 정파 간의 해프닝에서 서로 간에 상식을 지켜가면서 공존하는 풍토 같은 걸 느꼈고, 참신한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 휴가 때 남미에 가보고 싶단 생각을 한 것도 그 경험이 크게 작용했는데요. 대륙 전체에서 모여서 대륙적 관점에서 이야길 하고, 정파 간의 갈등도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상당히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소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운동의 전통과 저력을 느꼈던 거죠.   

이탈리아: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대상으로 하는 비정규노조 NIDIL

이 제 유럽입니다. 먼저 이탈리아인데요. 이탈리아 노동운동은 유럽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독일과는 또 다른 형태로 현장운동과 결합된 산별노조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 이 나라에는 독특하게 비정규노조(NIDIL)가 있더라고요. 1995년쯤 파견 대상을 확대하되 동일임금 동일노동을 적용하는 파견법이 통과되었고, 이에 따라 그 2년 후인 1997년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노조의 정식 명칭은 Nouve Identita di Laboro(노동자의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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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GIL 산하 비정규노조 활동가들과 함께 ·▷ 출처: 김태현 ]

거 기 사람들을 만나서, 그래 비정규직이란 게 굉장히 종류가 많은데 당신들은 그 모두를 조직 대상으로 하는 거냐, 라고 물었더니, 자신들은 산업을 넘나드는 파견 등 간접고용과 위장 자영자인 특수고용을 담당하고, 직접고용인 기간제나 파트타임은 산별단위 조직에서 맡는다고 답해요. 이 조직은 이탈리아 노총 중 하나인 CGIL의 10여 개 산별단위 조직 중 가장 최근에 만들어졌고, 조합원도 가장 적습니다. 약 4만 5천 명에서 5만 명가량이고, 대부분이 파견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가서 보니까 활동가들도 상당히 젊더라고요.

이탈리아 노동운동은 원래 지역적 전통이 강합니다. 지역단위 조직은 지역본부와 시군구 지부로 나뉘어 있는데, 이 비정규노조의 활동가들은 주로 시군구지부에 속해 있대요. 그래서 노조로 의무금이 들어오면 거의 100퍼센트를 시군구지부로 보내서 이들이 활동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지역단위로 자주 이동하는 파견노동자들과 밀착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런 전임자들이 약 90명가량 된다고 해요. 그리고 비정규노조 중앙조직에는 상근자들이 10~15명 정도가 있는데, 이 사람들의 월급은 총연맹에서 지급하고요. 베를르수코니가 들어선 이후에 CGIL이 많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거죠.

이 조직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미 파견업체협회와 단체협약을 맺고 두 차례 갱신을 했습니다. 그 결과 파견노동자들에게 동일임금 동일노동이 적용되고, 실제로 사용자들이 파견을 쓰려면 정규직에 비해 시간당 임금을 약 4% 정도 더 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파견은 별로 확대가 되지 않고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는 파견이 있고 용역, 사내하청 등도 있어서 간접고용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고 했더니, 이탈리아 파견법은 유럽 수준에서도 나은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다음으로 연금생활자노동조합을 방문했는데요. 이 조직은 연금생활자들의 공통 이해관계에 기반해서 조직되어, 지역사회에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자원 활동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전국망을 가진 조직이 3개가 있는데, 하나가 경찰이고, 나머지 둘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연금생활자노조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노총도 모든 시군구에 조직을 갖고 있지는 않은데, 이 노조는 구석구석 다 깔려 있다는 거죠. 사실 연금생활자들이니까 가능한 거죠.

이 분들은 다른 산별조직의 시군구지부에서 대지자체 교섭을 할 때도 큰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노인문제 관련 요구와 다른 요구들을 결합해서 집회와 캠페인을 조직하면 거기에 적극 참여한다는 거죠. 조직원들이 대부분 산별조직의 ‘역전의 용사’ 출신들인지라, 다른 산별에서 파업 같은 것을 할 때도 깃발 들고 열심히 참여하고요. 상근자 숫자를 물어봤더니 워낙 자원봉사로 나오시는 분들이 많아서, 지역단위 활동가들이 몇 명인지는 중앙에서도 알 수가 없대요. 우리도 지금 민주노조운동의 1세대들이 은퇴할 때가 되었는데요. 이 연금생활자노조의 활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한편, 이탈리아 노동운동은 총연맹에 대한 귀속감이 큰 것 같았어요. 여러 산별조직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모두 겉에는 CGIL 로고만 크게 박혀 있고 안에 들어가야 어느 조직인지 알 수가 있더라고요. 우리 같으면 금속이면 금속, 공공이면 공공, 이렇게 되어 있을 텐데, 총연맹이 3개여서 그런지 우리보다는 훨씬 총연맹 귀속감이 큰 것 같더라고요.

‘역전의 용사’들이 모인 이탈리아 연금생활자노조

다 음으로, 마침 제가 방문했을 때 CGIL 금속노조의 총파업이 있었는데요. 하는 게 우리랑 비슷해요. 광장 한가운데에 부스 설치하고 매일 거기에 간부들이 모여서 회의 하고, 홍보하고, 그렇더라고요. 제가 총파업 관련해서 볼로냐와 토리노를 두 군데를 방문했는데, 토리노의 피아트 공장에서 무척 중요한 문제가 발생해 있었어요. 피아트 사측이 산별협약을 탈퇴와 악화된 노동조건을 노조에게 던져놓고, 받을래 말래, 안 받으면 공장 문 닫는다, 하고 있던 상황이거든요.

이탈리아에 피아트 공장이 5개가 있었는데, 작년에 시칠리아에 있는 공장을 하나 폐쇄했어요. 그 다음에 남부에 있는 공장에서는 방금 전에 말한 조건을 내걸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육십 몇 퍼센트로 사측 안이 통과됐다고 합니다. 거기에 재미를 봐서,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이 강한 토리노에서도 그 안을 던진 거죠. 현재 3개 총연맹의 금속 조직 중 CGIL 금속만 사측 안에 반대를 하고 나머지는 고용이라도 보장받아야 한다,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한 가지 이번에 새로운 것은, 이 안을 받아들이는 조직만 공장 현장활동을 인정하겠다는 것인데요. 조합비 징수나 현장 대의원 활동을, 이 안에 찬성하지 않은 노조는 못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CGIL 금속은 대공장에서 산별협약이 무력화될 경우 전체 차원에서 산별운동이 무력화된다, 이것은 전체 노동운동의 문제다, 라는 입장에서 이에 반대하는 것이고 파업에 돌입한 거죠.   

총파업 하는 것을 따라가면서 보니까, 먼저 시내에 모여서 9시쯤에 출발을 해서 2~3시간 행진을 하더라고요. 우리랑 다르게 현장파업이 아니니까요. 또 우리랑 다르게 깃발을 행진하는 사람들 각자가 다 하나씩, 조그만 걸 들어요. 깃발을 망토처럼 두르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리고 어디 가나 간부들 마이크 욕심은 있어서, 집회 사회를 본 사무총장이 연사들에게는 3분씩만 이야기하라고 하더니 자기는 20~30분쯤 떠들더라고요(웃음). 어쨌든 굉장히 많이 모였고, 많이 고무된 상태로 보였습니다. 학생들도 여럿 참여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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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GIL 금속노조 총파업 모습 ·▷ 출처: 김태현 ]

평 가하는 것을 들어보니, 이번 파업은 정치적으로는 승리했지만 이제 시작이다, 라고 합니다. 어쨌든 집회가 크게 성사되긴 했지만, 투표에서는 50% 이상이 사측 안이 찬성을 했기 때문에 사측이 이 정도로 물러서지는 않을 거란 거죠. 그래서인지 총연맹 사무총장이 연설을 하니까, 여기저기서 총파업!, 총파업!, 떠들더라고요. 이 사안을 걸고 총연맹 총파업을 걸어 달라는 거죠.

독일: 협약적용률 감소와 법정최저임금제도 도입 요구

다 음으로 독일인데요.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협약임금과 실제임금의 차이가 상당히 큽니다. 그만큼 협약이 제대로 관철 안 되고 있고, 단협 적용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거죠. 1998년에서 2009년 사이 서독지역은 모든 단체협약 적용률은 74%에서 65%로, 산별협약은 68%에서 56%로, 그리고 동독지역은 각각 68%에서 56%로, 63%에서 51%로 떨어졌습니다. 또한 저임금계층일수록 단체협약에서 배제돼, 상대적으로 임금이 많은 5분위 노동자는 68%의 적용률을 보인 반면 저임금계층인 1분위 노동자는 34%의 적용률을 보이고 있는 거죠.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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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협약임금과 실제임금 격차 흐름을 보여주는 그래프. 상위 직선이 협약임금 추이이고, 하위 직선이 실제임금 추이다. ]


독 일 통일 이후 1990년대 단체협약의 적용이 확대되긴 했는데, 동독 지역은 경제적으로 어려웠잖아요. 당시 경제적으로 상황이 안 좋으면 산별협약의 효력을 배제하는 조항들이 일부에서 도입됐는데, 그게 1992~93년 경제 불황 때 서독지역으로까지 폭넓게 확대된 거죠. 또 2000년대에 성과급이 확대되는 등의 과정들을 통해서 현재 과반 이상의 기업들이 이러한 개방조항을 도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별협약이 존재하지만, 아래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파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산별협약을 약화시키는 법 개정을 시도했는데, 우리로 치면 전경련 회장쯤 되는 사람이, 법 개정 안 해도 실질적으로는 이미 다 됐다, 라는 식으로까지 이야길 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독일 노동운동 상황이 어렵다고 합니다. 1991년 36%까지 올라갔던 조직률도 2009년 현재 19.3%까지 떨어진 상태이고요.

그렇게 노사자율주의 원칙이 성립하기 어려운 조건으로까지 가면서, 독일노총에서는 노조 조직 확대를 통해서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를 실질화시키는 것인데요. 법 개정을 통해 특정 단체협약을 전체 산업부분의 노동자들에게 보다 쉽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례로 프랑스 같은 경우 노조 조직률은 독일보다 훨씬 낮고 OECD 최하위인데, 단체협약 적용률은 독일보다 더 높은 이유가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 때문이라는 거죠.

그러한 효력확장제도의 핵심 대상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제도입니다. 독일에는 전국에 단일하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없거든요. 그래서 법정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하라는 취지로 최저임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해요. 제가 만난 간부는 지역 교회에서 초청을 받아서 최저임금 관련 토론을 하고 왔는데, 우파 정치인 한 명을 빼고는 토론 참가자들 모두, 아니 방청객까지도 모두 최저임금제도 도입에 찬성하더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우익 연립정부 때문에 제도가 도입 안 되고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 잘 풀릴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유럽에서 몇 안 되는, 2000년대 이후 실질임금이 저하된 나라입니다. 수출은 대폭 확대되고 국가경쟁력 순위는 높아졌는데, 노동자들의 삶은 더 희생되고 있는 거죠. 그런 희생이 누적되면서, 더 이상 이런 식의 사회적 패턴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동의 기반 아래 최저임금제도 캠페인 등이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의 겨울과 남미의 여름, 그리고 신자유주의

제 가 이번에 여행을 한 시기가 남미는 여름이고 유럽은 겨울이어서 인상이 그렇게 남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유럽은 인프라는 잘 갖춰졌고 깔끔하지만 상대적으로 활력이 덜 느껴지더라고요. 이를 테면 이탈리아 같은 경우 경제위기를 거의 극복했다고 함에도 공공부문에서도 사람을 뽑지 않는답니다. 비정규직만 늘리고 있고요. 또 방송을 장악한 베를르수코니가 텔레비전에서 주구장창 떠드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일정부분 수용되는 게, 문화적으로 진행되는 침투가 무서운 것 같아요. 어쨌거나 피아트 공장 사례도 그렇고, 유럽에서 잘 나간다는 독일에서도 개방 조항이 경제위기 극복에 도움이 됐단 논리가 먹히는 것도 그렇고, 위기의 고통이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것이 어느 정도 수용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 관련 모범사례로 꼽히던 스페인에서도 비정규직법이 작년에 개악되었다고 해요. 노동조합이 투쟁을 하긴 하는데, 전반적으로 각개약진을 하는 느낍니다.

반면 조금 지저분하고 시끄럽긴 하지만 남미는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퇴조하는 분위기라는 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차베스, 룰라, 모랄레스 등 열정적인 좌파 리더들이 존재하고, 운동 측면에서도 젊은이들이 유입되고 새로운 활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특히 인상 깊었던 게 아르헨티나 CTA를 보면서, 아, 법외 노조 상태에서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우리 같으면 투쟁, 투쟁만 외쳤을 텐데, 노조가 빈곤층이나 실업자층을 실질적으로 포괄하고 지원하는 노력을 통해 지역에서 인정받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오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