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자본주의 국가 노동자계급의 사회·정치적 상황

노동사회

제1절 자본주의 국가 노동자계급의 사회·정치적 상황

편집국 0 6,391 2013.05.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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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노동운동사 목차

제1장 노동자계급의 형성과 노동운동의 발생
제2장 정치적 자립을 향한 노동운동 전진
제3장 국제노동운동의 출범과 사회주의 이념의 대두
제4장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노동운동
제5장 파리 코뮌
제6장 제2인터내셔널과 식민지 종속국의 노동운동
제7장 20세기 초두 노동자계급 투쟁의 새로운 단계
제8장 제1차 세계대전과 대중적 노동자계급운동
제9장 사회주의 혁명과 국제노동자계급
제10장 세계 노동자계급 투쟁전선의 확대
제11장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야기된 경제위기와 노동자계급의 통일행동
제12장 소비에트 러시아의 방위와 ‘신경제정책’

제13장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노동 상황과 자본주의 일시적 안정기의 노동운동 
 제1절 자본주의 국가 노동자계급의 사회?정치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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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본주의가 독점단계로 진입한 이후 국가들 사이의 불균등한 발전은 한층 더 심화되었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외팽창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안고 있었던 내부적 모순들을 격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진행 과정에서 러시아 사회주의 국가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죠. 

제1차 세계대전은 세계경제의 세력배치를 변화시켰어요. 그것은 첫째, 유럽의 쇠퇴, 특히 독일의 패전과 혁명, 그리고 영국의 정체, 둘째, 미국의 약진(=세계의 중심국가화), 셋째, 러시아 혁명(=세계자본주의체제에서의 이탈)이라는 세 가지 국면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長岡新吉·石坂昭雄, 1986: 210~212).

1920년대 후반에는 전쟁으로 입은 물질적 피해가 거의 복구되고 자본주의 경제는 전반적으로 번영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번영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결국에는 대공황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죠. 경제적 회복과 번영 속에 이미 기본적인 모순이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순은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독점의 확대?강화와 국제금융관계에서 드러났습니다(김종현, 2007: 496~497).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시기에 나타난 세계자본주의의 특징을 단계별로 개괄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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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간기 세계 자본주의 단계별 특징

- 제1단계(1917~1923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은 데다 전쟁 직후 격렬한 혁명적 분위가 고양된 가운데, 자본주의의 위기 극복을 위해 다양한 방편들이 동원됐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시장이 재분할되었다. 
- 제2단계(1924~1927년): 세계경제가 대전 이후의 정치적?경제적 혼란을 넘어서서 ‘상대적 안정기’로 접어든 시기로서, 이런 상대적 안정은 자본주의 국가의 ‘산업 합리화’에 의한 공업생산의 불균등 확대를 주축으로 국내 시장의 대소(大小), 세계시장에서의 국제경쟁력 우열을 둘러싸고 국내적·국제적 모순을 심화시킨 특징을 보였다. 
제3단계(1929년 세계공황~제2차 세계대전):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이 무너지고 1929년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공황의 발발에 따라 세계경제가 파국으로 접어든 시기로서, 제국주의 열강들은 공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길을 뉴딜이나 파시즘 통제로 상징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강화와 군비(軍備) 확대 경쟁 및 전쟁 경제에서 찾고자 했다(김준호, 1982: 188~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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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대공황 이후 10여 년 동안 지속된 장기 불황 속에서, 제3단계 자본주의 세계질서는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로 표현되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단계에서의 자본주의는 과거와는 다른 몇 가지 위기적 성격을 드러냈죠. 첫째, 자본주의 경제제도와 함께 사회주의 경제제도가 존재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 둘째, 식민지·종속국가들에서의 제국주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셋째, 국가독점자본주의 형성으로 경제과정에 대한 국가의 간섭과 통제가 강화되었다는 것, 넷째, 기업의 만성적 유휴 상태와 대량실업의 상시적 존재 등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이 증대되었다는 것 등이 그것이었습니다(오사카 시립대학 경제연구소, 1965: 504).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친 이 같은 경제적 격변과 더불어 파시즘의 공격과 새로운 세계전쟁 위험이 증대되면서, 이에 대응하여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정당들은 반파시즘운동과 반전운동의 추진에 노력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생산과 자본의 집중이 증대되고 자본주의적 합리화가 빠르게 진행될 뿐만 아니라 경제생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강화됨에 따라,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구성과 상태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또 생산력과 착취 방법의 국제화, 자본주의적 국제분업의 발전, 자본수출에 기초한 식민지·종속국에서의 자본주의적 관계 확대, 이민의 증가 등은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결합을 촉진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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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자계급의 수와 구성 변화

1920~1930년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주민의 프롤레타리아화가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고용노동자 수는 8,500 만 명이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초에는 1억 4,120 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경제활동인구의 65.9%를 차지했죠.

sooya_01.jpg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우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임금노동자의 비중 증대 양상은 [표13―1]에서 보는 바와 같거니와, 1920~1930년대에 있어 임금노동자는 인구의 압도적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발전의 불균등성은 여러 국가들에서의 임금노동자 증가 속도와 그 비중의 불균등성을 초래한 요인이 되었어요. 예컨대 미국, 영국, 독일에서는 임금노동자가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이탈리아, 스웨덴, 일본의 경우는 그 비중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죠.

임금노동자의 구성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농업부문에서는 임금노동자 수가 계속 감소한 반면, 상업과 서비스부문에 고용된 노동자는 급증하였고 특히 화이트컬러 층이 대폭 증가했어요. 노동자계급의 구성 변화에도 불구하고 임금노동자의 중핵을 이루었던 것은 역시 공장노동자였는데, 공장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죠.

공장 프롤레타리아트 수의 증대도 국가별로 불균등했습니다. 미국, 덴마크, 캐나다, 영국, 스웨덴,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공업노동자의 증가가 매우 빠르게 진전되었으며,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의 경우는 비교적 완만하게 진행되었고,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에서는 공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증가가 두드러진 양상을 나타내지는 못했습니다.

공업노동자의 증가와 더불어 기업별 집중도가 높아졌어요. 공업노동자의 많은 부분이 500인 이상의 기업에 집중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규모의 기업에 고용된 취업자의 비중이 1930년의 25.5%에서 1939년의 34.4%로, 독일에서는 1925년의 35.8%에서 1939년의 43.8%로, 이탈리아에서는 1927년의 17.3%에서 1939년의 22.5%로, 프랑스에서는 1921년의 19.2%에서 1936년의 20.7%로, 스웨덴에서는 1920년의 19.7%에서 1945년의 28.0%로 각각 증가했죠(The USSR Academy of Sciences, 1985 volume 5: 99).

이처럼 공업 노동자의 집중도가 높아지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수많은 소기업과 영세기업이 존속했습니다. 오히려 소기업과 영세기업의 절대 수는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죠. 자본주의적 독점화의 과정은 모순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즉, 독점화는 소규모 기업의 몰락을 수반하지만, 경제의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소기업의 형성을 촉진한 것이죠. 이를 테면 독점화된 자동차산업의 생성은 낡은 형태의 수송수단 생산과 서비스를 영위하고 있던 수많은 기업을 몰락하게 만들지만, 자동차 독점자본 자체는 개별적인 부품생산 공장, 자동차 수리공장, 주유소 등 수십만에 이르는 소기업과 영세기업 설립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공업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문별 구성에도 큰 변화가 생겼어요. 공업 프롤레타리아트 생성 초기 단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달했던 ‘오래 전부터 내려온’ 부문, 예컨대 채굴, 식품, 섬유, 피혁과 제화 부문 등에 종사했던 노동자는 그 수에서나 비율에서 감소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야금(冶金), 금속가공, 화학공업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급속하게 증가했죠. 노동자 수에서 가장 빠른 증가율을 나타낸 부문은 기계제조, 자동차, 항공기, 전기공업이었습니다.

대규모적인 기계제 생산의 후속적인 발전은 컨베이어의 출현을 가져왔고, 이것은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의 작업 진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새로운 기술공정과 생산조직 시스템의 도입은 노동 그 자체의 성격을 변화시켰으며, 그것은 일관작업을 담당할 새로운 노동자 집단의 출현과 기술발전을 촉진했죠. 

공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직업적 숙련도별 구성도 매우 복잡해졌어요. 노동자계급 구성에서 최상층을 차지한 것은 새로운 직종의 고도 숙련노동자(직장, 감독, 컨베이어 조정자, 품질 검사자 등)였습니다. 이 그룹은 생산에서 점점 큰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죠. 이 그룹 다음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대표적 직종, 즉 제철노동자, 압연노동자, 주형(鑄型) 제작노동자, 채탄노동자, 모형제작 노동자, 철도기관사, 인쇄노동자 등이었습니다.

숙련도에서 중간층에 속하는 노동자는 금속가공 노동자, 보일러제조 노동자, 기계설치 노동자, 기계노동자, 수리노동자, 전기노동자와 같은 숙련노동자였죠. 노동자의 수적인 면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된 부분은 컨베이어 생산이었는데, 이 층은 반숙련 또는 좁은 범위의 전문적인 노동자였습니다.

직종·숙련도별 구성에서 최하층에 속하는 것은 잡역노동자(부두 노동자, 하역 노동자, 보조노동자 등)로서 그들은 가장 단순한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이 부류의 노동자 비중은 상대적으로 저하되었죠.

자본주의적 생산의 객관적 요구와 기술의 복잡화는 교육정도가 높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1930년대 유럽 국가들의 공업노동자의 대부분은 대개 4~6년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미국의 경우는 7~9년을, 일본에서는 중등교육을 받은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습니다.

공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성별?연령별 구성에서도 괄목할만한 변화가 일어났어요. 여성노동자 수가 증가했으며, 산업 부문별 고용비중도 변화한 것이죠. 많은 국가들의 경우, 섬유, 봉제업, 식품, 피륙공업에서 여성노동자가 여전히 전체 노동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컨베이어 생산이 확대되면서 여성은 다른 제조공업 부문에도 고용되었습니다. 여성은 컨베이어 관계의 조립, 분류, 포장 부문이나 보조 부문 등 점점 새로운 영역으로 고용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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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 프롤레타리아트 구성에서 여성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체로 안정적이었습니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에서는 4분의 1, 캐나다, 영국,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5분의 1정도였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여성노동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고, 반대로 일본에서는 여성노동자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공업노동자 수의 약 3분의 1를 차지했습니다(The USSR Academy of Sciences, 1985 volume 5: 103).

연소노동자의 경우는 일정한 규제가 이루어졌는데, 많은 국가들이 노동운동의 압력을 받아 14세 미만의 연소노동을 산업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섬유, 피혁, 식품 등의 부문에 걸친 소규모 기업들에서는 법률을 어긴 채 연소노동을 고용하는 관행이 남아있었는데, 그래도 20세기 초두에 비해서는 그런 사례가 상당부분 축소된 것이었죠. 그런 가운데서도 14∼16세 미만의 미성년 노동의 고용이 특히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에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 시기에 화이트컬러 노동자층의 증가는 계속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 상업과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만 해도 그 수가 배로 늘어났죠. 프랑스에서도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화이트컬러의 비중이 1900년에서 1940년 사이에 거의 2배로 증가했습니다. 덴마크에서는 1920년에서 1940년까지 20년 동안에 화이트컬러 노동자 수는 상업과 금융업에서 2배, 서비스 분야와 정부기구에서 3배가량 늘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화이트컬러 노동자의 수는 서비스 분야와 상업, 정부 부문뿐만 아니라 사업부문에서도 증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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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동력의 국제이동도 꾸준히 확대되었어요.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여러 국가들 사이에는 노동자원의 배분이 기본적으로 자연발생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개입이 점점 강화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부르주아 국가가 외국인 노동력의 징모와 배분에 대해 점점 큰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죠.

노동이민의 주요한 방향도 변화했습니다. 이민노동자의 미국 유입은 1920년대에도 계속되었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축소되었죠. 1920년대 들어서는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서유럽과 미국으로, 유럽의 덜 발전한 국가로부터 더 발전한 국가로, 북아프리카로부터 유럽으로, 라틴 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로부터 미국으로의 이민 흐름이 두드러지게 증가되었습니다. 

독점자본은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기 위해서나 또는 인종적·민족적 편견을 부추기기 위해 외국인 이민노동자들을 이용했죠.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에서의 외국인 노동자는 대부분이 석탄, 광산, 농업, 하역 등의 노동집약적인 부문이나 가사서비스와 거리청소 같은 일에 종사했습니다(The USSR Academy of Sciences, 1985 volume 5: 105).

2. 노동자계급의 상태

자본주의가 고도의 독점단계로 진입하면서 중화학공업과 독점적 거대기업을 중심으로 생산과 노동의 집적?집중이 이루어졌고, ‘과학적 관리’에 의한 노동 지배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세계적 차원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의해 침략당하고 종속당하게 된 노동자계급과 인민대중은 가혹하게 수탈당했고 억압당했죠.

자본의 거대 축적·집중·독점화 과정은 노동의 사회화 ―생산의 사회화 과정에서 생산수단의 존재 양태 변화에 대응하는 노동의 존재 양태 변화 즉, 노동의 사회적 결합― 를 수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본의 축적과 독점화에 따른 노동의 사회화는 자본에 의한 잉여노동 취득의 확대·강화 과정이며, 자본에 의한 노동의 실질적인 포섭·지배의 발전과정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여성과 연소노동의 확대, 노동력 가치의 분할과 저하, 노동일의 연장과 노동 강화, 자본에 의한 노무지배와 통제 강화, 노동자의 상대적 과잉에 따른 실업 증대와 고용 불안 심화, 실질적인 임금 저하 경향 등을 초래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곧 노동자계급의 빈곤화 과정으로 이어졌죠.

자본의 집중과 독점화가 대규모로 진행됨에 따라 독점체 상호 간의 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노동자계급의 투쟁도 점점 산업 차원 또는 전국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기계화와 장치의 대규모화 등 생산수단 체계의 가속적인 발전이 진행되었고,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지배의 강화를 위한 ‘근대적’인 또는 ‘합리적’인 방식이 고안·도입되었습니다. 이른바 근대적 노무관리의 확립이 그것입니다.

근대적 노무관리 생성의 기초가 된 것은 ‘과학적 관리’(=테일러 시스템)였어요. 테일러가 창안한 과학적 관리는 요소동작의 시간연구에 그 바탕을 두었다. 요소시간 연구는 작업을 가장 간단한 요소동작으로 분해하여 공학적 수법으로 그 요소동작의 시간을 측정하고, 그 결과를 기초로 잘못된 동작, 느린 동작, 불필요한 동작을 가려내 최적의 작업 시간·방법·용구 등의 표준화를 책정해 표준작업시간을 결정하는 방법입니다. 이 표준작업시간을 기초로 1일 표준작업량=과업이 설정되죠. 이런 과정을 통해 ①적정한 1일의 작업, ②표준적 조건들, ③성공에 대한 고임금, ④실패에 대한 손실 등의 과업관리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테일러가 고안한 과학적 관리는 요소시간연구 외에도 직능적 직장(職長)제도, 작업지도표제도, 기획부제도, 성과별 차별임금제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오사카시립대학 경제연구소, 1965: 69). 

sooya_04.jpg이런 과학적 관리를 두고 노동자계급은 착취와 지배·억압의 강화 방책으로 보고,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대응했죠. 첫째, 과학적 관리는 생산과정에서의 인간요소를 무시하고 노동자를 기계시하고 있다는 것, 둘째, 산업독재제를 지향한다는 것, 셋째,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 넷째, 노동조합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노동조합은 1911년 워터타운 병기창에서 ‘과학적 관리법 배격운동’을 벌였고, 1913년과 1914년에 미국노동총연맹(AFL)은 연차대회에서 과학적 관리법 배격에 관한 결의를 실행하기도 했죠.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를 계기로 성립된 ‘근대적 관리방식’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공황을 맞이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본의 ‘산업합리화’ 추진 과정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조립라인 또는 연속공정에 기초한 대량생산방식의 도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합리화가 강력히 추진된 것이죠.

이 과정에서 도입된 ‘포드 시스템’은 개별 부분작업을 작업의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작업 사이를 컨베이어를 통해 연결하여, 그 컨베이어의 속도를 빠르게 작동함으로써 개별 부분작업뿐만 아니라 전체 작업 속도를 빠르게 하는 생산공정의 자동화, 유동화를 바탕으로 하는 생산기구입니다. 

그런데 생산과정의 자동화와 유동화에는 개별 작업의 특수화·전문화·단순화의 추진이 전제됩니다. 또 생산의 유동화는 작업의 특수화가 추진되어야 하고, 작업의 특수화는 ‘표준화’와 결합되어 촉진되죠. 그 결과 작업은 점점 ‘단순 작업’으로 분화되어 컨베이어의 ‘빠른 속도’에 따라 수행됨으로써, ‘노동강도’가 더욱 강화되고 또 강제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노동의 단순 반복화·타율화에 의한 노동밀도의 강화는 극단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고, 피로의 만성화, 조로(早老), 질병, 산업재해, 실업 등의 상태가 확대재생산 되고, 빈곤화는 한층 더 확대·심화되었죠(木元進一郞, 1974: 59~60).

자본의 강도 높은 산업화 추진은 한편으로는 방대한 자본축적을 이룩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빈곤화를 증대시켜, 생산력과 소비능력 사이의 모순을 키운 결과 1929년의 대공황을 불러 일으켰어요. 그리고 공황 극복을 위한 방책으로 동원된 관리 방식이 미국식 ‘근대적’ 노동조합 대책인 노동관계(Labour Relation)와 인간관계(Human Relation)관리였죠. 

근대적 노동조합 대책은 미국 ‘전국기획협회’(the National Planning Association)의 ‘단체교섭 하에서의 산업평화 요인 규명위원회’ 실태조사를 토대로 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골격으로 하고 있습니다(木元進一郞, 1974: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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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근대적’ 노동조합 대책의 개요

①노동조합주의를 기초로 한 노동조합 존재의 승인.
②‘경영권’의 확립과 단체교섭의 규제.
③노사협력위원회의 설치.
④노동조합의 의사소통.
⑤상세한 단체협약의 체결.
⑥고충처리제도의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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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근대적’ 노동조합대책은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불인정이나 노골적인 탄압 및 통제라는 낡은 방식과는 달리, 노동조합을 인정하면서 경제주의와 반공주의로 유도하는 한편, 노사협력적인 노동조합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자 했어요. 또 노동조합 간부들의 ‘노동귀족화’를 부추기고 고충처리제도를 통하여 노동자의 불평과 불만을 완화하려 했죠.

한편, 인간관계관리는 1927~1932년 사이에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 회사의 호손(Hawthorne) 공장에서의 실험 결과를 기초로 도출된  관리방식입니다. 인간관계 관리방식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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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관계 관리방식의 주요 내용

①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의사소통 ― 사내보, 게시판, 직장간담회 등.
② 노동자의 자본가에 대한 의사소통 ― 제안제도, 사내보 투고, 직장간담회, 각종위원회 참가.
③ 종업원의 태도·의견 조사.
④ 인사상담·면접제도.
⑤ 고충처리제도·노사협의제.
⑥ 교육제도.
⑦ 종업원지주제도.
⑧ 종업원가족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의사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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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적 기능=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와 방법을 채택한 인간관계론은 기업경영에 대한 노동자의 협력을 중대 목표로 설정하고 있고, 노동조합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집단과의 관계나 직무 관계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 노동자 측의 주장이었죠. 그런 점에서 과학적 관리방식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착취와 지배·억압 기능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와 같은 ‘근대적’ 노무관리는 미국에서 먼저 고안되고 실시되었으나, 거의 동시적으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보급되거나 독자적인 방식에 의해 도입되었습니다. 이런 관리방식은 노동생산성의 증대, 즉 노동 착취의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