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노동자가 희망이다

노동사회

그래도 노동자가 희망이다

편집국 0 3,066 2013.05.29 11:59

 

shlee_01.jpg한국노동사회연구소 편집국의 전화를 받았다. 올해가 노동절 120주년이라며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얘기를 써 보란다. 요즘 돌아가는 꼴이나 내 마음이 도저히 글 쓸 기분이 아니었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며 한노사연이 당하는 어려움도 안타까웠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남아서 연구소를 지키는 동지(후배)들의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신문을 펴들기가 민망스럽고 TV를 켜기가 겁이 난다. 오늘은 또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어떤 해괴한 탄압을 받고 있나? 또 어느 공기업 노조가 단체협약 해지를 당하고, 어느 제조업 노조 위원장이 고소 고발을 당하고 손배 가압류를 당하고 있나? 이명박 정권의 노조말살정책은 오늘도 망나니춤을 추고 있다.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

우리 법이 보장하는 쟁의행위를, 절차에 따라 아무 결함 없이 진행한 철도노조의 파업을, 이명박 대통령이 현장에 나타나 한마디 했다고 불법으로 몰아 위원장을 구속하고 수만 명을 징계하고 수백억 원을 손배 가압류하는 것은, 도대체가 말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조전혁이라는 뉴라이트 의원이 전교조를 포함한 전체 교원단체 가입자 명단을 불법으로 공개하고, 공개를 즉각 멈추라는 법원의 판결도 무시하는 태도는, 그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게 만든다. 아마 대한민국의 법 위에 있는 삼성이나 조중동 공화국 아니면 이명박 공화국이나, 그도 아니면 독도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나 ‘아름다운’ 제국주의 국가 국민인 것 같다.  

세종시는 이름도 짓지 못한 채 콘크리트 건물만 올라가고 있고, ‘4대강’은 종교인들을 비롯하여 온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마구 파헤쳐지고 있고, 막강 해군 군함은 원인도 모른 채 두 동강이 나 46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속절없이 죽어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 속에서, 어려운 나라경제의 책임을 온 어깨에 지고, 오늘도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노동현장을 지키고 있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노동운동의 일익을 담당했던 책임 있는 선배인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 시간도 묵묵히 땀 흘려 일하며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교육부 ‘전교조 교사 식별 기준’은 지금도 유효한가

특히 교육노동자인 나는 전교조 후배들에게 더더욱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학교 현장이나 교실 분위기를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전교조 운동 20년에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느냐, 아이들은 얼마나 더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내며, 교사는 얼마나 더 자주적이며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25년 전 교육민주화선언이나 20년 전 전교조 결성선언문의 주장이 지금도 거의 같은 것이라면, 그 동안 우리는 무얼 했던가를 되물어 보며 자신을 반성해 볼 수밖에 없다.

그게 역사라고, 그건 신자유주의나 이명박의 탓이라고 합리화하거나 위로 받지는 말자. 언제나 있었던 이런저런 도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제대로 응전했는가 되돌아보며, 그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최선을 다했고 당당했던가, 되새겨볼 일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가를 냉정히 살펴보자. 참교육을 위한 우리의 목표는 흔들림이 없는가? 아이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열정은 여전한가? 

초창기에 당했던 어려움은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1,500명 이상이 한꺼번에 목이 잘리는 탄압도 우리는 5년, 10년을 흩트림 없이 버티며, 아이들 사랑의 참교육에 매진하지 않았던가?

그 당시 명단 공개 그 자체가 살생부인 때에도, 우리는 당당하게 공개했다. 아이들에게 학부모에게 국민에게 우리 이름이 자랑스러웠기에, 그렇게 하고도 우리는 뿌듯한 전교조 교육노동자의 자부심을 갖지 않았던가?

지금은 어떤가?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아이들을 때리거나 차별하지 않는 교사, 풍물 등 우리 것을 가르치는 교사, 아이들을 너무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 등등” 당시 교육부의 전교조교사 식별 기준은 지금도 유효한가?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일이다.

학교마다 분회를 결성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건설된 분회의 현재의 모습은 어떤가? 웬만한 분회에서는 다 발행되던 분회보가 지금도 나오고 있는 학교는 몇이나 되는가? 남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부끄러움을 딛고, 다시 손 맞잡고 일어서기 위하여

올해는 세계노동절 120주년의 해이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의 역사이며 사람 중심의 사회변혁의 역사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노동자들이 역사를 올바로 쓰지 못한 책임도 크다. 후배들 앞에 부끄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그대로 무릎 꿇거나,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지난 일을 교훈으로 내일을 향해 떨쳐 일어나자. 다시 한 번 힘을 내자. 자 우리 손에 손을 잡자. 단결만이 노동자의 힘임을 잊지 말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