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개정 논란과 ‘정치적 마술’

노동사회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과 ‘정치적 마술’

편집국 0 3,789 2013.05.29 11:21

 

wcshin_01.jpg이명박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들 가운데 듣는 이들을 헛갈리게 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를 테면, 현재 노동부 장관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진정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실직사태를 염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실직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거나 혹은 사용기간 제한 조항을 유예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법 개정에 반대하는 민주당 등 야당은 비정규노동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집단이고, 또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은 정규직 조합원의 이익만을 대변하면서 비정규노동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기득권 집단이라고 매도한다. 

시장지상주의자가 ‘비정규직 수호자’로 변신하는 마술 쇼!

개인이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신념의 진정성을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정책적인 토론은 개인이 지닌 신념의 진정성이나 일관성이 아니라, 그러한 정책 자체의 효과나 타당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정한 정책의 효과에 대한 주장, 그리고 그러한 주장과 더불어 제시되는 여러 담론들이 정책의 효과나 타당성에 관련된 합리적인 논리나 객관적인 사실에 의거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관계를 은폐하면서 전개된다면, 그러한 주장과 담론은 진정성이 있더라도 정책의 진정한 효과를 은폐하고 기존의 권력관계나 억압구조를 지속시키는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게 된다. 

비정규직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정부, 여당, 그리고 일부 언론의 보도에서 정책의 효과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서민을 위한다고 하는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법 개정의 실질적 효과를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더해 야당과 노동조합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효과까지 노리고 있으니, 이는 가히 ‘정치적 마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마술사의 공연(속임수)이 성공을 거두려면 다양한 무대장치와 소도구들이 필요하다. 비정규직법 개정 마술의 경우 가장 중요한 장치는 매스컴이다. 신문과 방송에서 비정규직법 개정 주장의 근거와 그 효과에 대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토의가 실종될 때, 그러한 정치적 마술이 실현될 수 있다. 지금의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은 공론의 장에서 비논리적인 주장들이 제대로 걸러지지 못하고, 그러한 정치적 마술이 작동하는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 노동부 장관은 양대 노총의 비판과 사퇴 요구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비정규노동자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노동부는 “<비정규직법 개정 지연>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근로자 여러분 노동부가 적극 돕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실직 급여나 재취업 알선, 직업능력 개발의 지원 등은 노동부의 업무이고, 모든 실직 근로자가 그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마술의 초점은 “비정규직법이 개정되지 않아서” 비정규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는 주장, 그리고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것이 그 해법이라는 주장이다.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조항 때문에 해고대란이 불가피하다는 노동부나 한나라당의 주장에서는 실제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주체인 기업과 사용자의 책임을 묻는 시각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고, 기업주 측의 책임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또, 이로 인해서 법 개정 방향에서도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 사유’를 제한하는 방안은 아예 검토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법 제정 이후의 논란을 살펴보면 노동부나 한나라당의 주장이 어떤 효과를 의도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법제화된 합의’ 깡그리 무시한 이명박 정부

현재의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지닌 문제점과 그에 대한 해결방안에 관한 논의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그 논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다. 현행법이 2006년 11월30일 국회를 통과하였을 때, 이미 민주노동당은 이를 적극 반대한 바 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사유제한 조항이 없어서 오히려 비정규직이 남발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법 제정 직후 노동부는 입법취지를 홍보하면서 지금까지 기간제 근로계약을 반복적으로 갱신하여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지만, 이 법으로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무기계약 근로자)’로 간주하고, 근로기준법 제30조에 의거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해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홍보하였다. 

또한, 법 제정 이후에 민주노총이 빠진 상태에서 노동부 장관, 한국노총 위원장, 경총 회장이 참여하여 ‘노사정 합의문’이 채택되었는데, 여기에는 “노·사·정은 비정규직보호법의 입법취지를 존중하여 부당한 계약해지 등으로 인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이 악화되지 않도록 성실히 노력한다”는 항목이 포함되었다. 이에 대해서 민주노총은 이랜드 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를 계기로 비정규법이 지닌 문제점이 드러나서 법을 개정하거나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하였다. 위와 같은 상황은 ‘사용기간’ 제한만으로는 2년 미만 근로자의 반복된 해고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현행법이 문제점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2년 이상 지속되는 업무에 대해서는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고용 규범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것을 의미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이러한 합의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것이 ‘법제화된 합의’였음에도 말이다. 2007년 12월16일 당시 이명박 후보는 대선후보 3차 합동 TV 토론에서 고용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차라리 비정규직법을 안 만들었으면 계속 일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어려움을 좀 알아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5월25일 전경련은 『노동시장규제개혁과제』 보고서에서, 비정규직보호법 제정 등 노동시장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에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증가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한나라당 제18대 국회 초선 당선자 82명으로 구성된 ‘민생대책특별위원회’에서는 비정규직보호법으로 비정규직근로자가 오히려 직장을 잃는 문제가 발생하였고, 사용기간 2년이 다가옴에 따라 이러한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보고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2008년 7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비정규직보호법에 대한 업계 건의문」을 통해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이 시점에서 지식경제부, 재정부 등에서 사용기간 연장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법 개정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결국 2008년 10월 들어 노동부는 경제 불황을 배경으로 ‘해고대란설’을 언급하면서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법 개정을 공식 추진하기 시작했다. 

“해고 제한아, 사용자 책임아, 눈앞에서 사라져라!”

하지만 지금까지 노동부나 한나라당의 주장에서는 기업주, 사용자의 고용정책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사용기간 제한조항으로 기간제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고 싶어도 사용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해고해야 하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현행법에서 사용자는 어떤 제약을 받고 있는가? 사용자가 2007년 7월1일에 기간제 근로자 ‘갑’을 고용하여 2009년 7월1일 이후에도 계속 고용한다면 사용자가 형사처벌을 받는가? 아니다. ‘갑’의 근로조건을 정규직 근로자 ‘을’의 수준으로 향상시켜야 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현재의 차별시정제도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그 실효성이 빈약하다. 

그러면 사용자는 이제 경영 형편이 어려워져도 근로자 갑을 해고할 수도 없게 된 것인가? 물론 아니다. 다만 이제 사용자가 근로자 갑을 해고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해고 제한’에 관한 조항이 적용된다. 2년이 넘게 계속 고용한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상 해고의 제한에 관한 조항이라는 ‘고용관계의 종료에 관한 법 규범’을 사용자로 하여금 준수하도록 하게 하려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법의 입법 취지였다. 따라서 사용기간 제한 조항을 폐지하거나 연장하는 방안은 바로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 사용을 늘리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즉, 노동부나 한나라당은 사용자단체의 이익을 옹호하는 주장을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마술, 이 쉽지 않은 마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민주주의의 합리성을 존중한다면 

마술은 일시적인 환상을 제공해줄 수는 있지만, 현실의 고통을 치유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의 정당과 정부에 요구되는 것은 정치적 마술이 아니라 정책적 합리성이다. 또, 노동 정책을 둘러싼 합리적 토론이야말로 민주적 노사관계의 출발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