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그리고 화장품 판매원 이정희 씨 이야기

노동사회

보험설계사 그리고 화장품 판매원 이정희 씨 이야기

편집국 0 5,708 2013.05.3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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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로 드러내는 <특수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가장자리에서 노동자 정체성을 움켜쥐고자 하는 이들의 삶과 분투에 공감과 격려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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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가명) 씨. 1958년 출생. 결혼 전 4년 동안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고 1998년까지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1998년 남편과 헤어지고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현재 보험회사와 방문판매 화장품회사에 등록된 ‘개인사업자’로 2년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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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는 아,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많이 배웠더라면 살아가는 데 힘이 덜 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을 해서도 내가 돈을 벌었으면 남편하고 동등하게 살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으니까, 한참 격을 두고 살아야 되는 것 같고요. 그런데 마흔 살이 넘어서 헤어지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이혼을 딱 하고나니까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경제적인 게. 일자리를 얻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나라 여자들이 나 같은 경험을 하는 여자들이 많을 겁니다. 일을 하려고 해도 할 게 없어요. 너무나 할 게 없어요. 대한민국은 아무리 그 평등, 평등 떠들어 대도 결혼하고 나면은 여자는 정말 힘들어요. 지금도 여자는 세 배 일을 해야 해요. 집에 오면 청소하고 빨래하고, 모든 걸 다 하고. 

지금 보험회사도 나이가 쉰이 되가지고 들어간 거예요. 전부 컴퓨터로 하고, 이제는 보험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따라가려니까, 노력을 그 사람들보다 몇 배를 더 해야 되는 거지요. 그리고 일해서 수수료 받고 돈 버는 건 벌이가 너무 안 되니까 사람들이 ‘투잡(two jobs)’을 많이 해요. 거의 투잡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나처럼 화장품 하면서 보험 하는 사람도 있고, 건강식품 하는 사람들도 있고. 카드 발급해주는 일이랑 같이 하는 사람들도 있고……. 한 가지만 하고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요. 

마흔이 넘은 여자가 다시 일을 한다는 것

이혼을 하고서 일을 시작했어요. 여러 가지 닥치는 대로 그냥 아무거나 했어요. 그때 많이 어렵지요. 다, 너무나, 참 현실은…… 현실은 참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그때는 젊었으니까, 기분에는 ‘아 내가 뭘 하든 못살겠어?’ 그랬는데, 막상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까, 내가 전문인이 아니니까 현실로는 ‘노가다’를 해야 하는 거예요. 근데 막상 하려니까 여러 가지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참 세상은 만만하지가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식당에서 서빙을 했는데, 석 달 정도 하고 나니까 더 이상 못하겠더라고요. 밤 9시에 갔다가 아침 9시에 끝나는 거였는데, 그렇게 3개월을 했더니 사람이 완전 그로기 상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건 아니다, 사람이 낮에 일 하고 밤에 자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아침이 되서 발을 땅에 디디면 멍해지더라고요. 

여자들이 하는 노가다는 12시간짜리 입니다. 아침 10시에 가면 저녁 10시까지요. 그 후로 동생이 하는 치킨 가게에서 같이 일하고, 아는 사람이 하는 노래방에서 카운터 봐주는 일, 친구가 하는 식당에서 음식 만드는 일 등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2년 전에 우연치 않게 내가 보험 들었던 분을 만나게 돼서 보험회사에 교육을 받으러 가게 되었어요. 가서 보니까 내 나이가 오십이 되가지고, 전부 다 젊은 사람들이더라고요. 내가 제일 ‘왕언니’더라고요.

요즘은 보험 하는 사람들이 20대, 30대가 많아요. 예전에는 아줌마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이제는 완전 전문적인 직업이 된 것 같아요. 시스템 자체도 컴퓨터를 모르면 못 따라가고요. 나는 여기 와서 컴퓨터를 한 거예요. 그전에는 컴맹이었고, 어쩌다가 우리 아들이 틀어놓으면 고스톱이나 칠 줄 알았지요.

보험회사에 들어올 때 시험을 봅니다. 그 시험을 보고 나면 80만 원을 준댔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다시 3개월을 교육을 받고, 그 3개월 교육기간동안 80만 원을 준다는 말이더라고요. 그렇게 시험을 보고 교육을 다 마치면 사람들 한 명당 ‘고유코드’가 나와요. 그 고유코드가 나와야 80만 원 교육비를 줍니다. 고유코드가 나오는 게 바로 그 사람이 회사에 ‘사업자 등록’을 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일을 시작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해서 일을 시작하면 자기 할당 성적이 주어져요. 한 달 목표치로 달성해야 할 점수가 주어지는 거지요. 그걸 맞췄을 때는 회사에서 80만 원씩 처음 3개월 간 ‘정착 축하금’이라는 것을 지원해 줍니다. 회사가 지정하는 목표 달성치인데, 문제는 목표 달성치에 못 맞추면 초기 3개월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신규로 받은 보험에 대한 수당밖에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보험회사에서 3개월 동안은 80만 원 밖에 주지 않기 때문에 당장 소득이 없으니까, 저는 보험 시작할 때 동시에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했어요. 보험회사 교육 받고 시험 보고, ‘아 이거 갖고는 안 되겠다. 나는 내가 내 벌어서 먹고 살아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것을 같이 해야겠다고 결심한거지요. 그러다 보니까 두 배로 피곤한 삶을 사는 거지요.

출근체크, 그리고 30%의 수수료

아침에 6시30분에 일어나요. 어디서든지 출근을 다 중요하게 생각을 하거든요. 화장품에서는 출근 지문을 찍어야 되고, 보험회사에서도 컴퓨터에 로그인을 해야 출근 인정이 됩니다. 그러다보니까 6시30분에 일어나서 7시50분에 집을 나서서 화장품에 가서 먼저 출근 지문을 찍고, 바로 보험회사에 가서 출근 체크를 해요. 화장품 회사는 20일 이상 출근을 해야만 출근수당이 있어요. 20만 원 정도가 되는데 출근을 못했을 경우에는 없어지는 거예요. 보험회사에서는 8시40분까지 출근하라고 합니다. 출근해야 주는 수당은 한 달 출근에서 70%이상 체크해야 지급되고요. 처음에는 화장품에 가서 꼬박꼬박 출근을 찍었어요. 그러니까 너무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보험회사에만 출근을 찍고 화장품 출근은 포기했어요. 그래서 화장품은 물건 값에 대한 수수료만 받는 거지요.

보험회사 가서 출근체크하고 조회서고 하면 9시30분 정도가 돼요. 그리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지요. 오전에는 화장품 물건 뗄 것이 있으면 화장품 사무실에 가서 물건 실어오고, 아니면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대부분 고객을 만나고, 아니면 가망고지(새로운 보험을 찾아 ‘개척’을 나가는 것)를 찾아가고. 일은 대중없이 끝나지요. 사람을 많이 만나야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저녁에도 부르면 가고, 밤늦게까지 같이 밥 먹고 노래방까지 같이 가서 놀아주는 경우도 있고. 멀어도 제가 직접 찾아가야하고요. 그러다보니 보험에서는 처음 시작할 때 밤 12시 전에 끝낸 적이 거의 없어요. 그러면서도 사무실에서는 5시에 귀소를 하라고 해요. 들어와서 낮에 활동했던 걸 보고하고 실적 점검하고 그러는데, 워낙 사람들이 안 들어가니까 그것도 점수에다 넣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요. 그리고 한 달 시작하면 새로 실적 내는 걸 ‘가동’이라고 하는데 가동이 늦어지면 불러다가 교육을 시켜요. 

화장품 같은 경우는 내가 100만 원을 판다 그러면 총 수수료를 30%를 먹어요.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30%가 안돼요. 왜냐하면 나가는 돈이 많거든요. 판촉물 나가는 거 공짜로 주는 거는 하나도 없어요. 비닐봉지 하나도 50원씩 다 받아요. 모르는 사람들은 판촉이 그저 나오는 줄 알고 자꾸 달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샘플 하나도 우리가 다 지불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말이 30%지 그렇지 않아요. 거기다 세금도 떼니까 남는 게 별로 없지요. 그리고 화장품은 수금한 것에서 30%기 때문에, 외상 같은 게 많이 생기면 안 되니까 화장품 값을 나눠 받기도 하고 그래요. 또 카드 긁으면 수수료가 2.7% 생기는데, 이것도 회사가 내는 게 아니고 우리가 내는 거예요. 고객이 카드 긁는 수수료를 우리가 내는 거지요. 그러니까 회사는 하나도 손해를 안 봐요.

보험 새로 가입하면 프라이팬 주고 뭐 주고 그러지요? 그것도 절대 회사에서 나오는 거 하나도 없어요. 선물도 내가 알아서 다 사갖고 하는 거예요. 보험회사 로고 찍혀 나오는 판촉물은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다 신청을 해서 우리 돈 주고 사는 거예요. 약관하고 보험설명서 같은 것만 회사 것이고, 케이스 같은 것들은 2,000원, 2,500원 주고 다 사는 거예요. 회사에서는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거는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회사가 크는 거겠지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이기 때문에

만약 회사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이야기하거나 할 수가 없어요. ‘우리 회사에서 그렇게 규정해 놨으니까 그렇게 싫으면 안 하면 된다’는 거지요. 우리는 회사에 소속돼 있는 식구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개개인 사업자로 해가지고 거기서 빌려 쓰고 있다고 생각을 해서, 언제든지 싫으면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지점운영에 있어서는 우리가 얼마를 일을 해야 지점이 유지가 되니까, 그럴 때는 소장을 달달 볶아서 우리를 볶게 만들어요. 목표 달성치를 채우라는 거지요. 

하지만 우리는 개인 사업자예요. 우리가 보험회사 소속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뭐 어디 노조처럼 막 노조가 형성이 되 있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별로 돼 있을 때는 한 사람이 불만을 말해도 못 들은 척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쉽게 얘기하면은, ‘나는 여기서 살기 위해 일하는데 내가 괜히 쓸데없이 불만 말하는 사람들하고 휩쓸리기 싫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사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거,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고……,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지요. 개인 입장에서 부당한 게 있으면 그만두는 방법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됐을 때는, 스톱이 됐을 때는 나머지 수당, 이런 게 전부 스톱이 되고요. 내가 한 실적에 대한 수당은 그만두게 되면 절대 받을 수 없어요. 

보험회사에서는 고객 말고도 ‘도입’(새로운 보험설계사를 들이는 일)이 아주 중요해요. 그래서 만날 ‘도입! 도입! 도입!’ 그래요. 보험설계사가 많아야 보험회사가 클 수가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금방 그만 둔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들어오면 어쨌건 자기 수입을 위해서 몇 건씩은 실적을 남기거든요. 그러면 그만 둔다고 하더라도 한두 개 이상은 물어다 놓고 그만두니까, 그게 남아있게 되면 보험회사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게 되지요. 그러니까 보험회사가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보험설계사들 경우는 개개인 사업이다 보니까 모여서 뭔가 토론을 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그럴 시간 있으면 나가서 영업을 해야 하니까요. 아침 미팅시간 지나면 누가 나가는지 누가 들어가는지도 몰라요. 모인다고 해도 가끔 팀 회식하거나 점심 먹는 게 전부고요. 그럴 때도 자기 가정사 얘기는 해도 회사에 대한 불만 같은 거는 말하지 않아요. 솔직히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노동조합 같은 건 어려운 것 같아요.

회사뿐만 아니라, 정말 말도 안 되는 고객들도 있어요. 어떤 친구가 택시회사 사장을 소개해 준 적이 있어요. 사실 작은 화장품 하나 사면서 멀리까지 가는 것은 남는 게 없어서 꺼려지지만 아는 사람들 소개도 있고 관계문제가 있기도 해서 거절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문제는 남자 고객이 더 힘들다는 거예요. 요즘에 많이 인식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도 나이든 사람들 머리에 박혀 있는 건 ‘보험아줌마들은 쉬운 여자’라는 거예요. 신규 고객이 생겨도 두 번째 달까지는 유지가 되어야지만 그 실적에 대한 수당을 받게 되는데, 그런 점 때문에 고객유치를 하고 나서도 고객관리를 해요. 그러면 가끔 전화통화도 하게 되고 하면 밥을 같이 먹게 되기도 하는데, 남자들이라는 게 참 웃기지요. 밥 한 두 번 먹고 나면 모텔 앞 지나가면 ‘저기 쉬었다 가자’ 이래요. 그런 걸 참아야 되는 그런 점이 어렵죠. 그런 걸 혼자 해결해야 하는 거고요. 

‘진심’을 다해 일 할 수 있다는 것

여러 가지 힘든 점도 있지만, 여자들이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현재 직업에는 어느 정도 만족해요. 식당에서 하루 종일 접시 닦으면 12시간 일해서 그나마도 잘 주는 데서 일해야 한 달에 130만 원이예요. 보험은 그래도 12시간 꼭 메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 출근하고 나면 시간을 내가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현재로서는 만족하는 일입니다. 물론 일하기는 어려운 게 있지요. 처음에는 아는 사람 앞에서 상품 설명을 하려고 하면 쪽팔리고. 거절 하면은 상처를 입고. 그래서 포기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리고 사실 고객을 만나러 갈 때 집에서 연습을 해갖고 가요. 이 사람이 가입 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연습해서 만나면, 안 그런척하고 설명을 해도 등에서는 땀이 나거든요, 솔직히. 그런데 가입할 것 같았던 고객이 결국 안한다고 하면 힘이 빠지지요. 

그래도 저는 내 딸 보험을 설계하는 것처럼 분석해가지고 설명을 했다는 것이 상대에게 전달이 됐으면 좋겠다는, 정말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내가 ‘억대 연봉’은 못 되더라도, 지금 열심히 고객을 만들어가지고 욕심내지 않고 남한테 돈 빌릴 정도만 안 되게, 내가 벌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지금까지는 제일 떨어질 때까지 떨어졌다가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희망만 있지 절망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요. 그래도 몸이 힘들지 않게 일하고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