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포조선 투쟁, 이제 다시 시작이다

노동사회

현대미포조선 투쟁, 이제 다시 시작이다

편집국 0 3,096 2013.05.29 11:03

 

jk0818_01.jpg
[ 미포투쟁은 현장활동가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대 움직임으로 인해 가능했다. 2007년 12월 24일부터 31일간 진행된 굴뚝 고공농성 모습   ▷ 참세상 ]

작년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울산은 물론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현대미포조선 투쟁(미포투쟁)이 1월23일 현대미포조선 노사와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지역본부) 간 합의서 체결을 통해 일단락되었다. 비정규직 현안문제에 대한 정규직 활동가들의 현장투쟁에서 비롯된 미포투쟁은 김순진 조합원 징계, 이홍우 조합원 투신, 김순진·이영도 조합원의 굴뚝 고공농성과 구속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진영은 물론 전 사회적인 주요쟁점으로 제기되고 비정규·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민주노조운동의 핵심과제로 요구받는 시점에서 벌어진 미포투쟁의 의의와 투쟁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은, 향후 비정규투쟁의 새로운 전형을 모색해보는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아직 지역본부 차원의 공식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터라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임을 미리 밝혀둔다.

승리였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
미포투쟁 노사 합의사항

- 이홍우 조합원 산재준용 처우
- 유감표명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 용인기업 정규직 우선복직
- 현장대책위 징계 최소화
- 민·형사상 최대한 선처
*****************************************************************************************************


미포투쟁의 합의결과만 놓고 본다면 요구사항의 상당부분을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여타 투쟁들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의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최종 합의내용에 대해 미포 현장 동지들을 비롯한 지역의 대다수 동지들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다만 미포투쟁은 처음부터 많은 것을 얻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미포자본의 무단적인 현장통제에 맞서 최소한의 현장활동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방어적 투쟁’의 한계를 안고 있었다.

현대중공업의 교섭개입을 통해 미포조선 노사와 합의타결 과정을 거쳐 일단락된 미포투쟁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현장조직의 선전물 반입을 물리력을 동원해 원천적으로 차단하는가 하면 현장대책위 조합원 전원을 징계위에 회부하여 중징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포자본은 합의 이후 되려 현장탄압의 고삐를 더욱 옥죄고 있다. 박일수 열사 투쟁의 경우에서 보듯이 합의서 체결은 투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시작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미포투쟁은 완결된 투쟁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투쟁인 것이다.

‘따로 또 같이’의 득과 실 명확히 따져봐야

우선 4개월여 진행된 미포투쟁이 결실을 맺은 것은 수많은 동지들의 헌신적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열약한 현장조건과 사측의 무단적 탄압이 예상됨에도 용인기업 즉각복직 요구를 내걸고 현장투쟁을 시작한 미포조선 현장조직 17명의 동지들, 사측의 가혹한 현장탄압에 온몸으로 항거한 이홍우 조합원, 미포투쟁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혹한에 굴뚝농성을 감행한 김순진·이영도 조합원,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모범적으로 실천투쟁을 전개한 지원대책위 동지들, 철야노숙과 단식농성으로 투쟁의 기운을 북돋워준 진보신당 당원동지들, 그리고 천리 길 마다않고 한걸음에 달려와 함께 해준 전국 노동자들의 연대야말로 미포투쟁의 성과를 가능케 한 원천이었다.

이처럼 지속적이고 폭넓은 연대투쟁이 가능했던 것은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이라는 대의명분에의 공감, 현장활동가들의 투쟁에 대한 무모하리만치 과단성 있는 연대의지, 투쟁과정에서 미포자본·동구청·동부경찰서의 입체적 탄압에 대한 공분, 지역연대투쟁 정신을 복원시키고자 하는 공감대 형성 등이 두루 작용한 결과이다.

한편으로 미포투쟁 과정에서 노동진영의 대응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지역본부는 이홍우 조합원 투신 직후 “이홍우 조합원 쾌유기원 및 현대미포조선 현장탄압 분쇄를 위한 대책위”(지역본부대책위)로 전환하고 적극 대응키로 했으나, 임원선거, 사무처 성원 구속 등으로 조직적인 투쟁을 전개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한편 현대미포조선노조(미포노조)가 지역본부대책위에 불참함으로써 현장조직 동지들은 현장대책위를 구성하여 미포투쟁에 결합하였고, 지역 노동사회단체들 역시 별도의 지원대책위를 만드는 등 미포투쟁 과정에서 세 개의 대책위가 각각의 영역에서 투쟁을 펼쳤다. 

이렇듯 대책위가 분산된 형태로 나타난 데에는 지역본부가 미포투쟁의 정확한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한 점, 미포노조가 이번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가운데 극소수 현장조직 조합원 중심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점, 미포투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런 대응은 과거 지역투쟁들 -울산건설플랜트, 울산과학대, 이랜드 투쟁 등- 이 지역본부 중심으로 해당 투쟁주체들과 긴밀하게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투쟁을 진행했던 것에 비해 판이한 양상의 대응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상호보완적인 작용과 이견 해소의 장애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다. 노동진영이 단일한 조직적 대오를 갖추지 못하고 각개약진하는 모습을 보인 미포투쟁의 대응에 관해서는 별도로 세밀히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했어야

한편 미포투쟁은 시일이 지나면서 투쟁양상과 요구가 변화하는 흐름을 거쳐왔다. 투쟁초기 현장조직 조합원들의 주된 요구는 “용인기업 즉각 복직”이었으나, 이홍우 조합원 투신을 계기로 김순진 조합원 징계를 포함한 현장탄압과 산재은폐 등 사측의 악질적인 노무관리가 새로운 쟁점으로 제기되었으며, 굴뚝농성에 돌입한 이후로는 민·형사상 면책이 핵심쟁점으로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미포투쟁을 둘러싼 정세변화에도 노동진영의 대응전술은 고정화된 정형을 탈피하지 못한 채 현상유지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현장대책위의 경우 중식·퇴근선전전 방식을 투쟁 말미까지 고수하다 급기야 사측의 역공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했고, 지역본부대책위 역시 촛불문화제, 출근·거점선전전, 기자회견 위주의 제한된 활동에 머물러 미포투쟁 전체를 포괄하는 데 한계를 보였으며, 지원대책위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지역순회선전전, 투쟁기금 모금, 연대단위 조직을 통한 정몽준 타격투쟁 등 다양한 전술을 구사했으나 대중동원력 부재로 인해 소수 활동가 중심의 투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지역본부가 현장과 지역의 다양한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여 다수가 동의하는 투쟁계획과 방침을 적시에 제출할 때만이 유기적이고도 원활한 투쟁을 담보 받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미포투쟁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지역본부가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일정한 한계를 노출함으로써 실제 투쟁과정에서 많은 혼선과 갈등을 초래하였고, 특히 집회전술, 정몽준 타격투쟁, 물품공수 과정에서 이런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지역본부가 제반투쟁 전반에 대한 관장력을 가지고 전술운용의 지도력을 행사하는 문제는 시급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jk0818_02.jpg
[ 지난 1월17일 현대중공업 경비직원들에 의해 차량이 파손되고 농성물품이 불탄 현대중공업 앞 진보신당 농성장 모습  ▷ 진보신당 ]

현대중공업노조 연상시켰던 미포노조의 태도

박일수 열사 투쟁의 경험을 되짚어 보면, 투쟁초기 지역본부대책위에 결합했던 현대중공업노조(현중노조)가 대책위에서 이탈한 이후 상급조직의 방침에 반하는 행위와 더불어 농성장 폭력침탈 등 반조직적 행위를 한 이유로 금속연맹에서 제명당한 바 있다.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미포투쟁이 본격화되면서 미포노조가 보인 태도 역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본부는 미포노조에 대해 지역본부대책위에 참여할 것과 미포노사 합의 시 지역본부의 요구사항이 반영되어야 함을 분명하게 공식적으로 통보하였으나, 미포노조는 대책위 참여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본부가 개최하는 영남노동자대회를 취소를 요구하고 현장대책위 동지들의 현장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등 실질적으로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행태를 보여,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과거 현중노조와 유사한 행위를 하였다.

미포노조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활용론’과 ‘배제론’이라는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었으며, 결론적으로는 지역본부의 교섭창구로 미포노조와 접촉하며 활용론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미포노조의 반조직적, 반노동자적 행위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도와 수준의 차이는 있겠으나 산하노조, 특히 투쟁사업장이 조직적 입장이나 방침에 반하는 행위를 했을 때 상급조직 혹은 지역본부가 어떤 태도나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포투쟁 과정을 거울삼아 차제에 신중히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명확한 평가 바탕으로 다음을 준비하자

미포투쟁의 결과만 놓고 보면 △지역본부가 대책위를 구성하여 이 투쟁에 신속히 대응한 점, △사태해결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현대중공업과의 교섭을 통해 요구안의 대부분을 관철한 점, △지역본부·현장·지역으로 분리 구성된 대책위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투쟁을 지속한 점, △시민사회·정당 등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영남권지역본부·타지역 연대투쟁을 조직해 전국적 투쟁으로 쟁점화한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몇몇 동지들의 헌신적 투쟁으로 지속성은 유지했으나 전체적으로 투쟁의 집중력과 전술운용에서 한계를 드러낸 점, △투쟁과정에서 현대미포조선 현장조직의 조직(투쟁)력을 확장하지 못한 점, △투쟁과정에서 야기되는 이견이나 갈등을 해소할 만한 소통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한 점, △주요 투쟁거점이었던 굴뚝농성의 물품공수 투쟁에 소극적 대응한 점 등은 향후 보완할 과제로 지적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미포투쟁 합의 이후 “이제 급한 불은 껐으니 아쉬울 게 없다”는 듯 완전히 배째라 식으로 나오고 있다. 지역본부의 후속 협의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형사고소 취하를 유보하고 구속자 석방을 위한 노력을 회피하는 등, 합의이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되려 진보신당의 고소를 빌미로 합의파기를 운운하는가 하면 미포조선 현장활동가 전원을 징계하는 등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노사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용자들이 보이는 오만방자함의 전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몽 공화국’ 끝내지 않는 한, 투쟁도 끝나지 않는다

결국 관건은 우리가 쥐고 있다. 미포 현장조직 동지들에겐 사측의 탄압을 뚫고 꾸준한 현장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의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요구되고, 지역본부는 미포투쟁의 조기종결에 연연할 게 아니라 미포 현장동지들과 공동대응할 수 있는 논의구조를 유지하면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유지해야 하며, 지역 동지들에게는 미포 현장활동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격려가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그럴 때만이 많은 투쟁사업장들이 투쟁이 끝나고 나서 스스로 사멸하던 뼈아픈 전철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울산 동구를 ‘몽 공화국’이라 부른다. 그만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동구 주민들의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건 정몽준이 지배하는 현대중공업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포투쟁은 동구의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나아가 이 땅의 노사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투쟁이다. 지금도 미포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