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외침, “함께 살자!”

노동사회

아직 끝나지 않은 외침, “함께 살자!”

편집국 0 2,780 2013.05.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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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일간의 점거 투쟁은 끝났지만 쌍용차 정상화를 위한 투쟁이 남아 있다. 8월10일 금속노조의 쌍용차 노사 대타협 이행 촉구 기자회견.  ▷ 금속노조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전면파업을 선언하고 공장을 거점으로 삼은 날짜로 기준을 잡으면 77일, 상하이기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날로부터는 210일에 이르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간단하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아주 단순하게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쌍용차 공장점거 파업이 마무리된 것일 뿐, 구조조정과 쌍용차 처리를 둘러싼 투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따라서 어떤 측면에서 투쟁의 교훈과 과제를 지금 바로 살펴보는 일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이 글은 77일 혹은 210일 쌍용차 투쟁의 결과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해야 할 투쟁, 경제위기 구조조정과 쌍용차 처리를 위해 노동자, 혹은 노동운동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새기면서 남아 있는 투쟁의 과제를 다시금 각인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과 정권의 잘못을 뒤집어 쓴 노동자

쌍용차 투쟁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이번 투쟁이 벌어진 원인을 제대로 짚어야 할 것이다. 쌍용차 문제 자체로만 본다면 이번 사태의 원인은 분명하다. 외형적으로 쌍용차 문제를 일으킨 주범은 상하이기차이다. 상하이기차는 쌍용차를 2,000억 원 현금으로 인수하고서(인수 총가격은 6천억 원이었는데 4천억 원은 대출로 메웠다) 각종 기술을 확보하고 차종개발 능력을 확보하는 등 수치상으로만 2조 원 이상의 이득을 얻었다. 그런데도 상하이기차는 매년 3,000억 원씩 투자하겠다는 약속은 전혀 지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쌍용차는 지난 4년간 신차종투입도 없이 근근이 버텨왔다. 경제위기가 닥치고 전 세계적 자동차 판매 감소가 본격화하자 상하이기차는 쌍용차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청했고, 이것이 거부당하자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교묘한 방식으로 위기 상황에서 쌍용차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상하이기차가 쌍용차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쌍용차 문제는 “기업에는 주인이 있어야 한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 결합해야 한다”며 해외매각을 강행한 정부 정책 때문에 시작되었다. 정부는 쌍용차를 상하이기차에 넘기고서도 기술유출과 투자회피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기업 친화적 시장주의’가 상하이기차의 ‘먹튀’와 무책임한 행각을 그대로 방치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10년 전 구조조정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장적인 방식을 강화한 것도 쌍용차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노동자들에게 기업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면서, 대주주의 지분은 보장하고 금융기업들의 채권은 그대로 보장하려는 시도는 더욱 강화되었다. 시장친화적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이 진행되면서 사람 자르기식 구조조정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망한 기업의 문제 해결 열쇠는 ‘새로운 인수자 찾기’에 있다는 식의 정책이 구사되었다. 이 모든 것은 금융채권단이 주도했고, 정부는 ‘불개입’하며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버렸다.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

노동자들이 이러한 정부와 자본의 구조조정을 묵묵히 받아들였다면 쌍용차 문제는 이토록 큰 사회 문제로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쌍용차지부는 자본의 고통 전가 시도, 즉 인력감축 중심의 구조조정 방안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주장과 더불어, “함께 살자”는 주장을 내세우며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하였다. 금속노조도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함께 살자, 국민생존! 총고용보장!”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하였다.

쌍용차지부는 우선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면서 줄어든 판매에 대응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주야 맞교대 방식을 다른 교대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그리고 상하이기차의 책임을 물으며 지분소각을 요구하는 동시에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하였다. 이와 함께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을 위해 필요하다면 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을 산업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의사까지 제시하였다. 그리고 쌍용차의 올바른 회생을 위한 생산체제의 혁신과 영업 및 A/S 부문의 강화 방안까지도 적극적으로 제시하였다. 쌍용차지부의 이러한 행동은 과거 “구조조정 반대, 고용보장”을 제기하면서 정리해고 반대로 집중하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대응방식이었다. 

금속노조도 민주노총 차원으로 문제를 확산하면서 ‘자동차 범대위’를 구성하는 동시에, 정부와 산업은행, 그리고 언론에 대응하며 “함께 살자”는 주장을 본격화하고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법정관리인은 이러한 국면에서 ‘노사관계 재편’을 추진하면서, 경제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는 핵심 고리로서 ‘노동조합 죽이기’를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의 설득력 있는 대안과 호소력 있는 제안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노동조합과의 전면전을 선택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 혹은 210일까지의 투쟁은 노동조합에 의해 시작되었다기보다 정부와 자본에 의해 도발된 측면이 매우 크다. 물론 노동조합은 이러한 도발에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쌍용차 투쟁은 경제위기를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는 전가의 보도로 휘두른 인력감축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격돌이라 하겠다. 노동이 “함께 살자”는 새로운 제안을 들고 나왔다면, 자본은 시장의 독재를 위해 ‘노동조합 죽이기’라는 초강수를 선택했다. 이로써 노동과 자본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작게는 쌍용차 안에서, 넓게는 노동조합과 총자본의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공장 담 못 넘은 “함께 살자!”, 그리고 노동자 상잔의 비극

노동자들은 77일간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77일간 정권의 경찰병력과 법정관리인의 사병(용역깡패)에 맞서서 도장공장을 중심으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한 부분을 놓고 쉽사리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누구도 77일 투쟁의 당사자가 아닌 한 그 투쟁 자체를 놓고 왈가왈부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77일간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교섭의 결과는 그렇게 흡족한 수준이 아니었다. 노동조합은 총고용 보장을 전제로 출발했으나, 인력조정 대상자가 2,646명인 상황에서 1,700여 명 이상이 희망퇴직을 신청했으니, 총고용 보장은 시작에서부터 사실상 무너진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노동자 함께 살기로 시작된 접근은 어느새 ‘희망퇴직자를 제외한 정리해고자들을 구제하는 문제’로 바뀌었다. 함께 살기가 공장을 넘어 지역으로,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오히려 공장 안으로 가두어지는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같은 기업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고용을 문제를 가지고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주고받은 것이다. 인력감축 대상에서 제외된 노동자들의 경우 투쟁의 초기에는 공장 점거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법정관리인이 공장에서 물러나면서, 그리고 그 이후 청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산 자”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의 태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바깥의 연대 단위를 향해 “외부세력”이라 부르고 야유와 욕설을 보내는 것은 약과였다. 공장 안에서는 노골적인 적대가 벌어졌다. 용역깡패만이 아니라 함께 공장에 다니면서 호형호제했던 사람들끼리 새총과 쇠파이프를 서로 휘두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마디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결과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함께 살자”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분열과 분절은 시장의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강요하는 핵심 기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면한 구조조정 투쟁에서 “함께 살자”는 분열과 분절을 넘어서자는 기조로서 주창된 것이다. 초기의 대응에서 쌍용차지부와 금속노조는 이러한 정신 속에서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전개되면 될수록,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이 “함께 살자”는 기조를 더욱 확고한 원리로 투쟁 속에서 체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77일에 걸친 투쟁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상잔의 상흔을 어떻게든 치유해야 한다. 자본과 정권의 민주노조 말살 기도에 맞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함께 살자”는 투쟁의 구호를 노동자 내부에서부터 실천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회의의 벽 뚫지 못한 ‘회생 가능성’

투쟁의 결과는 힘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힘의 관계는 일정한 조건 속에서 작동한다. 힘이 작동하는 조건을 넘어서는 역학은 없다. 힘이 새로운 질로 전진하려면 조건이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쌍용차에서 이러한 조건은 ‘회생 가능성’이었다. 

쌍용차가 회생 가능하다는 인식은 불행스럽게도 거의 없었다. 쌍용차 당사자들 속에서도 회생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적지 않았으며, 사회적으로는 쌍용차 회생이 어렵다는 인식이 훨씬 많았다고 할 수 있다. 회생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인력감축 방식은 반대하지만 인력감축이 아닌 다른 방안에 대한 동의 또한 선뜻 만들어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조건에서 ‘청산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부품업체들이 조기파산을 신청하려는 시도가 나타나자 지부와 노동자에게 우호적이었던 사회 기조는 회사는 일단 살려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양상으로 급격히 전환하였다.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은 이 조건을 돌파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77일간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무급휴직과 희망퇴직 비율을 약간 조정하는 방식으로 파업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파업 이후 채권단과 법정관리인, 그리고 산업자원부 장관까지 나서서 ‘매각’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쌍용차 처리 문제에서 보았다시피 정부는 줄기차게 매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수대상자로 거론되는 업체 면면을 살펴보면 외국 업체거나 국내 재벌들이다. 

물리력 한계와 만연한 무력감 극복을 위하여

이번 투쟁에서는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는 물리력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도장공장을 선점하였기 때문에 쌍용차지부는 장기 투쟁을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도장공장에서 노동자들이 경찰의 병력에 맞서서 무기한 항전할 수 없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더 오래 싸우도록 요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다치고 지친 파업 대오들에게 더 이상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 지점에서 연대운동의 힘이 필요했다. 파업의 대오를 지지하고 엄호하는 일과 동시에, “함께 살자”는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연대를 표방한 진보진영의 대응은 “함께 살자”를 전면화하는 사회운동의 방식보다는, ‘쌍용차 파업’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해결과 중재방안을 마련하는 데 한정되었다. 물론 도장공장 안에서 외롭지만 강고한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파업을 지켜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서 평택공장 정문을 지킨 연대 의지는 결코 폄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택공장 앞에 모인 연대는 그것으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물을 지원하고 의료진을 들여보내기 위한 노력은 그 자체로 필요했지만,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자본에 맞서는 사회투쟁으로까지 확산하지 못한 진보진영의 모습은 무기력함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모든 진보진영들에게, 노동조합들에게, 자기 일상과 활동을 내팽개치고 쌍용차 문제에 집중하라고 말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이고 강요일 수 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직면한 노동자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연대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진정한 연대란 자기 문제와 다른 문제의 공유점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더 높은 차원에서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진영은 현안에서 서로 ‘몸 대주기’, 그리고 ‘면피하기’ 수준의 행동을 넘어서야 한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언론·경찰(공권력)·자본(법정관리인)·용역깡패로 구축된 우리 사회의 폭력적 광기에 맞서는 구체적 행동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한 ‘반MB 정서’에 기대기보다, ‘신자유주의와 광기가 연합된 통치방식’에 맞서 투쟁하면서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