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흙을 움켜쥐며, 소중함의 의미를 체감하다

노동사회

살아 있는 흙을 움켜쥐며, 소중함의 의미를 체감하다

편집국 0 3,624 2013.05.29 11:32
 

jojik_01.jpg 김소연의 책 『마음사전』에 ‘소중한 것’과 ‘중요한 것’의 차이를 설명한 글이 있다.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자식을 보고 중요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보통 소중하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의 차이, 정말 그런 차이가 있었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게 당신과 나의 소망이었다. …… 우리는 중요한 것들의 하중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약속과 소중한 약속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중요한 약속에 몸을 기울이고 만다.” 

김소연 『마음사전』 중에서


약속도 그렇다. 만약 ‘끗발’ 있는 사람을 만나는 약속이라면 그 약속은 중요한 약속이다. 사회 거물급을 만나는 약속이 중요하겠지. 그런데 이런 종류의 약속을 소중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소중한 약속이라면, 음 뭐랄까,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도 아니면 참으로 오랜만에 연락이 온 향기 좋은 지인들을 만나는 약속 정도는 되어야 소중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약속과 소중한 약속이 겹치는 불상사가 생길 때, 사람들은 과연 어떤 약속을 선택할까? 마음이야 소중한 약속을 선택하고 싶지만, 요즘 세태는 중요한 약속이 우위에 있을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우린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분투를 하고 있지, 결코 소중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는 않다.

민중의 집, 친환경마을로 농활 다녀오다

민중의 집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나와 함께 민중의 집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한겨레신문 홍세화 기획위원도 동행했다. 처음 농활을 접하는 지역주민들도 함께 갔다.

민중의 집 농활대가 간 곳은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샘골마을. 유기농 농업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다는 곳이다. 20년간 지속된 정직한 농부들의 노력으로 농림부로부터 ‘2008년 친환경농업지구’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은 지역순환농업을 실현하고 있는데, 지역순환농업이란 벼농사같이 땅을 갈고 씨를 뿌려 가꾸는 농업(경종농업)에서 나온 볏짚 등의 부산물을 가축에게 먹이고, 가축의 배설물을 다시 벼농사에 이용하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친환경 농업을 뜻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농업방식이자, 땅을 살리는 농업 방식이다. 

짧은 2박3일간의 일정이었지만, 우린 논에 들어가서 흙을 느꼈다. 진흙 속에 발을 담그며 논에 들어가서 피를 뽑았다. 도심에서 탈출해 오염되지 않은 흙 속에서 생명의 가치를 잠시나마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저소득층도 비정규 노동자도 정직한 사람들이 이렇게 정직하고 소중하게 가꾼 생산물을 섭취해야 한다. 그러나 돈 되는 산업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재의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그것은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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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것들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샘골마을 농민들과 막걸리를 한잔할 때, 홍세화 민중의 집 대표는 프랑스 농민운동가인 조제 보베의 말을 인용하며 농업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했다. 

프랑스 맥도날드 매장 신축공사현장에 트랙터를 몰고 들어간 것으로 유명한 조제 보베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국립농학연구소 연구원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때는 비폭력  반군사 운동을 벌였던 경력이 있다. 또한 프랑스 농민연맹을 창설했고, 현재는 세계 농민연대조직인 ‘농민의 길’(비아 캄페시나)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조제 보베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나라의 농업에 대해서 말해 달라. 그렇다면 나는 당신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말해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인가. 불도저로 온통 나라를 들쑤시는 개발 공화국에서, 농업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고, 농촌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나? 또한 농민은?

중요한 산업은 많다. 자동차 산업도 중요하고 첨단 아이티(IT)산업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을 높여준다는 반도체 산업도 중요하고, 건설산업도 중요할 수 있겠다. 농업은 어찌 보면 중요한 산업이 아닐 수도 있다. 규모만 보더라도 다른 나라의 농업에 비해 경쟁력도 없어 보이고, 21세기에 뒤떨어진 산업처럼 보일 수도 있다.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을 언급하기 위해 농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예를 종종 볼 수 있다. 인간 생활에 기본이 되는 식량을 생산하고 공급하고, 수해 방지, 신선한 대기와 안락한 생활환경 조성 등 다원적 기능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49조 3천 4백억 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인간의 천박한 기준일 뿐이다. 

‘소중한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식을, 부모를, 고락을 함께한 지인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돈을 기준으로 다른 산업과 농업을 비교하면 안 된다. 소중한 것과 중요한 것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