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노동조합의 대응

노동사회

경제위기와 노동조합의 대응

편집국 0 4,570 2013.05.2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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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발견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감소했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주로 취약계층 일자리가 감소했다. 1998년에는 ‘제조업 생산직 상용직’이 집중적인 타격을 받았다면, 2009년에는 ‘서비스업 판매서비스직 자영업자’와 ‘제조업 생산직 일용직’이 집중적인 타격을 받았다.

둘째, 두 차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근로빈곤(working poor)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상위 10%와 하위 10% 임금격차는 5.3배로 OECD 국가 중 가장 심하고, 노동자 4명 중 1명은 저임금계층이며, 8명 중 1명은 법정 최저임금조차 못 받고 있다.

셋째, 외환위기 때는 노조 조합원이 19만 7천 명 감소한 데 비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4만 9천 명 감소했다. 정규직 조합원은 3만 6천 명 증가하고 비정규직 조합원은 8만 5천 명 감소했다. 이는 기간제보호법에 따른 정규직 전환효과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피해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에 집중된 데서 비롯되었다. 

넷째, 파업이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과 같은 집단적 갈등보다,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같은 개별적 갈등이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1997년 1,928건에서 1998년 3,670건으로 증가한 데 이어, 2007년 6,292건에서 2008년 8,343건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현행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으로는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과 요구를 수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한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상의 분석결과가 노동조합운동에 주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노동운동의 주력인 ‘제조업 생산직 정규직’이 주요 타격 대상이었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노동조합에 가입조차 못 한 ‘서비스업 판매서비스직 자영업자’와 ‘제조업 생산직 비정규직’이 집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둘째, 조직노동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타격 대상에서 얼마간 빗겨나 있다. 조직노동이 ‘일자리-복지’를 축으로 취약계층 보호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될 것이며, 조직노동과 취약계층 간에 벌어진 간극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노동운동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의 대응을 영역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사회협약 정치가 활발했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사회협약 정치가 실종되었다. 노동의 사회적 영향력이 훨씬 강화되고, MB정부 스스로 노동의 협력 없이는 원만한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릴 때까지 사회협약 정치의 복원은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노조 조합원의 절반 이상이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노조 등 초기업노조로 조직형태를 전환한 것은 대단한 성과이며, 한국의 노동운동이 그만큼 역동적임을 말해준다. 산별노조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산별교섭이 진전되어야 한다. 그러나 MB정부에서 산별교섭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앙교섭에 집착하기보다는 부문(업종)이나 대각선 교섭 등 교섭형태를 다양화하고, 교섭형태보다는 산별노조 본부와 지부(분회) 사이에 유기적 연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더 중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외환위기 이후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지 않았다면 노조 조직률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을 것이다. 제도적 뒷받침이나 신규노조 결성운동과 같은 큰 흐름을 타지 않는 한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는 쉽지 않다. 내년 7월부터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조합 설립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청년층 조직화에 새로운 모범을 창출하고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피해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실업자 등 취약계층에 전가되고 있다. 조직노동은 일자리와 복지를 축으로 시민사회단체 및 제 정당과의 연대를 강화하면서 취약계층 보호에 나서야 한다. 사회협약 정치가 실종된 만큼 사회연대전략을 더 중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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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리말

1970년부터 2009년까지 경제성장률 추이를 살펴보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인 해는 1980년(-1.9%)과 1998년(-5.7%) 두 해고, 2009년(0.2%)은 세 번째로 낮다. 분기별 성장률이 마이너스인 시기는, 1980년에 3분기(1?2?4사분기), 1998년에 4분기(1~4사분기), 2008~09년에 3분기(2008년 4사분기~2009년 2사분기)였다([그림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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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때는 1997년 5.8%에서 1998년 -5.7%로 급격한 경기하락과 1999년 10.7%라는 급격한 ‘V자 반등’이 있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2008년 2.2%에서 2009년 0.2%로 완만하게 하락했다. 한국은행은 4.6%, 한국개발연구원은 5.5%를 전망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2010년에 급격한 V자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 미친 영향과 노동조합의 대응방향을 살펴본다.

II. 노동시장

1. 일자리(취업자) 증감


외환위기 때는 1998년 한 해 동안 일자리가 127만 6천 개 감소했다. 그러나 1999년에는 35만 3천 개, 2000년에는 86만 5천 개가 늘어나 두 해만에 외환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이래 취업자가 가장 많이 줄어든 해는 1998년(-127만 6천 명)이고, 가장 많이 늘어난 해는 2000년(86만 5천 명)이다([그림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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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는 일자리가 7만 1천 개 감소했다. 희망근로가 대부분인 공공행정 증가분을 제외하면 26만 3천 개가 감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부터 취업계수와 취업자 증가세는 꾸준히 둔화되고 있다([표1] 참조). 한국노동연구원이 2010년에 일자리가 19만 4천 개 내지 23만 4천 개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올해 급격한 V자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1998년과 2009년 일자리 감소를 범주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표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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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1998년에는 남성 일자리가 64만 개가 사라지고, 여성 일자리도 64만 개가 사라졌다. 그러나 2009년에는 여성 일자리만 10만 개 사라지고, 남성 일자리는 3만 개 늘었다.

둘째, 1998년에는 청년층 일자리가 62만 개, 장년층 일자리가 49만 개, 고령층 일자리가 18만 개 사라졌다. 2009년에는 청년층 일자리가 13만 개, 장년층 일자리가 7만 개 사라지고, 고령층 일자리는 오히려 13만 개 늘었다. 경제위기 때마다 청년층이 가장 집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데, 2009년에 고령층 일자리가 늘어난 것은 희망근로 때문으로 추정된다.

셋째, 1998년에는 고졸 이하 저학력층 일자리가 166만 개 사라지고, 대졸 이상 고학력층 일자리가 57만 개 늘었다. 2009년에는 고졸 이하 일자리가 37만 개 사라지고, 대졸 이상 일자리가 21만 개 늘었다. 경제위기로 모든 계층이 똑같이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며, 저학력 층일수록 타격이 크다.

넷째, 1998년에는 제조업(-62만 명)과 건설업(-45만 명), 도소매음식숙박업(-30만 명) 순으로 일자리가 줄었는데, 2009년에는 금융보험부동산사업서비스업(-18만 명)과 도소매음식숙박업(-14만 명), 제조업(-13만 명), 건설업(-9만 명) 순으로 일자리가 줄었다. 1998년에는 제조업과 건설업 등 재화생산 부문에서 타격이 컸다면, 2009년에는 서비스 부문에서 타격이 컸다. 1998년과 2009년 모두 사회서비스업 일자리는 증가했다. 공공행정과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에서 늘어난 일자리는 공공(희망)근로 일자리가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1998년에는 기능직(-67만 명), 단순노무직(-27만 명), 장치기계조작조립원(-13만 명) 등 생산직 일자리가 106만 개 사라지고, 판매서비스직(-19만 명)과 사무직(-16만 명), 관리직(-2만 명) 모두 일자리가 감소했다. 전문기술직만 5만 명 늘었을 뿐이다. 2009년에는 판매서비스직(-16만 명)과 기능직(-15만 명), 장치기계조작조립운전원(-2만 명), 관리직(-3천 명) 일자리는 줄고, 단순노무직(15만 명)과 사무직(10만 명), 전문기술직(4만 명) 일자리는 증가했다. 늘어난 단순노무직과 사무직 일자리는 희망근로와 청년인턴이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여섯째, 1998년에는 임금노동자가 111만 명, 비임금근로자가 17만 명 줄어든 데 비해, 2009년에는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가 32만 명 줄고, 임금노동자는 25만 명 증가했다. 1998년에는 상용직이 75만 명 감소하고, 임시직(-19만 명)과 일용직(-17만 명) 모두 줄어든 데 비해, 2009년에는 상용직은 38만 명 증가하고 일용직은 16만 명 감소했다.

이상으로부터 우리는 다음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즉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감소했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취약계층 일자리가 주로 감소했다. 1998년에는 ‘제조업 생산직 상용직’이 집중적인 타격을 받았다면, 2009년에는 ‘서비스업 판매서비스직 자영업자’와 ‘제조업 생산직 일용직’이 집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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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금 

노동자 월 평균임금은 2008년 8월 185만 원에서 2009년 8월 185만 원으로 0% 인상되었다. 정규직은 250만 원에서 255만 원으로 5만 원(2.0%) 인상되고, 비정규직은 125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5만 원(-3.4%) 하락했다. 그 결과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의 비율은 49.9%에서 47.2%로 임금격차가 확대되었다([그림3]과 [표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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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계층(중위임금의 2/3 미만) 비율은 월 임금총액 기준으로 2008년 8월 21.2%에서 2009년 8월 22.8%로 1.6%p 증가했고,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는 26.8%에서 27.3%로 0.5%p 증가했다. 상위10%와 하위10% 임금격차(P9010)는 월 임금총액 기준으로 2008년 8월 5.0배에서 2009년 8월 5.38배로 증가했고,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는 5.14배에서 5.25배로 증가했다. 한국의 임금불평등은 OECD국가 중 임금불평등이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4.52배(2007년)보다 심하다. 법정 최저임금 미달자는 2008년 8월 175만 명(10.8%)에서 2009년 8월에는 210만 명(12.8%)으로 한 해 사이 35만 명(2.0%p) 증가했다([표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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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부터 우리는 다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한국은 임금불평등(임금격차)이 OECD국가 중 가장 높다. 저임금계층은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27.3%이고, 법정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이 전체 노동자의 12.8%(210만 명)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근로빈곤(working poor)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III. 노사관계

1. 노동조합


노동부가 집계한 조합원 수는 1996년 말 159만 9천 명, 1997년 말 148만 4천 명, 1998년 말 140만 2천 명으로, 1997년 한 해 동안 11만 5천 명, 1998년 한 해 동안 8만 2천 명 감소했다. 그렇지만 1년 뒤인 1999년 말에는 148만 1천 명으로 1997년 말 수준을 회복했고, 2002년 말에는 160만 6천 명으로 1996년 말 수준을 회복했다. 이러한 조합원 수 회복은 교원노조 합법화 때문에 가능했다. 만약 교원노조가 합법화되지 않았다면 1999년 말 조합원 수는 141만 8천 명에 불과했고, 2001년 말에야 148만 1천 명으로 1997년 말 수준을 회복했을 것이며, 아직까지 1996년 말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표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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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집계한 조합원 수는 2008년 8월 205만 2천 명에서 2009년 8월 200만 3천 명으로 1년 사이 4만 9천 명 감소했다. 정규직은 179만 6천 명에서 183만 2천 명으로 3만 6천 명 증가한 데 비해, 비정규직은 25만 6천 명에서 17만 1천 명으로 8만 5천 명 감소했다. 이는 기간제 근로자 조합원이 16만 2천 명에서 11만 명으로 5만 2천 명 감소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기간제보호법에 따른 정규직 전환효과와, 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에 집중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표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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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90%가 넘고 대기업 정규직은 10%가 안 된다. 기업별 노조?교섭체계에서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은,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기본권마저 박탈당한 채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노동조합은 기업별 노동조합을 극복하고 산별노조 등 초기업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노동부에 따르면 산별노조 등 초기업노조 조합원 수가 2003년 48만 4천 명(전체 조합원의 31.3%)에서 2008년 88만 1천 명(52.9%)으로 늘어났고, 평균 조합원 수도 1천 명에서 2천 8백 명으로 증가했다([표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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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파업 등 노사분규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에 파업발생건수는 78건으로 1980년대 이래 가장 낮은 파업발생건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8년 129건부터 2004년 462건에 이르기까지 파업발생건수는 계속 증가했다([그림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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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선(2006)이 1975년부터 2005년까지 시계열 자료를 사용하여 분석한 “외환위기 이후 파업발생 증가 원인”에 따르면, “1990년대 초중반에 감소하던 파업발생건수가 외환위기 이후 증가세로 돌아선 것은, 무역의존도 증가, 노동소득분배율 하락, 부당노동행위 증가에 기인”한다. 

2004년 462건을 정점으로 파업발생건수는 2008년 108건까지 계속 감소하다가, 2009년에 121건으로 조금 증가했다. 이러한 반등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건수는 495건으로 198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러나 1998년 787건부터 2001년 1,502건에 이르기까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은 계속 증가했다. 2003~2008년에도 매년 900여 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1989년 706건에서 1997년 1,928건까지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1998년 3,670건으로 한 해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는 최소 3천 8백 건, 최대 5천 1백 건 사이에서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2007년에는 6,292건, 2008년에는 8,343건으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급증했다. 

파업발생이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과 같은 집단적 갈등보다,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같은 개별적 갈등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불만을 수렴하고 표출하지 못하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의 한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IV. 노동조합의 대응

경제위기가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 미친 영향은 1997년 외환위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훨씬 컸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노동운동의 주력인 ‘제조업 생산직 정규직’이 주요 타격 대상이었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노동조합에 가입조차 못 한 ‘서비스업 판매서비스직 자영업자’와 ‘제조업 생산직 비정규직’이 집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조직노동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타격 대상에서 얼마간 빗겨나 있다. 그 결과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조직노동의 대응은 그 치열함이 떨어진다. 조직노동이 ‘일자리-복지’를 축으로 취약계층 보호에 나서지 않는다면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될 것이며, 조직노동과 취약계층 간에 벌어진 간극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노동운동에 되돌아올 것이다.

노동조합의 대응을 영역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사회협약 정치가 활발했다. 이는 당시 노동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이 컸고,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김대중 정부의 집권 때문에 가능했다. 사회협약 정치를 통해 조직노동은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 합법화뿐 아니라, 주5일제와 의료보험 통합일원화 등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사회협약 정치가 실종되었다. 국가고용전략회의는 노동의 참여조차 배제하고 있다. 사회협약 정치의 실종은 노동의 사회적 영향력이 대폭 강화되고, MB정부 스스로 노동의 협력 없이는 원만한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릴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둘째, 지난 10여 년 동안 노조혁신은 기대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더라도 노조혁신에 성공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전체 조합원의 절반 이상이 산별노조 등 초기업노조로 조직형태를 전환한 것은 대단한 성과이며, 한국의 노동운동이 그만큼 역동적임을 말해준다.

산별노조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산별교섭이 진전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MB정부에서 산별교섭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앙교섭에 집착하기보다는 부문(업종)이나 대각선 교섭 등 교섭형태를 다양화하고, 교섭형태보다는 산별노조 본부와 지부(분회) 사이에 유기적 연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더욱 중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지 않았다면 노조 조직률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을 것이다. 제도적 뒷받침이나 신규노조 결성운동 같은 큰 흐름을 타지 않는 한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는 쉽지 않다. 내년 7월부터 사업장 내에서 조직대상이 중복되는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다. 이는 기존 노동조합의 조직대상에서 제외된 특정 직종이나 고용형태, 그리고 삼성 등 미조직 거대기업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최근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청년 유니온’ 등이 주목 받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청년층 조직화에서 새로운 모범을 창출하고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피해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실업자 등 취약계층에 전가되고 있다. 조직노동은 일자리와 복지를 축으로 시민사회단체 및 제 정당과의 연대를 강화하면서 취약계층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 사회협약 정치가 실종된 현 시점에서는 사회연대전략을 그만큼 더 중시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각국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공유하고 국제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