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칼바람을 거스르며, 아이들의 눈망울을 되새기며

노동사회

광기의 칼바람을 거스르며, 아이들의 눈망울을 되새기며

편집국 0 3,283 2013.05.29 11:51

다시 봄이 오고 있습니다. 탐스런 햇살은 겨우내 얼었던 땅을 녹이고 숨 죽였던 나무의 가지마다 푸른 숨결을 살려냅니다. 이 생명의 손길은 더없이 평등합니다. 이 땅의 어느 구석, 울타리 밑이거나 바위틈이거나, 가진 자의 발밑이거나 없는 자의 가녀린 그림자 속이거나, 차별하지 않고 골고루 쓰다듬고 어루만져 생명의 향연을 펼쳐 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렇게 ‘더불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으로 맞이하는 봄은, 아직 거친 바람으로 난만한 햇살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2년 내내 세상을 쓸고, 급기야 이 땅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까지 후벼 파 깊디깊은 상처를 남긴 몹쓸 바람이, 그 겨울을 지나오느라 갈라지고 터진 사람들의 손등을 할퀴어 여전히 뼛속까지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상인데, 왜 이렇듯 다른 것일까요.

jhjung_01.jpg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일까요?

교육은 교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입니다. 교사들은 다만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 학교,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입니다. 성적 경쟁을 통한 차별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지원입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들의 차별로 이어지게 해서는 ‘교육’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더욱 경쟁 만능을 내세우는 정부 교육정책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교사들의 생각이고 전교조의 주장입니다.

또한, 학교 안에서 배우는 민주주의와 학교 담장 밖의 세상은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용산 철거민의 자녀들도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입니다.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자녀들도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입니다. 최저임금 몇 십 원 더 올리기 위해 머리를 깎아야 하는 비정규 노동자 어머니들의 자녀들도 모두 우리의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르치는 교사이기에 앞서 인간의 양심으로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제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의 아픔을 느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정부의 정책을 전환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가 되었습니다. 사무실 압수수색에, 무려 5년간의 개인 계좌 입출금 내역 조사에, 휴대전화 위치추적까지 하며 정당한 국민의 권리를 ‘정치활동’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정당 관련 수사로 옭죄었습니다. 시국선언 재판은 무죄를 선고하는데, 스스로 고발해놓고 그것을 근거로 징계하여 조합원들을 학교에서 내쫓았습니다. 공무원보수규정을 개정해서 조합비 자동이체를 막았습니다.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일까요? 이 땅의  민주주의는 아직 더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한 것일까요? 온통 깜깜한 어둠, 차가운 바람뿐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아직 단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버릴 수 없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기에, 피와 땀과 눈물로 다듬고 가꾸어 온 참교육의 열정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져 오기에, 전교조는 오늘의 이 아픔, 저 칼바람이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오직 두려운 것이 있다면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뿐입니다. 

지난해 말, 전교조 조합원들은 겨울방학을 불과 10여일 남겨두고 조합비 자동이체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조합원 이탈이 20%에 이를 것이라느니 30%에 이를 것이라느니, 보수규정 개정의 뒤편에서 들리는 교육과학기술부의 호언이 있었으나 우리는 그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엎어버리고, 불과 10일 사이에 93%의 조합원 동의서를 조직했습니다. 3월과 4월 조직화 마무리를 끝내면 100%를 넘기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아직 단단합니다.

역사의 강물은 끝내 앞으로 나아갑니다

교사 시국선언에 대한 탄압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첫째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가장 앞장서 반대하는 전교조를 찍어 눌러 국민들과의 거리를 벌려 놓으려는 술수입니다. 그래서 오는 6월의 지방자치선거에서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피해보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은 이미 국민들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국민들에 의해 반드시 엄정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의 편에서 지역 주민 자녀의 초·중등 교육을 책임질 ‘올바른 교육감’, ‘좋은 교육감’의 선출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둘째, 전교조의 활동을 정치활동으로 포장하여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를 민주노조운동의 구심, 민주노총에서 배재시키기 위한 음모입니다. 하지만 이런 음모는 시대와 역사를 거스르려는 자들의 무지요, 광기입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때로 한 자리에 머물러 주춤거리기도 하지만, 끝내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흘러간 강물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고작해야 물 몇 동이 다시 퍼 올려 청계천 콘크리트 수로 위로 흐르게 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오는 3월 27일은, 전교조 초대 위원장이셨던 고 윤영규 선생님의 4주기 추모행사가 광주 망월동 국립 5·18 묘역에서 치러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영령들 앞에서, 작은 차이들일랑 서로의 체온으로 녹여버리고, 가슴에서 불타는 투지와 열정으로, 이 어려움, 이 추위 따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도록, 전교조 7만 조합원의 마음을 담아 머리 숙여 절하며 또 한 번 우리의 결의를 새롭게 다질 것입니다. 

전교조는 승리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