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서 쫓겨난 우리의 친구 미누

노동사회

한국 땅에서 쫓겨난 우리의 친구 미누

편집국 0 3,530 2013.05.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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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를 규탄하는 ‘이주노동자 문화활동가 미누의 석방을 위한 공동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모습. 그러나 미누 씨는 결국 강제 추방됐다.  ▷  참세상 ] 

지난 10월8일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10월12일부터 시작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집중 단속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미누 씨가 단속됐다는 말을 했다. 설마…… 믿기지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한두 달 전 미누 씨와 전화 통화하며 “이제는 미누 동지도 조심해야 해요. 이명박 정부 눈에는 미누 동지도 곱게 안보일 거예요.”라며 걱정스러운 안부를 전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표적’ 삼기 딱 좋은 이주노동자 활동가들

정부로서는 지난 해 5월 세 차례에 걸친 이주노조 간부들에 대한 ‘표적’ 단속이 일단락되면서 눈에 보이는 표적을 다시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 때부터는 좀 더 광범하게 활동가들에 대한 조사가 착수된 것 같다. 미누 씨 역시 이주노조 간부들처럼 치밀한 계획 하에 표적이 됐다. 사전에 그가 다니는 길, 집, 사무실 등을 확인했고 출근길을 노려 잠복하고 있다가 그를 붙잡았다. 

미누 씨에 대한 표적 단속을 마친 후,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내 “그저 불법체류자 단속 과정에서 적발했을 뿐”이라며 언제나처럼 표적 단속임을 부정했다. 그리고 미누 씨는 17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장기 ‘불법’ 체류했으며, “FTA반대 집회, 반전 집회, 단속반대 집회,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 등의 정치 활동을 한 것 역시 불법이라며 그의 추방은 정당하다고 법무부는 주장했다. 

정부는 앞에서 열거한 이런 정치 활동에 참가한 한국인들도 미누 씨처럼 추방하고 싶은 심정일 거다. 한국 시민권자들에게는 그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것이 분통터지는 일일 거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특히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은 이렇게 정부에게는 ‘표적’으로 삼기 딱 좋은 존재들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해낸 일도, 할 일도 많았던 미누 씨

정부의 말과 다르게 미누 씨는 오히려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었다. 2003년 말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될 때 미누 씨 역시 성공회 성당에서 단속에 반대하는 농성에 참여했다. 그 때 그와 함께 농성에 참가했던 몇몇 이주노동자들이 ‘스탑 크랙다운’ 밴드를 결성했다. 성공회 성당 농성장 천막에서 그가 부르던 노래를 아직도 기억한다. 어쩌면 이주노동자들의 심정을 저렇게 잘 표현했을까 싶었다. 그것도 유창한 한국어로 말이다. 그 때부터 그와 밴드의 멤버들은 농성이 끝난 후에도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모여서 연습을 하고, 앨범을 만들고, 이주노동자들이 모이는 곳 어디라면 달려가 공연을 했다. 

미누 씨는 욕심도 참 많았다. 기성 언론들이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해 주지 못하고 또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낼 언론 공간이 없다며,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방송을 만들고 모국어로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는 방송국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며 이주노동자 영화제를 시작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정말 한국에서 해낸 일이,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부가 말로만 떠드는 ‘다문화’를 앞장서서 보여 준 사람이 바로 미누 씨였다. 그에게 표창을 하고 그에게 배워도 부족할 정부가 오히려 그를 내쫓았다. 정부가 말하는 다문화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었다.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그저 한국인과 결혼한 이민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잘 동화시키는 것이 목적일 뿐인 정책이다. 미등록 체류자를 포함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 외국인의 다수지만, 이들은 언제든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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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0월20일 개최된 단속추방 중단과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 촉구 집회 모습  ▷  이주노조 ]

MB정부 아래 대폭 증가한 미등록이주자 추방과 불법단속 

미누 씨에 대한 표적 단속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이주노동자 집중 단속이 시작됐다. 사실, 이명박 정부 들어 집중 단속 때나 일상 단속 때나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단속이 심해졌다. 2008년 단속돼 추방된 사람들은 그 전 해에 비해 65퍼센트나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 해 8월까지와 동 시기를 비교하면 이미 그 수를 앞섰다. 그런데도 집중 단속을 하겠다고 하고, 실제 시작되자마자 벌써 여기저기서 심각한 소식들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 10월12일, 경남 함안의 한 공장에 단속반이 쳐들어가 무작위 단속을 하던 가운데 한 베트남 노동자가 30여 차례 얼굴을 가격당해 코뼈와 이빨 2개가 부러졌다. 그는 미등록 체류자도 아니었다. 7일에도 경남 김해에 있는 공장에서 단속반이 한 중국 이주노동자를 붙잡아 수갑을 채우고는 그가 넘어져 있는 상태에서 발로 밟았다. 최근 서울 동대문에서는 네팔 인이 운영하는 외국인 식당에 다짜고짜 들어와, 식당의 사장, 요리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신분증을 조사하고 손님 4명을 미등록 체류자라며 잡아갔다. 10월18일에는 단속반이 경기 남부 일대인 오산, 발안에서 100여 명을 닥치는 대로 잡아갔다. 

이렇게 열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런 단속은 모두 ‘불법’이지만 버젓이 일어난다. ‘법치’를 위해 ‘불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법무부의 입장이다. 지난 10월22일 국제엠네스티는 「한국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런 실태들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엠네스티는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일회용품’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그저 체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인 미등록 체류자들을 적법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이렇게 가혹하게 대우하는 정책을 비난했다. 

국내 일자리 보호? 외국인 범죄 척결? 속 보이는 거짓말!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런 비난을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는다. 이와 똑같은 비판이 지난 수 년 동안 제기돼 왔지만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오히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주자들을 제물로 삼으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경제 위기가 한창 심각하던 지난 해 연말부터는 내국인 일자리 보호라는 명분으로 중국 동포들에 대한 취업을 대폭 제한했고, ‘국내 일자리 보호’는 단속의 중요 명분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인 범죄’ 척결을 외치고 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외국인 조폭들이 횡행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청와대는 곧바로 ‘외국인범죄 합동수사본부’를 꾸렸다. 법무부, 검찰, 국정원, 노동부 등 7~8개 부처가 합동으로 전담반을 꾸린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그 의도가 매우 불순해 보인다. 「2009년 경찰 백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범죄 자체가 12.4퍼센트가 증가했고, 5대 강력 범죄도 1999년 이래 최대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구 100명당 한국인의 범죄율과 이주자들의 범죄율을 비교하면, 한국인의 범죄율이 여전히 더 높다. 전체 범죄 중 외국인 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65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전체적인 상황은 말하지 않고 외국인 범죄 증가 추세만 부각시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부는 이런 분위기를 연출해 이주노동자들,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들, 그리고 범죄 집단이라는 낙인을 찍어 앞서 언급한 불법적 단속을 정당화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내쫓는다고 일자리 문제가, 범죄 증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일자리 문제의 진정한 주범은 기업들과 정부다. 많은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종류의 일터에서 일하는 이주자들을 내쫓아 그 자리를 한국인으로 채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 양질의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 재원을 엉뚱한 곳에 쏟아 붓고 사회복지 예산을 확충하기는커녕 삭감만 하는 이 정부가 한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위선이다. 

이주노동자 ‘범죄’ 낙인… 전체 사회 억압 강화할 것

정부의 이주자 탄압 계획들이 저항을 받지 않고 그대로 추진된다면, 무엇보다 이주민들이 겪는 억압과 고통은 끔찍한 수준에 이를 것이다. 미등록 이주자들에 대한 단속은 미등록 체류와 취업 자체를 ‘범죄화’하는 정책이다. 이것과 외국인 범죄 수사 강화는 현실에서 구분되기 어렵다. 이미 한국에서 추방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입국을 위해 여권 이름을 바꾸어 입국하거나 위장 결혼을 통한 입국 등이 일명 ‘지능 범죄’로 처벌받는다.
 
체류 자격이 있는 이주자들의 처지도 함께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들 중 소위 ‘불법 체류자’ 가족, 친척 또는 친구를 두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광범한 이주자들이 정부의 감시와 수사 대상에 오를 것이고, 서구처럼 경찰의 부당한 이주자 학대 증가도 낳을 것이다. 

최근 법무부가 귀화신청자들의 신청을 불허하는 사례가 급증하는 것도 시사적이다. 귀화 신청은 합법적 체류 자격을 가진 사람만이 일정 요건을 갖추었을 때 할 수 있는 것인데, 최근 귀화 불허 건 수가 2년 만에 6배 증가했다. 최근 한국 국적을 회복한 아버지를 둔 중국 동포가 음주운전으로 벌금 1백만 원을 선고받은 기록 때문에 귀화가 거부됐고, 법원도 이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주자들에 대한 억압 강화는 일부 범죄자와 평범한 이주자들만 겨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흔히 정치, 경제 위기 때 통치 집단은 가장 취약한 집단을 마녀 사냥해 대중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는 통치 수법에 의존해 왔다. 즉, 이런 공격은 궁극적으로 전반적인 사회 통제 강화를 의도한 것이다. 지금 정부의 이런 부당한 탄압에 맞서 이주자들의 권리를 방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