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연맹 안에서 바라본 민주노조운동의 리더십

노동사회

총연맹 안에서 바라본 민주노조운동의 리더십

편집국 0 3,441 2013.05.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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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덕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1988년 주식회사 대우자동차의 판매부에 입사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대학생 시절 내내 부채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수업도 학생운동도 참여 안 하고 그저 산에 다니길 좋아했다는 그는, 성인들의 조직인 직장에서 “(실적 때문에) 월말에 재떨이가 날아다니고 쪼인트가 까이는” 문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때문에 노조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했다. 그렇게 대우자동차(1993년 회사가 분리된 이후로는 대우자동차판매)에서 펼쳐진 그의 노동조합 활동은 대우자동차판매가 지난한 장기투쟁을 거쳐 2004년 노사합의를 이룬 후, 2005년부터는 민주노총에서 고용안정센터소장, 사무차장, 부위원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09년 2월6일, 그는 민주노총 부위원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김○○ 민주노총 특위위원장의 성폭력 사건이 터지고,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지도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심각하게 불거지는 와중이었다. 이 사건 진행과정에서 그가 서 있는 자리는 어떤 미묘한 균형점이었고 그의 역할은 균형추였다. 그가 먼저 사퇴한 4명의 부위원장에 이어 하루 뒤 사퇴서를 제출하면서, ‘지도부 전원 사퇴’를 두고 다소 갈렸던 내부 입장은 정리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균형감각은 그가 부위원장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현장과 중앙의 소통과 관계된 내용이나, 5기 지도부 내에서 정파가 서로 다른 임원들 사이의 의사소통 통로 역할을 자임했던 태도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그런 그가 이번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1년 반가량의 부위원장 활동 속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의 리더십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굴절률 낮은 매개체를 통해 보다 세밀하게 볼 수 있을 것이었다. 2009년 3월3일 오후, 서울역 부근에 위치한 대우자동차판매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전병덕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만났다.     

문제를 누적시킨 민주노총 지도부의 소통불능

이주환: 민주노총 부위원장직을 사퇴한 지 한 달가량 지났는데요. 그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을 했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었습니까? 

전병덕: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대응 관련해서 노조 교육을 몇 차례 다녔습니다. 부위원장 사퇴하기 전에 약속된 일정이었거든요. 민주노총 정상화와 관련된 5개 의견그룹 회의에도 몇 차례 참석했고, 또 저한테 필요한 교육도 찾아다니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힘들지 않냐는 이야길 제일 많이 들었는데, 저는 고민이 누적돼 있던 터라 ‘사퇴’ 자체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도 좀 있었고요.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구체적인 질문들도 많이 받았습니다만 일체 대답하질 않았습니다. 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고…. 언론사 인터뷰 요청도 수십 번 받았는데, 잘못된 정보가 번지는 것을 교정하기 위해 두세 군데만 했습니다. 

이주환: 사퇴가 홀가분하게 느껴지게까지 한 누적된 고민이라는 게 어떤 건가요?

전병덕: 이번 사건이 사퇴의 계기가 됐지만, 그 전에 몇 가지 상황들이 있었어요. 이석행 위원장이 수배되고 모습을 감춘 이후 총연맹의 무기력한 모습, 작년 11월 노동자대회 때 위원장이 참석하지 못함으로써 생긴 지도력의 상실… 그 때부터 이 정도면 지도부가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죠. 지도부 내부가 소통이 잘 되는 구조라면 위기 상황에서 더 낙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닥쳐올 비정규직법과 방송법 개악 시도 등 MB악법을 막아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도부 내부에 있으면서 어느 순간 개인적으로 ‘벽’을 느꼈던 거죠. 그걸 극복해야 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만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계속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주환: 말씀하신 지도부 내부의 벽이 구체적으로 뭡니까?

전병덕: 가장 큰 건 소통의 문제였죠. 민주노총 임원 내부의 소통불능… 이건 정파적 이해관계와도 무관한 문제였습니다. 민주노총처럼 큰 조직의 경우 임원들은 각각 ‘기관의 책임자’이자 동시에 ‘회의체의 구성원’입니다. 그런 구조 속에서 중요한 사항은 가능하면 회의를 통해서 결정돼야 할 텐데, 제가 경험한 바로는 회의 없이 기관의 논리에 따른 판단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쌓이는 임원 내부의 불신들이 있었다는 거죠. 물론 서로들 나름대로 노력은 했습니다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불안이 누적됐고, 그렇게 답답함을 풀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번 성폭력 사건이 터져버린 겁니다.

이주환: 부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설 때 계획했던 것과 실제 경험한 현실이 많이 달랐던 거네요. 

전병덕: 제가 부위원장 전에 사무차장을 해봐서 민주노총 업무 구조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 대충 알아요. 대부분의 사업은 위원장과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부위원장들에게는 좀 외곽의 역할이 주어지죠. 기본 골격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사안 처리나 전체 방향을 정할 때는 부위원장들의 역할과 의견을 수렴하는 게 중요할 텐데, 제가 부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그러질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늘 발생하는 문제라지만 5기 집행부에서 더 심했던 것 같아요. 일례로 위원장이 어떤 중요 인사를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를 민주노총을 출입하는 기자에게 들은 적도 있어요. 제가 회의에 빠졌거나 해서 몰랐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저를 비롯해서 모든 부위원장들이 배제된 채 일이 추진되고 있었던 거죠. 그 얘길 듣고 너무 화가 나서 강력하게 항의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소통 부재는 정파적인 고려 때문은 아니었고, 일처리가 미숙한 탓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다양한 조직과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아 선거를 거쳐 당선된 부위원장들에게도 믿고 일을 맡기지 못하면 조직운영이 제대로 되길 어려운 거죠.  

이주환: 그렇다면 부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설 때 고민과 계획은 뭐였나요? 

전병덕: 부위원장 선거에 나서기 전, 대우자동차판매노조 위원장을 하다가 파견돼서 민주노총 사무총국 성원으로 한 1년 반가량 생활을 했어요. 그러면서 들여다보니까 정말 시스템이 엉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총연맹과 산별조직, 지역본부의 위상과 역할도 제대로 구분이 안 돼 있고, 또 현장하고 괴리될 수밖에 없는 체계상의 문제가 존재했고요. 그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와 실천을 조직하는 게 부위원장으로서 제 역할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석행 집행부에서 만들어진 노동운동 혁신위원회를 맡아보려고 했습니다만 기회가 닿질 않았습니다. 이후에는 사업계획 기획위원회를 맡으면서, 지난 몇 년간 사업목표로만 존재했고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없었던 조직 강화 및 확대를, 시작이라도 해보자고 ‘조직활성화 워크숍’ 팀을 만들어서 밀어붙였습니다. 현장에서 지역본부와 지구협의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기초적인 사업들을 진행한 거죠. 뭐, 촛불정국이 겹치고 활동가들끼리 논의과정에서 내용이 유실되면서 크게 성과 있게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일부 지역본부에서는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부성원의 상처 키운 취약한 위기관리능력

이주환: 이제 이번 사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2006년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 사건으로 만들어진 비대위를 사무차장으로, 이번 성폭력 사건 이후 비대위를 부위원장으로 모두 겪으셨는데요. 개인적으로 어떤 경험이었습니까? 

전병덕: 둘 다 굉장한 상처의 시긴데… 그런데 저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있을 것 같아요. 창립된 지 15년도 안 지났고 역사가 짧다 보니 그런지 몰라도 민주노총 조직관리시스템과 위기대처능력은 매우 취약하거든요. 두 사건 모두 일이 커진 과정에는 민주노총이 조직적 판단을 빨리 하고 행동을 취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뒤죽박죽 내홍을 거치면서… 그 때는 사무총국 성원 15명이 사표를 썼고 이번에는 또 일부 부위원장들이 먼저 사퇴를 해버렸죠. 어쨌든 내부 성원들은 그런 과정에서 정말 말도 못하게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위기다, 위기다 떠들어왔지만, 그 경우들만큼 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적은 없잖아요. 그럼에도 또 어영부영 넘어가다가 이번에도 획기적으로 위기관리능력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이주환: 이번 사건에서 집단사퇴라는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 개인적으로 어떤 고민을 했고, 지도부에서는 어떤 논의를 거쳤습니까?   

전병덕: 조직에 중요한 과오가 생겼을 때 지도부가 집단사퇴하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관행이죠. 그러나 사안의 중요성과 분위기에 따라 조직이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는 많이 다를 겁니다. 이번 경우에도, 제가 그 전부터 사퇴를 고민해오긴 했습니다만, 초기에는 개인적으로 지도부가 전원 사퇴해야 하는 사안인건지 판단을 많이 망설였어요. 다른 임원들과 얘기해 봐도 전체가 사퇴해야 할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더 많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지도부가 행동을 통일해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사퇴를 하게 되면 함께 결정해서 함께 나가고 남으려면 다 같이 남아야지, 누구든 임의로 사퇴해버리면 남은 사람들이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거죠. 그렇지만 조직적 책임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늦어지고 먼저 언론에 보도되고 여론에 몰리면서, 2월4일쯤에는 결국 임원 전체가 사퇴를 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풀 방법이 없다는 데 생각이 이르게 됐습니다.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대응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사안에 대응하면서 문제가 커지다 보니…. 그리고 사퇴하던 날 새벽, 사실 먼저 사퇴하신 네 분 말고 저도 함께 사퇴하기로 합의를 했었어요. 그런데 전원 사퇴하는 것에 임원들 중 몇 분이 결심을 못한 상황이라, 저는 그 분들이 위원장 면회를 다녀와서 결심할 때까지 시간을 주자고 했고, 이를 다른 분들이 이해해주시면서 혼자 하루 더 기다렸죠. 그렇게 기다려도 연락이 안 오길래 또 주말을 넘기겠다 싶어 저도 그냥 사퇴를 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사퇴를 선택한 분들이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를 위해 진정성 있는 결단을 했던 것이지만, 그건 사퇴를 선택하지 않은 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만 구체적인 판단이 달랐던 거죠.

이주환: 성폭력 사건이 이후 민주노총의 ‘대처 미숙’ 혹은 ‘2차 가해’가 발생하고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의 근본과 원칙에 입각해서 본다면 이런 과정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전병덕: 민주노조운동, 민주노총이 아니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임원 총사퇴 같은 거 안 했겠죠. 정부 기구나 기업에서 그런 경우는 없잖아요. 민주노조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터럭만한 잘못에 대해서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민주노총이 이런 성폭력 사건 해결에 내부적으로 경험이 없긴 했어요. 이걸 먼저 알았던 사람들은 2차 가해 문제 때문에 어찌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모르면 물어서 하면 되는 거잖아요. (사건 해결을 위임받은) 자기들이 잘 못하겠으면 그 분야 전문가를 찾아서 도움을 청하든지, 아니면 우선 피해자는 철저히 가린 후에 사건 개요를 임원 전체에게라도 보고해서 어떻게 해결할지 의견을 구하는 게 맞는데, 어영부영 10여 일을 방치했잖아요.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가 갖고 있는 내부소통 불능의 문제가 여기서도 심각하게 드러난 겁니다. 저는 가능하면 의견은 모으고 일과 권한은 나누는 게 대중조직인 노동조합 활동가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민주노총에서는 잘 안 됐던 거죠. 그런 원칙 아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주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조운동의 수명이 다 했다, 제3노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일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전병덕: 민주노총이 만들어진 지 이제 14년째 들어서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민주노총에게 거는 기대가 참 큰데 그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려면 앞으로도 더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제대로 된 위상을 찾는 과정이 지속돼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몇 년 안 돼서 골간을 바꾸고 또 바꾸고 하면서 개판이 됐잖아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민주노총도 너무 성급하게 부정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렇지만 지금 민주노총에게 변화를 만들어낼 충격이 필요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사실 민주노총은 장기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결정한 바가 없습니다. 전략적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거기에 맞춰진 전술적 목표가 시간계획 속에서 제출돼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조직적으로 질적 성장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고 있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의지가 있는 분들이 제3노총을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민주노총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제3노총이 성공하겠지만, (민주노조운동이) 그렇게까지 가서는 안 되겠죠.   

“의견은 모으고 권한과 일은 나누는 리더십이 필요해”

이주환: 이제 좀 더 포괄적인 사항들에 대해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07년 부위원장 선거에 나서면서, 조합원의 요구를 중심으로 통 크게 단결하는 조직기풍을 만들겠다, 사업과 투쟁에 있어 임원의 역할과 책임을 높여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부위원장으로서의 자신의 활동을 이에 맞춰 평가한다면?

전병덕: 부위원장의 위상과 역할을 높여내겠다, 통 큰 단결을 만들어내겠다는 약속을 실천하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이러저러하게 노력은 많이 했는데…. 사실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총장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일부 부위원장들 같은 경우는 특히 위원장, 사무총장과 긴밀하게 소통하기 어려웠어요. 해서 본의 아니게 제가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했죠. 개별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하면 다 합리적으로 통하는 사람들인데도 도통 소통이 안 되는 거예요. 우선 위원장과 총장에게 쏠려 있는 권한을 나눠야 균형 있게 소통이 될 텐데 그러질 않았던 거죠. 제가 천성이 각을 세우고 싸우는 것보다는 안아 주는 게 더 편한 사람인데,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화도 많이 내고 싸우기도 많이 했어요. 얘기가 안 통하니까 혼자 씩씩 거리고… 오죽하면 내가 요즘 왜 이렇게 화를 잘 내나 운동 그만둘 때가 된 건가 싶어서, 작년 10월부터는 집 목욕탕에 ‘화내지 말자’를 써 붙여 놓기도 했었죠. 소통에 익숙지 않은 우리 운동 문화의 일단을 반영하는 거였다고 봅니다.    

이주환: 일부 현장에서는 총연맹이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자들의 문제를 사업의 중심에 두고 연대의 기풍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요구가 여전히 높습니다. 그러나 총연맹에서 일하는 분들은 사업의 중심이 이미 그렇게 옮겨 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은데요. 이런 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jhlee_02.jpg전병덕: 현장에서 비정규투쟁의 문제는 당사자들에게는 생존권의 문제잖아요. 당장 내가 해고가 됐는데…. 그렇지만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그걸 중장기적으로, 정책적으로 다뤄야 하는 거고요. 그러다보니 그런 인식의 간극이 생기는 것 같은데, 여기에도 역시 민주노총의 위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입장에는 정책생산과 대정부교섭을 담당하는 ‘노동조합 내셔널센터’로서의 위상과, 전국적인 투쟁과 교섭을 담당하는 ‘1국가 1노조’로서의 위상이 혼재돼 있다고 봐요. 이런 부분이 정리되고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명확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더 열심히 할 필요는 있지만, 긴박한 생존권 문제에 민주노총에 일일이 개입할 수 있는 힘과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내셔널센터를 지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주노총이 비정규문제와 관련해서 현장에서 받아 안아야 할 것들이 산적해 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수용해서 사업으로 만들어내야죠.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직접 가서 조사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현장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런 과정이 없으니까 지금 민주노총이 법제도 개선투쟁 외에는 비정규직 관련해서 하는 게 없잖아요.    
       
이주환: 앞에서처럼 비정규직투쟁에 빗대어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민주노총이 과거와 같은 역동성을 상실했다,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에 빠져 있다는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병덕: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저는 역설적으로 민주노총에 관료가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만큼 자기 분야 일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도 많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현장이 예전보다 역동성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에요. 대공장 정규직들이 고령화되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분명히 있죠.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현장은 그렇게 실망스런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질적인 참여의지는 떨어졌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놓치지 않고 있거든요. 제가 교육을 가서 만나본 조합원들은 촛불정국 때, 이석행 위원장이 구속됐을 때 당연히 할 줄 알았던 파업을 왜 하지 않은 건지 묻는 사람들이었어요. 노동운동이 어떤 결정적인 계기 속에서 내용을 갖고 나선다면 다시 역동성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민주노총은 현장하고 소통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간부들하고만 소통을 해요. 물론 간부들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간부 위주로 사업이 진행되다보면 안정성을 우선시 하게 되고 또 그런 사업들은 조합원들을 동원의 대상으로만 여기기 쉽거든요.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만들고 활성화시켜야 하겠죠. 그런 가운데서 특히, 우리 노동운동이 동호회나 서클활동 같은 것을 회사에게 뺏긴 게 너무 뼈아픈 것 같아요. 정말 다시 가져와야죠. 이를 테면 학부모가 많은 노조에서 전교조 활동가를 불러다가 아이교육이나 교육정책 등을 놓고 강연회를 벌이는 식으로요. 사실 찾아보면 그런 모범사례들이 지금도 전국적으로 많이 있어요. 또 민주노총이 변한 거 없다고 그러지만 교육부문에서는 인성교육이니 뭐니 도입하면서 많이 바뀌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이 서로 소통되고 전파되면 지금보다 현장이 더 활성화될 수 있을 텐데요. 아무튼 조합원들이 노조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사업들을 많이 만들어내야 할 것 같아요. 이를 테면 단순한 봉사는 노동조합이 할 게 아니라고들 생각하는데, 민주노총이 ‘1노조 1봉사 사업’ 같은 걸 몇 년 만 꾸준하게 하면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대폭 바뀔 거예요. 그걸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간부들이 생각을 열고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면 지금도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일들이 활성화될 때 노동조합의 본래의 역할도 더 강화될 것이고요. 

이주환: 민주노총은 그동안 다양한 성격의 리더십을 거쳤고, 또 이제 곧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본다면 지금 민주노조운동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성격의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병덕: 노조 지도자가 성인군자일 필요는 없는데, 우선 어느 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자질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저는 기존 우리 지도자에게 부족했던 게 ‘들어주는 지도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가진 권한도 지혜롭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요. 공자님 말씀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책임은 지도자 자신이 지되 다양한 사람들에게 의견을 듣고 일을 나눠서 하는, 그게 귀찮은 일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거죠. 물론 총연맹 위원장이 남의 얘기를 마냥 듣고 있을 만큼 한가한 자리는 아니지만 그런 마인드 자체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런 마인드에서 포용력, 통합력이 비롯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런 리더십을 지금 우리 노조운동에서 찾아보기 어렵잖아요. 이는 우리 민주노조운동의 토양이 어느 틈에 정파들의 파벌적인 갈등에 물들어서 일단 자기 정파가 아닌 지도자들에게는 사실이든 아니든 흠집부터 내고 보는 경향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통합력을 가진 지도자가 성장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최근에는 위기감의 공유 때문인지 이런 부분에서 나아지는 조짐이 보여요. 예를 들어 최근에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내부비판을 통해 해산하기는 했습니다만, 민주노총 정상화를 두고 모였던 5개 의견그룹 회의도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고요. 어쨌든 그렇게 의견이 다른 상대방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풍토가 자리 잡을 때, 그에 걸맞은 지도자, 앞에서 제가 말씀드린 리더십이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주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