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완성전략과 09년 교섭·투쟁을 위한 현장토론

노동사회

금속노조 완성전략과 09년 교섭·투쟁을 위한 현장토론

편집국 0 3,800 2013.05.2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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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본부장
토론: 박영기 금속노조 현대자동차판매위원회 부의장
      신성목 금속노조 만도기계지부 평택지회 교육위원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사회: 오동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일시: 2009년 3월20일 오후 6시~10시30분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정리: 『노동사회』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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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주최하고 혁신네트워크와 소통과혁신연구소가 후원하는 제72차 노동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소통과혁신연구소 정성희 소장님이 함께 하고 계시는데요. 오늘 토론회의 취지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정성희: 반갑습니다.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정성희입니다. 오늘 토론회 제목에 ‘완성전략’이라는 말이 들어갑니다만, 사실 운동이라는 게 완성은 불가능하고 끝없이 발전해갈 뿐이겠죠. 어쨌든 최근 ‘9월 대란설’까지 회자되는 등 금속노조 재편 과정이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사람도 조직도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데, 내용과 형식이 불일치하면서 생긴 문제라고 봅니다. 오늘 토론회는 이런 문제들을,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집중적으로 고민해보기 위해서 만든 자리입니다. 여러 곳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는데요. 진지한 토론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오동진: 그럼 본격적으로 토론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본부장이셨고, 혁신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계신 하부영 동지의 발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하부영: 먼저 알려드릴 게 있는데요. 기아자동차지부에서 기업지부 존속 문제를 두고 조합원 총회 소집을 주도하고 있는 박홍귀 전 위원장이 지금 퇴근하고 이 자리로 오고 있다고 하네요.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볼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기업지부 문제’는 워낙 뜨거운 감자이다 보니 금속노조 중앙집행부나 임원들은 언급하는 것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대의원대회에서 확정된 내용(“기업지부 한시적 존속 후 지역지부로 재편”)이 있는데, 집행부가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건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기 쉽다는 거죠. 

기업지부의 지역지부 재편이 다양한 현실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면, 알고는 있지만 섣불리 어떤 얘기를 꺼낼 수가 없다고 대답을 해요. 지역지부로 재편됐을 때 명확하게 어려움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완성차 판매나 정비 부문에서 문제제기를 해도 (중앙에서) 제대로 수렴되거나 토론되지도 않고요. 이런 문제들을 묻어두고 그저 정해진 일정만을 따라가다가는 조직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와 후유증을 겪을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우리 금속 산별노조가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끄집어내, 제대로 정착하고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forum_02.jpg출범 3년째지만 대단히 허술한 ‘통합금속노조’

올해로 15만 금속노조가 출범한 지 3년째입니다. 그런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단일노조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조직의 규율과 통제가 대단히 허술하다는 게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2009년 교섭투쟁계획과 관련해서도 이미 기업지부들이나 기업지회들이 금속노조 중앙 일정을 무시하고 자기 일정을 잡고 있어요. 시작도 안 한 올해 금속노조의 투쟁이 맥 빠지게 되리라는 게 벌써 예상이 되는 거죠. 우리 금속노조가 실은 투쟁계획과 일정부터 산하조직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산별 단일노조’더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무늬만 산별”인 거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러한 현실을 인정 안 하고 과도하게 위상을 잡으니까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예정돼 있는 대로 올해 말에 완성차 대기업지부들을 지역지부로 재편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기업지회들에 권력이 몰려 있는 “무늬만 산별”의 조건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겁니다. 사실은 지금의 기업지부들 역시도 독자적인 목소리가 없는 기업지회들의 연합체일 뿐이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금속 산별노조의 중앙교섭에 대재벌·대공장들 참여를 강제할 실력이 없으니 사용자들로부터도 쉽게 왕따가 되고, 말하자면 ‘법외노조’, ‘재야노조’로 존재하고 있는 거죠. 

제 생각에는 지금 여건상 이렇게 기업지회들의 적극적인 집중을 끌어내지 못하고 붕 뜬 상태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2006년 전환투표를 통해 새로 산별노조로 전환한 조직들의 조합원들이 전환 당시 품었던 금속노조 중앙교섭에 대한 기대가 현재 대단히 큰 실망과 좌절로 바뀌어 있거든요. 실제 현장조사를 해보면 산별노조 자체에 대한 불신과 회의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불신과 조직이완이 빨리 수습되지 않으면 2009년 연말 각종 선거와 2010년부터 시행예정인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 등과 맞물려 더욱 더 어려운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 조직 내부에 빈틈이 생기니까 자본이 껴들려고 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네요. 저들은 지금 산별노조 탈퇴를 노골적으로 획책하고 분열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5만 금속노조 조합원 중 9만 명의 조합원에게 영향을 주는 기업지부 재편 문제를 일방적으로 처리했을 경우 엄청난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토론 없이 내부에 대한 통제만을 강화하려다 오히려 통제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경우를 낳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사실 지금 우리 모습은 4만 금속노조 시절보다도 못하거든요. 예전에는 투쟁과 교섭이 유기적으로 조직되기라도 했는데, 굼뜬 완성차 대공장노조들이 들어오면서 지난 2년간은 중앙교섭과 지부·지회교섭이 완전히 따로 노는, 훨씬 퇴보한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완성차 재벌기업들을 중앙교섭에 끌어들이는 것은 여전히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일 뿐이고요.
 
유럽형 산별노조 대신에 한국형 산별을 고민할 때

말하자면 우리의 산별노조운동은, 예전에 우리가 이를 준비하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유럽식 산별노조운동’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 발생배경과 성장조건부터가 다른데요. 유럽 산별노조운동의 경우 세계대전과 혁명 발발 등 국내외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정세를 배경으로 국가와 자본이 계급타협을 실질적으로 필요로 했던 조건 속에서 성장한 반면, 지금 우리는 타협은커녕 정권과 자본에 의해 반노동자적 정책이 더욱 확산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산별노조운동의 첫 걸음을 떼어가고 있다는 거죠. 유럽 산별노조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사회적 합의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었던 반면 우리는 그럴 힘이 전혀 없죠. 5%의 민주노총 조직률 가지고 무조건적인 양보를 거듭하는 그런 굴종적인 사회적 합의는 저부터가 반대합니다. 어쨌든 많은 노조활동가들의 머릿속에 있는 유럽식 산별노조운동은 사실 우리의 토양에서는 자라나는 것이 불가능한 씨앗이 아니겠는가 하는 문제제기입니다.   

결국 우리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얼마 전 토론회에 가서 듣다보니 경총 사람이 “똑바로 하라”고 충고를 해요. 산별노조가 안착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해서 집중성과 효율성을 갖춘 유럽식 노사관계로 가자 그러니까, 그러려면 기업별 노사관계 문제는 노사협의회 같은 기업조직에 위임하고 산별노조는 정말로 유럽처럼 산업차원, 중앙차원의 의제를 다루라는 거죠. 그렇게 하면 자기들도 산별노조 인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마 경총 측에서는 2006년 노사협의회 직선제 개정법을 기반으로, 기업차원 노사관계에서 노동조합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경총 같은 데에서까지 조롱과 충고를 받는 게 산별노조의 실제 현실인데, 우리는 아직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이상을 추구하다가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한국 현실에 맞는 산별노조로 가자는 겁니다. 이미 현실에서 움직이고 있는 산별노조가 기업별 노사관계 구조를 기계적으로 거스르려다가 중앙교섭의 실패와 내부 지도력 및 관장력 상실 속에서 통제불능 상태로 가고 있는데, 먼 나라 사례와 이상이 무슨 소용이냐는 거죠. 보다 직접적으로, 과도기 단계의 산별, 한국적 현실에 맞춰진 산별은 기업별 노사관계를 장악하고 현장권력을 틀어 쥐었던 기존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긍정하는 위에서만이 활로를 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조급증을 거두고 그런 장점과 한계를 인정하는 속에서 방법을 찾을 때 뭔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지부 재편’ 해야 하지만 과도기적 단계도 필요

지금 핵심적인 현실 쟁점은 기업지부 재편 문제인데요. 저는 우선 금속노조의 골간 편성 방식, 즉 지역지부 중심의 편성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지역지부로 가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더 많은 예산과 인력 및 동력을 배치하는 데 좀 더 수월한 형태죠. 또한 이미 지방자치시대가 열린 마당에 지방정부를 상대로 노동조합이 할 일들도 굉장히 많이 있고 생길 텐데, 지역지부 중심의 조직구조는 이를 적절하게 받아 안을 수 있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입장이 현재의 기업지부를 재편하는 데 신중하자는 입장과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니죠. 

지역지부 중심 조직의 장점은 인정하되 이미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냉철히 인식하고 ‘과도기적 단계’를 설정해 그 변화의 수위를 적절하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조정하자는 겁니다. 그렇게 융통성 있는 입장을 보일 때 산별노조 자체를 반대하거나 주저하는 내부 세력들을 좀 더 돌려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지금 전체 조합비의 54%가 기업지부에 예산으로 배분되고 있는데, 만약 기업지부를 해산할 경우 해당 기업지회에는 조합비의 40%만 예산으로 주어집니다. 기업지부 입장에서는 별다른 변화도 없는데 조직 예산만 줄어드는 거죠. 이를 융통성 없이 그대로 고집하면 당장 탈퇴하자는 소리가 현장 여기저기서 나올 겁니다. 그런데 이 문제 가지고 중앙에 문의하면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조절할 수 있다고 하거든요. 그렇게 변화를 포용력 있게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도기적 고민이 필요한 거죠.

산업정책도 없는 산별노조, ‘한국형’으로의 이행전략 세우자

다음으로 중앙교섭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속노조 중앙교섭 5대 요구안’이라는 것을 보면 이게 산별노조 요구안인지 총연맹 요구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실질적으로 뭘 하자는 얘기인지 핵심이 없어요. 그냥 지금껏 해왔던 관습과 관행을 고민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산별노조가 구체적인 산별정책과 요구가 없을 수가 있는지……. 사실 지금 15만 금속노조는 부품업체 포함해서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고민과 정책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돌파구가 먼저 열려야 할 것 같거든요. 업종별협의회를 통한 고민과 정책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완성차공장과 부품공장 사이의 문제, 또 쌍용자동차와 대우자동차의 문제 등 산업차원에서 접근하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들이 산처럼 쌓였는데 아무 대책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개별 사업장들이 산개된 투쟁으로 대응을 하게 되고, 결국 각개격파로 모두 깨지는 거죠. 업종별협의회 등을 통해 노조가 먼저 구체적인 산업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부품사와 완성사의 요구를 유기적으로 조직해 자동차공업협회나 중소기업협회 같은 데랑 실질적인 교섭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산별노조의 모습을 더 빨리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결론적으로 ‘한국형 산별노조 이행전략’을 세우자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무늬만 산별이고 재야산별이라는 걸 인정하고, 허구적인 지역지부와 기업지부 사이의 단편적인 논쟁 대신, 과도기적으로 업종 중심으로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구성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겁니다. 말이 조금 길어졌는데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발제문을 참조하시고, 또 토론을 통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오동진: 하부영 전 본부장님이 이랜드 투쟁 때문에 구속됐다가 감옥에서 나오신 지 얼마 안 됐는데요. 몸이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열정적으로 발제를 해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다음으로 전비연(전국비정규노동조합연대회의) 오민규 동지께서 토론을 해주시죠.
forum_06.jpg오민규: 전비연 정책위원으로 일하고 있고요. 또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올해 초 만들어진 ‘공황기에 맞서 노동자 살리기 투쟁을 전개하는 금속노동자들’이라는 평조합원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에 속해 있기도 하고요. 오민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사실 제가 연루된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도 아직 종료된 게 아니어서 저도 어제 검찰조사를 받았습니다. 해서 발제문을 밤늦게 확인했는데요. 확인하면서 느낀 게, 이번 토론회에서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더 막막해지고 답답해지더라고요.     

발제문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쟁점은 기업지부 재편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를 포함해서 비정규직투쟁을 하는 동지들의 고민이 충분치가 않습니다. 다만 자동차산업에서 먼저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완성차 대공장 정규직과 사내하청, 그리고 부품사 노동자들, 이 세 주체가 공동투쟁을 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저의 강조점이 있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어쨌든 우선 발제문에 대해서 몇 가지 지적을 하고, 다음으로 제 이야기를 말씀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기업별노조 강점은 까먹고, 산별노조 약점은 커지고

먼저 발제자가 “우리 산별노조운동이 유럽형 산별노조운동을 그대로 베끼다 오류가 발생했다”라고 지적하신 데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에는 오히려 유럽에서 한국 등의 노동조합운동을 배우자고 일부 바람이 불기도 했었죠. 19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COSATU(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와 브라질의 CUT(통합노동자총연맹)와 더불어 남한의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은 당시 관료화되고 현장과 괴리된 유럽 노동조합운동에게 경이로운 현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대공장노조를 포함해서 정말 역동적이기도 했고요.      

그런 맥락에서 발제자가 ‘한국형 산별’로 가자고 주장하는 데 대해 수긍합니다. 사실 노동운동이 산별노조 전환을 추진한 것은 기업별노조가 이미 있지만 산별노조가 좀 더 나은 무기라고 판단됐기 때문이지, 기업별노조가 아주 글러먹은 것이었기 때문은 아니라는 거죠. 전노협으로 대표됐던 기업별노조운동이 갖고 있는 전투성, 민주성, 현장성이라는 미덕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좀 더 폭넓은 계급적·사회적 연대가 가능한 산별노조체계의 장점을 수용하자는 게 ‘한국형 산별노조운동’의 요지일 텐데요. 정말로 지금 와서 현실을 돌이켜 보면 발제자가 말씀하신 대로 “무늬만 산별”에서 벗어나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기존 기업별노조가 갖고 있는 강점은 까먹고 산별노조의 약점인 중앙집중적 관료화만 강화되는 양상으로 온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산별노조운동을 추진했던 초심에 근거해서 좀 더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공황기’ 정세, 자본가들도 두려워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을 드릴 텐데요. 우선 제가 속한 ‘공황기에 맞서 노동자 살리기 투쟁을 전개하는 금속노동자들’이라는 조직명에서 알 수 있듯, ‘공황기’라는 정세를 모든 투쟁계획과 판단의 배경에 놓는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자본주의가 노골적으로 자기 본색을 드러내는 공황기에는 그에 걸맞은 투쟁방식이 있을 텐데요. 저는 자본주의의 야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리하여 착시현상이 걷혀진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공황기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동지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적확하게 모순을 포착하여 제대로 전략과 투쟁계획을 세울 수 있고, 또 그에 걸맞은 전술을 고민하여 준비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공황기에 완성차를 비롯한 대기업 정규직운동이 부품사, 하청사 등의 미조직·비정규직들 쪽으로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단호한 정신을 실현할 때, 오히려 드넓은 전망을 열어줄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공황기 초입부’인데요. 때문에 어마어마한 사회적 격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용조건 자체가 그전과 완전히 달라지고 있고, 물가, 주가, 환율, 부동산시장 등 여러 가지 지표들에서도 큰 변화가 오고 있죠. 이러한 변화는 노동조합운동의 투쟁에도 크나큰 영향을 주고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운동의 투쟁이 보이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강한 ‘전염성’과 ‘휘발성’인 것 같습니다. 공황기 초입부에는 평상시보다 하나의 대중투쟁이 주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커진다는 거죠. 특히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그럴 겁니다. 

한편, 이러한 국면에서는 자본가들의 변이양상도 예사롭지 않은데요. 이를 테면 평소에는 안 그랬을 텐데, 노동자투쟁의 전염성과 영향력 확산을 염려해서 서둘러 타협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거죠. 실제로 최근 현대미포조선과 코스콤, 그리고 강남성모병원 등 전국의 주요 투쟁 사업장에서 거의 동시에 사용자들의 양보안이 제출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맥락에는 단지 개별 자본가들의 사업장 상황에 대한 판단만이 아니라, 전체 자본 내지는 청와대의 입장이 반영돼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굴뚝 농성을 진행한 현대미포조선을 포함하더라도, 이들 투쟁사업장의 내부 사정만 고려하면 사용자들이 양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고 봐도 되죠. 강력하게 발화되는 대중투쟁이 주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정리하려는 모습들을 보인다는 겁니다.  
           
공황기 투쟁과 결합해야 할 산별노조운동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지금이야말로 ‘뭉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세가 중요하고, 대중투쟁으로 돌파하려는 태도가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투쟁에 승리한 사례들이 잘 알려지지는 않고 있는 것도, 주변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여 ‘합의서 비공개’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용자들의 입장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자본가들이 합의안이 공개되는 것만은 마지막까지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거죠.   

다음으로 대기업 정규직들이 부품사와 지역으로, 비정규직운동으로 더 적극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들이 정규직노동자들이 자동차산업 자체에 대해서 보다 넓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래야만이 특정 부품사에서 투쟁이 벌어졌을 때, “이건 ○○테크 노동자들의 피가 묻어 있는 부품입니다. 동지들, 그 부품으로 자동차 조립하시겠습니까!” 따위의 선동과 질문에 보다 쉽게, 그리고 성의껏 대응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지금은 완성차 정규직노동자나 부품사 노동자나 그 수많은 생산 연쇄사슬, 1차·2차·3차·4차·5차로 이어지는 그 연쇄사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현대차라는 재벌의 순이익이 얼만지는 알지만 그것이 어디서부터 누구를 착취하여 얻어지는 것인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기업별 노조주의를 극복하고 자동차‘산업’ 전체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운동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이러한 인식이 ‘변혁전략’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주 고전적인 것이지만, ‘소외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내가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자동차가 완성되는지, 그 지점을 탐구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데도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또한 ‘해방사회’가 왔을 때 자동차 생산을 재조직함에 있어서 노동조합이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우리 노동자계급은 스스로 사회를 운영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고, 그러한 부분을 훈련하기 위해서라도 앞서 언급한 인식이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이러한 내용으로 완성차 정규직노동자들과 대화를 해보니 굉장히 강한 탐구심과 호기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학습과 실천을 통해 보람과 자긍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부품사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현실을 알게 되면 갑갑해 하기도 하고요. 어쨌든 이러한 내용을 학습하면서, 소주 한 잔을 마실 때도 보다 넓은 맥락에서 ‘나는 노동운동을 어떻게 해나갈까’를 두고 고민하는 활동가로 자라나게 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이러한 지점을 고려하면서, 구체적인 현실에서 연대와 단결을 강화해나가면서 공황기 노동운동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작금의 산별노조운동은 공황기투쟁과 결합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중투쟁을 통한 운동의 확대를 근본전략으로 하는 공황기투쟁의 정신과, 보다 더 넓은 사회적 연대를 지향하는 산별노조운동의 정신이 현장에서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일례로 최근에 쌍용자동차에서 비정규직의 정리해고가 발생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휴업임금 70%를 몇 달 지급하면서 정리해고를 위한 합법적 절차를 밟아나갔던 것이, 작년 말부터 부품사들에게 원청이 고용유지 지원금을 주고 정리해고를 예비하고 있는 방식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완성차와 부품사 노동자들이 함께 적극적으로 선전전동하고 싸울 때만이 대안이 열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더 넓은 단결과 연대를 호소하는 게, 지금 운동의 기본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더 넓은 연대와 단결 위해 ‘지역’에 중점 둬야

다음으로 금속노조의 조직편제 문제에 대해서인데요. 저는 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방식이든,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방식이든 모두 지금 현실에 비해 더 넓은 연대와 단결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 다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역에 좀 더 방점이 찍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미조직노동자와 조직노동자의 단결, 혹은 미조직노동자들에 대한 조직노동자운동의 대대적인 조직화 운동을 추구한다고 할 때, 이를 실질적으로 감당하는 데는 지역을 토대로 하는 조직편제가 좀 더 낫겠다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도 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단결과 투쟁 역시 필요할 겁니다.   

한편, 지역 중심의 조직편제가 ‘교섭’을 진전하는 데 있어 업종 중심 편제보다 더 불리하다는 지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체로서 노동조합은 교섭대상 역시도 자주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금속노조 소속 몇 개 지회들과 분회들이 모여서 “우리 실질적인 사용자는 현대모비스이니, 거길 상대로 교섭과 투쟁을 하자”는 식으로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도 있는 문제고, 산별노조는 이를 위한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산별노조 내에 만들어지는 ‘위원회’ 체계 혹은 ‘교섭군’ 체계에 실질적인 투쟁 권한을 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자주성과 현장의 권한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느 부품사를 통해 ‘현대차 울산 1·2·3공장 09년 생산계획’이라는 서류를 입수했습니다. 여기 보니 현대자동차의 ‘25% 감산계획’이 적혀 있네요. 그런데 지금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는 사측이 노조에 2/4분기 생산계획을 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반떼 같은 차종은 주문물량이 충분하니 지금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물량 나누기’를 하자는 이야기들이 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서류에는 아반떼의 경우에도 25% 가까이 감산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즉 주문물량이 충분하다는 사측의 이야기 자체가 거짓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완성차 노조의 투쟁계획에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들이 부품사 노조들을 통해서 훨씬 빠르게 입수되는 상황입니다. 자본가들은 알아서 단결하는데, 노동자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정보교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 또 지금 자본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중투쟁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대안을 제시할 것인지 산별노조가 대답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토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역 이후의 전망’ 제시 못하는 금속노조

오동진: 공황기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자기 지배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사회의 격변기가 올 것이라고 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토론해주셨는데요. 다음으로 주요 부품사 중의 하나인 만도기계의 신성목 교육위원께서 토론해 주시겠습니다. 

forum_04.jpg신성목: 제가 속한 만도기계지부는 새로 가입한 완성차 4사를 제외하면 기존 금속노조에서 유일하게 남은 기업지부입니다. 만도기계는 2001년에 금속노조에 가입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지금 하려는 얘길 8년 동안 계속 하고 있는 거죠. 그렇게 줄곧 기업지부를 지역지부로 재편하려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해왔지만, 금속노조 중앙에서는 어떤 변화도 없었고 사실 들은 척도 잘 안했습니다. 그나마 현대·기아차의 판매·정비 동지들은 행복한 거예요. 거기는 덩치가 있으니까 금속노조가 신경을 조금 쓰는 거거든요. 

제가 볼 때 이 문제의 근원은 금속노조가 자기 꿈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산별노조 만들면 더 나아지지 않겠냐는 생각만 있지, 금속노조가 어떤 교섭과 투쟁을 하려고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고 조합원들이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조합원 동지들이 뭘 알아야, 그러니까 금속노조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건지를 알아야, 거기에 동의를 하고 자신들도 실천하러 나설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이 좀 부족하다는 거죠.

사실 저희도 처음에 산별 전환을 준비할 때, 산별노조만 되면 뭐든 다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만도기계가 1998년에 파업을 하다 공권력 투입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평생 갈 일 없었던 유치장도 다녀오고 했는데, 산별노조 전환하면 그렇게 혼자 싸우다 당하지 않는다, 뭉쳐서 크게 싸운다, 그런 식으로 설득을 했던 거였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저희가 매각투쟁을 하면서 보니까 또 ‘나홀로 투쟁’을 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산별로 전환했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거죠. 애초 산별로 전환할 때의 생각과 전환하고 나서 부딪치는 현실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동의 얻으려면 ‘기준’이 아니라 ‘발전 전망’을 제시해야

기업지부를 지역지부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2003년에 본격화됐습니다. 2001년에도 이 문제가 터졌다가 금방 사그라졌는데,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 만도지부의 한 지회가 사측의 압력에 의해 떨어져 나가면서 기업지부의 기준인 ‘3개 이상의 광역시도에 사업장 편재, 3,000명 이상의 조합원’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지역지부로 당장 편제하라는 거였죠. 그 때 제가, “만약 만도기계지부 조합원이 3,001명이었다가 두 명이 정년퇴직이라도 하면 기업지부 해산해야 되는 거냐”라고 중앙에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을 해요. 그래서 “그 상황에서 두 명이 더 입사를 해서 3,000명이 넘으면 다시 기업지부로 가야 하는 거냐”라고 물으니 또 “그렇다”고 답을 해요.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틀려 먹은 거죠. 

현실이 이러다 보니 중앙교섭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2003년 중앙교섭을 처음 시도했을 때는 다행히도 중앙교섭을 통해 주5일제 문제가 결정지어졌죠. 여담입니다만, 당시 만도기계가 주5일제를 제일 처음 도입하기로 사측과 합의하면서 금속노조 중앙교섭도 수월해진 면이 많았죠. 어쨌든 그 때 중앙교섭이 (법 적용이 순차적으로 연기돼 있던) 규모가 작은 사업장들에서도 주5일제를 도입시키면서 위력 있게 출발을 했던 거죠.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작년, 재작년 중앙교섭은 완성차 사용자들이 빠지면서 제대로 하질 못 했잖아요. 물론 그럴듯한 요구안도 만들어져 있고 대정부 교섭도 요구하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교섭장에 사용자단체를 불러들이지 못하니, 조합원들은 “에이, 저거~” 이러게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뻥카’라고 느끼는 거예요. 예전에 주5일제 도입할 때는 중소기업 기업별 교섭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중앙교섭이 해냈다, 그런 게 있었는데, 작년, 재작년 중앙교섭은 사업장 단체협약보다도 못한 수준에서 정리가 되니, 여기에 조합원들의 힘이 실릴 수가 없죠. 지금도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가서 달라진 게 뭐냐고 묻습니다. 사실 달라진 게 없죠. 대공장일수록 더욱 달라지는 게 없는 겁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불공정 거래’가 아니라 ‘노조 무력화’다

조직재편 문제도 마찬가지 맥락에 있다고 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금속노조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가겠다는 게 제시되지 않고는 조직재편 문제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2003년 만도기계지부를 지역지부로 반드시 재편해야겠다면서 금속노조 임원들이 직접 와서 여러 차례 간담회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중앙 상집간부가 “조직재편 문제는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가는 게 맞습니다” 하는 발언을 하면서, 토를 다는 게 “징계받을 각오를 하고 한 말씀 드리면”이에요. 그게 금속노조 수준이었던 겁니다. 중장기적 계획 자체가 부재한 거. 안타깝게도 지금도 마찬가지죠.  

다음으로 지도력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별 전환에 모두들 정신이 팔려 있는데, 사실은 금속노조의 지도력이 정말 문제입니다. 금속노조에서 자동차분과회의를 하면 완성차 말고 부품사는 몇 안 부릅니다. 만도, 위아, 델파이 정도가 부품사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하는데, 그렇게 논의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완전히 ‘완성차 성토대회’가 되는 거예요. 부품사 입장에서는 완성차지부에게 이걸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저걸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 분과회의 자체가 제대로 될 수가 없고, 그런 게 누적되다가 보니까 완성차는 완성차대로 부품사는 부품사대로 따로 모이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풀리는 문제가 하나도 없는 거죠. 저는 지금 이런 상황을 중재해야 할 금속노조 중앙의 지도력 부재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또 자동차산업 정책을 이야기하면서 기껏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 단어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공정 거래’란 건 자본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의 상황이잖아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게 ‘불공정 거래’란 겁니다. 이 문제를 노동조합의 눈으로 보면, 이건 ‘노조 무력화’예요. 꼭대기에 있는 완성차 사측이 물량을 미끼로 유노조사업장 노동자들과 무노조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이원화 전략을 쓰면서 무노조로 유도하고 있다는 거죠. 불공정 거래 문제는 자본가들 자기들끼리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고, 우리는 이런 입장으로 접근해야 연대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접근할 때 부품사 지회들도 “우리가 노조 없는 곳에 물량 빠져나가는 것 막겠다, 완성차지부도 함께 하자”는 식으로 먼저 제안할 것이 생기는 겁니다.   
       
‘성과급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예전에는 완성차에서 임금이 올라가면 부품사도 임금이 올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완성차에서 자기 정규직노동자들에게 성과급 주고 그만큼을 부품사 때려잡아서 뺏잖아요. 회사에서 특별상여금이 나오면 활동가들이 조합원 동지들에게 “이게 순전히 우리 몫입니까?” 하고 물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부담스러워서 안 하죠. 완성차의 활동가들이 조합원 동지들에게, “지금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성과급으로 와서 우리를 배불리고 있는데 이거 받고 그냥 땡칠 거냐, 정말 이대로 받아도 되는 거냐”라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걸 받아서  금속노조 차원에서 부품사와 완성차가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으로 만들어 가야죠. 이런 식으로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걸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겁니다.  
   
그리고 지금 금속노조 방침이 뭔 줄 아십니까? 2009년 상황이 어려우니 노사협의 같은 게 아니라 교섭으로 돌파하란 겁니다. 이게 무슨 방침입니까? 그냥 상식이잖아요, 상식. 뭐 결국에는 쟁의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는 얘기일 텐데, 산별노조의 방침 치고는 너무 부실하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을 보는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당연한 거죠. 그래서 하루빨리 중장기 발전 전망을 만들어 조합원 동지들한테까지 제시해야 하고, 또 지도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역사적인 산별전환 의미 흐리는 일방적 결정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겁니다. 각 단위에서 대표자 역할을 해본 사람, 그리고 그 속에서 열심히 했다고 증명된 사람들이 실장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시스템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서로 다른 정파 활동가들과 부대끼면서 대중사업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부족하더라도 합의를 하고 현실을 인정하고 가는 훈련이 몸에 배는 거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실장 같은 중요한 역할들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방침을 실천할 때 실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이해하고 의견을 좁혀가는 과정이 정말 중요한 거죠. 기업지부들에게 때가 됐으니 지역지부로 편제하라는 것은 정말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어떤 단계를 거쳐 어떤 과정으로 가야 문제가 덜하겠구나, 오히려 다른 사업들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해줘야 하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금속노조에는 지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오동진: 기업별노조가 자꾸 힘이 약화되고 그러다보니 산별이 되면 모든 게 다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우리가 해왔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해주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현대자동차 판매위원회에서 박영기 부의장께서 토론하실 텐데요. ‘위원회’라는 체계는 조금 낯설 것 같습니다. 이런 게 금속노조의 현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서 얘기 듣도록 하겠습니다. 

forum_05.jpg박영기: 반갑습니다. 현대자동차 판매위원회 부의장 박영기입니다. 제가 속한 판매위원회는 대략 6,700명 정도로 구성돼 있고, 18개 지회로 나뉘어 있습니다. 현재 논란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거론되는 것이 완성차 판매·정비가 아닌가 싶은데요. 2006년 산별전환 투표가 실시될 당시 저는 인천지회장이었는데, 정말 앞장서서 산별전환 찬성을 주장했었습니다. 지금도 산별전환이 투표를 통해 성사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산별전환을 통해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 조합원들을 위한 대안이 마련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도 많았고요. 

그런데 2006년 12월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는 새로 가입한 완성차 대기업들이 2009년 9월에 지역지부로 조직을 재편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판매나 정비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돼서 금속노조에서는 ‘기업지부해소대책위원회’를 꾸렸는데, 6,700명 조합원의 대표인 저는 처음에 그 회의의 성원이 될 수 없었고, 또 참관해서도 발언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제가 발언권을 얻어서 몇 가지 질문과 지적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지역지부로 편제하는 것이 원칙이다”라는 되풀이되는 주장뿐이었죠. 

찢어놔야 산별완성되고 지역사업 잘 되나

상황이 이런지라 지금 우리 판매노동자들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우리 조직 내부사정을 보면, 사업장이 한라부터 설악까지 흩어져 있는 데다 어떤 지점은 노동자들이 4명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 모래알 같이 흩어지기 쉬운 조직을 20년 역사를 통해 어떻게 중심을 만들고 모아내서 단결하고 투쟁해왔는데, 하루아침에 대안 없이 그냥 “지역으로 들어가서 비정규직과 연대해라” 하면, 그게 될 리가 없죠. 만일 금속노조에게 금속노조 중앙 해체하고 금속노조 지역지부는 민주노총 지역본부로 들어가라 하면 그거 찬성할 사람 없을 겁니다. 제가 금속노조 중앙에 묻고 싶은 것은 왜 꼭 찢어놔야만 산별이 완성되고 지역사업을 잘 할 것이라 생각하냐는 겁니다.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충분하게 지역사업을 할 수 있는데 그런 방안들은 왜 고민하지 않느냐, 그렇게 압박해서 지역으로 편제했을 때 더 나쁜 결과가 초래되면, 조합원들이 겪어야 할 분열과 혼란은 누가 책임질 거냐는 겁니다. 

제가 이러한 문제제기를 줄곧 해왔습니다만, 사실 현장조합원들은 아직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판매위원회에서 이 문제 가지고 홍보를 다니면서 조합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산별 전환과 관련해서 제일 편한 사람들은 그냥 팔짱끼고 구경하는 사람들이고, 그 다음 편한 사람들은 원칙만 주장하는 사람이다, 정말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이 힘들다고요. 힘들게 산별전환 결의를 했으면 여러 조건을 따지면서 이걸 구체적으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하는데, 정말 별다른 고민도 없이 지역으로 다 찢어지라는 결정만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는 게 진정한 활동가며 노조간부인지 의심스럽다고요.  

지금 4월에 금속 중앙에서 결정이 안 되면 5월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투표를 강행하겠다고 하고 있는데, 만일 그렇게 강행했을 때 판매 현장에서 발생하는 혼란들을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저한테는 표결권 한 장도 없어요. 물론 시간이 흐르고 막상 상황이 닥치면 일단 대안이나 계획들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지금 금속노조는 “아니 결정했으니 빨리 들어오셔야지 왜 그러십니까”만 되풀이 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혼란스럽다는 거죠. 정말 이런 식의 태도가 노동조합의 미래와 조합원들의 조직적인 단결과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에 이익이 되느냐 하는 의구심이 굉장히 듭니다. 어쨌든 총체적인 내용은 이렇고 세부적인 사항은 토론을 통해서 더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동진: 토론을 하지 못하더라도 방청객으로 오시라고 초청을 했습니다만, 아마 부담이 되서 그런지 금속노조 본조에서는 오늘 아무도 못 오셨네요. 기아자동차 현장토론회 하고 일자가 겹친 것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올해 9월이면 앞서 정성희 소장님이 비유하신 것처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옷에 몸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 맥락에서 오늘 많은 문제제기들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잠깐 다른 산별노조 상황을 말씀드리면, 보건의료노조가 한 달 전에 병원연맹을 해산했다고 합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을 추진한 지가 10년이 됐는데요. 연맹 소속 조직들이 100% 산별노조로 전환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그렇게 10년의 준비를 거친 다음에 지금에야 대의원대회를 열어서 연맹을 해산했다는 겁니다. 그런 것에 비해 금속은 참 화끈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지난 15년 전부터 업종 사용자단체라고 할 수 있는 조선공업협회와 교섭을 하고 있는 조선업종 조직들도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죠. 철강도 마찬가지고요. 내부에서는 일사불란한 조직편제 기준을 관철하려고 하는데 현장은 못 따라가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문제들을 제대로 숙고하기 위해서는 현장토론과 지역토론이 활발히 있어야 할 텐데요. 잠시 쉬고 이제 현장에서 참석하신 분들과 말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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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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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_03.jpg오동진: 조금 전에 박홍귀 전 기아자동차 위원장님이 방청석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최근 기아자동차가 현장이 굉장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요. 왜 지금 기업별지부 유지를 위한 서명을 받고 총회를 요구하고 계신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계획이신지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홍귀: 저는 일단 금속 지도부나 현장에서 지도자 위치에 있는 분들이 저를 오해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업별노조 회귀’를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산별노조하에서 ‘기업별지부 유지’를 하자는 것이죠. 기업별노조란 건 산별노조 가기 전 상태잖아요. 저는 그걸 주장하는 게 아니라 기업지부를 유지를 해달라는 겁니다. 이점 먼저 말씀드립니다.

조합원 누구도 지역으로 갈라질 줄 몰랐다

이 문제는 일단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첫 단추를 뽑아야만 다시 맞출 수 있잖습니까? 첫 단추는 놔두고 두 번째 세 번째 단추 가지고 잘 한 번 맞춰보자는 게 지금 현재 상태라고 봅니다. 2006년 6월에 자동차 4사가 금속노조에 가입을 했을 때만 해도 나중에 지역별로 갈라질 거라고 알고 있는 조합원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현장활동가 중에는 알고 계셨던 분들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기아차 조합원이 3만 200명 중에 3만 150명은 몰랐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가 홍보활동을 집중적으로 시작한 1년 전쯤부터 조합원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조합원도 모르게 조직형태를 변경하면 엄청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겁니다.
 
그리고 우리 금속 지도부가 고정관념이 딱 박힌 것 같아요. 산별은 지역으로 갈라야만 그게 기본이고 원칙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젭니다. 우리가 산별로 갔던 것은 15만이 하나 돼서 정치사회적 요구를 하는 게 훨씬 유리하고, 15만 전체가 하나 돼서 싸울 수 있다는 장점들 때문이잖아요. 저는 지금 그 15만을 유지하면서 이후의 문제들을 논의하자는 겁니다. 지역지부로 재편하느냐 기업지부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혼용하느냐, 이런 조직형태는 정말 여러 가지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 논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를 맞게 되는 사업장들의 조합원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아자동차 같은 경우는 현대자동차보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현대차는 울산이라는 제일 큰 공장이 하나 있어서 울산공장이 주도하면 전체를 챙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아자동차는 다 30%씩 찢어져 있어서, 지역별로 갈라지는 건 그야말로 회사가 딱 좋아할 만한 겁니다. 구심이 없어져 버리면 회사가 얼마든지 가지고 놉니다. 그런 심각한 문제들이 있는 사업장에서 조합원들과 전혀 공유도 없이, 토론회 한 번 없이 이런 방향으로 진행이 되어 온 것이거든요. 심지어 저희가 홍보하고 주장하기 전에는 조합 홍보물에 ‘지역지부’라는 네 글자 한 번 넣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역이 산별 원칙이라는 것은 고정관념

지금 제가 이 문제를 기아차 내에서 공개적인 토론을 주도하고 있는데, 제가 쓰러져 누울 수도 있는 문제고, 그러면 잡음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조합원 총회가 흐지부지되면 저는 이후에 오히려 대중적으로 ‘금속 무용론’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봅니다. 그 때는 활동가들도 이미 다 신뢰를 잃어버린 상태일 것이기 때문에……, 제가 볼 때는 지역으로 가르고 딱 첫해면 조합원들 반란 일어납니다. 그래서 지금 첫 단추를 뽑아야 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이 미국처럼 이틀, 삼일씩 가야 지역을 넘어갈 수 있는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는 아니잖습니까? 하루면 전국 집결 투쟁도 가능한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꼭 지역으로 갈라야만 산별이 완성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고방식들이 좀 바뀌었으면 합니다. 

참석자1: 지금 기아차에서 조합원 총회가 사실상 진행 중인데,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박홍귀 전 위원장님도 오셨고 의견들이 수렴되고 대안을 만들어내면 결정적인 파국은 막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총회를 하게 된 이유나 조합원들이 총회 소집에 호응을 하게 된 이유는, 판매나 정비에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금속 본조가 대안을 제대로 못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현장의 대의원들이나 활동가들을 만나보면 “왜 본조는 말을 못하고 이런 데 나와서 입장을 밝히지도 못하냐”고 하는데, 사실 대안이 없는 거예요. 대안이 없으니까 할 말도 없고, 예민한 문제에서 말 잘못했다가 박살날까봐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하부영 전 본부장님이 거칠지만 나름대로 여러 가지 요구들을 종합적으로 수렴하는 대안을 제출하셨으니까,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총회 소집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될 여지는 없는 건지, 허심탄회하게 얘기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충분히 얘기해서 소통이 돼서 여기서 모인 의견을 금속 본조나 기아자동차지부에 전달하면, 조합원들이 흔쾌히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의견을 좀 활발히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한 산별 가는 것 아니라는 현실 인정이 첫 걸음

하부영: 자료집 21쪽에 도표가 두 개 있습니다. 좌측에 있는 것은 금속노조 자료집에 말로 나와 있는 걸 제가 정리한 겁니다. 일단 지역지부별로 편제를 완료하고 완성차 기업의 기업지회들이 모여서 ‘대표지회’를 뽑자는 거죠. 대표지회장 선출은 간선제로 하고요. 금속노조 중앙에서는 이를 기존 기업지부가 관장하던 기업별 노사관계의 통제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는, 다시 말해 기업지부 해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안이라고 얘길 합니다. 그렇지만 반대하는 쪽에선 이 안에 대해서도 기업의 현장권력을 약화시킬 것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 공황기에 기업별 현장권력을 약화시키면 우리 조합원들 고용은 누가 책임질 거냐는 거죠. 대표지회장을 간선제로 뽑는 것도 현장권력을 약화시킬 거라 생각하고요. 

제 주장은 이걸 좀 보완해보자는 겁니다. 지역지부로 가면 뭐 대단한 게 생긴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지금 지역지부 모습은 기업별협약을 하는 기업지회들의 연합체 수준입니다. 지역지부 자체의 전략과 목표는 없습니다. 중앙 지침을 하달받아서 지회들에게 전달하는 조직일 뿐이죠. 다시 말해 지금 상태로는 지역지부로 조직을 재편한들 “무늬만 산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기업지부들 입장에서는 바뀌는 것도 없는데 전체 조합비의 54%였던 걸 40%로 예산만 뺏기는 거죠. 이런 점들을 인정하고 금속노조를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첫째가 산업정책, 특히 조합원들의 다수가 고용돼 있는 자동차산업과 관련한 정책을 생산해야 한다는 거고, 이를 가지고 업종별협의회를 강화하고 업종별 교섭과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완성차 정규직과 부품사 및 비정규직들의 문제를, 지역의 문제를 골고루 관장할 수가 있겠다는 겁니다. 이런 얘길 하면 현재의 산별 골간 조직체계를 짠 사람들은 “유럽의 산별은 그런 거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사정에 맞게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고요. 다음으로, 관습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금속노조 5대 요구안’ 같은 것들을 산업차원에서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들로 채워가야 할 겁니다. 그래서 불법 다단계 하도급 과정에서 생기는 ‘중간착취 문제’ 같은 것들을 산업 전체에 종사하는 정규직·부품사·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풀어가자는 거죠.  

지역 골간 인정하면서 현 체계 유지 가능하다 

그리고 조직체계 재편과 관련해서 저는 지역지부로 재편을 하는 것은 찬성합니다. 다만 과도기적 단계가 필요할 겁니다. 이를 테면 금속노조의 골간체계는 지역지부로 단일화하되, 현재의 기업지부들은 명칭만 기업지회로 바꿔서 현행 시스템이 실제로는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는 거죠. 대신에 기존의 기업지부였던 기업들은 ‘기업지회 연합회’라는 체계를 만드는 겁니다. 실제 한진중공업에서 이러한 조직 틀을 운영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조직 틀 속에서 일상적으로 지역에서 연대사업 열심히 하다가, 임단투를 해야 할 땐 ‘기업지회 연합회’를 중심으로 기업별 임단투 열심히 하는 거죠. 이를 테면 기업지회 연합회를 소산별처럼 운영하자는 겁니다. 이러한 형식은 과도기적인 틀입니다만, 한국 상황에서 꽤 오래 지속되리라 봅니다.  

참석자2: 금속노조 중앙이 제시하는 안에 대해서 질문이 있는데요. 각 기업별로 쪼갠다고 했을 때, 기아자동차 같은 경우에는 화성공장과 소하리공장 모두 경기도에 있습니다. 만약 그 둘 중 대표지회장이 나왔을 경우 금속노조 경기지부장과 기아차 대표지회장 사이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갈등이 없을지 염려가 되는데요.

신성목: 화성공장의 지회장과 소하리공장 지회장이 경기지부 운영에 참여하고요. 대표지회장은 그것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기업 문제는 대표지회장이 모든 걸 다 알아서 하지만, 골간조직에는 권한이 없어요. 역학관계랄 게 없습니다. 기업지회로 간다는 건, 한 기업지부가 통으로 다 어느 지역지부 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각 사업장들이 해당 지역으로 쪼개져서 들어가는 겁니다. 광주는 평상시에 광전지부에서, 소하리는 경기지부에서 활동하는 거죠. 조직이 기업지회도 있고 지역도 있고, ‘이중구조’로 가는 겁니다. 사업장 문제는 대표지회가 맡아서 하고요. 이 대표지회장을 직선으로 하면 완성차도 아마 큰 문제 없을 겁니다.

‘업종별교섭으로 돌파’라는 명확한 상이 그려져야

참석자3: 어떤 안이든지 그 상을 그린 사람의 목적이 있을 겁니다. 이를 테면 기업지부를 지역별로 쪼갠 다음에 대표기업지회를 선출할 때 간선제로 하자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요. 그걸 주장하시는 분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유추만 하고 있어서 좀 아쉽고요. 어쨌든 방향성에 목적이 내재해 있다면 이를 논의하지 않고 단순히 기술적으로 봉합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자동차 부문위원회’와 발제자가 주장하시는 ‘업종별교섭’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금속노조 안은 “업종협의회에서 교섭권을 가져간다면 골간조직 깨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걸 자꾸 오해해서 “이런 식으로 조금만 바꿔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겁니다. 차라리 교섭구조 자체에 있어서 “중앙교섭은 안 되면 일정 부분 포기하자, 그리고 업종별교섭으로 뚫겠다.” 이렇게 명확히 선을 그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토론이 된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발제자께서 지역교섭의 의제가 뭔지 나중에 보충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자체와 실질적인 교섭을 하려는 것인지, 그렇다면 기존의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를 하는지, 또 지역단위 교육훈련 문제는 다룰 것인지 등 지금까지 노동운동이 거의 금기시했던 내용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또 산업정책에 대해서도, 제가 보기에는 산업정책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많았어도 그 산업정책이 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안을 갖고 사용자단체나 사업자단체와 논의해야할지 방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 정책이 없는 거죠.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걱정되는 건 의도치 않게 금속노조에서 중요한 결정들이 9월에 몰려 있다는 점입니다. 조직편제 문제도 그렇고, 완성차에서의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합의가 만들어지지 못할 경우 아무것도 못하고 각개격파될 상황을 염려해야 합니다. 긴장감을 갖고 임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산별노조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노사관계

참석자1: 저는 박홍귀 전 위원장님이나 기아 조합원들의 문제의식에 우리가 수용할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사관계가 체계화되어 있다는 스웨덴을 봐도 국가협약과 산별협약이 있고 기업별 보충협약이 있습니다. ‘지역협약’은 없어요. 지방자치단체를 끼고 산업공단 노동자 전체의 복지문제에 관해서 공단 사장단하고 협약을 하는 식으로 ‘지역사회협약’을 맺을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