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운동에서 바라본 6·2 지방선거와 그 이후

노동사회

풀뿌리운동에서 바라본 6·2 지방선거와 그 이후

편집국 0 3,602 2013.05.2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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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 일부는 필자가 쓴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7)』,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공저, 이매진, 2010)』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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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시작하며

ssha_01.jpg2010년 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이번 지방선거에 관해서는 향후 평가해야 할 점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MB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민주주의 퇴보가 큰 문제긴 했지만, 과연 이번 지방선거를 ‘MB정부 심판’ 구도로 몰고 간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지역에서의 연대·연합 논의가 아니라 전국 단위의 연합정치 협상테이블을 만든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등은 반드시 평가가 필요한 지점들이다.

그리고 각 정당들이 준비과정에서 보인 태도에 대한 평가도 필요할 것이다. 2012년의 국가단위 선거까지 염두에 두었을 때,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각 정당들의 태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 특히 호남에서의 민주당의 ‘기득권 고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등도 중요한 판단 지점으로 제기된다. 

더 나아가서 한국 정치의 변화를 위해서는 앞으로 어떤 시도, 어떤 실천이 필요할 것인지 등과 관련된 심도 있는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될 것이다. 특히 유권자들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이나 상층 중심의 야권 연대가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향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서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지역에서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이나 풀뿌리운동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번 지방선거는 새로운 도전과 고민의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지역에서 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앙 정치권이나 서울의 시민사회 인사들은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 급격히 중심을 옮겨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지역, 지방자치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지역 활동가들과 풀뿌리운동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어쨌든 이 모든 평가나 논의, 고민은 지방선거 이후의 시점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미 지방선거의 구도가 어느 정도 정해진 상황에서 지방선거 때까지 할 수 있는 일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발제문은 지금까지의 경과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논의를 위한 화두를 던지는 의미를 갖는다.  

2. 2010년 지방선거의 성격, 어떻게 볼 것인가

2010년 지방선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처음부터 문제였다.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MB정부 심판’으로 올해 지방선거의 구도를 몰고 갔다. 이런 입장에서는 연대·연합을 통해 야권후보를 단일화해서 한나라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자는 식의 논의가 중심이 됐다. 그러나 지역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2010년 지방선거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가지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이다. 지방선거가 반드시 이러한 성격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4대 지방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면서 그 시기가 대통령의 임기 중간에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지방선거가 이런 특성을 갖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그 어떤 비판이나 문제제기도 수용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을 계속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에게, 2010년 지방선거는 오랜만에 투표를 통해 현 정부에 대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가 이런 성격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는 지방선거이기에 지방선거로서의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시민사회운동이나 지역운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MB정권 심판과는 별개로 ‘지역차원의 과제’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비민주적인 지역사회 지배구조를 변화시키고, 지역정치의 민주화를 이루며,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치적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기존에 지역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정당들은 이런 성격 규정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특정 지역에서 일당지배를 계속하고 있는 이런 기득권 정당들의 경우에는 지방선거를 중앙정치화시키면 시킬수록 기득권을 유지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지방선거에서 기득권 정당들은 늘 이런 방향으로 선거 구도를 몰아 왔다.

그러나 중앙정치의 구도로만 선거 구도를 짜는 것이 왜 문제인지는 지금 호남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호남에서 MB정권 심판이라는 구호로 지방선거를 치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호남에서 장기적으로 일당지배를 하고 있는 민주당은 최소한 호남에서는 기득권 정치세력에 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호남의 상황에서 MB정권 심판이라는 프레임으로 지방선거를 치른다면, 그것은 민주당의 기득권 유지에 복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수도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MB정권 심판이라는 선거구도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 장기적인 정치 변화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그런 선거구도로 (과반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기초 지방선거에서까지 정권 심판 구호로만 선거를 치르는 것이 정치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기초 지방선거에서까지 정권 심판 구호로 선거를 치르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선거에 대해, 그리고 지역정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지역에서부터 정치가 제대로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이런 식의 접근법은 잘못된 것이다. 구체적인 변화가 필요한 생활공간에서의 정치까지 중앙정치에 매몰시킬 때, 풀뿌리 정치는 더욱 변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지역에 뿌리내린 풀뿌리 기득권 구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 심판 프레임에만 갇히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긍정적이고 장기적인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다. 장기적 전망이 없이 단기적인 대응에만 매몰된다면 늘 현실에 끌려 다니면서 대안에 대한 꿈은 꾸지 못하는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다. 그래서 단기적인 선거에만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정치 변화의 전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적인 정치 변화를 위해서는 지역에서부터 출발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렇게 고착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안은 지역 유권자들의 참여에 의해 지역에서부터 정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국가 차원의 기득권 연합과 지역 차원의 기득권 연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사회 전체의 민주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정치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지방선거를 지역의 시각에서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3. 낮은 투표율,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려면 일단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46%대에 그쳤다.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도 그 이전의 대통령 선거보다 하락하여 63%대에 그쳤다. 이런 투표율 수치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에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최장집 교수는 한국처럼 쉽게 투표장에 가서 투표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투표율이 최소 80%를 상회해야 정상적인 수치라고 보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대 투표율이 극히 낮다는 점이다. 2008년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에 20대의 평균 투표율은 30%를 밑돌았다([그림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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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8번의 투표를 하게 된다. 이 8번의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장에 나오는 유권자들이 얼마나 되는지가 선거의 가장 큰 변수다. 투표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기득권세력에게 유리하고, 조직된 표가 많고, 투표율이 높은 계층·연령대에서 지지율이 높은 한나라당에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방선거에서 투표율은 대도시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더 낮다. 따라서 야당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도권 선거의 경우에도 투표율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표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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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위해서는, 투표를 하지 않던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메시지를 말하는 주체와 메시지의 내용이 중요할 것이다. 즉 어떤 주체가 어떤 메시지를 유권자들과 나누는가가 중요하다. 

4. 연대·연합에 관하여

2010년 지방선거를 둘러싸고 연합, 연대의 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연대·연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연대·연합이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연대·연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문제점들과 평가 지점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정책연합에 기반한 연대·연합을 추진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정치공학적인 연대·연합이 되지 않으려면 지역민주화, 지방자치단체 혁신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선거임에도 중앙단위에서 전국적 연합 협상을 진행한 것은 바람직하지 못했다고 본다. 특히 전국적 연합 협상을 진행하면서 ‘반MB연합’으로 연합의 성격을 규정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흐른 것은, 앞서 언급한 지방선거의 두 가지 성격 중 지방선거 고유의 성격이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오히려 지역차원에서 연대나 연합을 모색한 사례들에서는 상대적으로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의미 있는 정책적 연대를 이루어내고 있다. 그리고 지역별 정치지형에 맞는 연대·연합을 통해 지방선거로서의 의미를 살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국단위 연대·연합 협상을 지나치게 부풀림으로써 유권자들에게 실망감을 크게 안겨 주고 많은 혼란이 발생하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연대·연합 논의를 위해서라도 평가와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편 연대·연합의 과정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연대·연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호남에서 진행된 기초의원 선거구 쪼개기(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갠 것)는 연대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면서 연대·연합을 추구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또한 전국적 연대·연합 협상이 결렬된 전후에 보여준 민주당의 공천 양상을 보아도 문제가 심각하다. 시민 공천 배심원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지역주민 수천 명이 서명을 받아 시민 공천 배심원제도를 요구한 전라북도 부안에서는 실시하지 않고, 현직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의 갈등이 있는 곳에서는 실시하는 등 무원칙한 양상을 보였다. 연대·연합 협상이 진행될 당시에는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 지역으로 분류했다가 최근 들어서 민주당 공천이 확정된 경기도 과천시에서는 한나라당 출신을 민주당 시장 후보로 공천하여 물의를 빚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들을 볼 때에도 앞으로 민주당과의 연합이나 연대, 협력을 논의하려면 민주당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자체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이상 협력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5. 지방선거를 둘러싼 여러 움직임들에 대한 중간평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여러 가지 움직임들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들 각각에 대해서는 선거가 끝난 이후에 심도 있는 평가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선거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과정에 대해 평가해 보는 것도 앞으로 남은 한 달 간의 선거를 위해서나 그 이후의 논의를 위해서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연합정치론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전국 단위의 협상에 대해서는 이미 간략하게 평가했으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지역차원에서 살펴보면, 첫째, 광역, 기초단위에서 제 정당과 시민사회 간에 다양한 연대·연합 시도가 있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대·연합에서 그 내용이나 범위는 지역의 정치지형을 감안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크게 보면 민주당을 포함한 연합을 추진하는 지역과, 민주당을 제외한 연합을 추진하는 지역으로 구분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 지역의 상황만 보더라도, 고양시처럼 민주당을 포함한 연합을 추진하는 지역과 군포시처럼 민주당을 제외한 야당들과 시민사회가 연합해서 시장 후보를 내는 지역이 병존한다. 또한 광역단체장을 포함한 포괄적인 연합을 추진하는 지역과 기초선거 중심으로 연합을 추진하는 지역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사실 민주당이 일당지배를 하다시피하고 있는 호남지역에서 민주당과 연합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수도권의 경우에도 민주당의 지역조직과 연대·연합을 논의할 수 있는 신뢰기반이 없거나, 민주당 지역조직(또는 지역 국회의원)의 성격상 정책적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지역의 경우에는 민주당을 제외한 연대·연합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한나라당이 워낙 압도적인 대구의 경우에는 민주당을 포함한 연대·연합이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만약 민주당을 제외한 연대·연합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한나라당, 민주당, 그 외 제정당 및 시민사회 연합의 3자 구도로 지방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서울의 경우에도 마포구, 노원구, 광진구 등지에서는 이런 식의 3자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지역의 판단도 존중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의미를 평가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고 혁신의 의지가 없다면, 그리고 지역에서는 민주당의 정체성이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잘 구분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정치 주체가 형성되어서라도 희망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중립성의 신화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과거의 공명선거 감시운동, 낙천·낙선운동을 넘어선 보다 적극적인 유권자운동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 차원에서의 ‘2010 유권자 희망연대’나 지역별로 만들어지고 있는 유권자운동 조직들이 일단 이러한 운동의 주체가 되고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이나 4대강 사업을 중심으로 유권자운동을 벌이는 움직임들도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보다 더 많은 유권자들이 참여하고, 보다 더 지역에 뿌리내린 모임과 조직들이 중심이 되는 유권자운동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벤트 중심의 활동을 어떻게 넘어설지가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유권자운동이 기계적 중립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면, 선거 국면에서 ‘좋은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문제일 것이다. 단순히 투표참여 캠페인이나 언론플레이 정도에 그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셋째, 풀뿌리운동 차원에서는 지역정치를 바꾸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국 14개 지역(강원도 속초시, 서울 관악구, 마포구, 노원구, 도봉구, 광진구, 경기도 군포시, 과천시, 충북 옥천, 광주 남구, 전남 나주, 대구, 충북 옥천, 경기 수원 등)에서 출마하는 ‘풀뿌리 좋은 후보’들은 ‘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라는 틀로 모여 있다. 그리고 이 후보들이 출마하는 지역에서는 지역별로 지역정치운동을 하기 위한 주체들이 만들어지고, 그 주체들이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을 밟는 경우들이 많다. 

경기도 군포시의 ‘군포 풀뿌리생활정치네트워크’, 강원도 속초의 ‘속초 진보사회시민연대’, 서울 마포구의 ‘마포 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 같은 예들이 그렇다. 그리고 이런 주체들이 다른 정당들과 선거 연대·연합을 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들이 선거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에 ‘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가 있었지만, 선거 이후에는 소멸되는 과정을 거쳤었다. 지역 차원에서 만들어졌던 선거 참여조직들(예를 들면 2002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결성되었던 ‘2002 고양 시민행동’)도 선거 이후에 지속된 예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도되고 있는 풀뿌리 좋은 후보 운동도 선거 이후에 지속되지 못한다면, 그 한계가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교육감 선거와 관련된 흐름이 전국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12개 시·도에서 이른바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가 출마하고 있다. 지난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보듯이 정당 공천이 배제되는 교육자치 선거에서는 정책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협력이나 연대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이처럼 12개 시·도에서 의미 있는 교육감 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교육감 선거에서는 반대가 중심이 아닌 미래에 대한 대안이 많이 얘기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경기도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무상급식, 혁신학교, 참여예산제도, 학생인권조례처럼 지향하는 비전과 가치를 담을 수 있는 핵심 공약들이 제시되고 쟁점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농어촌 지역의 경우에는 농어촌 공교육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활발하게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6.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제언

가. 지방선거까지의 단기적 과제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의 기간은 짧다. 막판에 광역 지방자치 단체장 후보단일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지역별로도 후보자들이 거의 정해졌다. 지금 상황에서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것 정도일 것이다. 이 부분은 정당이나 단체의 입장을 떠나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특히 언론들은 광역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 특히 수도권의 광역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에 보도의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교육감 선거가 많은 관심을 모을 것이다. 그러나 초점이 이렇게만 맞춰진다면 지방의원 선거나 기초지방자치 선거는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유권자들의 투표참여를 지지부진하게 만들 수 있다. 여덟 번의 투표를 해야 하는데 확실히 아는 것은 1~2개의 투표에 관한 것뿐이라면, 과연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올 것인가?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8번의 투표 모두에 참여할 이유’를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친환경 무상급식 외에도 생활에 밀착한 다양한 정책들이 선거공간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서울시장 선거뿐만 아니라 동네 구의원 선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가 많이 나올 필요가 있다. 국책사업으로서 4대강 사업 외에도 ‘우리 동네 4대강 사업’들에 대한 반대 이야기가 선거의 쟁점이 되고, 우리 지역 예산낭비를 막아서 그 돈을 보육·복지·교육에 쓰지는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될 필요가 있다. 

나. 장기적 과제

1) 정치 변화 위한 지속적인 유권자운동이 필요

앞으로도 연대?연합에 관한 얘기는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런데 연대?연합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연대?연합을 강제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힘이 없다면 그런 연대?연합은 현실성도 없고 지속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의 힘을 조직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시민운동, 노동운동을 하는 분들이 이런 조직화 작업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한편 조직화를 할 때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단체들끼리 모여서 연대조직 만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정치를 변화시킬 수 없다. 지금 시민운동, 사회운동을 상황을 보면 구성원들의 참여 부진, 활동 정체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체들 간의 연대로는 힘을 가질 수 없다. 조직 간의 연대로 적당히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개개인들이 자신의 몸과 시간을 내고, 스스로 유권자의 입장으로 몸을 낮춰서 접근할 때에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상상력이 필요하다. 단체의 기존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이 ‘내가 정치의 주체이고, 내가 정치를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기존에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고, 투표율이 낮은 20대, 30대들도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운동, 열린 조직이 필요하다. 중앙 집중적인 동원시스템이 아니라 각 주체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이 존중되는 네트워크 방식의 유권자운동, 풀뿌리정치운동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번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지역별로 지속가능한 ‘적극적 유권자운동 조직’들을 만들고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직들은 일정한 가치와 정책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되, 개인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 될 것이다. 지역에서 시민운동, 노동운동 하는 분들도 개인자격으로 가입해서 활동하는 식으로 하면 좋을 것이다. 정당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가치와 정책에 관한 합의를 할 수 있다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유권자운동 조직에서는 △지방자치단체 감시활동 및 우리 동네 국회의원 감시 활동, △대안학습 활동과 정책제안 활동, △각종 선거에 후보 발굴 또는 선출·지지 활동, △연대·연합 촉진 활동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이런 조직이 필요한 것은 선거 때에 일시적으로 하는 유권자운동으로는 지금의 정치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정당 활동을 하는 분들은 ‘정당에 가입하면 되지 왜 이런 조직이 필요하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정당들이 가진 한계를 생각하면 현 상황에서는 이런 조직이 꼭 필요하다. 2008년도 중앙선관위 자료에 의하면 민주당은 당비 내는 당원이 1.4%에 불과한 정당이다. 민주당의 혁신을 바라는 분이라면 이런 현실을 겸허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들도 그간의 활동에서 나타난 여러 한계들을 돌아본다면 이런 조직의 필요성을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정치를 변화시키고 싶으면 정당부터 가입하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한국 민주주의가 더 퇴보하는 것을 막고 개발지상주의와 시장지상주의, 극우적 사고로 무장한 기득권 연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부터 정치 변화를 추진하는 새로운 흐름들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개발지상주의와 시장지상주의, 그리고 극우적 사고가 끊임없이 유포되고 강고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 바로 지역이기 때문이다. 지역이 변하지 않고서는 한국 정치를 크게 변화시킬 방법이 없다. 

또한 연대·연합을 촉진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지속적인 유권자운동이 필요하다. 연대·연합을 정당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것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주체는 지역에서부터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대·연합의 정책적 내용이 선거를 앞두고 급조되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평소에 지역에서부터 대안적 비전에 관한 모색과 합의들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한편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하는 분들도 이런 흐름을 지역에서부터 만드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노동조합의 조합원들도 조합의 틀 내에 갇혀 있지 말고, 지역에서의 풀뿌리운동, 유권자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같이 노력하고 같이 모색해 나가는 것이 활로를 찾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 영남과 호남의 변화가 중요

한국 정치에서는 영남과 호남이 중요하다. 물론 가장 변화가 어렵고 상황이 열악한 지역이기는 하다. 그러나 영남과 호남에서도 특정 정당의 일당지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 왔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영남과 호남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난다면 국가 차원의 정치 변화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패권적 기득권 정당의 지지기반이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영·호남 내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일당지배 구조의 청산은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부패, 무능, 독선을 청산하고, 지역내부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남과 호남에서 새로운 정치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영남의 경우에는 한나라당이 아닌 민주주의와 지역정치 개혁을 추구하는 대안세력이 제 정당과 시민사회를 포괄하여 형성될 필요가 있다. 호남의 경우에도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대안적 비전을 가진 대안세력이 형성되어 민주당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3)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참여를 지지하자

지방선거 차원을 떠난 문제이지만,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참여 움직임을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대의 투표율이 낮다고 해서 20대를 탓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앞선 세대들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은 아동?청소년들과 20대 청년들이다. 앞으로 아동·청소년들의 참여를 보장위해서는 학생 인권조례 제정과 같은 지역차원에서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고, 투표연령 인하 운동도 필요할 것이다. 

당장에는 20대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필요하겠지만, 아동·청소년기에 참여가 배제된 상태에서 성장하고 늘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다보니, 20대 청년들의 목소리는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 ‘목소리를 내봐야 소용없다’는 경험으로 인해 정치적 무관심이 20살이 되기 전에 이미 내면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로 인해 20대 유권자의 4분의 3이 투표를 하지 않는다. 20대의 목소리를 대표할 수 있는 대표자도 없다. 국회, 지방의회에는 이미 기득권을 가진 세대들의 대표자들로 꽉 차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아동·청소년, 청년들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항상 가장 소외된 곳에서부터 새로운 변화의 흐름은 형성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을 바라는 앞선 세대는, 아동·청소년과 청년들의 주체적 참여가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지지할 필요가 있다. 세대 간의 연대를 통해 민주주의의 미래를 함께 개척해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시민운동, 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같이 고민하고 협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