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모든 곳에 우리와 같은 그녀들이 있다!”

노동사회

“세계 모든 곳에 우리와 같은 그녀들이 있다!”

편집국 0 3,486 2013.05.29 11:34

*****************************************************************************************************
전국여성노조는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9월 13일~15일 ‘새로운 전망, 대안적 조직화 전략’을 주제로 기념 국제 워크숍을 개최했다. 일본, 남아공, 캐나다, 홍콩 니카라과 등 다양한 국가들의 사례를 2박3일의 공동생활 속에서 공유하는 과정에서, 한국 활동가로서 느낀 것들을 김지혜 경남지부장의 목소리로 듣는다. - 편집자  
*****************************************************************************************************


kmcw_01.jpg
[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열린 국제 워크숍에는 세계 각국에서 여성 친화적인 대안적 조직화를 모색하는 이들이 참여했다.  ▷  전국여성노동조합  ]

전국여성노동조합(이하 전여노조) 10주년 기념 대회가 막 시작될 즈음, 외국에서 온 내빈들이 자리를 메웠다. 전국여성노동조합 경남지부의 지부장직을 맡을 때보다 훨씬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전여노조 10주년 기념 국제 워크숍은 각국 참가자들의 인사와 각오, 그리고 기대를 발표하는 순서로부터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만국 공통어 ‘보디랭귀지’가 있다

처음으로 내가 주빈이 되어 참가하는 국제회의여서인지 약간 긴장되었다. 2박3일 일정을 주빈답게 잘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좀 더 진지하게 그리고 좀 더 재밌게 배우고 나누는 시간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검은 피부, 하얀 피부, 황색 피부…… 나는 인사 전부터 기대감 때문에 부풀어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홍콩, 중국, 니카라과, 벨기에, 멕시코, 호주, 홍콩, 일본…… 참가자들이 자기소개를 시작하자 자국어, 영어, 한국어 순으로 내 귀에까지 전달되었다. 처음에는 2중 통역 과정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고, 또 말이 필요 없는 만국의 공통어 ‘보디랭귀지’가 우리 안에서 통용되고 있었다.

전국여성노조 경남지부의 ‘학교회계직원 조직화 사례’가 첫 번째 발표였다. 전 경남지부장이었고 현재 전여노조의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명순 언니가 발표했다.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열심히 활동했던 것에 대한 보람도 있었지만,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고 인정해준다는 것이 고맙기도 했고 자랑스러워지기도 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국제회의에서 발표를 해보는 지라 준비가 약간 미흡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해가 힘든 부분을 파워포인트자료나 영상자료를 통해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전국여성노조 활동가들이 오랫동안 지역에서 투쟁하고 삶을 나누는 활동을 해왔지만, 그것을 자료로 만들고 홍보하고 보여주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탓일 거다. 

도쿄청년노조 사례, 끼니를 못 잇는 일본 젊은이들? 

개인적으로, 오래 전에 배운 일본어 실력을 발휘해 볼 기회라 생각하고 일본에서 온 활동가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잘 들리지도 않고 입도 안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본 ‘도쿄청년노동조합’의 사례를 들으면서 귀가 약간 뚫리기 시작했다. 이번 국제 워크숍에서의 또 한 가지 즐거움이었다. 내 일본어 실력을 약간 ‘업데이트’시킬 수 있었던 즐거운 기회!

도쿄청년노동조합의 사례발표를 들은 후 참가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의아한 점이 너무 많았다. 내가 아는 일본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자본주의적 병폐가 많긴 하지만, 적어도 “밥을 굶는 젊은이가 허다하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일본도 젊은이들에게 큰 시련의 시기인 것 같았다. 대한민국과 다르지 않았다. 책에서 본 일본 젊은이들은 많은 시간을 노동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길이 아니라 필요한 돈이 모일 때까지만 일하는 것, 즉, 가볍게 사는 길을 택한다고 했다. 그들을 ‘프리터족’(프리 아르바이트족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쿄청년노조 상근간부인 싱고 씨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 젊은이들에게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자살할 것인지 비정규직으로 노동할 것인지”였다.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4일에 80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강요받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비정규직이다. 연간단위 계약이 끝나는 12월31일에는 도쿄 거리에 노숙자가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곧바로 계약을 맺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돈이 없어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의 집까지 갈 차비도 없고 숙박을 해결하지도 못해 공원에서 노숙을 한다고 한다. 

이건 젊은 날의 객기도 아니고 선택도 아니다. 특히 금융위기의 여파로 대량해고가 발생한 2008년 말에는 그들을 위해 도쿄청년노조 등의 사회운동 세력들이 히비야 공원에 대규모 텐트촌을 만들어 노숙하는 그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도쿄청년노조는 주로 식사를 하면서 모임을 진행한다고 했다.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회원이나 젊은이들을 위해서다.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데 2달러 정도 드니까 크게 비싸지 않은데도 그런 게 필요하다고 한다. 싱고 씨는 최근에 삼일 동안이나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젊은 친구도 만났다고 했다. 그들에게 노동조합은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kmcw_02.jpg
[ 일본 도쿄청년노조 사례를 발표 중인 야마다 싱고 사무국장(사진 오른쪽)과 통역자  ▷  전국여성노동조합 ]

놀라운 헌신성 보여주는 니카라과 MEC의 전문 조직가들

많은 사례들 중 인구 550만의 작은 나라 니카라과의 사례는 전여노조 간부들에게도 참으로 큰 희망을 주었다. 전체 인구 중 200만이 여성인 니카라과의 MEC(Mar a Elena Cuadra; Movement of Working and Unemployed Women)는 7만 명의 회원을 가진 단체다. 

많은 나라들에서 대체로 비정부기구(NGO)가 좀 더 많은 사람을 조직하고 껴안기 위한 방법으로 여성 관련 노동조합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가 전국여성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싱쿨라 송케가 그렇고, 대부분의 여성노조가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MEC는 노동조합에서 단체로 조직형태를 전환한 새로운 사례다. 내부의 강한 리더십의 충돌로 인해 아픈 과거가 있는 듯 했지만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노조가 아닌 단체의 형식으로 7만 명의 회원을 조직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다. 

그 힘은 바로 ‘전문 조직가’에 있었다. MEC에서는 모든 조직가들이 자원봉사자라고 했다. 회비를 내지 않는 대신에 조직 활동을 한다. 그리고 열린 학교를 통해 접해본 조직가 훈련과정에 신청서를 낸다. 전문 조직가 훈련을 받고나서 현장에 들어가 조직 확대 전담가의 역할을 한다. 그 활동이 무료 조직가 훈련에 대한 보답이다. 조직 활동가들이 자원봉사자가 될 수 있는 길이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과정이다.

최근 니카라과의 정부는 1980년대 우리나라처럼 수출자유지역을 융성시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자본주의 물을 조금 더 빨리 먹은 몇몇 나라들이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었다가 핏자국만 남기고 도망쳐 버리는…….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대한민국이 ‘착취국’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현실이었다. 

한국기업이 임금체불을 하고 도망가 버렸다는 니카라과 참가자의 설명에, 한국 참가자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회사 이름이 뭐예요?”, “우리가 현지에서 바로 불매 운동 들어갈게요!”, “우리가 도울게요!”, …… “I am sorry.”…….

그런데 니카라과 참가자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한국기업을 원망하지 않아요. 수출자유지역을 만들어서 니카라과 여성노동자를 착취하고, 무책임한 기업을 성성하게 만든 우리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지요! 우리는 정부에게 책임을 지라고 합니다.”  

궁금한 것도 많았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이 약간 걸림돌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세계 모든 곳에 우리와 같은 그녀들이 있다!

분임토의 시간에 나는 니카라과 사례를 나누는 조에 참가했다. 거기서 또 한 번 눈 돌아갈 얘기를 들었다. MEC는 매년 1회씩 각주의 대표자들이 모여 총회를 한다. 그 총회의 결과가 ‘1대1 상담방식’을 통해 7만 명 모두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전달된다고 한다. 따라 배우기에 앞서 그게 가능한가 싶기도 했다. 승리하는 조직의 역사는 반드시 일반화되고 다른 곳으로 전파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들을 따라 배울 것이고, 또 다른 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이어 갈 것이다. 우리는 이번 워크숍을 통해 이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역사를 함께 이어가고 있다. 

전여노조가 처음 출범할 당시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비정규직이 조직이 되나?”, “게다가 여성비정규직을 어떻게 조직한단 말이고?!”, “노조 가입하기도 전에 잘릴 건데……”, “성별노조는 무슨! 있는 거나 잘하지” 등등. 그러나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승리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대명사인 88C.C. 투쟁을 통해 여성노조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고, 한 사업장에 1명 많아야 10명인 학교비정규직들과 “전국여성노조가 인생의 새로운 전환지”라고 말하는 청소용역노동자들을 6천여 명 조직했다.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에서 누구의 명령도 없이, 자주적이고, 창의적으로 자신들 나라의 실정에 맞게, 그리고 그들 국가 여성들의, 민중들의 요구에 맞게 투쟁해 나서고 있었다. 책에서 보아서, 텔레비전에서 보아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뛰고 있는 그녀들을 만나고 보니, 세계 민중의 요구가 다르기 않다는 것이 실감났다. 

kmcw_03.jpg

조직의 대안은 배려와 나눔의 ‘여성성’ 강화

또 하나! 조직의 대안은 ‘여성성’이다. 좀 더 세심한 배려, 자신의 끼를 나누고 즐길 줄 아는 면모, 모이기만 하면 에너지가 배가되는 여성조직의 특징!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베트남이나 중국, 캄보디아의 여성노조(단체)에서도, 대한민국, 일본,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제 각각 독특한 역사를 가진 자본주의 국가의 여성노조들에서도 여성성을 개발하는 일, 여성이 좀 더 자주적인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사업을 병행해 가고 있다. 조직하고 투쟁하는 일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토론하고 있었다. 

조직하기 어렵고, 조직해도 ‘대장’ 만들기가 어렵고, 대장을 만들어놔도 집안 사정 때문에 오래가기 어렵고……, 이것이 우리가 아는 여성조직의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국가로부터의 학습과 배움을 통해 가부장적으로 사육된 탓이다. 우리는 여성이 중심이 되는 조직에서의 새로운 학습과 배움을 통해 여성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여성친화적인 조직운영을 할 것이다.

우리는 피부색도, 언어도, 몸집도 제각기 달랐다. 그러나 눈빛만 마주쳐도 웃어주고,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나와 함께 숨 쉬고 있는 지구 반대편의 여성 활동가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에너지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시쳇말로 ‘저질 체력’의 소유자다. 1시간 이상 말하거나 움직인 뒤 3시간은 쓰러져 있어야 할 정도로 기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녀들과 함께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최선을 다했다. 좀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좀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질 체력도 되살아나게 만든 ‘연대의 즐거움’

둘째 날 밤은 문화 교류시간 이었다. 알코올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고,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이라곤 주스와 과자뿐이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부 ‘만취상태’인 줄 오해했을 것이다. 오만가지 언어로 불러대는 노랫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캄보디아의 사랑노래가 세계 만국의 노래인양 다함께 후렴구를 불러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난디는 우리나라 노래 ‘바위처럼’의 율동을 무척 좋아했다. 덕분에 나는 몇 번 연거푸 ‘바위처럼’ 율동을 해야 했다. 이것이 여성성의 파워가 아닌가 싶다. 일정 마지막 날에는 거의 초죽음 시체가 되어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 모든 시간들이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 반대, 여성성 회복을 통한 새로운 역사의 물결을 만들어 나가고 있고, 나도 그 한가운데 서 있다는 깨달음과 자부심에 어깨가 으쓱해진 시간이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