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아이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방법

노동사회

열한 살 아이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방법

편집국 0 3,067 2013.05.29 11:04

작년 12월, 만 아홉 살 생일을 지난 우리 집 큰 애는 해를 넘기자마자 우리 나이로 열한 살이 되어버렸다. 올해부터 난 이 아이를 ‘10대 남성’으로 대접해주기로 마음먹었다. 3월이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니 요즘 아이들 성장속도로는 10대 대접이 아주 안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3학년이 되자 사람들이 학교성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전철 안에서 처음으로 “너 공부 잘하냐? 몇 등이지?” 하는 질문을 받았다. 할아버지뻘 되는 그 분이 대뜸 물었을 때 우리 가족은 너무 당황했다. 

큰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중간이에요….”라고 힘없이 답했다. 그때는 잘 몰랐다. 큰애의 학교생활에 시련이 시작된 줄은. 

“저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어요.”

1학년, 2학년 때 아이는 학교생활을 꽤나 재밌어 했다. 서울 변두리 농경지 옆에 있던 작은 학교였는데, 뭐든 하면 잘 한다고 칭찬도 듣고, 상이 많은 학교여서 그런지 몰라도 이것저것 상도 잘 받아왔다. 그러나 낡은 아파트단지를 허물고 들어선 브랜드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되자 학교는 여느 서울 학교들처럼 ‘변신’하기 위해 분주해졌다. 

3학년이 시작되기 전 큰애는 현재의 학교로 전학을 왔다. 여기도 ‘정보에 강한 엄마들’ 사이에서는 참 ‘널널한 학교’라고 평가받는 곳이라는데, 아이는 학교가 재미없다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시험이 많아졌다. 뭔 경시대회도 많아지고, 준비해갈 것도 많다. 

여름이 지나고 학교에서 개교기념일 그림대회가 열렸다. 아이가 처음으로 상장을 받아왔다. 내 앞에 내미는데 영 시큰둥하다. 은상이었다. 

“와, 멋지다. 잘했어!” 
“이거 내가 잘해서 준 상 아니야, 그동안 한 번도 상 못 탄 애들한테 주는 거라고 선생님이 그랬어.”
“…….”

결국 난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아, 선생님 얘기는 한 번도 상을 못 탄 아이들 준 거는 맞다고 한다. 늘 상을 독차지하던 아이가 자기는 왜 상이 없냐고 묻길래 대답해줬다고 한다. 

“교사들끼리 그렇게 주기로 얘기했어요. 제 얘기 듣고도 어떤 애는 좋아하면서 받아갔는데, 그걸 마음에 두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아이가 학교에서 재밌게 생활하는지,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는지 묻자 선생님은 당황스러워 했다. 

“성적이나 공부법 물어보시는 분들은 많아도 학교생활 물어보시는 분들은 없어서…….”

급기야 가을 들어서는 말도 많은 ‘일제고사’ 대상 학년이 되어 두 번이나 전국단위 시험을 치러야 했다. 며칠 전 택시를 탔는데 뭔 얘기 끝에 기사님이, 

“공부 잘하냐? 이렇게 힘든 일 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 돼라!” 

하니,

“저 훌륭한 사람 못 돼요…….”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에 놀라, 

“왜 그렇게 생각해?” 

그 자리에서 소리 지르듯이 묻고 말았다.

“나 반에서 20등이야, 32명 중에 20등이라고 선생님이 그랬어.”

“ ……!”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나중에 다시 물어보았다. 초등학교에서는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고, 설령 교사들이 내부적으로 등수를 매긴다 해도 아이한테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한 명씩 불러서 자기 이름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보여줬어.”

아래서 세는 게 더 가깝다는 걸, 아이는 확인했던 것이다. 이 날 결심을 굳혔다. 

세상에 맞서는 아이의 힘을 믿자!

이전까지는 사실 학교성적, 등수, 시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줄타기하는 심정이었다. 학교생활에 성실하길 바랐고, 배움에 대한 욕심도 크길 바랐고, 승부욕도 있길 바랐다. 그러나 게으른 학부모로서, 자식 일보다 내 일 때문에 헉헉대는 직장인으로서, 가장 확실한 방책은 아이 스스로 내면의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줄타기를 끝내기로 작정했다.  

나와 아이와 사회, 학교의 행복한 공존을 도모하기 위해 현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부터 누가 등수 물어보고 성적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는 거 어때? 우리 엄마아빠는 학교 성적은 중요하지 않대요. 이 세상에 배워야 할 게 100이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5밖에 안 되는 거니까요. 저는 부모님하고, 방과후학교하고, 책하고, 이 세상으로부터 훨씬 더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엄마, 나도 알아. 나도 엄마처럼 생각하거든! 근데 밖에서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런 말이 잘 안 나온단 말이야.”

그날 이후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두 번의 일제고사를 치르는 동안 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게 못내 불편했었다. 아이한테, 파면당한 선생님들한테 미안했었다. 그런데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아이가 시험을 거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자. 세상과 맞서고, 세상 속에서 배우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의 힘을 믿자.

열한 살 아이를 존중하는 방법

어른 맘대로 부모 맘대로 아이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언어적, 물리적, 정신적 완력을 행사하시는 분들, 많으실 줄 안다. 나 역시 그런 어른에 속해왔다.   

지금 소개한 몇 개의 일화에서 아이가 학교생활 때문에 참 고달프겠구나, 느끼셨다면 반만 건지신 거라 말하고 싶다. 아이는 자기 존재를 걸고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줄 세우기의 대상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 

어른들은 이미 체념했지만 아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저항할 것이다. 그 힘을 믿고 돕는 것, 그것이 내가 열한 살 아이를 어엿한 10대로 존중하는 방법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