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노동운동, 진단과 과제

노동사회

위기의 한국 노동운동, 진단과 과제

편집국 0 3,374 2013.05.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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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09년 9월22일 (화)요일 오후 1시30분 ~ 4시30분
장소: 서울 서대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참여자: 김유선(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김형기(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노중기(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최영기(경기개발연구원 석좌연구위원)
        이병훈(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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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최근 노동운동이 상당히 어려운데요. 다양한 입장에서 노동운동을 공부하는 분들이 모여서,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는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여기 참석자분들에게 어려운 걸음을 요청 드렸습니다. 어떻게 노동운동이 재활성화할 수 있을지 의견을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노동운동의 상태를 진단하고, 다음으로 그 상태의 원인을 점검한 후,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의 강화를 위한 과제를 제시하는 순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영기 원장님부터 말씀해주시죠.   

최영기: 지금 한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인식은 ‘87년 식 노동운동’, 그러니까 민주노조운동의 시대가 끝났다는 점입니다. 87년 이후 20년 동안 힘이 되어 왔던 가치와 목표, 운동 방식이 낙후된 것으로 되었다는 거죠. 87년 당시 대중투쟁에서 제기됐던 것들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면서,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과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는 겁니다. 기업에 묶여 있던 노동시장이 기업 울타리에서 벗어난 유연 노동시장으로 변했는데, 한국 노사관계와 노동조합은 아직 기업 울타리에 묶여 있습니다. 시장과 제도가 엇나가고 있는 거죠.

“민주노조운동의 시대가 마감했다”

노중기: 워낙 추상적인 주제라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최영기 원장님이 제기하신 문제를 받아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우선 저는 최근의 위기는 이전의 것들과 달리 전면적이고 구조적인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해체된 1987년 노동체제의 운동관행이 종속적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에서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위기의 한 측면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종속적 신자유주의 노동체제 자체가 제기하는 문제가 난제 중의 난제라는 점입니다. 즉 비정규직 문제로 대표되는 노동계급 내부의 양극화, 이질화를 넘어서서 새로운 질의 계급적 연대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위기 탈출의 전망을 얻기 어려운 것이 현재의 위기라는 인식입니다.

다음으로 87년 방식의 노동운동이 끝났다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는 동의하면서도 뭐가 끝났느냐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의견으로는 이른바 ‘87년 노동체제’라는 구조에 조응하는 노동운동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에 쓴 글에서는,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에는 죽일 것과 살릴 것이 있다고 표현했는데요. ‘죽일 것’이란 표현은 기업별 노조와 억압적인 국가 틀 내에서 형성된, 아주 전투적이고 국가와 대립하는, 민주성과 자주성을 강조하는 노동운동이 의미 있을 수 있는 조건이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요컨대 87년 체제의 일부이자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했던 민주노조운동이 현재 변화한 노동시장 등의 조건에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점검이 필요합니다만, 전투적 노조주의의 전통을 다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살려서 이어받아야 할 것도 많다는 거죠. 그 내용들을 여러 수준에서, 즉 가치 지향, 전략 노선, 전술 수단, 전략과 전술 사이에 검토할 수 있을 텐데 좀 더 구체적인 것은 이야기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sp_02.jpg김유선: 노동운동이라는 게 일직선으로 성장만 한다든지 쇠퇴하는 것은 아니고,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면서 기우뚱기우뚱 가는 것이죠. 그렇지만 요즈음엔 노동운동이 너무 오랫동안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 상황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영기 박사께서는 87년 노동운동이 추구했던 바가 대부분 실현되었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당시 노동운동이 정규직 노동자들만 잘 살자는 것도 아니었고 한데, 요즈음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까? 

위기의 핵심은 노조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라는 것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즉 기왕에 조직된 역량을 발판으로 해서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러나 새로운 변화의 주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기왕의 민주노조운동 주체들이 어떤 형태로든 변화된 모습으로 나서는 것, 저는 거기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활동 방식과 관련해서 과거와 같은 투쟁 일변도가 아니라 참여 전술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이번에 논란이 된 비정규직법 개정문제도 정부와 재계의 태도를 볼 때, 노동 측이 대화나 협조로 풀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어쨌거나 결국 현실문제로 가게 되면 국면에 따라 대화와 타협, 투쟁이 혼재되는 양상이 자연스레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정파다운 정파가 없는 것’이 문제

다음으로 정파 문제인데요. 이 문제는 노동운동 내부에도 상당부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저는 정파다운 정파가 없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과거처럼 이념이나 방향성을 중심으로 갈려 있다면 오히려 문제를 풀기가 쉬울 텐데, 그런 경향은 많이 희석되고 한 20년 흘러오는 과정에서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저 사람이 하는 것은 무조건 반대한다, 이 사람이 하는 것은 무조건 따라 간다는 식으로 꼬인 게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제대로 된 정파로 정립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병훈: 구체적인 입장이나 강조점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지만, 더 이상 노동운동이 진보운동의 주축 또는 대표로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 진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견이 모이는 것 같습니다. 최영기 원장님은 “한 시대가 마감됐다”는 표현으로 이를 지적하기도 하셨는데요. 이제 그러한 진단들과 대안 제시들 속에서 참여자들끼리 부딪치는 쟁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볼까 합니다. 

김형기: 논의에 활기를 더하기 위해서 제가 좀 논쟁적으로 문제제기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김유선 소장께서 지금 노동운동의 상태를 상승 하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의 위기, 즉 순환적 위기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안이한 판단이라고 봅니다. 최소한 구조적 위기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노중기 교수는 너무 구조 탓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운동 주체의 위기, 즉 가치, 목표, 실현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주체의 위기를 간과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건너서 봐도, 이건 정말 ‘패러다임의 위기’인 거예요. 감히 말한다면, 이대로 가다간 변혁적 노동운동이 망하지 않을까, 물론 대중조직이야 남겠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는 한국 진보운동 전체의 약화로 이어질 겁니다. 민주노총이 약해지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시민단체들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약화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면 논의에 초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와 정당성의 위기, 패러다임의 위기

다음으로 김유선 소장께서 비정규직 문제를 많이 언급하셨는데, 조금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왜 생겼습니까? 노동 측에서는 자본의 분할지배나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을 이야기할 테지만, 당장 정규직 노동시장이 경직돼서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이는 반론의 여지가 많은 주장이지만, 정규직 책임도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는 거예요. 한국 노동운동이 정규직 중심으로 굴러가면서 말이죠, 말로는 계급성을 전투적으로 외치지만 계급성의 진정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방안이 강구돼야 할 텐데, 노동운동의 리더들, 정파의 리더들이 연대를 만들고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저는 결국 리더십의 문제라고 봅니다. 노동운동 내에서 진보진영의 대통령 후보가 나올 정도로 리더가 양성되어야 하는데 지금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정치력을 키우는 것이고, 정치력이라는 것은 투쟁에 보다 많은 대중을 결집시킬 수 있는 힘일 텐데, 계급과 투쟁을 강퍅하게 외치기만 해서는 그런 힘이 길러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잘못된 운동노선 속에서 우리 노동운동이 약화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노동운동이 강화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는 우리 교수들부터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는 주장을 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소위 진보적 교수들이 모여 있다는 민교협도 마찬가지고, 저 자신도 피할 수 없는 문제고요. 

이병훈: 김유선 소장과 노중기 교수께서 받아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어느 분 의견부터 들을까요?

김유선: 현재의 위기를 순환적 위기로 진단하는 건 안이한 게 아니냐고 지적하셨는데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요즈음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위기라 할 만한 측면을 배제한 것은 아니고요. 다만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거다, 라는 희망 섞인 관측이 전제됐음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서 연대와 리더십까지 여러 가지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현재 노동운동의 가치와 이념을 고수하다가는 망한다,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판단 자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특정 노동운동의 모습을 전제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노동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에서 특정 부분만을 고려하신 게 아닌가 싶은데요. 김형기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현재 노동운동의 이념과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병훈: 김형기 교수께서 순환적 위기를 넘어서는 패러다임 위기를 지적하셨는데, 그 내용과 새로운 지향점을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형기: 제가 생각하는 패러다임 위기의 핵심은 ‘정당성의 위기’입니다. 87년부터 적어도 97년까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던 노동운동의 정당성이 이제는 불신을 받게 됐다는 겁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노동운동이 북한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민주노동운동이라면 북한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해야지요. 다음으로, 소위 엔엘과 피디를 넘어서는 노선이 필요합니다. 최근 사회민주주의가 제시되고 있는데요. 한국 사회와 경제는 어쨌든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까, 현실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 어렵다고 했을 때 실현 가능한 것은 사회민주주의 정도일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사회민주주의가 여러 경쟁하는 지향점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기존 엔엘과 피디의 긍정적인 측면은 계승하되, ‘선진국 형’으로 한 걸음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신을 결합하고, 지방분권과 사회운동의 문제의식을 결합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렇게 지역공동체에서부터 실현 가능한 것들을 해나가는 등의 패러다임 전환 노력을 기반으로, 대권까지 바라볼 수 있는 리더들을 키워내는 과정이 곧 노동운동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것이 한국에서 이른바 진보정부를 전망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그동안 ‘새로운 진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했는데요. 사실 이러한 노동운동의 변화 흐름을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중도 진보를 강화하자는 이야기인데, 제 생각에는 중도 진보가 강화되는 게 근본 진보의 공간이 더 크게 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중도 진보와 근본 진보를 대체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로 봐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중기적으로는 중도 진보 중심으로 가자, ‘제3의 길’ 정도에서 진보세력들이 합의를 만들어내고, 더 왼쪽으로 가는 길은 열어두자, 이런 방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유선: 제 생각에 민주노총 조합원들 다수 성향은 중도좌파 정도입니다. 김형기 선생님이 ‘제3의 길’을 말씀하셨는데, 거기까진 안 갈 거고 과거 유럽의 사민주의 모델 정도가 지향점이 될 듯싶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조합이라는 게 대중조직이기 때문에 조합원들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합니다. 내부에는 좌파나 극좌파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신자유주의자까지 존재하죠. 따라서 말씀하신 것처럼 북한에 대한 태도를 무 자르듯이 선명하게 결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이 굳이 자기 입장을 하나로 정리할 조건도 아니고 현실적 필요도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중기: 김형기 선생님 말씀이 전체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부분에선 차이가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문제의식은 동의합니다. 북한 문제 정리할 필요도 있고, 지도부나, 좀 전에 김유선 소장께서 제대로 된 정파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정파 수준에서는 이념적 지향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 저는 이것이 우리 노동운동의 질적 도약과 관계가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 민주노조운동은 70만을 포괄하는 총연맹과 20여 년의 투쟁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서구 선진국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 정도 경력이라면 이념과 지향의 문제는 노동자 정당에서 처리해야 합니다. 노조와 긴밀히 협력을 해서 하든 독자적으로 하든, 정당에서 이 문제를 끊임없이 자기의 문제로 환류해서 조합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거죠. 동의를 못 구하는 정당은 문 닫는 거고요.

기계적 노조-정당 관계의 질곡, 정치세력화 새 판 짜야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과정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이념적 지향 문제를 노조에서 고민하고 있고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관련해서 정당이 하는 것은 선거 때 표와 돈 달라는 것밖에 없었고, 입법 관련해서는 노조에서 요구하는 그대로 대변하는 수준이었죠. 굉장히 경제주의적인 관계고 기계적 분업 관계입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전략과 이념, 노선, 가치 같은 것들은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과거와 달리, 98년 이후 노동운동의 정치적 시민권 획득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당운동이 필요했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지난 10년간 진보적 대중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정치운동 실험은 그런 측면에서 중요한 한계를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한계의 표현이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김형기 선생님이 지적하신 문제에 대해 전체적으로 동의하면서, 이념과 노선에 관해서 노동조합운동도 고민해야겠지만, 일차적으로는 노동계급 정당이 가치와 이념 수준에서 노동계급의 재조직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게 안 됨으로 해서 운동에 질곡이 발생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이 안고 있는 배타적 지지의 문제나 북한에 대한 입장의 문제 때문에 이러한 작업이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떨어져 나온 것이 진보신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보신당의 실험이 생태, 평화, 인권 등 신사회운동과 포스트 모던한 문제의식을 자기 내부로 흡수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노동계급을 새롭게 조직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지켜봐야겠죠. 어쨌건 정치적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의 유기적 상호작용이 위기 극복에 관건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이 지향해야 할 정치적 스펙트럼이 무엇이냐를 묻는다면, 단칼에 말하기가 상당히 곤란합니다. 서구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해석들과 입장들을 살펴보면, 좌파적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핵심적으로 사민주의 노동 정치운동에서 온 거다, 라고 합니다. 노동운동의 의회주의 및 경제주의 매몰, 정당과 노동조합의 기계적 분업 즉 이른바 ‘양 날개론’, 그리고 조합원 대중과 호흡하지 않는 관료주의 등을 지적하는 것이죠. 물론 사민주의를 무엇으로 볼 거냐 하는 것 자체도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만, 어쨌든 이런 지적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민주의의 제도적 장치가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저항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목표를 거기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좀 더 열어두고, 사민주의 경험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다양한 입장과 목소리들을 경청하고 그 내용을 실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대안이 ‘징검다리로서 사민주의’ 아니겠느냐는 주장에 대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입니다. 좀 더 열어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병훈: 이제 최영기 선생님께 발언권을 넘기겠습니다. 

sp_03.jpg최영기: 저는 87년 이후 노동운동이 변혁적 정치운동, 변혁적 노동운동의 성격이 그리 강했나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외부에 드러나기로는 체제 도전적 성향이 있는 것 같지만 대중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이 추구했던 가치가 그러했는가를 실제 보면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레토릭과 실제가 괴리가 있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인식됐는가? 저는 지식인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고 봅니다. 실제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노동대중들이 이를 열망했던 것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동원에 참여한 대중들은 지식인들이 말하는 노동해방이나 통일세상을 열망한 것이 아니라, 억압적인 국가의 탄압에 대한 저항이나 노동법의 민주화와 공정분배, 작업장에서 민주적 노조활동 같은 것들을 원했다는 거죠. 서구의 계급운동과 우리의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개방적 시장경제’와 짝을 이루는 노동운동 요구돼

지금 시점에서 노동운동의 이념과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혁신해 나가기 위해서도, 좀 더 현실적인 개념화와 문제설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와 이념이 뭐냐는 거죠. 또한 사회과학적인 분류나 해석에 있어서의 사회주의, 사민주의 등의 변별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이념들을 ‘한국 식’으로 표현하면 무엇이다, 라고 대중적으로 명확하게 제시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지식인들이 서구의 이념으로 대중들을 교화시켜나가려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들으면, 어 그거야, 할 수 있는 게 필요합니다.
 
어쨌건 저는 지금 노동운동이 당면한 위기의 원인을 잘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위기는 87년 이후 20년의 운동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의 운동 목표가 대부분 충족됐는데도 노동운동이 97년 이후에도 ‘개방적인 시장경제’와 짝을 이루는 노동운동, 진보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억압적인 국가, 노동 탄압적인 자본가만을 강조하는 ‘87년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새롭게 제기되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노동시장적 문제를 끌어안을 수 있는 이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한 것이 한국 식으로 어떻게 표현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OECD 국가 노동운동의 모습에서 그 근사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OECD 국가에서 찾을 수 없는 노동운동과 국가 모델이라면 한국에서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봅니다.

김형기: 최영기 원장 말씀에 동의합니다. 물론 이념 지향적 운동, 정파적 운동이라는 게, 나름의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대중의 욕구와 맞물리느냐, 라는 부분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이 지점에서 우리 학자들이, 운동가들이, 그리고 진보적 인사들이 대중의 욕구와 이해가 뭔지 구체적으로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대중의 욕구와 이해에 기초해서 기존 운동의 이념과 비전을 재배치해야 만이, 그 욕구와 이해도 충족될 수 있을 뿐더러 대중의 움직임이 건전한 민주세력의 운동으로 승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요즘 나타나고 있는 제3노총이라든가, 소위 중도실용을 표방하는 흐름이라든가, 쌍용차를 비롯한 민주노총 탈퇴의 흐름 등을 제어하지 못할 텐데, 정말 위기의식을 갖고 이에 심각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굉장히 유연하게 나오면서 ‘중도실용’을 표방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게 레토릭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잘 대응하지 못한다면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이 여기에 포획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른바 ‘개방적 시장경제’에 기반한 대중들의 욕구의 집합에 어떻게 포괄적으로 대응을 하고, 또 여기서 부정적인 부분을 어떻게 교정할 것인가가 중요할 텐데, 말씀하신 것처럼 OECD 국가들의 다양한 사례들을 참고삼아 우리의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겁니다. 이게 정말 지금 필요한 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건 노중기 교수 말씀처럼 정당과 학계의 몫이겠죠.

김유선: 최영기 원장님과 비슷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87년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현장에서 이뤄진 것은 봄?여름에는 임금투쟁하고, 가을에는 노동법 개정투쟁하고, 정부에서 탄압 들어오면 거기에 대응하고, 이게 대부분이었단 말이에요. 사실 당시는 정권의 성격 때문에 임금투쟁만으로도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에 복무할 수 있었고,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활동가들의 레토릭상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가와는 별개로, 기업별 노사관계체제를 강제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어쨌든 이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민주노총 건설로 집중됐습니다. 저는 민주노총이 건설된 이후 ‘성공의 역설’이 전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임금투쟁만으로는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거죠. 그런 상황에서 97년 경제위기가 터지자 대중의 요구는 급속히 고용안정으로 옮겨갔는데, 이러한 요구는 기존의 사업장 단위 임금투쟁으로는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즉 기업을 넘어서는 초기업적 노사관계나 노동시장 제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인 거죠. 그런 상황 속에서 경제위기로 인해 주력사업장들이 힘들어지면서 노동운동이 요구하는 것과 실제 쟁취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나타났고, 그러면서 사회적 정당성을 더 상실하고 지금과 같은 상태로 온 것 아니냐,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sp_04.jpg노중기: 대중의 민감성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들 강조하셨고, 특히 최영기 원장님은 87년 당시 노동자들이 그렇게 변혁적이었느냐, 소박한 요구를 제기했다고 지적하셨는데요. 저도 상당 부분 타당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대중들이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에게 바라는 바는 그렇게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맞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중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은 대중의 눈높이에서 시작해야 할 테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설정할 때는 거기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거죠. 지도부는 대중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이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눈높이인가 구조적 보수 이데올로기 지형인가

한편으로, 그런 주장을 다른 각도에서 한 번 보죠. 87년에서 97년까지 노동조합의 요구는 그야말로 경제적인 것이었는데, 억압적인 노동체제의 특성으로 인해 참여자들의 의사와 크게 상관없이 정치투쟁으로 비화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좀 더 포괄적으로 얘기하자면, 어떤 판단을 할 때 한국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둘러싼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지형을 감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공무원노조가 정치투쟁을 하는 게 불법이다, 라는 주장이 대중적으로 쉽게 수용됩니다. 쌍용차가 고용문제 가지고 파업을 하는데 왜 ‘제3자 세력’인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가 폭력적으로 개입을 하느냐, 라는 정부의 선전에 대해 일부이겠으나 조합원들조차도 동의하는 것이, 현재도 우리 운동이 기반한 조건이라는 거죠. 

그런 현재 조건을 감안하면 최영기 원장님이 주장하신 개방적 시장경제하에서의 사민주의적 노동운동이라는 것의 현실적 실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물론 주장만 하면 괜찮은데, 실현하려고 하면 권력, 자본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사민주의적 노동운동을 국가가 존중한다면 당장 공무원노조 정치활동을 보장해야 하고, 비정규직법이나 언론법 개정과 관련해서 민주노총이 제도적 개입을 목표로 진행한 각종 파업의 합법성을 인정해야 하죠. 서구 사민주의 국가들에서는 다 주어져 있는 노동조합의 권리들이니까요.

말하자면 이러한 정치적 지형,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감안하지 않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그런 점 때문에 이념의 문제는 서구가 간 길을 따라가자고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지도부 혹은 인텔리 계층 활동가들의 움직임도 전체 운동의 일부라고 봐야 합니다. 운동 지도부의 역할과 지도력을 부인해선 안 됩니다. 이들의 활동 중 일부는 노동사회의 먼 미래를 제시하는 문제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긴요한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자본과 정부의 압박, 대중들의 의식수준에 국한해서 위기의 극복방안을 사고하는 것은 일면적 인식일 것입니다.     
   
이병훈: 지금 논의가 ‘대중적인 현실론’과 ‘목적의식적인 투쟁론’이라는 과거의 논의구도를 되풀이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이 구도에서 조금 벗어나기 위해서, 노동운동이 지향해야 할 구체적인 목표와 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최영기 원장님 먼저 말씀을 듣죠.   

최영기: 지난 20년 노동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것에부터 미래 노동운동의 전망이 도출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중기 교수와 근본적인 관점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87년 이후 노동운동을 성공한 노동운동으로 봅니다. 87년 이후 대중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것은 박정희 개발독재체의 몰락을 몰고 왔다는 점에서 정치적이었고, 이에 따라 노동운동이 박정희 체제에 대한 도전 세력이었다는 것이죠. 그들의 요구는 ‘선 성장 후 분배’의 철회를 향한 것이었지, 그것을 넘어서는 체제변혁을 지향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외부 쇼크’로 사업장 내에서 노동조합 끌어내기?

그런데 이것은 이미 끝난 게임인 것이죠. 그런데 아직까지도 87년 체제의 노동운동 프레임을 갖고 오늘의 고용문제?노동시장 위기를 대응하다 보니까 노동운동이 갈 길을 잃게 된 것입니다. 지금 노동자들의 요구는 과거와는 달리 고용안정이나 그야말로 새로운 의미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고 있는데, 기업에 갇힌 노동운동으로는 그러한 요구를 관철시킬 수가 없습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노동자들은 죽을 맛이고 할 얘기가 많은데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점차 신뢰를 잃어가고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위기인 겁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사업장 내에 갇혀 있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틀을 깨는 겁니다. 저는 사업장 내에 갇혀 있는 노동운동은 약화시키는 것이 차라리 노동운동이 좀 더 업종과 산업과 전국 단위의 목표를 지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길이라 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공기업과 대기업 노조가 사업장 내 담합구조를 스스로 깨뜨릴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외부의 쇼크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업장은 좀 더 참여적이고 협력적인 구조로 바뀌고 대신 노동운동은 사업장 밖에서 자기 역할을 좀 더 강화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sp_05.jpg김형기: 노중기 교수께서 정치지형의 보수성을 지적했는데, 저는 이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 것인가에 착목해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걸 돌파하는 문제는 정당운동, 시민운동, 노동운동이 모두 관련돼 있지요. 어쨌든 이 보수성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합니다. 과거와 같은 투쟁 일변도의 전략으로는 오히려 그러한 보수적 정치지형을 강화할 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형을 바꾸기 위해서는 진보가 입지를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일터에서의 작업장 문제와 삶터의 지역사회 문제를 결합하는 노동운동, 더 나아가 정당운동과 시민운동과 결합하는 노동운동이 필요합니다. 작업장 안에 갇혀 있는 노동운동, 모든 전투성을 작업장 안에서만 발휘하다가 가끔씩만 거리로 나서는 노동운동, 즉 ‘골목대장 같은 노동운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현 정부가 고도의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비해서 진보운동이 너무 정체되어야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진보운동 스스로가 바뀌어야 하고, 특히 대중의 역동성을 차단하는 정파운동의 폐해를 약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를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종합을 하자면, 앞으로의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이 진보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향한다는 거시적인 전망을 전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전제 아래서 일자리 문제, 사회 안전망의 문제, 삶의 질 문제 등 다양한 욕구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업 단위를 넘어서는 노동운동, 정당?사회운동과 결합된 노동운동의 상을 만들어가야죠. 사회 개혁적 노동운동이니 사회운동 노조주의니 하는 구체적인 방향은 이미 다 나와 있고 한 번씩은 논의된 것들이잖아요. 실제로 대중을 움직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진보의 입지를 어떻게 넓힐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 저는 노중기 교수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우리 대중의 수준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오히려 정파 지식인들, 엘리트들의 수준이 더 낮을 수 있어요. 이 지점을 봐야 하고, 대중이 처한 상황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인식할 필요가 있고,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노동운동 내에서 이를 공부하는 모임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은 훨씬 실리지향적인 보수적인 흐름으로 끌려 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진보운동 전체의 재정립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의 모색이 왕성하게 소통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라고 정리를 하겠습니다.

노중기: 민주노조운동의 대중이라 할 때, 한편에는 민주노총에 조합비 내는 조직 노동자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돈을 내지 않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소외되는 중소영세업체?비정규 노동자들이 있을 텐데요. 제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은 이러한 대중들의 요구를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상태를 좀 더 정확하게 반영해서 앞서 나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다음으로, 정파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정파문제 물론 심각하죠. 그 핵심은 김유선 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파다운 정파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파문제가 현재 민주노조운동이 맞고 있는 위기의 본령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잘못하면 그 주장 자체가 정파논리에 휘둘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정파논리는 상대 정파가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파가 권력을 잡더라도 문제가 나아지진 않죠.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으므로 정파문제가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이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정파문제는 없앨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순전히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고요. 그러므로 다만 좀 더 순기능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나 운동 양식측면에서 문제점들이 수정되고 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목표와 관련해서, 노동운동이 이제 일자리, 사회안전망, 복지 등의 다양한 욕구들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 동의합니다. 더 많은 문제를 다뤄야죠. 환경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할 테고, 올해 초 발생했던 민주노총 성폭력 문제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좀 더 근본적으로 대처해야 할 테고, 그밖에도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의제들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특히 ‘고용안정’과 관련해서 노동운동의 전략적 목표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은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노동운동의 과제는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건설이 되었습니다. 물론 88년 노동법 투쟁에서도 정치세력화, 산별노조 건설을 구호로서 외치긴 했지만 내용은 미미했습니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활동이 펼쳐진 것은 97년 경제위기 이후 고용안정이나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적인 난제로서 제기된 다음이죠. 지난 10년 동안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건설은 이 문제들을 풀기 위한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으로서 제기되고 실천된 것입니다. 계급적 연대의 확장, 심화가 그 본질이었습니다.

산별운동과 정치세력화 전략 목표로서 ‘정규-비정규 연대’

지난 10년간 이 전략들은 일정하게 진전을 보았습니다. 상당수 조직들이 산별로 조직전환을 했고, 어쨌든 국회에도 진보정당의 깃발을 꽂았고요. 그러나 그것은 조직 형식적 산별전환, 정치세력화에 머물렀습니다. 문제는 계급적 연대의 내용적 변화를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만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현재 위기의 본질이라 봅니다. 따라서 위기 극복을 위한 방향은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운동에 다시 한 번 앞으로 10년을 걸고, 기존의 경험을 대중적으로 반성하고, 전면적인 재조정을 해서 새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곧 계급적 연대의 확장은 여전히 우리 운동이 버릴 수 없는 전략적 목표라고 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과제를 대중들이 조직 형식적 수준에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 새로운 전략적 과제를 명확히 대중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 형식에 대응하는 내용으로서 ‘비정규?미조직 노동자와의 연대’를 새로운 전략적 목표로서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관해서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의 각종 사업의 중심에 비정규 미조직 연대를 놓아야 합니다. 산별노조 왜 만드느냐,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서 만든다, 정치세력화 왜 하느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법제도적 기반을 닦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 세 가지 전략적 목표들 사이 관계를 명확히 재정립해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이병훈: 공통적으로 사업장에 갇힌 노동운동의 틀을 깨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모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당장 실천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들이 있을지 참여자 분들에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형기: 산별노조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산별로 갔을 때 비정규직 문제를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노동운동 주체들의 문화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분할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 생각에 계급의식의 핵심은 전투성이 아니라 연대성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한 교육활동과 문화활동이 있었는가, 특히 정파들을 중심으로 깊은 반성이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산별 만능론’ 역시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이라는 매우 중요한 축을 자칫 소외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세력화 문제도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고요. 그동안의 정치세력화 전략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는 대기업, 정규직에 갇혀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계급은 계급이 아닌 것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노동운동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학습과 문화 활동을 통해서, 자기 수양과 성찰을 통해서 진정한 연대가 가능해지는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전망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동운동 리더들이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투쟁이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비정치적인 문화적 접근이 강화되어야 연대도 가능하고 투쟁도 더 전국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탁닛한 스님의 책에서 본 구절인데 “꽃은 꽃이 아닌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비유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꽃이 흙과 바람과 비 등으로 구성돼는 것처럼, 계급 역시 소위 ‘계급성’이 아닌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계급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의 삶에서 비계급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성주의적 접근, 문화적 접근으로 가야만이 형식주의를 넘어서 연대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지는 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영기: 저는 왜 노동운동이 사업장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 의견으로는 우선 노동시장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97년 이전에는 완전고용에 가까워서 고용을 통해 소득과 생활이 안정되는 구조였다면, 97년 이후에는 그 조건이 깨졌죠. 그래서 사업장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과장해서 말하면, 빈곤이 바로 옆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0년 간 개별 노동자들도 체감할 정도로 노동시장이 유연화 되어서 고용이 생활안정을 지켜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노사관계와 노동조합도 거기에 맞춰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노동운동이 산별화도 하고 정치세력화도 했지만 노동자의 생활이 더 안정된 것은 없어요. 뭔가 다른 충격이 필요합니다.

sp_06.jpg두 가지 ‘기업별 노사관계 붕괴’ 시나리오

저는 두 가지 폭발 계기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먼저 하나는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만,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및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 등의 제도 변화를 통해 사업장에 웅크리고 있는 노동조합을 밖으로 내모는 방법입니다. 노동운동에게 생존의 위협을 가하는 것이죠. 또 하나의 길은, 노중기 선생님이 지속적으로 반대해 오신 것이기도 한데, 산별과 정치세력화의 중간단계로 사회적 협의 시스템을 갖추고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97년 이후 사회적 대화 체제 실험을 계속 해왔습니다. 이것이 교섭 틀이냐 협의 틀이냐는 것은 노동운동이 할 나름이죠. 

노사정위원회에 국한된 참여가 아니고, 지역과 업종과 정부 각 부처에서 형성돼 있는 참여기구들을 노동조합이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노동시장 정책기구와 복지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참여를 해야 정책수단과 권력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건 자신들의 권리이고 노동조합에게 보장된 길입니다. 단순히 ‘들러리’라고 할 것이 아니고, 능동적 참여를 통해서 제도적 자원을 확보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이 오히려 노중기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산별노조운동과 정치세력화운동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병훈: 최영기 원장 말씀에 대해서 노중기 교수님이 말씀하실 게 많을 것 같은데요.

노중기: 노사정 3자 기구 참여 관련해서는 제가 참여 일반에 관해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건 아니고요. 참여해야죠. 또 지금도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편성된 몇몇 위원회들을 빼고는 참여하고 있습니다. 참여하고 있지만, 최저임금위원회 사례에서나 노사정위원회에서 보다시피 민주노총의 참여가 그다지 큰 효과를 내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 실행에 정당성을 높여주는 반대급부, 부정적 효과가 따르게 됩니다. 제가 참여를 반대했을 때는 전략적으로 참여해서 안 되는 국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화를 전략적 목표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저는 반대합니다. 일반적으로 교육이나 관행, 조직 문화의 문제는 조직혁신이라는 범주로 묶이게 될 텐데요. 김형기 선생님께서 문화라는 이름으로 강조하신 다른 내용들은 정치세력화나 산별노조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는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세 가지 전략적 과제를 강화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여 문제 관련해서 다시 말씀드리면, 2004년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이 참여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후 여러 곡절이 있었습니다만, 3자 기구에 들어갔다가 나왔죠. 반대파가 흔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민주노총 조직과 지도부의 판단으로 3자 기구를 깨고 나왔습니다. 당시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노사정위원회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고, 또 비정규직법 논란 와중에는 국가기구인 인권위 권고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 등의 구체적인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만큼 노동 측에게 쉽지 않은 조건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 아래서라도 의미 있게 참여의 길이 열리면 들어가야죠. 미리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노사정위원회가 이미 들러리인 게 명확한 상황에서, 참여가 원칙이라며 조건 따지지 말고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는 거죠.    

김유선: 방금 노중기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관련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저는 노사정위원회는 민주노총이 전술 차원에서 들어갈 수도 있고 안 들어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경과를 돌아보면 들어갈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민주노총 내부에 커다란 진입장벽이 존재해서 조직의 운신의 폭을 좁혔던 것만은 분명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들의 노사정 3자 기구 참여 실태를 보면, 지방 노동위원회는 전부 참여하고, 지역 노사정위원회는 전부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고용정책심의위원회는 일부는 들어가고 일부는 들어가지 않고요. 또 나머지 위원회들도 거의 참여를 하지 않고 있는데요. 이런 측면에서 저는 지역 노동시장에 대한 개입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들을 스스로 놓치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3자 기구, 개입할 것인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또 노중기 교수께서 3자 기구 참여가 별 실효성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모두 참여하는 걸 보면 뭔가 긍정적 측면이 있기 때문일 테고요. 최저임금위원회에도, 물론 노동 측이 요구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2000년 이후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증가한 데는 민주노총의 참여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활용 가능한 공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만, 과연 이명박 정부에서 얼마나 실제 활용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다음으로, 산별노조가 이제 내용을 갖추기 위해 재구성돼야 할 시점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형식을 이만큼 갖춘 것만이라도 대단한 성공이고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노동조합이 98년만 해도 초기업 수준 노조 조합원이 5%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 지금은 50~60%가량으로 늘어났단 말이에요. 그런데 일본은 98년 10% 정도에서 지금도 여전히 10% 정도거든요. 그런 점에서 우리 운동이 아직은 역동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역동적이니까 형식이라도 바꿔낸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제는 형식을 넘어서 내용을 갖추는 게 필요한 시점이죠. 또 한편으로, 산별노조가 지역 중심이냐 업종 중심이냐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저는 지역이든, 직종이든, 산업이든, 일차적으로는 기존 기업별을 넘어서면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이고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영기 원장님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지금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 움직임이 있는데, 정부는 여기다가 배타적 교섭 대표제라는 뚜껑을 씌우려고 하고 있단 말이에요. 제 생각에 이는 비정규직 조직화나 산별교섭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벽이고, 기업 단위에서 초기업 단위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될 거로 보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영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부가 초기업단위로 노동운동이 재편되는 것, 즉 산별노조운동이나 정치세력화를 환영할 리가 결코 없잖아요. 또 사회적 대화라는 것도 합당하게 조건 갖춰 놓고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의제 갖고서 들어오라고 할 리도 없고요. 노조가 3자 기구에서 대화하기 어려운 걸 들고 와서 얘기하자고 제안하는 게 정부 방식이고, 또 노조는 그걸 알고도 여러 전략?전술적 고려 속에 선택하는 거고요. 

어쨌든 운동 방식에서 투쟁을 통한 돌파냐, 대화를 통한 타협이냐 하는 것도 지금 노동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노동운동 방식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굉장히 좋지 않은데요. 제도적 참여와 능동적 협력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는 방법들도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노동운동이 자꾸 거리에서 하는 것에만 익숙하게 지내다 보니까, 세밀한 운동기법들의 개발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고, 정부를 압박하고, 대자본 교섭력을 높이는 다양한 방식들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거죠. 호주노총(ACTU)의 사례를 보면, 보수당 하워드 정부 아래서 10년 넘게 핍박을 받다가 여론에 대한 호소를 강화하는 전술로 바꾸면서 국면을 전환시켰거든요. 

한국의 노동운동도 최대강령적인 요구를 하다가 반대했다는 명분만 세우고 아무 것도 못 얻는, 실속 없는 전투적 운동보다는 여론의 압력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하나씩하나씩 성취해나가는 운동방식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한국노총의 활동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노총은 최근 10년 동안 민주노총보다 대중투쟁에서는 열세에 있지만, 노동조합정치(union politics)를 통해 자기 권리를 쟁취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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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기: 투쟁 일변도의 운동 양식과 관련해서는 현장에서도 많은 비판이 있죠. 제가 볼 때 대중투쟁의 동력도 노무현 정부 후반 비정규직법 투쟁을 끝으로 잘 형성되지 않는 것 같아요. 노무현 정부 때는 그런 방식의 압박이 정책에 영향을 줄 거다, 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때는 그런 기대마저도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쌍용차 투쟁을 봐도 잘 드러났죠. 그런 측면에서 이러한 투쟁 방식의 한계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투적 투쟁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죠. 한편으로는 ‘고육지책’으로서 선택지가 없거나 향후 전망을 뚫기 위한 선택 가능한 몇 안 되는 방법이라는 측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투쟁을 통해 조직력의 유지와 동원력의 확보를 수행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그러한 대중투쟁에 전면적으로 의존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는 점은 명확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국민 여론을 동원하고, 투쟁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상적인 교육사업 등이 대폭 강화되어야 할 텐데요. 노조의 투쟁방식은 일상사업 전반과 연관해서 재조정되어야 하는 혁신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정당의 몫이 크다고 봅니다. 비타협적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받아 안아서 전 사회적 정치적 전선을 정당이 자기 책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노동조합운동이 이제 정치적 노동운동과 제대로 결합하여 진정한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새로 태어나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병훈: 굉장히 긴 시간 말씀을 나눴는데요. 그동안 나온 논의들을 한꺼번에 같이 정리해보는 뜻 깊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노동운동의 어려운 현재 상태에 대해서는 다들 이견이 없었던 것 같고요. 이념적인 지향이나, 목표와 과제 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지만, 다 풀어놓고 이야길 하다 보니 거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찰할 수 있는 풍부한 꺼리를 던져줬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목표와 대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점과, 실천 방식에 있어서 정책과 투쟁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등을 명확하게 짚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기존 노동운동의 관성과 타성을 깰 수 있는 돌파구가 속 시원하게 제시되지 못했다는 거죠. 이후에 기회가 된다면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실천의 계기를 만들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