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봄날의 대행진

노동사회

쓸쓸한 봄날의 대행진

편집국 0 3,357 2013.05.29 11:19

 

tnrud_01.jpg노동운동은 사회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해마다 봄이 오면 거리로 나와 서울 시내를 행진하며 시민들을 만나왔다. 올해도 거리에 나온 행진단이 내가 일하는 성수동을 통과하는 날, 하루를 함께 행진하는데 속이 복잡하다. 

비온 뒤 뚝 떨어진 기온에다가 바람은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겨울옷을 입고 목도리까지 둘렀건만 별 소용도 없다. 햇빛 한 자락 안 비치는 4월 하순의 도시를 걷는 노동자들은 몸보다 마음이 더 추워 보인다.

4월 하순 도시를 소리 지르며 맴돌다

검은 투쟁조끼를 입고 어깨를 움츠린 행진대열이 외치는 슬로건은 “차별철폐!” 

시민들에게 차별을 없애자고 절규하고 있지만, 행진단 자체가 벽에 갇힌 노동운동의 답답한 상황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시민들 앞에 대상화되고 있었다.

나는 행진단이 모두들 두르고 있는 ‘몸벽보’도 마다하고, 대열의 바깥쪽에서 최대한 시민들의 눈에 띄길 바라며 걸었다. 연두색 잠바에 꽃무늬 가방을 매고 있던 나는 지나가다가 민주노총의 의견에 동의하여 행진단에 합류한 ‘일반 시민’처럼 보이길 바랐다. 

유치하다고 나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을 해가며, 차도를 걸을 때면 지나가는 운전자들에게 가능한 가까이 가려고 했고, 인도를 지날 때는 즐거운 표정으로, 함박웃음 웃으며 구호를 외치는 ‘오버’도 해보았다. 물론 주먹도 올리지 않았다. 

전철역을 지나면서 선전물을 나눠줄 때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씩씩하게 인사했다. 같이 하는 한 여성 동지는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있었다.

선전물 편집은 예뻤지만 글씨가 너무 작아 한눈에 들어오는 얘기가 없었다. 

‘살림살이 팍팍한 사람들 속 좀 확 풀어주는 얘기면 좋겠구먼, 너무 어렵군.’

이라고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기륭전자에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 동지가 내 옆으로 온다.

“어려워! 좀 구체적으로 적어야지, 편집은 잘 했는데 내용은 안 들어와. 사회공공성도 생활 속에 다 스며있는 얘긴데 그런 거 묶어서 알려주면 좋잖아….” 

나도 대꾸했다.

“그러게, 요새 물가가 얼마나 올랐어? 삼겹살이 ‘금겹살’이라고 난리고, 감자에 채소에 다 올랐다고 신문만 펴면 나오는데… 그런 거 그래프도 팍팍 그려 넣고 해야지!”

“그런데 선전물 잘 만들기가 쉽냐….” 

기륭전자 동지는 만드느라 고생한 사람들한테 미안한지 혼잣말로 마무리를 한다. 

그렇지만 노동운동과 시민들을 더 멀어지게 만드는 운동권 사투리 ‘찌라시’를 돈 들여 만드느니, 신문 사회면 갖다 베끼는 게 훨씬 선동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명랑한 걸음으로! 형형색색 가지각각의 모습으로! 

하루를 같이 걸은 성수지역 동료 활동가한테 물었다.

“우리 행진단의 모습이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알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까? 우중충한 표정에 주먹 올리면서 걷는 거 자체가 고립을 웅변하고 있는 거 아닐까?”

동료가 답한다.

“어차피 더 내려갈 바닥도 없어, 더 나빠질 이미지도 없고…. 난 이런 방식 행진은 그만하자고 작년에도 주장했던 사람이야. 소통도 안 되고 우리끼리 몰려다니는 거 그만해야지.”

난 <차별없는 서울만들기> 행진 방식은 여전히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과는 다른 행진단이 서울거리에 출현하기를 바란다.  

20년 전 노래를 틀어대는 방송차 대신,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폰을 두드리며 리듬을 맞추고, 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무직노동자와 대형마트 캐셔 유니폼을 입은 여성노동자,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자동차정비공과 분필을 든 교사가 행진단의 앞에 서고, 앞치마를 두른 전업주부와 상큼한 꽃무늬원피스를 입은 대학생이 행진단의 뒤에 서는….

너무나 오래 들어서 빛바랜 깃발일랑 미련 없이 버리고, 생활에서 우러난 개인적이고도 정치적인 슬로건으로 만든 형형색색의 피켓을 든, 명랑한 행진단!

뭐 조야한 상상일 수 있겠으나 어쨌든 나의 문제의식은 단 하나다. 직업인이자 생활인이면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인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사회로부터 유리된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비친다면, 또 그 반영에 대해 무감각한 운동주체라면, 운동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것이다. 
되새김질 하게 된 어느 떡집 총각의 ‘개념찬’ 한 말씀

한 달 전 떡집에 떡을 맞추러 가서는 배달처를 ‘노동건강연대’로 적었더니, 떡집 총각이 나를 잡고 노동운동 걱정을 한다. 

“거 요새 힘들어 보이던데, 잘 좀 하라고 하세요. 그래도 떳떳한 게 남보다 깨끗하다는 거 하난데…. 여기도 공장들 많아요. 할 일이 많을 거예요.”

노동운동은 아직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아니 이 사회에서 가난한 노동자 밥그릇 생각해주는 이들이 노동운동 말고 어디가 있나. 

이념투쟁 싫고 정치투쟁 싫어서 운동노선 바꾸겠다는 노동조합들한테, 성수동 오복떡집 총각이 한 말씀 해 주신단다. 

“제 밥그릇만 챙기려고 하니까 욕하죠.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노동운동이 있어야 우리 같은 사람들도 챙겨줄 거 아녜요?”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