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참관기

노동사회

<노동인권 보장이 민주주의다!> 토론회 참관기

편집국 0 2,980 2013.05.29 11:59

지난 4월16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는 장장 4시간여에 걸쳐 <노동기본권 보장이 민주주의다!>라는 강렬한 제목의 토론회가 진행됐다. 노동기본권의 사전적 의미는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헌법이 정한 노동권(32조 1항) 및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33조 1항)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애써 이 토론회를 주최한 민주노총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이를 보장토록 규정하고 있는 헌법과 노동법이 위협받고 있다고 힘주어 외치고 있는 것일 터다. 더군다나 민주노총에서 바라보는 노동기본권 위협의 주체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정당한 과정을 거쳐 선출된 정치권력, 즉 이명박 정부다. 민주노총은 지금 정부가 스스로 정당성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반정부적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에 의해 위협받는 헌법과 노동법

그러한 주장을 가능케 한 조건은 무엇이었으며, 토론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발표 내용과 참가자의 면면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노동기본권 침해, △건설노조와 운수노조의 단결권 침해, △철도노조의 단체행동권 침해, △OECD 특별감시과정 종료 이후 악화된 노동기본권 상황 등을 주제로 발표가 이뤄졌고, 야 5당의 정책담당자들을 비롯해 무려 8명의 지정토론자들이 초청됐다. 즉, 공공부문 내지는 공적 통제가 요구되는 운송부문의 대규모 노동조합 조직들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최근 취한 집단적 노사관계에서의 ‘적극적 조치들’을, 민주노총은 노동기본권 측면에서의 공격이라 규정하고, 이를 야권의 정치세력 등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더 나아가 민주노총의 입장을 각 정당의 활동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물으려는 게 이 토론회의 취지였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취지가 정당한 것인지 이러한 취지를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이날 이뤄진 발표와 토론 내용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자.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 요구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집단적 노사관계 조치들은 정말로 노동기본권에 대한 ‘정치적’ 공격인가? 그럼에도 이러한 공격이 사회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향후 노동기본권과 관련해 정권과 노동계의 대치 전선은 어떤 쟁점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이며, 이러한 대치 전선에서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적 함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등등.

노동기본권 탄압, 무엇을 위한 정치적 공격인가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이명박 정부의 노동기본권 침해 사례는 노동 3권에 전방위적으로 걸쳐 있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자가 조합원으로 일부 가입해 있다는 이유로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거나(전국공무원노조, 청년유니온) 해당 조합원을 탈퇴시키라는 시정명령을 내리는 등(건설노조 및 운수노조) 신고제도로 운영되어온 노동조합 설립과 관련해 일종의 ‘선별 심사’를 자행하며 단결권의 기본원칙을 어그러뜨리고 있고, 배타적 경영권 및 노동력 유연성 확보를 목표로 하는 이른바 ‘모범 단체협약안’을 설정해 경영평가 등을 무기로 공공부문 노사에게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여 단체교섭권을 무력화시켰으며(전교조 및 공공부문 노조들), 모든 법적 절차를 준수한 파업에 대해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불법’ 혐의를 덧씌우고 업무방해죄와 손배?가압류, 징계 등을 가해 단체행동권의 근간을 파괴했다는 것이다(철도노조).

이러한 내용의 문제제기를 하는 발표자들 목소리에는 정부 조치의 몰상식함과 그 몰상식함의 근원인 현 정권의 후안무치함에 대한 분노가 묻어 있었다. 전국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고 ‘불법단체’로 낙인찍는 것에 대해 “이미 태어난 아이를 출생신고서 몇 줄 잘못됐다고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하는 이야기”라 비유하거나, 철도노조의 파업과 관련된 정부의 공격적인 대응을 “파업 유도”, “불법화”라는 과감한 단어들로 묘사하는 것은 그러한 몰상식함에 대한 분노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터다. 한편,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그러한 몰상식한 대응의 실질적인 계기로서 고위 정치인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반노조적 발언을 지적했는데, 이는 일련의 조치들이 행정적 대응 이상의 적대적인 정치적 공격이라 인식하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을 드러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적 공격의 맥락은 무엇일까? 이를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 전반기를 마치고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정권의 근간인 시장경제주의에다가 정권 재창출 의지를 결합해 거의 파시즘적인 노조 탄압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진단했다. 즉, 현재 자행되고 있는, 노조의 ‘불법’을 요구하다시피 하는 법과 원칙에 대한 강조, 노동유연화의 외피를 두른 노골적인 반노동적 정책 등은 이른바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2012년 정권 재창출의 기반으로서 올 하반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그 주요 저항세력인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을 사전에 거세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정책의 결과가 단지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생존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한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저항의 동력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법제화되지 않은 정권의 주장들도 제도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단순무식 조악하지만 대응하기 까다로운 공격”   
      
왜일까? 이렇듯 노골적으로 의도가 드러나는 몰상식한 정책들이 어떻게 사회적 저항을 통과해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조춘화 민주당 노동전문위원은 “이명박 정권의 공세는 단순무식 조악하지만 동시에 대응하기 까다롭고 정교하다”는 말로 그 메커니즘을 짚었다. 즉, 한나라당의 법안 발의를 통해서, 또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의 공적 발언을 통해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조악한’ 반노동?반인권적 규율들이 노동자 내부 갈등 구조와 보수세력이 장악한 언로를 통과하면서, 노동자들을 설득력 있게 갈라치기 하는 ‘단순한’ 이야기로 둔갑하여 대응하기 까다롭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잘 알기 때문에, 그러니까 일단 발의만 하면 통과 가능성이 거의 없더라도 나름의 통제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나라당과 정부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들을 끊임없이 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조악한 조치가 설득력 있는 단순한 이야기로 둔갑하는 데는 보수언론의 정치적 영향을 넘어서는 좀 더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임동수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이를 “저성장 고실업 구조에 접어든 경제의 장기침체와 그로 인한 고용위기의 원인을 노동조합, 특히 민주노총의 정규직 보호에 미루는 전도된 가치관”의 횡행이라 묘사했다. 양극화된 노동시장 구조에 기반하는 이러한 ‘전도된 가치관’은 물론 기득권 세력이 구성하여 확산시킨 것이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들을 대표해야 할 의무를 기대 받던 민주노총이 그간 보인 ‘수동적인 저항’이, 그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고, 오히려 그러한 모순된 가치관이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데 일부 영향을 줬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투적인 진단이지만,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결국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일어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당연하게도 토론회 참여자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바였다. 그리하여 토론회장에서는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광범한 정치?사회적 연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물론, “비정규직 문제 근본 해결 및 산업별 노사관계 정착을 위한 법과 제도적 환경 마련”을 목표로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 4당 사이에 이뤄진 <노동 분야 정책연합 합의>가 강조되기도 했고, 진보?개혁적 정당들이 권력을 장악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동운동과 함께 실현할 수 있는 약속들을 구체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집단적 노사관계라는 좁은 틀에서의 노동기본권 수호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생존권적 의미에서의 노동기본권에 대한 욕망을 사회적 실천으로 포섭하는 구체적인 기획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역동적인 연대와 세력화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노동이 존중받는 참된 민주주의 사회를 위하여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은 사실 민주노조운동 세력이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던 것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상대적으로 가장 안정적이었던 공공부문의 대형 노동조합들에서부터 노동기본권의 골간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현실에서, 이는 당위적이고 장기적인 전망이 아니라 긴급한 실천을 요하는 구호조치가 되어버렸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참된 민주사회!”라는 민주노총의 당찬 외침은 역설적으로 그러한 사회적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어쨌든 한국 노동운동의 폭발은 사회의 위기를 통해 획득된 단순하지만 강렬한 인식, 이를 테면 1987년 대투쟁의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깨달음 같은 것들로부터 비롯됐던 터다. ‘알지만 하지 않았던 것’들부터 해나가며 존중받아야 할 노동의 내용을 풍부하게 채워나갈 수 있다면, 그 미약한 실천은 창대한 정치적 폭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참된 민주주의를 향한 노동운동의 건투를 기원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