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공무원노조’ 출범에 부쳐

노동사회

‘통합공무원노조’ 출범에 부쳐

편집국 0 3,372 2013.05.29 11:36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민공노),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 등 공무원노조 3조직이 통합과 함께 민주노총 가입을 결정했다. 3조직 통합은 높은 조직률에도 불구하고 파편화된 조직구조를 보여 왔던 공무원노동조합의 대표성을 높여, 공무원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노사관계의 형성과 구조화라는 시각에서 볼 때 공무원 노사관계는 법 시행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변화를 보여 왔다. 그 동안 권익대변 기구를 갖지 못했던 6급 이하 공무원들은 노동조합에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2009년 8월 현재 가입대상 약 29만 9천 명 중 215,537명이 가입하여 72.1%의 높은 조직률을 보이고 있다. 높은 조직률은 공무원노조의 사회적 영향력과 노동운동 내 위상을 고려할 때 고무적인 현상이다. 

‘제2의 도약’ 염원 담은 통합공무원노조의 출범 

하지만 복수노조 허용에 따라 전국 수준뿐 아니라 기관단위에서도 노조가 복수로 난립하여, 공무원 노동조합의 대표성은 상당히 취약한 상태다. 공무원노조는 전국 수준에서 전공노, 민공노,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무원노총) 등 주요 3개 조직 이외에도, 전국기능직공무원노동조합, 광역자치노동조합, 전국시·도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한국공무원노동조합 등이 병존하고 있다. 기관별로 보면 41개의 단위기관에서 97개의 노조가 복수로 존재하고 있다. 

공무원노조의 분화는 노조의 이념과 노선, 소속 조직과 직무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복수노조가 허용된 현행 제도하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국수준의 복수노조 난립은 필연적으로 기관별 노동조합들 간 경쟁구도를 형성하게 되며, 이는 장기적으로 공무원노동조합의 조직자원을 취약하게 하는 부정적인 요인이 될 개연성이 높다. 중앙교섭의 어려움과 기관단위 복수노동조합들 사이의 조직 갈등은 분산되고 파편화된 공무원노동조합의 조직구조에 따른 결과이다. 

분산된 조직구조의 한계를 인식한 공무원노조들은 공무원노조 ‘통합’ 사업에 착수했고, 마침내 그 결실은 ‘통합공무원노조’의 출범과 기능직공무원노조들의 통합으로 나타났다. 공무원노조의 통합은 분산되고 파편화된 공무원노조의 조직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오랜 숙제였으며, 공무원노조운동의 제2의 도약을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통합공무원노조의 조합원 수는 약 12만 명으로, 이는 전체 공무원 조직노동자의 약 56%를 차지하는 규모이다. 앞으로 통합공무원노조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남지역 공무원노조, 광역자치단체노조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약 13~14만 명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노조의 통합은 ‘작은 정부’에 기초한 공무원 감축, 중앙정부 주도의 행정구역 개편, 그리고 민영화 및 공공성 파괴에 맞서기 위한 자구책이며, 조직 대응을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통합공무원노조의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분산된 조직구조를 하나로 합하고 공무원 노사관계 발전의 디딤돌을 놓은 공무원노조에게, 사용자인 정부는 축하의 꽃다발을 전달하지 못 할망정 공무원노조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이성적인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격’을 떨어뜨리는 이명박 정부의 대응

통합공무원노조 출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비이성적일뿐 아니라 법적 정당성마저도 결여하고 있다. 아무리 MB정부가 친(親)기업과 반(反)노동의 철학을 갖고 있다 해도 헌법은 준수되어야 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부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개월 동안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었던 통합공무원노조를 둘러싼 몇 가지 쟁점을 검토해 보자. 

  [쟁점1] “통합은 합법이나 민주노총 가입은 불법이다.”

정부는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허용할 수 없으며 이를 금지하는 입법까지 준비 중이다. 정부가 공무원노조의 상급단체 가입 금지를 주장하는 것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것으로, 노동조합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투표 실시 전부터 갖가지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민주노총에 가입하면 민주노총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기라도 할 것처럼 공무원노조를 비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 공무원노조의 상급단체 가입을 금지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노조가 상급단체에 가입하여 민간부문 노동조합과 함께 할 것인지 아니면 공무원노총처럼 독자노조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할 주체는 ‘사용자’인 정부가 아니라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다. 통합공무원노조는 조합원 투표를 통해 노조 통합에 89.6%가, 민주노총 가입엔 68.4%가 찬성했다. 3개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은 공무원노조들 간 단결뿐 아니라 민간노조와의 연대를 강하게 요구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고 하는 공무원들이 왜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택했을까? 정부의 근본적 성찰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쟁점2] “공무원노조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정부는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금지의 불가피한 이유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꼽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노조가 정치적 중립을 파기하겠다고 주장한 바도 없거니와, 지금 당장 공무원의 ‘정당 가입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지도 않다. 논점은 정치적 중립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다. “정권의 공무원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겠다”는 내용의 신문광고를 냈다고, 시국집회에 참가했다고 공무원노조 간부 13명이 파면·해직되었다. 공무원노조의 주장은 노동조합으로서 당연한 요구이며 권리이다. 

존 에번스 경제개발협력기구 노동조합자문위원회(OECD - TUAC)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무원과 교사들도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것과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답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공무원은 정말 누구인가? 고위직공무원인가 아니면 결정권한 없는 노조 가입대상 6급 이하 하위직공무원들인가? 

  [쟁점3] “공무원노조의 ‘민중의례’는 징계 사항이다.” 

정부의 공무원노조 대응 중 압권이자 백미(白眉)는 ‘민중의례 금지’이다. 행정안전부는 공무원노조가 각종 행사 때 실시했던 민중의례를 금지토록 하는 공문을 각급 기관에 보내면서, 공무원이 민중가요를 부르고 민주열사를 기리는 묵념을 하는 등 투쟁의식을 고취하는 것은 공무원의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며, 민중의례를 하는 경우에는 관련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무원노조가 정부 행사 때 ‘국민의례’를 거부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공무원노조의 자체 행사 때 ‘민중의례’를 금지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교원들이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인 일본 국가(기미가요)와 국기(히노마루)에 대해 예를 표하지 않아 징계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정부가 노동조합 행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발상 자체가 신기하고도 놀랍다. 이제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의 ‘품위’ 때문에 노동가요를 부르지 못하고, 1인 시위도 못하고, 집회에 참여해서도 안 된다는 것 아닌가?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토론이라도 가능하다. 공무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품위에 걸맞지 않아 보이는 것 아닌가? 20년 전 정부는 전교조 설립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선생님이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현 정부의 노동관은 20년 전으로 후퇴했다. 차라리 솔직히 이야기하자. 공무원과 노동조합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공무원노조의 간판과 깃발을 내리고, 다시 10년 전 직장협의회로 돌아가라고……. 

이명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세계가 함께 성장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한층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격’이란 어떤 국가가 갖고 있는 품위를 의미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국격은 민주주의가 진척되고 경제적으로 성장한, 국민의 인권과 노동자의 노동권이 보장된 사회 아닌가? 2010년 G20 정상회의의 의장 국가가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 87호와 98호도 비준하지 않고 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국격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은 ‘국제 기준’을 주장하는 공무원노조인가 아니면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지나간 레퍼토리를 되뇌는 정부인가?  

  탄압을 뚫기 위하여, 국민과 함께 하기 위하여  

단기적으로 정부·여당의 공무원노조에 대한 파상공세는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전공노를 한 순간에 ‘불법(?)조직’으로 만들었으며, 선관위노조를 초토화시켜 90% 이상 조합원 탈퇴를 이끌어냈다. 한발 더 나아가 통합공무원노조의 출범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통합공무원노조 위원장 후보에 대한 중징계가 공개적으로 이야기된다. 

정부 입장은 분명해 보인다. 12월 출범 예정인 통합공무원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노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노조의 합법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다음 수순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노조 사무실을 폐쇄하고 전임자를 인정하지 않고, 이에 저항하는 공무원은 다시 징계하고 공직사회에서 추방하겠다는 계산된 시나리오다. 집권 초부터 현재까지 전국교직원노조에게 가해졌던 ‘사회적 이지메’를 기억한다면 앞으로 공무원노조에 다가올 탄압의 수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제 ‘공’은 공무원노조에게 돌아왔다. 공무원노조의 미래는 노동조합의 정체성 확립, 대국민 설득 구조 형성, 그리고 정책 의제 선점에 달려 있다. 통합공무원노조가 전공노 설립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일터와 지역과 국민 속에 얼마나 뿌리 내릴 수 있는가가 승리와 패배와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제 막 닻을 올린 통합공무원노조의 건투를 빌며, 공직사회 개혁과 사회 연대를 위한 공무원노조의 시대적 역할과 과제를 강조하고자 한다. 

국민과 조합원의 눈높이에 맞는 노조활동을 전개하자. 공무원노조는 좋든 싫든 국민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조직이다. 행정서비스의 소비자가 곧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소비자가 제3자인 민간 부문과는 달리, 공무원노조는 ‘국가 - 노조 - 국민’이라는 틀 속에서 노조의 활동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의 지지 없는 공무원노조는 바다 위의 ‘섬’과 같은 고립된 존재이며 필패로 가게 된다. 공무원노조는 이제까지 국민 위에 군림해온 국가부문의 비민주성을 타파하는 정부 내 조직으로 활동해야 한다. 행정조직의 민주화를 통하여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행정의 호응성을 높이고, ‘시민을 위한 행정’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노조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때 공무원노조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노조는 국가와 시민사회 중간에 위치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하여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고 시장의 역할이 강화되는 변화를 막고, 사적인 이해의 지배를 받는 시장 대신에 공공성의 지배를 받는 국가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공무원노조운동의 이념과 활동을 정립하여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