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상반기 평가와 하반기 과제

노동사회

민주노총 상반기 평가와 하반기 과제

admin 0 3,690 2013.05.0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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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1년 8월 14일(화) 
곳: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참가자: 배기남 서울지역본부 사무처장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임영국 화학섬유연맹 정책국장
정일부 금속산업노조 정책국장
정종승 사무금융노련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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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반기 평가 

투쟁 기조 문제
 

정일부 금속산업연맹 중집에서 상반기 평가에 관한 토론을 하였습니다. 상반기 구조조정이 강행되고 대우자동차 폭력진압이 일어나고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밀어 부치는 상황에서 '정권퇴진'이라는 슬로건이 자연스러웠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치밀한 계획이 병행되지 못한 점은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금속노조는 총연맹이 자본에 대한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한 점에 대한 지적이 많았습니다.

yoon_02.jpg정종승 매해 그랬듯이, 상반기도 격렬한 투쟁의 연속이었어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 그렇고, 비정규직 투쟁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대정부 투쟁이 거셌습니다. 8월 2일 명동성당 농성을 마무리하는 회견문에서 상반기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의 요구를 사회 쟁점으로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런 평가는 작년도에도 평가될 수 있는 당연한 지적일 수 있어요. 평가는 기준이 중요한데, 우리 요구가 어느 정도 달성이 되었는지, 조직력과 현장동력이 어느 정도 결집되고 강화되었는지, 사회정치적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는지의 측면에서 보면 속시원한 상반기가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임영국 우리 연맹은 지금도 투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집에서 평가가 있었는데, '정권 퇴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어요.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에서도 선거로 집행부가 늦게 꾸려지는 등 준비 과정이 짧긴 했지만, 현장 목소리와 단위노조 실정을 파악하려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임원 순회간담회만으로는 각 연맹의 주요 현안과 고민 등을 충실히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연맹과 단위노조의 목소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과정이 배치되어야 해요. 투쟁 전략을 짤 때 당면 과제와 장기 목표를 구분하고, 현재 주체 역량과 조건을 고려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주호 민주노총은 노동조합 조직이며, 따라서 노동조합의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민주노총은 1월에 선거였고, 2월에 집행부 인선이 있었습니다. 사실 연맹이나 단위노조는 이 때 기조를 잡고, 요구안을 확정해 투쟁 준비에 들어가는데, 민주노총의 상반기 투쟁은 어수선한 가운데 늦게 시작된 측면이 있습니다. 평가에 있어 이런 한계를 먼저 인정해야합니다. 평가의 쟁점들을 보면 '정권 퇴진' 투쟁 평가는 올해 새롭게 제기되는 것이고, 그밖에 임단투 시기 민주노총의 역할 정립 문제, 임단투와 정치투쟁의 결합, 총파업 여부 등 상반기 임단투 기조문제, 민주노총 내부 논의구조와 결정방식의 문제 등은 최근 몇 년간 되풀이되는 쟁점입니다. 이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노총도 나름의 원칙과 방향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퇴진'과 관련해서는 슬로건으로 외칠 수는 있지만, 주요 목표나 전략 과제로 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배기남 서울본부는 2년 전부터 비정규직을 조직하면서 일정한 성과를 냈고, 이를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 투쟁에 적극 임하려 했지만, 원하는 만큼 부각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중심 과제로 삼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는 믿음은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투쟁을 조망할 때 기업별 노조 체제가 구조화된 문제를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상황을 되짚어 보면, IMF 이전에는 임금인상에 집중해오다가 지금은 고용안정, 구조조정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고, 노정 관계에서 민주노총 중앙은 여전히 정상적인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노총은 동원 중심의 투쟁을 할 수밖에 없고, 공권력과 정면 충돌하면서 '정권 퇴진'을 내건 상황으로 갔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정권 퇴진'을 걸었을 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구조조정 당한 사업장은 분노가 비등한 상황이고, 그렇다고 혁명을 하자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슬로건이냐 진짜 나서는 거냐의 성격 규정을 놓고 불필요한 논쟁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종승 노동조합이 투쟁을 할 때 '정권 퇴진'을 제기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무금융연맹의 경우 올해만 해도 비정규직을 포함해 1만 명이 잘리고, 많은 조합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정권에 대한 분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퇴진을 외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전에 충분한 공유와 세밀한 계획이 있어야 하고, 사후에는 어떻게 추진하며 사회세력을 어떻게 규합할 건지가 분명했어야 하는데, 상반기에는 다소 분노감이 앞서 결정된 측면이 큽니다. 

민주노총은 1월 대의원대회에서는 반(反)김대중 기조를 제기했고 3월의 1차 중앙위원회에서는 '정권 퇴진'이 중심 슬로건이었는데, 3월의 2차 중앙위에서는 '정권 퇴진'이 투쟁 목표로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조 하에서 6월과 7월에는 '조직의 명운'을 건 투쟁을 전개한다고 하면서, 7월 13일 대의원대회 때는 집행부가 상반기 기조로 하반기에도 간다고 선언했다가 8월 2일 명동성당 농성을 정리하면서는 '정권 퇴진' 이야기는 없고, 하반기 정세를 열기 위해 자진 출두한다는 말만 있어요. 이런 사태 전개에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정일부 저 역시 '정권 퇴진' 투쟁이 퇴진 자체를 목표로 했다면 우리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요구이기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퇴진'을 중요한 슬로건으로 제시하고 그렇게 싸움을 몰아가려고 했던 노력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맹과 총연맹의 역할 문제 

yoon_03.jpg정일부 연맹별 임단투와 민주노총 총력투쟁의 관계는 어떤 회의단위에서 원칙을 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상황은 구조조정 투쟁이나 정치투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정치투쟁을 할 수 있는 동력은 그다지 손에 잡히지 않는 현실에서 총연맹이 연맹별 임단투 동력을 갖고서 구조조정 투쟁이나 정치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현실이라 봅니다. 그리고 올 상반기 임단투 때 경총의 김영배 전무가 TV에 나와서 '금속노조가 6·12에 일제히 총파업에 들어간단다. 이게 정치투쟁이 아니고 뭐냐'고 말했는데, 사용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상황은 이미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이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임단투와 정치투쟁의 동력은 조직의 발전수준과 전선의 성격이 맞물리면서 발전해나가는 문제라고 봅니다. 이것은 우선 임단협 중심의 기업별 의식과 투쟁을 넘어설 수 있는 산별노조 체제와 대사용자 투쟁전선을 강화해나가는 가운데 풀어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주호 상반기 민주노총이 산별교섭쟁취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유관 산별연맹을 묶어 대응하려 했던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또한 최저임금 싸움도 적절하게 전개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민주노총과 산별연맹의 관계가 이런 구체적인 이슈를 갖고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은 한편으론 연맹 차원의 주요 이슈를 받아서 한데 묶어 엄호하고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총연맹 차원의 정책을 개발하고 정부와 사용자를 대상으로 교섭하고 투쟁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임영국 총연맹이 계획을 만들 때, 단위노조나 산별연맹의 처지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구조조정 등 투쟁 성격에 따라 총연맹의 역할을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상반기 연맹의 쟁점이었던 화섬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도 그 내용과 문제를 파악하고 사회에 알리고 구조조정의 문제점과 올바른 방향에 대해 쟁점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게 총연맹 차원에서 제대로 공유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가졌습니다. 

배기남 매년 투쟁을 거쳐오면서 민주노총 중앙을 뒷받침할 만한 노조, 개인, 조직이 있는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사실 상반기 투쟁은 기업별노조의 임투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었고, 전국적인 전선을 칠 수 있도록 투쟁하는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 해 투쟁은 폼 나게 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지리멸렬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주노총 중앙의 투쟁을 중심으로 할건지 연맹별 임단투를 중심으로 할건지에 관한 논쟁이 있지만, 기업별 노조 체계가 유지되는 한 우리 투쟁이 임금인상 투쟁이나 고용안정 투쟁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어요. 사실 중앙 투쟁은 전체 투쟁 분위기를 조정하는 성격 이상을 갖기가 힘든 상황이고요. 이런 한계와 구조를 인정한 가운데 제대로 되었는가를 평가해야 종합적인 상을 잡을 수가 있을 겁니다. 

의사결정과 전술 문제 

이주호 민주노총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 문제를 짚어보고 싶습니다. 6·12 투쟁이나 7·5 투쟁에서도 드러났지만, 막상 총파업을 결정했지만 실제 들어가는 조직은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이런 식의 결정이 반복되고 있어요. 민주노총의 의사결정 구조나 토론 문화가 크게 개선되어야 합니다. '민주노총 회의에 가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니, 실제 대부분의 조직은 파업에 들어갈 수 없는데, 일부 조직이 앞장선다고 하니 그냥 파업을 결정하게 되고, 결국 하자는 데는 파업 안하고 가만있는 데도 파업 안하는 상황이 벌어져 결국 결정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정종승 '책임 있게 결정하고, 결정한 건 반드시 집행하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중앙위원회나 대의원대회는 현장 조합원의 의견을 중앙에 정확하게 반영하고 중앙의 고민을 현장에 전달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참가자들의 책임의식과 자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앙의 리더십과 조정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어요. 

배기남 의사결정 구조가 분절되어 있는 구조적인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내리꽂기 식 사업 방식이 문제제기 된 것은 오래 전부터였습니다. 상황은 급하게 돌아가고, 투쟁은 해야되고, 공유는 늦고, 이게 분절적인 조직 구조의 한계인지, 노하우나 운영 기술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처장단 회의에 참여해 보면, 자기조직의 역량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고, 다른 조직의 상황에 대해 그런 대로 이해하는 조건에서 투쟁기조가 정리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무처장들이 돌아가서 논의된 내용을 제대로 공유하는 지 궁금해요. 

정일부 의사결정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지도부와 산하조직간에 분명한 간극이 있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합니다. 
정종승 투쟁전술이 너무 집회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반기 우리 연맹과 민주노총 집회 개최 수를 대략 살펴보니 50번이 넘더라고요. 이렇게 집회가 관성적이 되다 보니까 나오는 조직만 나오고, 집회가 현장의 다양한 요구를 받아 안는 장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집회조직도 집중적으로 되지 못하고, 집회에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안나가도 되는구나라며 관성에 빠지기도 합니다.현장 동력을 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주호 집회 자주 나온다고 그 노조의 조직력이 튼튼하고 좋은 간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집회만 나오고 현장은 챙기지 않는 간부도 있어요. 일상활동은 꼼꼼히 안하고 집회만 나오는 거죠. 

yoon_04.jpg임영국 우리 연맹도 마찬가집니다. 집회 등으로 바쁘지만, 정책 등 대안 마련에는 소홀한 게 현실입니다. 연속된 집회 때문에 연맹의 중장기 전략을 고민할 여유도 없고요. 겉보기 위주로만 가는 사업 관행을 빨리 고쳐야 합니다. 이 문제는 총연맹도 예외는 아니며, 총연맹의 전략적 역할 정립이 시급합니다. 

이주호 투쟁에 대한 평가만 있고, 교육사업이나 조직사업, 정책사업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습니다. 각급 단위의 활동을 종합한 평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민주노총이 산하 조직에 제안한 평가 틀을 보면, 집회와 파업이 주를 이룹니다. 교육 사업이 어떻게 되었는지, 조직 사업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요. 평가가 투쟁이나 쟁점에만 치우쳐 있고, 노동조합운동 전반에 관해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임영국 공감합니다. 평가의 초점이 집회 위주의 투쟁과 쟁점에 맞춰지다보니 잘한 거보다는 못한 게 많은 상반기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교육이나 조직 사업과 관련해서는 연맹별로 나름의 성과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비정규직 문제 

배기남 상반기 투쟁의 쟁점을 살펴보면 여전히 구조조정 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비정규직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됐고, 정규직화냐 차별철폐냐를 둘러싸고 인식의 차이도 있었습니다. 당장 기본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보호를 위해 교육비나 의료비를 무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어떤 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울대병원의 경우 퇴직금 누진제를 둘러싸고 투쟁이 있었습니다. 국민연금제도가 완벽하지 못한 조건에서 무조건 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기업 차원의 퇴직금 문제는 국민연금과 직결되어 있는데, 총연맹이나 산별 차원에서 그 대안이 제대로 제시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임영국 정규직노조가 비정규노동자의 정규직화나 근로조건 개선 등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노조활동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연맹의 신호제지노조 같은 경우는 비정규직 문제로 간담회도 하고 교육도 하는 등 노력을 많이 기울여,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조와 좋은 관계 속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통합 등 앞으로의 관계도 논의하고 있고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연하고 폭넓은 태도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노조가 임단투 끝나면 일상활동이 없는데, 비정규직 문제에서 신호제지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비정규직은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습니다. 산별연맹이나 총연맹에서 비정규직 실태에 대한 조사 사업을 펼쳐야 합니다. 

정종승 우리 연맹의 경우 IMF 이후 비정규직이 해마다 배로 확대되었습니다. 사실 총연맹이나 산별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중점 사업으로 거론된 지 오래지만, 실제 사업은 잘 안되고 있습니다. 임영국 국장이 지적했듯, 산별에서는 조사사업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총연맹 역시 기본 방향을 확실하게 잡지 못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키로 비정규직 사업의 첫 단추는 정규직의 각성이고, 정규직에 대한 교육 훈련인 것 같습니다. 

yoon_05.jpg배기남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 결합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돈이라도 많이 내어야 한다고 봅니다. 조직사업은 어차피 연맹이나 지역 차원에서 활동가조직을 키워서 전개해야 될 듯 싶고요. 한국통신의 경우, 정규직 노조가 제대로 끌어안고 투쟁했으면 구조조정의 최대수치인 7천명까지는 해고되지 않았을 겁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건들면 골치 아픈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냥 놔두는 사업장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을 구조조정의 '완충지대'로 여기는 경향이 여전히 많아요. 

정일부 금속노조가 만들어진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산별노조가 만들어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고, 기본 틀을 갖추어 나가는 출발이라고 봅니다. 지금 소속 사업장들에서 비정규직과 관련해서 여러 형태가 나타나고 있어요. 규약개정을 통한 조합원 인정,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단협 쟁취, 별도 노조 결성 지원 등으로 말이죠. 하지만, 아직 소수에 불과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꾸준한 교육선전이 첩경인 것 같고요. 지금 노조가 불법고발센터 사업에 역점을 두려 하는데, 민주노총과 잘 협의해서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

2. 하반기 과제

노사정 교섭 문제
 

정일부 우리나라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노자간에 합의할 수 있는 틀은 기업 내부 밖에 없어요. 노사정 합의란 사회적·산별적 토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게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산별노조 건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 노사정협의 틀은 여전히 통제 수준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리고 노자관계의 기반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 노정 관계라는 것은 '한탕주의'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건 지도부의 조급성에서 파생된 문제라고 보고요. 노사정 협의가 순간순간 전술적으로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현재 안정적으로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 봅니다.

yoon_06.jpg정종승 노사정 교섭 틀이 제대로 되려면, 합의 내용의 이행이 반드시 담보되어야 합니다. 또 조직 내부로도 교섭 결과를 정리하고 받아 안을 능력이 있어야 하고요. 물론 산별노조나 노동자정당이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쉽지 않은 문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사정위원회는 아니더라도 협상 틀이 없고서는 장외 투쟁만 전개하는 상황으로 다시 몰리게 됩니다. 하반기에도 교섭 문제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배기남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볼 때, 교섭 파트너로 인정받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기업이나 정부나 반(反)노조 정서가 강합니다. 노조가 교섭 파트너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니까 투쟁으로 경도되는 겁니다. 올 하반기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계속 진행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 등 노사정협의 틀에 참여하자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정일부 동감입니다. 정부와 자본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계속 밀고 나갈 거고, 노동은 당연히 여기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사정 관계가 서 있습니다. 때문에 노사정 교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전술적으로는 사안이나 시기에 따라 교섭이 이뤄질 수는 있을 테지만,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교섭이 투쟁보다 우위에 서기는 힘들 겁니다. 

이주호 이론적인 측면에서 노사정 협의가 외국과 견줄 때 시기상조라는 분석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유럽의 경로를 그대로 밟지는 않을 것이고 우리 나름의 처지와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교섭할 때 투쟁동력이 더 올라오면서 조합원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런 고조된 분위기에서 힘이 있으면 더 미는 거고, 힘이 없으면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고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것은 현장은 물론 산별이나 전국 수준에서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산별이나 총연맹이라고 더 거창한 뭐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투쟁이상으로 교섭구조에 대한 구체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하반기 3대 쟁점
 
이주호 하반기에 쟁점이 될 노동시간 단축, 공무원 노조, 비정규직 등 3대 과제 모두 정부가 던진 이슈가 되었습니다. 정부는 이걸 밀고 나가면 다음 대선에서 표가 될 거로 보고 있어요. 하여튼 이 요구들은 싸운 만큼 성과가 오는 거라 봅니다. 하지만, 협상 문제는 현실적으로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어요. 우리가 힘이 있어 100% 따면 간단한데, 사실 협상에 나서게 되면 뭔가 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그렇다고 노사정 협상을 그냥 놔두면 올해 초 한국노총이 전임자 임금지급을 유지하면서 복수노조를 연기시킨 것과 같은 결과가 올 수도 있고요. 결국 3대 요구와 관련한 노사정 협상에서 요지는 '어디서 타협할 거냐'지만, 이걸 이끌 지도력이 없습니다. 사실 세 가지 모두 민주노총이 사회 쟁점으로 만든 요구인데, 민주노총이 어정쩡한 조건 속에서 원칙적인 입장만 견지하고 있을 때 정부가 주도하는 형국이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주어진 3대 쟁점말고도 산별교섭과 경영참여 제도 확립 등의 쟁점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사관계 제도의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정종승 저는 교섭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당초 일체의 대화를 하지 않고 우리 원래 요구대로 가겠다고 한다면, 노사정 협의 같은 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3대 과제는 노사정을 비롯해서 여야당정 4자간에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교섭이라는 것이 하다가 안되면 결렬도 있고, 테이블을 뛰쳐나갈 수도 있고, 다시 교섭하거나 아니면 투쟁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교섭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유연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노사정위원회가 아니라면, 이를 뛰어넘는 틀을 제안하고 교섭에 나설 수도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상반기보다는 훨씬 응집력 있게 대응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배기남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투쟁과 타협'을 병행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습니다. 타협으로 갈 때는 1998년 2월과 같은 사태가 재발되어서는 안될 겁니다. 노동시간 단축, 공무원 노조, 비정규직 보호, 이 세 가지만 거론된다면 협상의 여지가 많을 텐데, 정부는 이걸 구조조정과 근로기준법 개악으로 연결시키려 하기 때문에 낙관적이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정일부 하반기에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환상이지요. 7월 말에 정부는 내년 선거를 의식해서 노동시간단축이나 공무원노조 문제를 꺼냈는데, 그 이면에는 근기법 등 노동법 개악을 시도하려는 노림수가 숨어 있습니다. 지난 번 모성보호법처럼, 정부는 교묘하게 주고받기를 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위해 노동법개악을 추진해갈 것입니다. 내년은 선거니까 정부가 강하게 공세를 취하지 못할 거고, 올 하반기에 구조조정을 밀어 부칠 겁니다. 물론 우리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노동법개악을 막기 위해 민주노총 하반기 총력투쟁을 교육 선전할 것을 지금부터 계획하고 있고, 조직화를 위해 준비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정종승 상반기와 하반기에는 차이점이 있다고 봅니다. 상반기가 밀리는 상황이었다면, 하반기는 상반기에 비해서는 공세적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는 것 같아요. 3대 과제, 특히 노동시간 단축은 현장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는 부분이고, 국민들의 이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쟁점이 상반기보다 훨씬 명료해졌다고 볼 수 있어요. 따라서 지금 시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현장 동력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과 토론을 활성화하고, 전술을 유연하게 구사하는 가운데 정부와 자본의 움직임에 주도면밀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임영국 노동시간 단축은 일반 조합원들이 관심 있는 문제지만, 조합원들이 우리 안대로 얼마나 쟁취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일정한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와 자본은 근로조건 저하를 전제로 한 안을 이미 기정 사실로 만들어서 밀고 나가는데 노동조합은 투쟁도 교섭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있고요. 

이주호 3대 핵심 과제는 그 자체로 보면, 총파업을 해서라도 쟁취할 것들이예요. 민주노총이 이른바 '양치기 소년'만 안되었다면, 3대 과제를 갖고 제대로 된 정치 파업을 조직하는 것도 가능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3대 요구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대단하고 투쟁 상대인 자본이나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아무도 3대 요구를 갖고 총파업을 하자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직력과 지도력이 약해져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60만 조합원이 함께 할 수 있는 단체행동과 사업을 준비하고, 3대 과제에 대한 조합원 교육과 현장 토론을 조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5'자를 세련되게 디자인한 깃발을 전체 조직이 회사, 집, 차량에 내걸어서 '주5일 근무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인다든지 하는 등의 캠페인도 벌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사무금융노련이 전개했듯이, 3대 요구사항을 내걸고 전국 시군구에서 동시 캠페인을 벌일 수도 있을 겁니다. 

배기남 교섭에 들어가게 되면, 조직적 긴장감은 확실히 생깁니다. 단위노조나 가맹조직들에서 뭐가 쟁점이고, 어떻게 이야기가 풀려 가는지 관심을 갖고 보게 되니까요. 저지를 위해서도 들어갈 필요는 있다고 봐요. 교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전에 의제 정리와 수위 조절이 중요한데 이것은 지도부가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여튼 교섭이든 투쟁이든 중요한 것은 하반기 중심 투쟁 동력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파업을 조직하기가 어렵습니다.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주도하는 가운데 노조가 끌려가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3. 노동운동 진단과 중장기 과제 

배기남 '기업별노조를 산별노조로 바꾸고, 임단투 위주의 노조활동을 극복하자'는 이야기가 90년대 초 노동운동 위기 논쟁을 할 때 나왔는데, 지금도 여전히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노동운동의 내용이 십 년 동안 크게 바뀐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아까도 제기했지만 그 뒷받침을 할 간부 및 활동가 층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안되면 우리 운동의 미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산별노조는 정치세력화와 같이 가는 겁니다. 정치세력화뿐만 아니라 통일투쟁 등도 기업별 노조체제 극복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 강화가 시급합니다. 진보정당이 잘 되기 위해서는 제도가 대단히 중요한데 이번 헌법재판소의 현행 비례대표제 위헌 판결은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1인 2표제 쟁취에 노조운동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10월 동대문을구 재선거에 사무금융노련이 어려운 결단을 해 장화식 후보를 냅니다. 97년 대선이나 작년 총선도 그렇고, 이번에도 비싼 수업료를 내는 셈인데요.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의 한계와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그 의미와 성과는 제대로 챙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세대는 나이 먹는 데 젊은 세대는 끊기는 문제도 지적되어야 하리라 봅니다. 

이주호 민주노총 조합원이 60만 명을 넘어섰고, 우리나라의 주요 세력에 꼽힐 정도로 힘이 커졌습니다. 이 거대 조직이 갖고 있는 자원과 역량이 제대로 쓰인다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노동조합하면 민주노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민주노동운동의 사회정치적 영향력이 커졌고, 국민적 인지도도 높아졌어요. 이런 점에서 우리 조직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해야 합니다. 과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하나는 앞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인 전환을 이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존의 기업별 틀을 뛰어넘어 산별노조 건설, 사회정치 세력화, 사회개혁투쟁 강화, 민족통일문제 해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와 우리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 주장은 강한데, 그 주장의 결과에 대해서 검증은 잘 안 되는 풍토입니다. 평가는 정치적이긴 한데 객관적이고 솔직하지 못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잣대를 우리 자신에게도 엄격히 들이대야 할 때입니다. 객관적 평가를 위해 설문조사, 조직 컨설팅, 여론조사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게죠.

임영국 모두가 비슷하겠지만, 현장 간부들을 교육할 때는 학습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내 자신은 학습이 안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노동조합도 연수 제도를 두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개별로 맡겨 놓으면 학습이 제대로 안 됩니다. 집단적으로 이 문제를 풀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활동가 그룹 양성의 중요성을 말했는데, 저는 우선 상급단체에서 일하는 간부들부터 제대로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상황으로는 버티기 힘듭니다. 

정종승 사업을 기획할 때 가장 겁나는 게 간부들이나 조합원들이 참석 안 하는 것입니다. 연맹 안에 산별추진위원회도 있고, 금융구조조정 모임도 있는데 사람들이 안 올까봐 걱정할 때가 많아요. 집회도 현안이 걸린 사업장에서는 자기들 문제니까 많이들 나오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사람들이 모이질 않습니다. 뭐가 문제인지, 조직하는 방식의 문제인지 직접 찾아가야 하는 것인지 이런 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민되더라고요. 올해 연맹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교육 제일주의'를 내세웠는데, 실제 잘 안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과 현장 간부들이 참여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정일부 지금까지 제기된 진단들에 대체로 동의하고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만 간단하게 덧붙이죠. 우선 조직·투쟁 측면에서 기업별노조 체제를 뛰어넘는 데 전력 투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의식·활동 측면에서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고민과 전망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금속노조 역시 대대적인 교육사업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현장 간부라면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의무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빠지면 매 사업보고에 명단을 공개해서 교육을 안 받으면 대의원이나 간부가 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앞서 지적되었듯이, 우리는 나이가 들고 젊은 세대는 끊기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젊은 세대를 배출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정종승 90년대 초만 해도 운동 전략과 사회 성격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전략 전술을 고민했습니다. 그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사회와 운동을 바라보려 했다는 점에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간부나 활동가들이 당면 사업이나 사안에만 매몰되고 있어요. 이런 점에서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 활동이 선거 이후 중단되고 있는데, 저는 이 활동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 특히 IMF 이후 한국 사회가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변화상을 세밀하게 점검하고, 그 속에서 운동 이념과 전략·전술을 마련하는 작업이 시급해요. 그리고 '운동권'이 너무 보수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현재의 활동 방식을 점검하고, 조직 내부를 개혁해야 하며, 발상을 전환하려는 노력을 구체적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