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청소노동자들의 맑고 향기로운 늦깎이 공부

노동사회

늙은 청소노동자들의 맑고 향기로운 늦깎이 공부

편집국 0 3,230 2013.05.29 11:05

지난 호에 ‘학습소모임’에 관한 캠페인을 시작하고 나서 몇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운영 중인 학습소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전화, 그리고 이런저런 학습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는 전화……. 그 중에 가장 내 관심을 끈 것은 원주시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이 몇 달 전에 시작했다는 학습소모임이었다. 

‘우리환경’은 원주시 소재의 환경미화업체다. <KBS 추적60분>에서 방영되었을 정도로 시와 결탁한 비리와 부정부패의 의혹을 받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간혹 기사를 통해서 우리환경 노동자들의 몇 년에 걸친 투쟁 소식을 보곤 했지만, 멀리 있다는 이유로 찾아보지 못했었다. 그 회사의 환경미화노동자들이 하고 있다는 학습소모임이 궁금해졌다.

saramsari_01.jpg환갑 지난 노동자들이 소리 내 읽는 『노동자의 철학』 

학습소모임을 함께 하고 있다는 김광호 씨(민주노동당 원주시위원회 전 위원장, 이하 ‘전 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내가 찾아간 곳은 간판도 걸려있지 않은 허름한 사무실이었다. 멀리서 손님이 왔다고 서둘러 차와 음료를 내놓는 아저씨들은 얼핏 봐도 60세가 넘어 보이는 늙은 노동자들이었다. 새벽 4시부터 오후 5시까지 청소 일을 하는 그들은,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그 사무실에 모여 공부들을 한다고 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들 하시라며 맨 뒷자리에 앉아 그들의 공부 시간 내내 참관을 했다. 평균 연령 60세가 넘은 고령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공부를 할까? 

그들은 금속노조에서 나온 『노동자의 철학』 교재를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었다. 그들 중 한 분은 아직, 한글을 읽기는 해도 쓸 줄은 모른다고 했다. 나이도 많고 배움도 짧아 머리털 나고 공부라는 걸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노동자들이 윤독을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한 문단, 혹은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여기저기서 질문들이 이어졌다. 김 광호 전 위원장이 질문들에 답하고 설명을 하는 강사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지만, 강사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동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그들의 언어로 쏟아내는 말들 속에서 ‘우리환경’의 회사 상황과 노동자들의 투쟁 상황을 너무나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참관한 날의 공부 주제는 ‘자본주의하에서 일그러진 노동자의 자화상’과 ‘노동자로 사유하기’였다. 자신들이 철학책에서 더듬더듬 읽은 한 문장 한 문장은 자본주의하에서 평생을 노동자로, 그것도 천대 받는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겪은 환경미화노동자들의 삶으로 고스란히 번역되어서 쏟아졌다. 강사의 설명은 자주 끊겼고, 나중에는 누가 강사인지 모를 정도가 됐다. 

침침한 눈으로 거침없이 본질을 꿰뚫다

우리환경은 임금과 일반경비를 포함하여 총 68억여 원을 불법적으로 횡령하거나 부당이득을 취득했단다. 임금의 경우 실제 운전원의 경우는 일일 약 9만 원, 미화원의 경우는 약 8만 원을 지급하도록 하였으나, 일괄적으로 1백80만 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회사가 차액을 챙겼으며, 복리후생비로 책정된 피복비나 청소에 필요한 모자나 장갑 등 소모품의 경우는 오히려 환경미화원들에게 판매하는 등의 방식으로 전액 횡령하였단다. 

또한 실제 인원을 부풀려서 이중으로 임금을 착복했단다. 실제 인원은 130여 명이지만 원주시에는 160여 명으로 신고하여 30~40여 명 노동자의 임금을 가로채고, 골프연습장 건설을 위한 공사비용을 원주시로부터 지급받아 추가 부지구입과 공사비용을 충당하였단다. 시민의 세금이 사장의 개인 사업비용으로 지출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에 분노하여 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하자, 정년퇴직 조항을 만들고 조합원들을 부당해고 했단다. 

처음에 이 노동자들은 한국노총 강원지역 일반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그들은 노조를 탈퇴하고 새 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총 중부지역일반노조 우리환경현장위원회 소속 조합원이 되었다. 왜냐하면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회사와 합의하여 59세 정년조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노동자의 철학』을 공부한 그들이 말하는 조직변경의 이유는 너무나 단순했다. “같이 먹고 살아야지. 나이 먹었다고 세 끼 먹을 거 한 끼만 먹고 살 수 있나? 좀 적게 먹더라도 노동자들은 같이 먹고 살아야하는데, 노조가 나서서 사람 자르는 조항을 만들었으니, 그 노조를 어떻게 믿어?” 

그들에게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경영 잘못하면 우리 밥줄이 위태로운데 당연히 참여해야하는 것”이었고, 그들에게 노동자의 정치참여는 “다른 건 몰라도 청소행정은 우리만큼 잘할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참여를 안해? 다른 거? 그건 다른 일 하는 노동자들이 젤 잘 알잖아. 노동자들한테 물어봐가면서 정치하면 못할 사람 누가 있어? 근데 노동자들한테 안 물어보고 지들 맘대로 하니까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이지”여서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해고자 복직 투쟁은 “같이 먹고 살아야하니까” 당연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연대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냥 “힘을 합쳐야 이길 수 있으니까, 개떼처럼 몰려가서 함께 하는 것”이었다.  

saramsari_02.jpg속아서 산 세월 보상해주는 공부, 당당하게 하는 공부

학습소모임이 끝나고 이어진 뒷풀이 자리에서 나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다. 왜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공부를 해보니까 어떤지 등등. 나의 계속되는 우문에 무릎을 치게 만드는 현답들이 쏟아졌다. 

“그동안 속아 산 게 분해서……. 싸우려니까, 우리 같은 늙은 노동자들도 뭘 좀 알아야겠더라고.” 
“처음엔 공부하라니까, 기겁을 해서 도망도 다녔지. 이 나이에 공부는 무슨~ 싶어서.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그게 아니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속고도 모르고 살았는지, 내가 노동자면서도 얼마나 자본가가 시키는 생각만 하고 살았는지, 똑똑히 알겠더라니깐.”
“나이도 많이 먹고, 머리가 굳어서 공부를 해도 며칠 못가. 그날은 씩씩거리면서 안 것도, 다음 날만 되면 금방 다 까먹는단 말이지. 근데 신기한 게 말이야. 회사하고 싸울 일이 생기거나 시장 면담을 가거나, 막상 쌈하러 들어가면, 다 까먹은 줄 알았던 게 딱 생각이 나면서 자신감이 생긴단 말이야.”
“맞아. 인제 사장 앞엘 가나, 시장 앞엘 가나 쫄지를 않아. 너 같은 놈들도 우리 없으면 말짱 아무것도 아니다, 싶으니까 당당해진다구.”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몇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늙은 노동자의 노래>가 떠올랐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노동자 되어……” 60이 넘은 나이에 이제사 한글을 깨쳐가며 뒤늦게 시작한 늦깎이 공부. 그들에게 공부는 속아만 산 억울한 세월을 해석해주어, 당당하게 자본의 세상과 맞서게 해주는 무기였던 것이다. 

지저분한 세상 깨끗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느끼다

민주노총 중부일반노조 우리환경현장위원회에서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진행하는 학습소모임 외에 한글교실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아직은 “챙피해서”라는 이유로 많은 조합원들이 참여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들에겐 목표가 있단다. 105명의 조합원들이 모두 다 한 번씩은 이 철학교재를 같이 읽는 것. 

길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쓰레기를 치우는 늙은 노동자들은 누구보다 빛나 보였고, 그들이 쏟아내는 단순하지만 거침없이 쏟아내는 언어들은 어떤 철학이나 사회과학보다 살아있어 보였다. 나는 이 취재를 하는 내내, 그 선배 노동자들에게서 ‘힘’을 받았다. 더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힘, 더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고 싶어지는 힘. “원주시 청소는 우리가 책임진다”는 그들의 당당한 노동만큼이나, 그들의 당당한 투쟁과 늦깎이 공부에선 지저분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줄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