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할 줄 모른다면 정치를 생각하지 말라

노동사회

연합할 줄 모른다면 정치를 생각하지 말라

편집국 0 3,206 2013.05.29 11:58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한나라당의 “참패”라는 말이 풍토병처럼 유행했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쇄신” 따위 단어가 흘러나오고 신문사들은 열심히 받아쓰면서 분위기를 부풀렸다. 선거가 끝난 지 30여일,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을 국회의 처리에 맡기겠다고 했을 뿐이다. 입법권이 의회에 있는 민주공화제 국가에서 의회가 부결시킨 법안을 대통령이 공포할 수는 어차피 없을 텐데, 국회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는 것이 무슨 변화를 의미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상임위에서 부결되었는데도 본회의에서 표결을 굳이 다시 하겠다는 태도는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누가 감히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지 확인하겠다는 협박으로서가 아니라면 이해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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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가 후 MB정부는 어떤 ‘소통’을 하고 있는가? 지난 6월18일, 대통령을 만나러 삼보일배로 남양주에서 서울까지 온 팔당대책위는 끝내 경찰에 막혀 조계사로 향해야 했다.  ▷ 미디어스 ]

지방선거 결과의 민심, 그리고 이명박의 오만

지방선거 결과를 대통령이 묵살하기로 맘먹은 징표는 개각을 7·28 보궐선거 이후로 미룬 데서도 잘 나타난다. 정치를 혐오하면서 스스로 정치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명박의 시야에서 바라보면, 지방선거란 기껏 도지사나 시장을 뽑는 선거일뿐으로, 4대강 사업, 표현의 자유 탄압, 한반도 긴장고조 등의 전국적이고 역사적인 정책 선택에 대해서는 별 의미가 없다.

따지고 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통령의 행보를 특별히 꾸짖는 방향으로 민심이 분명하게 나타났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광역단체장의 당선자 수에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에게 앞섰지만,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는 여전히 한나라당의 몫으로 남았다. 기초단체장의 경우 민주 92대 한나라 82, 광역의회의 지역구의원은 328대 252이지만, 기초의회의 지역구의원은 한나라 1,087대 민주 871, 광역의회 비례대표는 한나라 36대 민주 32, 기초의회 비례대표는 한나라 160대 민주 154 등으로 한나라당이 여전히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요컨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고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둔 데에 비하면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양당 간의 세력균형을 보면 이제 겨우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어깨를 견줄 정도일 뿐 한나라당을 압도할 수 있는 정도는 결코 아니다.

더구나 이명박이라는 사람은 모든 일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체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내게는 비친다. 따라서 설사 한명숙 서울시장에 유시민 경기도지사가 나왔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명박이 세종시 수정안 또는 4대강 사업을 자발적으로 철회하거나 북한에 대한 냉전주의적 공세 노선을 회수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가운데 적어도 50~60명 정도가 그런 결과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국회에서 실제 표결행위를 통해서 행정부의 냉전주의와 전횡을 실력으로 억제하지 않는 한, 이명박은 “지방선거는 지방선거일 뿐”이라며 오만을 소신으로 둔갑시킬 길을 끊임없이 탐색했을 것이다. 자기에 유리한 증거는 하나만 있어도 자기가 언제나 옳다는 근거로 충분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는 아무리 많아도 자기가 틀렸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한국 사회에 결코 드물지 않다.

기득권구조와 대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서 연합

이번 선거의 결과가 한나라당의 패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전국적으로 압승을 거뒀던 것에 견줘 판단해서가 아니다. 미약하나마 한국 사회에서도 연합의 정치가 가능함을 실제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독재시대를 지나오면서, 이 나라의 정치는 줄곧 권력을 차지한 지배층에 비해 피지배층이 맞설 만한 견제력을 가진 적이 거의 없다. 세세한 족보를 따지더라도 한국 사회 지배계급의 통시적 구성에는 대략적인 혈통상의 흐름이 상당히 진하게 나타날 테지만, 그것은 어쨌든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과거 지배자의 자식들이 지금도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느냐는 질문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되면 정치권력에 덧붙어 부, 지위, 학벌, 존경 등등 여타 가치들이 덩달아 따라온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집권, 또는 심지어 1987년의 개헌을 두고 “민주화”라고만 치부해 버리는 일부 지식인들의 경박한 말버릇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1987년의 개헌은 단지 체육관에서 치러지던 “대통령 선거”라는 이름의 조작극을 인민에 의한 선거로 바꿨을 뿐, 오랫동안 켜켜이 누적된 한국 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해체한 것은 전혀 아니다. 김대중은 이인제의 독자 출마라는 호재가 있었음에도 김종필과 연합을 해야만 했고, 그러고도 겨우 1.6%p 차이로 신승을 거두었다. 노무현은 2002년에 청룡열차 수준의 개인기를 통해 불가능하다는 전망을 흔드는 데 성공했지만, 역시 표차는 2.3%p에 불과했다. 이명박이 정동영을 500만 표 차이로 이겼다고 떠들어대는 얘기는 기실, 한국 사회 기득권 계급의 단결이 얼마나 공고한지, 그리고 기득권의 언저리에서 공포에 사로잡힌 순응주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지표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인구가 대략 보수층 30%, 진보층 20%, 부동층 20%, 무관심층 30%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30대 20이라면 별 차이가 아닌 듯 보일지 모르지만, 진보파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내부의 연합은 물론이고 부동층 가운데 15%p, 즉 네 명 중 한 명 꼴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번에 서울에서 한명숙이나 경기도에서 유시민이 처음에는 이기는 게 불가능하게 보였던 승부를 한 번 비슷하게나마 펼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평소에 부동층으로 분류되던 사람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선에 성공할 만큼에는 미치지 못했다. “진보세력”이라고 부르든, “개혁세력”이라고 부르든, “민주화세력”이라고 부르든, 이 세력이 한국 기득권 계급을 선거에서 꺾고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연합’이 일단 필수조건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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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8일,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5당과 시민단체가 정책연합과 관련한 1차 합의문을 발표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

서울에서는 사실상 연합이 이뤄진 것 

이렇게 말하면 두 가지 반론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첫째, 내가 지금 마치 노회찬을 공격하기 위해 바람을 잡고 있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으리라.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노회찬이 연합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졌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난 선거에서 노회찬이 민주당과 아무런 조율 없이 그냥 혼자 양보했더라면 선거결과가 달라졌겠느냐는 질문에는 반반의 확률밖에 아니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절차 여하를 막론하고, 만약 한명숙을 단일후보로 내기 위해 노회찬이 물러났다면, 노회찬의 골수 지지자 중에 투표에 참여하지 않거나 오히려 오세훈을 찍을 사람도 나왔을 터이기 때문이다. 부동층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후보가 단순히 연합만 했을 때, 연합후보의 지지율은 후보 각각이 누리던 지지율의 합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노회찬의 기존 지지자들 가운데 스스로 전략적 투표에 의해 한명숙을 찍은 사람들을 감안한다면, 서울에서는 사실상 연합이 이뤄진 것으로 봐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연합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서울은 그렇다 치고, 심상정이 사퇴한 경기도에서 유시민은 접전이라고 불러주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격차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 때문에 연합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기가 보고 싶은 일만을 보고 그 바깥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려는 편협한 심성의 소유자들이다. 왜냐하면 경남이나 부산, 그리고 강원의 경우를 보면서도 연합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하지 못한다면 감각기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전략 투표는 연합을 지향한다 

범진보세력의 연합은 보수파의 권력 독식을 방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지 진보의 집권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현재 세력의 분포에서 보수파가 상당한 정도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이지, 진보와 보수가 어울리게 경합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우선 짧게는 해방 이후 60년 동안, 길게는 천년 이상 권력의 주구 노릇에 길들여진 관료집단의 사고방식과 문화가 일방적으로 보수성향이다. 검찰, 국방부, 교육부, 선거관리위원회 등은 접어두고, 통일부가 대북강경정책에 앞장서고 환경부가 4대강 사업을 홍보하는 나팔수 노릇을 자임하는 현실이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자본이 일방적으로 보수 편향이다. 한명숙이 5만 달러인가 9억 원인가를 뇌물로 먹었다고 검찰이 시비를 걸 수 있는 배경에는 그만큼 한명숙에게 돈이 궁하다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이건희나 정몽준이나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뇌물을 먹는다면 9억 원이겠는가? 
마지막으로는 신문사, 방송사를 비롯해서 여기저기서 말깨나 한다는 이 나라 식자층의 보수성이 있다. 식자층의 보수성은 기본적으로 ‘육두품적인 순응주의’로서,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는 옳은 소리를 곧잘 떠들다가도 권력과 자본의 무게가 어느 쪽에 치우치는지를 감지하는 순간 약자로 보이는 편의 진실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체질을 말한다.

이와 같은 사정이기 때문에 관료제와 자본과 언론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결탁되어 있는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기득권 체제에 기생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단 연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물론 연합만 하면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연합을 이룩한 다음에 다양한 방면의 의제와 전략을 개발함으로써,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판단이 흔들리는 부동층과 나아가 절망 또는 무지로 말미암아 정치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무관심층까지를 정치적 주체로서 각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연합만 하면 당장 무슨 성과가 나타나야 할 것처럼 윽박지르는 성급한 철부지 근성은 정치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철부지 근성에서만 벗어나서 생각해보면, 이번 지방선거는 연합의 의미를 절실하게 드러낸 하나의 사건이었다. 먼저 연합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확실히 증명되었고, 다음으로 정치인들 사이에서 형식적인 연합을 이루건 말건 유권자들의 전략적인 투표는 연합을 지향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분명히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반MB연대는 무조건 연대? 전형적인 허수아비 비판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러 후보가 그냥 단일화만 했을 때, 단일 후보의 득표는 각자가 누리던 지지율의 합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연합의 효과는 따라서 그와 같은 단순 합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전선의 단순화’를 통해 특정 의제를 선점한다든지, 불가능해 보이던 연합을 성사시킴으로써 체념과 좌절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개선의 희망을 보여주는 등등 ‘전반적인 분위기의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연합 논의에서 “반MB연대냐 아니면 정책연대냐”를 가지고 벌였던 논쟁을 이 대목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정책연대”를 주장한 사람들은 무조건 연대는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으로 허수아비 비판에 해당하는 논리적 함정에 스스로 빠진 셈이 된다. “반MB연대”를 주장한 측에게 물어보면 무조건 연대를 의도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애당초 “무조건 연대”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연합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고, 따라서 연합의 귀결이 수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느끼는 순간 누구든 대오에서 이탈할 자유를 원천적으로 보유한다. 이런 차원에서 모든 연합은 본질적으로 조건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식의 연합이든 ‘자리다툼’ 흥정 피할 수 없어

정책연대라는 것은 예컨대 A당은 비정규직과 관련해서 a라는 정책, 그리고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c라는 정책을 추구하고, B당은 비정규직에 관해 b, 그리고 한미 FTA에 관해 d라는 정책을 추구한다고 할 때, A당이 c를 포기하고 d를 받아들이는 대신 B당은 b를 포기하고 a를 받아들이는 형태의 연합을 가리킬 수밖에 없다. 이는 정책을 가지고 벌어지는 형태의 흥정과 타협이고, 나아가 지위를 가지고 벌어지는 형태의 흥정과 타협도 가능하다. 예컨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는 대신, 민주당은 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게 한 구역씩을 지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정책연합이라고 하든 자리다툼이라고 하든, 결국 연합이란 세부사항에 관해 흥정과 타협이라는 현실 정치의 줄다리기 과정을 거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정책연대를 내세운 사람들은 상대방의 주장을 폄하하기 위해 무조건 연대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수사적으로 착취한 데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가, 자기들이 만든 허수아비로 하여금 “무조건 연대는 안 된다”는 교조적인 함정을 파도록 허용한 다음, 스스로 그 함정에 빠져서 탈출구를 막아 버린 셈이다. “정책연대”라고 아무리 멋있는 문구로 포장을 해봤자 결국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어디의 누구를 누가 얼마나 밀어줄 것이냐는 ‘자리다툼’의 의미와 섞인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전제로 들어갈 때 탈출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처럼 이유가 있어서 한 지붕 아래 동거할 수 없는 세력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흥정과 타협을 해보려고 해도 수많은 정책적 차이들을 조정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하염없는 세월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므로 선거를 몇 달 앞둔 상황에서 연합이란, 지극히 현실적으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밀어줄 것이냐는 주제, 또는 어떤 절차로 단일화를 해야 연합이라는 판이 깨지지 않을지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정책연대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2012년 선거를 대상으로 정책과 자리를 병행하는 흥정과 타협의 무대를 마련하려고 노력해야 할 시점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7·28 보궐선거를 염두에 둔다면, 어떤 선거구에 누가 후보로 나설 때 연합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겠느냐는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연합의 능력이 곧 정치력이다.

현재 한국의 기득권이란 한나라당-관료-자본-언론권력이 그악스러울 정도로 질긴 끈으로 서로 엮여 있는 구조에 의해서 지탱된다. 이런 사회에서 진보운동의 목표란 이 기득권의 질긴 끈을 잘라내는 데에 집중되어야 하고, 그 이외의 차이들은 모두 이에 비하면 부수적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자칭 타칭 진보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이러한 목표 설정에 충심으로 공감하리라고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반대, 또는 자본주의 타파, 또는 이런 저런 종류의 개인적인 복수심이나 한풀이를 위해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할 텐데, 그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단어의 의미를 통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정치의 두 번째 목표는 이처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향점을 이해하고 있는 다양한 집단들을 다소 엉성하고 모호하나마 일단은 하나의 세력으로 묶어내는 조직력이다. 

이 때 작은 차이들을 파고들어 해소해보려고 시도했다가는 분열의 갈래를 무한 증폭하는 결과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들 사이에도 차이가 당연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조직이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공통의 가치나 느낌이나 이익을 위해 한데 모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방금 말한 “공통의 가치나 느낌이나 이익”이란, 명확하기보다는 느슨하고 치밀하기보다는 엉성한 특징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것이 큰 천막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여기저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 사회의 자칭 진보파들에게 교조주의를 버리고 열린 광장으로 나오라고 촉구해 왔다. “노무현이 어떻게 진보냐”는 식의 한가한 강단철학의 논제에 빠지지 말고, 한나라당-관료-자본-언론권력이 더 이상 전횡을 부리지 못하도록 기득권의 연결고리를 끊는다는 대의 아래 전략적으로 사고하라고 부르짖어 왔다. 아직도 진보진영 안에는 교조주의의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는 만큼, 이 점을 강조할 필요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과 1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진보진영의 교조주의를 성찰 대상으로 삼는 시선이 현저하게 늘어난 것만은 틀림없다.

2012년 행정과 의회를 ‘범진보 연합’이 장악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연합이라는 대의명분으로부터 가장 무거운 압박감을 느껴야 할 대상은 민주당, 특히 민주당의 지도급 인사들이다. 선거가 끝나고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민주당은 당권 경쟁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당에서 당권 경쟁이 없기를 바란다는 것은 민주정부에서 정권 경쟁이 없기를 바라는 셈과 같을 것이므로 당연히 당권 경쟁 자체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문제는 당권 경쟁이 ‘연고 중심’으로 벌어지는 와중에 한국 정치의 ‘진보라는 관점’ 자체가 소멸되어 버릴 위험이 높다는 데에 있다.

이명박의 당선이 한국정치의 진보에 대해 재앙이었다면, 바로 그 때문에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은 한국정치의 미래를 향해 거의 선악의 갈림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명박이 이렇게 했는데도 다시 한나라당이 행정부와 국회를 장악하게 된다면 한국 정치는 장차 최소한 30년 이상 보수파의 강고한 권력 아래 신음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행정부와 국회 중 하나라도 차지를 하게 된다면, 국회를 장악하지 못했던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시기에 그랬듯이 진보의 명분은 담론의 시장에 등장하는 족족 조중동이 지어내는 ‘개혁 피로증후군’에 의해서 저격당하고 말 것이다.

한국 정치의 미래는 2012년에 대통령과 국회를 공히 진보진영이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다면 암울할 일밖에 없다. 현재의 시점에서 민주당은 이와 같은 분명한 목표의식 아래 움직여야 한다. 당장 7·28 보궐선거에서부터 어떻게 범진보 연합을 자아낼 수 있을지를 고려하여 당내 공천 절차를 조속히 확정하고, 나아가 선거 연합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민주당의 상대적 우위가 두드러지는 마당에, 단순한 경선이라는 절차만으로는 참여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등을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2012년 집권에 대비해서 공동정부를 수립한다는 원칙을 민주당이 공세적으로 천명하고 필요하다면 통일부, 여성부, 환경부, 노동부, 산자부, 기타 등등, 민주당보다 개혁성이 강한 정당의 인사들에게 맡길 정부 부서의 내역까지도 구체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연합을 의미 있게 성사시킬 유일한 길이고, 이것이 한국 정치의 퇴행을 방지할 유일한 길이며, 따라서 민주당이 역사에 공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