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연대로 막아야 할,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노동사회

진실한’ 연대로 막아야 할,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편집국 0 7,785 2013.05.29 11:01

이스라엘은 지난 2008년 12월27일 가자지구를 공격했습니다. 2009년 1월17일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휴전이 선언될 때까지 1천 3백여 명이 사망했고 어린이 1천 9백여 명을 포함해 5천 명이 넘게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10만여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던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군의 사망자는 13명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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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군은 이번 가자침공 내내 제네바협정에 의해 금지된 백린탄을 사용했다. 베이트라히아에 있는 UNRWA 학교 안으로 이스라엘군의 백린탄이 떨어지고 있다.  ▷ 경계를 넘어 ]

이스라엘 군은 학교, 병원, 사원은 물론이고 유엔의 학교와 구호물품 창고까지 폭격하는 무차별 공격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방패로 사용한 것도 모자라 제이툰 지역에서는 사람들을 한 집에 강제로 몰아넣은 다음 그곳에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이 사용한 무기들 중에는 제네바협약에서 금지된 것들이 있었는데요. 특히 사람들의 몸에 닿으면 타들어가게 만드는 화학무기 백린탄과 인화성 폭탄(유독가스 때문에 진화할 수 없는 맹독성 화염발생)사용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22일 동안 군사작전이 언론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전쟁이 아니라 분명한 ‘학살’이었다는 것은 가자지구로부터의 처참한 상황과 절규의 목소리들이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휴전’을 선언한 이후 전면적인 폭격은 끝났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구 내에 주둔해 있습니다. 그리고 지진 피해 지역보다 더 절망적이라는 그 가자지구를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행태를 보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갑자기’ 가자지구를 공격했는지, 국제사회가 비난하는 그런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왜 ‘갑자기’, ‘무모하게’ 공격했냐고요? 

이스라엘의 이번 가자침공은 갑자기 결정된 것도 아니었고 그들의 거짓말처럼 “하마스의 로켓포에 못 견뎌” 시작된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말하는 ‘건국’의 시작과 함께 주변 아랍 국가들과 팔레스타인을 대상으로 표적살인을 자행한 것은 물론 무수히 많은 전쟁과 학살을 일으켜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식민지로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데이비드 벤 구리온과 같은 시오니스트(팔레스타인지역에 유대인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인 민족주의운동의 지지자)들이 미국과 영국 등의 소위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점령해 1948년 건국된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의 점령 이전 팔레스타인 지역은 다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기독교인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곳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오니스트들이 바랬던 이스라엘 건국은 평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정복전쟁과 추방 및 점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들은 1947년 말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추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인구 90%에 달하는 75만 명가량이 고향에서 쫓겨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를 ‘대재앙’으로 기억합니다. 또한 그 점령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일으키는 전쟁과 학살은 계속됐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78%의 땅을 차지한 1차 중동전쟁부터 시작해 1956년에는 이집트 공격이 있었고, 1967년에 이스라엘은 또 다시 전쟁을 일으켜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시리아의 골란 고원,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나머지 22%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점령합니다. 이 전쟁으로 2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추방되고 난민으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 전쟁터로 만들다

사람들은 흔히들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형제’로 인정하고 받아주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랍 민중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형제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친미정권이나 독재, 권위주의적 국가의 아랍 지도자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스라엘에 의해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간 곳은 지금의 서안지구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입니다. 1970년 당시 요르단 정부는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무고한 팔레스타인 난민 수천 명을 학살했습니다. 이것이 ‘검은 9월’이라고 불리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레바논으로 다시 쫓겨나게 되지만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1982년 6월 레바논을 침공합니다. 레바논 베이루트 등지에 폭탄을 퍼부었고 약 1만 5천 명을 살해합니다. 또 같은 해 9월에는 레바논 우파 조직인 팔랑헤를 지원해 사브라, 샤틸라 두 난민촌에 있던 팔레스타인인 3천여 명을 살해했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 난민으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곳에 전쟁을 일으켜 학살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최근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지역을 침공했을 때에도 가자지구에 폭격과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자행했던 것을 기억하신다면, 2008년 12월27일의 가자지구 침공은 ‘갑작스런’ 일이 아님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남아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빼앗고 쫓아내기 위해 일방적으로 재산을 몰수하고, 해외의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이주시켜 그들을 위한 점령촌(소위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아예 모든 활동을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이에 저항해 일어난 것이 ‘인티파다’(‘봉기’라는 뜻의 아랍어로, 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저항운동을 지칭함)라고 불리는 민중항쟁입니다. 1987년 12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는 인티파다가 시작됩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했고, 집회와 시위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은 더욱 잔인하게 억압했습니다. 8천 명의 주민들에게 23시간 통행금지를 강요했고, 모든 활동을 금지시키는 것도 모자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체포해 팔을 부러뜨리기도 했습니다. 총과 폭탄으로 무장한 이스라엘군이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두려웠던 것일까요?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자 1993년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지도부와 합의해 오슬로 협정이란 것을 맺었고, 이 협정을 계기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자치정부가 들어섰습니다. 흔히들 오슬로 협정을 이스라엘과 PLO 사이의 최초의 ‘평화협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양측 대표들이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으니 사람들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지요.

오슬로 협정은 어떻게 ‘평화’ 아닌 ‘지배’협정이 되었나

그러나 사실상 오슬로 협정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협정’으로 불려야 더 정확합니다. 오슬로 협정을 통해 서안지구는 A, B, C 세 지구로 나뉘게 됩니다. A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행정권과 경찰권을 가지고, B지구는 자치정부가 행정권을, 이스라엘이 경찰권 가지고, C지구는 이스라엘이 행정권과 경찰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서안지구의 가장 큰 부분은 C지구이고, 다음은 B지구, 나머지 일부가 A지구가 되어 자치정부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실상 자치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지요. 

게다가 오슬로 협정 이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봉쇄 정책은 오히려 강화됩니다. 점처럼 흩어진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오기가 위해서는 수많은 이스라엘 검문소를 지나가야 해서 이동이 더 어려워진 것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의 수자원과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점령촌은 더욱 확대됩니다. 오슬로 협정이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점령촌의 철수나 확장 중단은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소위 평화협정의 조항들은 이스라엘의 안보 논리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과 지배 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합리화하는, 그야말로 이스라엘과 미국만을 위한 ‘평화협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000년 9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또다시 저항합니다. 제2차 인티파다라고 불리는 알 아크사 민중저항이 시작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또다시 돌을 집어 들었고, 이스라엘은 폭격과 사격으로 대응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스라엘은 2002년부터 높이 8미터(베를린 장벽의 두 배)에 이르는 콘크리트 장벽과, 전기가 흐르는 철망장벽을 약 730km에 걸쳐 쌓기 시작했습니다. ‘고립장벽’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만들기 위해 농지를 몰수하고 마을 파괴시키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추방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거대한 감옥에 가둬놓으려는 셈인 것이죠.

집권당 하마스가 ‘절멸’의 대상이 된 이유

지금은 '파타'로 계승된 PLO가 이스라엘과의 맺은 협정들이 이렇듯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하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스스로 봉기했고 다양한 정치조직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2006년 1월에 있었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에서 집권당이 된 ‘하마스’입니다. 하마스라는 조직을 흔히들 테러리스트니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하마스는 주변 아랍나라들의 정부들과 비교해 오히려 ‘정치적 조직’으로 분류될 수 있는 집단입니다. 조직 구성만 봐도 종교지도자들이 아닌 다양한 직업과 사회적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이들은 앞서 언급한 선거에서 전체 132석 가운데 74석을 얻어 집권당이 됩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집권을 하고 있던 파타는 2당으로 밀려났고, 파타 출신의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과 하마스 출신의 총리가 팔레스타인 정부를 구성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하마스가 집권당이 되자마자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연합 등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경제를 봉쇄했습니다. 하마스를 압박하는 동시에 하마스를 지지했던 다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처벌’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하마스와 정치적 반대파인 파타조차도 “하마스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왜 서방국가들과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이스라엘 쪽에서는 파타와는 다르게 이스라엘의 점령과 일상적인 군사행동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하마스가 집권하는 것을 용납하기 싫었던 거죠. 결국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경제 봉쇄와 함께 2006년 6월 가자지구 폭격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탄압이 커질수록 하마스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지지는 높아져 갔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과 미국은 돈과 무기를 마흐무드 압바스와 파타에게 제공해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하죠. 

하지만 쿠데타에서도 파타가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그대로 남게 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지지하는 가자지구 사람들을 또 다시 집단처벌하기에 이릅니다. 2007년 6월부터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고, 사람은 물론 식량·석유·의약품 등 모든 생필품의 이동을 가로 막은 것입니다. 그 결과로 가자지구의 모든 경제활동은 물론이고 기초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졌습니다. 

150만의 가자지구 인구 중 수십만 명이 외부의 구호기관에 의존해 살아야할 정도였으니까요. 가자지구의 사람들은 생필품을 얻기 위해 가자와 이집트 사이 국경 장벽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동 나라들 중 두 번째로 미국의 해외 원조를 많이 받고 있는 이집트의 무바라크 독재 정권은 이를 철저하게 봉쇄했고, 이번 2009년 침공 당시에도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이집트로 향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근본 원인은 팔레스타인 인정 않는 이스라엘과 ‘국제사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침공하면서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대한 자위권 행사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하마스의 수제 로켓포 공격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경제봉쇄로 가자지구의 경제활동이 마비되었고 공무원 월급도 줄 수 없는 하마스가 돈이 남아서 로켓포 공격을 했을까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가자지구에 대한 비인간적인 경제봉쇄는 물론이고 빈번한 군사작전, 하마스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과 납치, 팔레스타인 어린이, 청소년들까지도 감옥에 가두는 이스라엘의 폭력에 대해, 집권당으로 지지받은 하마스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수제 로켓포를 가진 하마스와 매년 20억 달러 이상을 미국에게 지원받아 미국산 전투기와 헬리콥터, 무기들을 사들이고 핵무기를 보유한 이스라엘 중 누가 더 위협적일까요?

이갈 카스피 이스라엘 대사는 ‘한국-이스라엘 친선협회’ 회장이자 ‘소망교회’ 장로인 류태영에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인정’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하마스는 이미 야신 독트린(이스라엘에 의해 암살당한 하마스의 지도자 ‘야신’의 이름을 딴, 2003년 발표된 정책원칙)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해 하마스는 유럽연합의회 대표단을 만났을 때 “22% 영역인 가자, 동예루살렘과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바란다”고 말했고, 이는 “국제법상으로 이스라엘 국가 영역인 팔레스타인 땅의 78%(1차 중동전쟁으로 차지한 부분)에서 이스라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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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해 보인다. 한국에서의 1월10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 중단 촉구 긴급행동' 모습.  ▷ 경계를 넘어 ]

‘진실한’ 연대를 믿는다

이스라엘이 22일 동안 가자지구의 사람들을 학살하는 동안, 입만 열면 인권과 평화를 떠들던 힘 있는 국제사회는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유엔에서 휴전결의안이 채택되고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이스라엘의 침공을 비판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지만,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은 유엔의 결의안에도 기권 아니면 반대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물론 미국의 경우에는 유엔 안보리이사회에서의 결의안 채택을 반대해 무산시키는 적극적인 친이스라엘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미국 하원의 경우에는 ‘이스라엘 지지 결의안’을 통과시킬 정도였으니까요.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배출”을 운운하던 한국 정부 역시 미국 정부의 행보에 발을 맞추었습니다. 전 세계 지배자들, 자본가들이 다 모인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은 국제사회의 모습이 여실이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대통령인 시몬 페레스의 가자침공 정당화 논리에 반대하는 터키 대통령의 발언을 “참가자들이 저녁식사를 해야한다”며 제한하거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앞장선 영국 전 총리 블레어는 교묘한 양비론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친미 아랍나라들의 지배자들 역시 불구경하듯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2008년 1월27일 이스라엘의 가자침공이 시작되자마자 해외 각국의 노동자, 시민들 수백만 명은 행진과 항의집회에 함께 했습니다. 자국 정부가 방관하는 것에 항의하는 아랍 민중들의 집회와 연대행동이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연대의 대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살자 시오니스트들의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내의 침공반대 목소리도 함께 했습니다.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는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하고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영국의 대학생들은 공공기관들을 일시 점거해 팔레스타인 지원과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을 주장하는 직접행동에 나섰고, 그리스 노동자들은 침공 중 이스라엘에 3천여 톤의 무기를 전달하려 한 미국 선박의 그리스 경유를 거부했습니다. 

우리들의 저항과 맞닿아 있는 팔레스타인의 저항 

한국에서도 이스라엘의 학살 중단을 요구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공동행동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학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촛불문화제, 국제공동행동의 하나였던 도심에서의 집회, 긴급토론회, 강연, 그리고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들이 이끌어 간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의 1인 시위가 계속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주류 언론의 앵무새 역할만 하는 한국의 대다수 언론의 가자침공 보도에 맞서 진보언론에 글을 기고했던 학자,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자발적으로 해외 기사와 분석 글들을 번역해 홈페이지에 올려달라며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참혹한 잿더미가 된 가자지구를 돕기 위한 모금도 진행되고 있고, 인터넷 포털 <다음>의 공론장 아고라에는 이스라엘 대사 추방과 제품 보이콧을 요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명박 정권의 폭압적 지배와 용산철거민 참사로 언론의 관심은 이제 팔레스타인 가자를 떠났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끈은 어느 때보다도 단단해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1월17일 휴전 선포를 하면서 “언제든 다시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 말을 입증하듯 현지시간 1월29일 남부 가자지구에 폭격을 했고, 최소 7명의 여학생들을 포함해 9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봉쇄조차 풀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느 국회의원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지도에서 없애 버리자”라고 발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래왔던 것처럼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안지구의 고립장벽 건설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거대한 콘크리트 감옥에 가두려는 계획 역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지난해 노동자 대회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현실을 알리는 작은 사진전과 선전전을 진행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셨고 직접 물어보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국가 폭력에 맞서는 행동은, 단지 중동의 한 국가에 대한 연대로만 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배자들은 이 땅의 힘없는 사람들과 노동계급을 법과 제도, 공권력으로 억압하려는 지배자들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미포조선의 굴뚝 농성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물과 음식을 전달하려는 사람들을 누가 폭력으로 막았습니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전달된 유엔 구호품들의 창고를 누가 폭파했습니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과 이곳 한국에서의 저항은 그렇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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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