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 씨 이야기

노동사회

광역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 씨 이야기

편집국 0 9,440 2013.05.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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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부터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로 드러내는 <특수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노동시장의 가장자리에서 노동자 정체성을 움켜쥐고자 하는 이들의 삶과 분투에 공감과 격려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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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덟시에서 여덟시 반 사이에 복장, 타이어 공기압과 오토바이 체인, 무전기와 PDA 배터리를 점검하고, 스탠바이 등록을 한 다음에 9시 전후로 일을 시작해요. 지역 퀵서비스 기사들은 사무실로 출근해서 배차를 받지만, 우리 같은 광역 퀵서비스 기사들은 무전기나 PDA로 직접 들어오는 오더(주문)들 중에서 주거지 근처에서 뜨는 걸 찍어가지고 바로 시작하는 거죠. 제가 1997년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3년은 지역 퀵서비스를 했고 그 다음 3년은 퀵 사무실을 잠깐 운영했어요. 광역 퀵은 햇수로 7년째네요. 

아무래도 경기도 외곽까지 도는 광역 퀵을 하려면 먼저 지역 퀵을 하면서 지리나 거래처를 익혀야 돼요. 눈썰미 있는 사람들은 한 6개월에서 1년쯤 하면 됩디다. 그런데 퀵에는 연공서열 개념이 없어요. 경력 오래됐다고 사무실에서 챙겨주고 그런 거 없고, 완전히 자기 할 나름이죠. 어쨌든 하루 일은 보통 저녁 7시쯤에 끝내는데 그렇게 하면 하루 매출이 15만 원 안팎, 한 달이면 350~400만 원쯤 돼요. 거기서 중계수수료 23~25%, 점심값하고 기름값, 오토바이에 들어가는 돈 이것저것 떼고 반쯤을 집으로 가져간다고 보면 됩니다. 좁은 지역에서 정해진 거래처 왔다 갔다 하는 지역 퀵 기사들은 그만큼도 못 벌죠. 하루 매출이 대충 2만 원가량 차이가 날 거예요. 

매일매일이 월요일, 순간순간이 타이밍 

어제 첫 오더가 여의도에서 역삼동으로 가는 거였어요. 그거를 여의도에서 필동 가는 거랑 묶어서 강남으로 가져가서, 다시 역삼동에서 여의도, 서초동에서 충정로, 서초동에서 용산 가는 거를 받아서 한강을 넘었죠. 그렇게 와서 마포에서 용산, 종로에서 의정부 가는 거를 픽업해서 가져다주고, 의정부에서 인천 가는 거랑 의정부에서 필동 가는 걸 처리한 다음에 하루 일을 끝냈어요. 지역 퀵 기사들은 오더 하나 끝내면 사무실로 복귀해서 다음 자기 순번 돌아올 때까지 책도 보고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담소도 나누고 하는데, 광역 기사들은 도로 자체가 근무지이고 사무실이니까 대기 시간에도 혼자라 할 게 별로 없어요. 

어떤 기사들은 눈이나 비가 오면 피시방 가서 게임도 하고 그런다는데, 저는 그런 데도 취미가 없어서……. 경기도 외곽으로 가면 다시 서울 오는 오더가 뜰 때까지 몇 시간을 공원 같은 데서 대기하기도 해요. 예전에 PDA 없이 무전기만 갖고 다닐 때는 그런 시간에 책도 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언제 오더가 뜰지 모르니까 PDA만 쳐다보고 있죠. 무전기 오더는 소리로 확인하는 건데 PDA 오더는 눈으로 확인해야 하고 순식간에 지나가니까. 그렇게 PDA를 보고 있다 보면 한 시간 정도는 금방 가요. 

퀵 서비스라는 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거라서, 일의 리듬이란 게 거의 다람쥐 쳇바퀴라고 봐야 돼요. 보통 샐러리맨들은 일주일에 며칠 힘들게 일하면 하루는 좀 여유 있게 보내고 그런 게 되는데, 우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매일이 월요일이야. 별 특수하지도 않은데 특수고용노동자라고 해놔서 하루라도 육체의 품을 안 팔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드는 거니까요. 일요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해요. 우리나라가 OECD 선진국이 돼서 주5일제를 한다는데 우리한테는 정말 안 맞는 거예요. 

jhlee_01.jpg일요일에도 무전기나 PDA를 켜놔요. 딴 일 하다가도 신경이 거기로 자꾸 가는 거죠. 괜찮은 오더가 나와서 찍으면 곧바로 옷 갈아입고 출발해요. 광역 퀵 기사들은 상당수가 그래요. 지난 일요일에는 김포공항에서 사람 태우고 오는 10만 원짜리 오더를 찍었어요. 모르긴 몰라도 한 50명은 거기 달려들었을 거예요. 그걸 제가 잡은 거죠. 예전에 퀵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무전으로 배차를 해준 경험도 있고 해서 제가 무전 타이밍 잡는 감각이 좋거든요. 

이 일을 잘하려면 노하우나 눈썰미도 많이 필요해요. 당장 내일이 빼빼로데이(11월11일)인데, 그렇게 이벤트가 많은 날은 우리 일도 많아져요. 작년 빼빼로데이 때는 아다리(일감 예측)가 잘 맞았는데, 이벤트 한다고 애인한테 선물을 전해달라면서, 아저씨 이거 꼭 교실에서 사람들 다 볼 때 전해주세요, 하고 단가를 평균보다 높게 주는 오더를 여러 개 잡았죠. 그렇게 하루하루 상황에 대비해서 오늘은 어디를 중심으로 어떻게 일하자 그런 전략을 미리 짜야 해요. 대입 수시전형 있는 날은 터미널에서 시험에 늦은 학생들을 태우자 그런 식으로. 그래서 저는 PDA로 주요뉴스랑 날씨 소식을 매일 두 번씩 받아 봐요. 증권 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민감한 것처럼 우리도 그런 게 중요해요. 

날씨에 따라서도 일하는 게 달라져요. 이를 테면 비나 눈이 오는 날은 외곽으로 멀리 가는 거를 안 하고 단타 위주로 여러 개 해요. 또 단타 중에서도 운전이 복잡한 길 말고 직선으로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를 중심으로 하는 거죠.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일하러 나오는 기사들이 평소보다 적어서, 일을 하는 기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벌이가 좋기도 하고요.

법제도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형성되는 ‘직업의식’

퀵서비스 기사 벌이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식구들을 부양할 수 있는 기초가 어느 정도 됐으니까 여태까지 버틴 거죠. 안 된다면 저도 진작 그만 뒀겠죠. 그리고 1년차, 2년차 지나면서는 나름대로 퀵서비스가 우리나라 물류의 한 축이다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가 수출?수입품 컨테이너를 직접 나르는 것은 아니지만 B/L(선하증권)은 퀵서비스가 주로 운송하잖아요. 퀵서비스는 물류의 모세혈관이다, 모세혈관이 막히면 중풍에 걸린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워낙에 이 직업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다보니까, 저를 포함해서 다들 직업의식이랄까 그런 게 점점 희박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이 일을 할 때는 하루 10만 원, 15만 원쯤 벌어오면 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어요.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물가는 오르는데 퀵서비스 단가나 기사들 수입은 별로 변화가 없어요. 퀵서비스 노동자들이 아무런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서 뭐든 혼자서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도 여전하고요.    

정말로 퀵서비스 노동자들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어요. 요즘 제가 느끼는 직업 만족도를 따지면 0점입니다. 집에 돌아갈 때마다 그만 둘 생각을 해요. 10년 전에 비해서 물가는 잔뜩 올랐는데, 정부가 제대로 규제를 안 해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서비스 단가가 별로 안 올랐고, 때문에 기사들의 수입도 거의 늘지 않았어요. 애들이 자라면서 돈이 들어갈 데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데요. 아침마다 고등학생 큰 아들 놈한테는 얼마 줘야 하고, 중학생 작은 아들 놈에게는 얼마 줘야 하는지 생각하느라 골치가 아프죠. 

요즘에는 일 끝내고 한잔하는 술도 기분 좋게 마시질 못해요. 예전에는 그날 일 끝나면 많이 번 기사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쏘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다 더치페이에요. 서로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아니까. 그리고 이 사람들이 술자리에서는 같이 웃고 떠들어도 필드에 나가면 서로 적(敵)이야. 내가 이 오더를 찍으면 다른 사람이 그 시간 동안 쉴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정해진 오더 양을 두고 서로 따내려고 경쟁하는 사이니까요. 그래서 단가가 큰 거를 잡으면 기쁘기도 하지만 어쩔 때는 죄의식도 들어요. 예전에는 경쟁의식이랄까, 편협한 생각 때문에 동료가 하루 매출액을 못 채웠는데도 나만 채우면 빨리 들어가자고 얄밉게 독촉한 적도 있었죠.

jhlee_02.jpg퀵서비스 기사들은 법적으로 누가 보호해주질 안잖아요. 노동자라면 노동법적 보호를 적용해줘야 하고, 자영업자라면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게 해줘야 하는데, 헛갈리게 특수고용노동자니 뭐니 해서 둘 다 안 해주잖아요. 이건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퀵서비스가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단추를 잘못 꿴 게 커요. 특히, 그 때 자격 제도 같은 걸 정비를 잘 해놨으면 지금처럼 무등록 신생업체가 난립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신생업체들의 한 70프로는 기사로 뛰어본 사람들이 차리는 건데 아는 놈이 더 무섭죠.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기사들의 처지를 잘 아니까 그걸 더 악용해요. 일단 마구잡이로 기사들을 모집한 다음에 덤핑 단가나 쿠폰 비용으로 쥐어짜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잘라버리는 거죠. 

그리고 퀵서비스 기사들은 뭐든 자기가 책임져야 돼요. 사고가 나도 업체들은 빠지고 기사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고, 다치면 그 때부터 그냥 실업자가 되는 거고요. 보험도 종합보험이 아니라 책임보험밖에 못 들어요. 그 보험료가 삼성화재에서 1년에 68만 원가량인데, 일반 차량 종합보험보다 비싼 거죠. 또 솔직한 말로 하루에 10번 이상 신호 위반하지 않는 퀵 기사들이 거의 없어요. 걸리면 벌금이 다 자기한테 돌아오지만 하루벌이를 맞추려면 어쩔 수가 없는 거죠. 이렇게 벌이도 시원찮고 제도가 부실하니 퀵 기사들은 유동성이 커요. 한 달에 두 번 이상 업체를 옮겨 다니는 기사들이 허다해요. 하루 동안에 오전엔 A업체에서 일하다가 때려치우고, 오후엔 B업체로 옮겨서 일하고 그런 경우도 있죠.

여름에 은행에서 에어컨바람 쐬면서 잠깐 쉬다가 이상하게 바라보는 눈초리를 느꼈다든지, 퀵서비스 기사라는 이유만으로 강남 한복판에서 반말 찍찍 갈겨대는 불쾌한 불심검문을 당한다든지 하는 자존심 상하는 경험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남한테 해코지 안 하고 정직하게 내 몸뚱이로 품을 팔아서 가정을 꾸려왔기 때문에 이 일에 후회는 없어요. 그리고 지난 10여년 퀵서비스 기사를 하면서 수술에 필요한 혈액이나 중요한 약을 날라서 누군가의 생명에 도움이 됐거나, B/L이나 대입원서를 마감시간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접수해줬던 건 드물고 단편적이긴 하지만 참 보람 있는 경험들이었습니다.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일할 수 있기 위하여

우리는 노동자예요. 물건을 픽업하러 가면 콜한 데서 기사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사무실에 앉아서 직원들 지시·감독하는 게 사장이지 무슨 사장이 박스 나르고 그럽니까. 저한테 사장님 소리를 하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해요. 전 일단 물건을 픽업하게 되면, 그걸 전달하는 걸 완료할 때가진 제가 그 업체의 ‘임시 직원’이라고 생각해요. 직원인 나를 믿고서 그 물건을 맡겼다,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해야 책임감도 생기고 그러죠. 기사 개인에게 그렇게 책임감이나 직업의식을 심어주려면 법제도적인 보호와 집단적인 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가 어느 정도 권리를 책임져주고, 동료들이 경쟁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지지해줘야 한다는 거죠.

제가 지금 노동조합 위원장인데, 우리 조합원이 교통사고가 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가 봐요. 제가 보험사에서 보험금 받아내는 건 하도 많이 해봐서 이제 거의 브로커 수준이거든요. 노동조합 조끼 입고 가서, 10원짜리 한 장까지 최대한 받아낼 수 있는 데까지 받아내요. 법이 보호해주지 않는 마당에 노동조합이라도 최대한 그런 걸 해줘야죠. 어떻게 보면 내 식구들이고, 한 달에 돈 만원 조합비 내는 사람들인데, 그런 것도 커버 못해주면 노동조합이 필요 없어요. 그런 노동조합은 죽은 노동조합이죠.

우리 노동조합은 3년 전에 몇몇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친목모임 비슷하게 시작했어요. 저는 참여하면서 조합원은 해도 절대 감투는 안 쓰겠다고 다짐했었데, 어쩌다보니 지금 위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노조 하면서 어려운 일도 당하고 조합원들에게 뒤통수를 맞는 경우도 있었지만, 정말 많이 배웠고 덕분에 제 소갈머리도 커졌어요. 어쨌거나 요즘도 이 조직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 정말 고민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나온 생각이 조합원 지주회사예요. 우리 조합원들이 주축이 돼서 사납금도 딴 데보다 적게 하고 보험이나 안전장치를 충분히 보장해주는, 기사들이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모범업체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뭐, 아직은 먼 이야기입니다만, 믿을 수 있고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는 퀵서비스회사, 만들어지면 많이 이용해주십쇼. 그러고 지금도 거 퀵 서비스 이용할 때, 기사들 단물 빨아먹는 거니까 쿠폰 같은 거는 받지 마시고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