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노동자의 사회공공성’ 찾기 위한 장애인 체험행사

노동사회

‘지하철노동자의 사회공공성’ 찾기 위한 장애인 체험행사

편집국 0 4,634 2013.05.2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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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4일 부산지하철노조가 진행한 장애인 체험행사 모습.  ▷ 부산지하철노조 ]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매년 단체교섭투쟁에서 ‘사회공공성’을 주장해 왔다. 반면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사회공공성을 대하는 대중의 시선은 차가웠다. 사회는 대기업 노동자의 이기주의를 탓하면서도,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후생복지를 위한 활동만 해야 한다고 옭아맸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지방공기업 부산교통공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대중교통 부산지하철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전국의 지하철은 만성적인 적자다. 여론은 지하철을 만성적 적자기업 이미지로 새긴지 오래다. 언론에서는 적자기업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보도가 주를 이뤘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는 적자기업 이데올로기 공세에 시달리고, 구조조정에 막무가내로 당해왔다.

지하철노동자와 장애인은 ‘대중’교통에서 만난다

부산지하철 구조조정은 전국 지하철 구조조정 역사의 출발점이다. 1998년 최초로 1인 승무제도를 실시했고, 지하철역 매표소 민간위탁을 도입한 후 지하철역 매표 시스템 자동화도 제일 먼저 도입했다. 계획에 따르면 전국 지하철 최초 전구간 완전무인 운영시스템 도입도 예정돼 있다. 그 결과 부산지하철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총 인원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운행거리 대비 인원은 계속 줄었다. 노선이 새로 생겨 운행거리가 늘어났지만 노동자는 자동화기기에 밀려난 형국이다. 부산지하철 역사의 평균 넓이는 3,000여 평에 이른다. 이런 공간에 평균 1~3명의 직원이 상주하여 업무를 처리한다.

전동차를 한 명의 기관사가 몰고, 소수의 직원이 역사를 관리하고, 점검 업무 대부분을 외주용역 미숙련 비정규직이 담당하면서도 아직 큰 사고가 나지 않았으니, 뭔가 더 큰 일을 벌이고 싶은 게 경영진의 욕심이다. 그래서 내년 신규개통 노선에서 기관사 없는 전동차 무인운전과 직원 없는 지하철역 무인운영 실험을 해보려는 심산이다.

장애인과 노동조합의 이해관계가 같을 수 있을까? 세상은 두 다리 멀쩡하고 잘 보이고 잘 듣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다. 몸이 불편해서 잘 가누지 못해도 우리 이웃이다. 대중교통수단에서 “대중”이란 ‘누구나’를 지칭한다. ‘아무나 편하게’ 탈 수 있는 게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그런데도 부산지하철을 편하게 탈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속해 있는 직장 부산지하철은 그 본연의 목적대로 가는 게 아니다. 다수이더라도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 편하게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이 되는 것이다.

오래되고 위험한 휠체어리프트를 탈 때 큰 숨을 쉬면서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을 되풀이해야 하고, 언제 닫힐지 모르는 전동차 출입문에 가슴 쓸어야 하고, 우대권을 받기 위해 절뚝거리면서 역사를 헤매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이런 문제가 지하철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과 결부되어 깊은 연관을 가진 일이라 호소해 왔다. 해결책은 지하철의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론은 우리의 문제제기와 해결책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고, 보수 언론은 아예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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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지하철노조의 장애인 체험행사를 보도한 지역신문 기사. ▷ 경남도민일보 ]

노조와 장애인, 블로거가 함께 한 장애인 체험

이런 여론의 무관심이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장애인·노동자·블로거와 함께 장애인 체험행사를 기획한 계기다. 노동조합이 사회적 의제를 내놓는 행사를 준비하고, 대안언론 ‘블로거’들이 참가하도록 해 기성 언론을 넘어 직접 대중들에게 이를 알리려 했다.

지난 4월4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사무실에는 4명의 장애인과 8명의 블로거, 8명의 지하철노동자들이 모였다. 작년 부산지하철노동조합 단체교섭에서 부산지역 장애인단체와 함께 공동요구안을 만든 경험을 잇는 두 번째 공동 행사를 만든 것이다.

장애인 1명에 블로거 1~2명, 지하철노동자 1~2명이 붙어 함께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노동자는 장애인의 활동을 보조하고, 블로거는 이들이 함께 이동하는 것을 글과 사진으로 엮었다. 4개조는 각기 장애유형과 보장구가 다른 장애인으로 구성했다. 블로거들은 행사 전반에 관한 내용과 자신이 속한 조에서 나온 이야기를 자신의 블로거에 올렸고, 이를 미디어다음에 블로거뉴스로 송고했다.

행사 후 이것이 여론화된 효과는 기획자의 예상과 들였던 품을 능가했다. 블로거들이 작성한 23개의 글 중에서 포털사이트 다음의 대문에 오른 글이 5건이 넘었고, 지역 신문에도 행사 내용과 취지가 실렸다. 이를 보면서 노동조합과 블로거의 기획 행사를 준비하는 곳도 여러 곳 생겼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이 행사에 두었던 의미는 블로그 포스트를 클릭한 조회수와 언론에 보도된 기사에만 있지 않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사회공공성을 주장하는 노동조합의 진정성을 전달하고, 사회공공성의 실현을 위한 연대와 활동의 구체적인 방식을 찾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없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사회의 주류를 향해 우리에게 관심을 달라고 애원하기보다, 함께 세상을 걷는 ‘소수자’, ‘대안 언론’의 힘을 통해 사회 진보와 발전을 위해 연대하는 전형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인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 구성원에게 공기업의 정체성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회사가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즉흥적인 서비스의 대안을 고민하게 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라고 자평해 본다.

공공성 살리는 연대, 우리 한 번 해봅시다!

부산시와 부산교통공사는 내년 개통 예정인 반송선(3호선 2단계) 구간에 전구간 완전무인 시스템(무인운영·무인운전)을 도입하기로 계획 중이고, 이것은 안전·서비스 등 지하철공공성과 함께 지하철노동자의 삶까지도 송두리째 앗아 갈 태세다. 전구간 완전무인 운영시스템에 대해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우려도 매우 심각하다. 이를 막기 위한 투쟁에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모으고 있다. 

장애인·블로거들과 함께 한 행사를 통해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사회공공성에 대한 진정성을 서로 확인했다면, 지하철을 첨단기술의 무인운영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지하철로 만들기 위해 함께 연대하기를 기대해 본다. 지하철과 같은 공기업의 적자는 부의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가지고 있고, 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필요충분요소가 될 수 있다. 대중교통 시스템은 소외받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