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연대·대안으로, ‘제2의 참교육운동’을 열어갑시다

노동사회

소통·연대·대안으로, ‘제2의 참교육운동’을 열어갑시다

편집국 0 3,025 2013.05.2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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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교정에 서던 시절, 학생들이 지어준 별명은 ‘아톰’이란다. 조금 마른 듯하면서도 단단한 체구와 약간 뻗친, 젊은 시절의 숱 많고 헝크러진 머리 모양을 두고서 아이들이 쉬이 갖다 붙인 것 같다고 했다. 아톰은 일본 만화계의 거인 데쓰카 오사무의 대표작 『철완 아톰』(국내판은 『우주소년 아톰』) 주인공으로, 2차 대전 패망 후 현실의 어디서도 희망을 찾기 어려웠던 일본 아이들이 상상 속에서 기대고 동일시할 수 있었던, 작지만 힘세고 여리지만 강직한 그렁그렁한 눈을 가진 로봇의 이름이다. 

전교조가 지금 처한 현실을 ‘패망’이란 단어로 표현하기는 뭣하지만 만연한 무기력 속에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MB정권을 비롯한 수구보수세력이 명확하게 ‘전교조 죽이기’를 실행하고 있지만, 역동성은 아직 발동이 걸리지 않았고 오랜 세월 더께를 채워온 내부의 틈새는 쉬이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하며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는 정진후 집행부는 그 옛날 ‘아톰’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세대들이 힘차게 일어서도록 도울 수 있을까? 조합원들이 ‘제2의 참교육운동’으로 작지만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의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난 1월29일 영등포 대영빌딩 4층에서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을 만나 물었다. “고립의 벽을 넘어 변화의 중심으로”를 내걸고 선거에 당선돼, 소통·연대·대안을 통해 “제2의 참교육운동(희망의 교육)을 열어갑시다”라고 선포한 위원장은, 발 딛은 현장부터 구체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소통’, ‘연대’, ‘대안’을 키워드로 확인해보자.

듣는 자세로 폭넓은 공감대 안고, 국민과 함께 가겠습니다

이주환: 위원장 당선을 축하합니다. 먼저 소통과 관련된 질문들입니다. 당선 직후 굉장히 많은 인터뷰를 하셨는데, ‘듣는 자세’를 강조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그리고 당선된 이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을 텐데, 여러 지적 중에서 지금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은 어떤 겁니까? 

정진후: 오랜 친구들은 전화를 해서 “어쩌려고 그런 걸 하느냐”며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주로 염려, 걱정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죠. 그만큼 상황이 어렵고 전교조에게 주어진 책무가 크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살아남아야 한다고 당부하시는 분도 있었고, 또 가능한 조금 더 많은 공감을 안고 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냐, 반대만 하는 것을 넘어 공감을 넓혀 나가는 운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주환: 2003년 NEIS투쟁을 계기로 전교조에 대한 여론이 나빠졌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혹자는 초기의 찬란한 전교조를 기억하는 이들이 1999년 법제화 이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적인 전교조의 모습에서 느끼는 간극에서 악화된 여론의 구조적 원인을 찾기도 하고요. 2008년 광우병항쟁 등으로 인해 전교조의 위상이 어느 정도 높아지기도 했지만 전교조에 대한 우익단체와 보수언론의 공격은 여전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합니까? 

정진후: 전교조가 노동조합으로서 20년을 맞으면서 수없이 많은 의제들을 제기해왔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대표성을 갖는 부문조직의 이러한 요구들이 정치적으로 수용돼 더디더라도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렇질 못하고 있죠. 이를 담당해야 할 진보정치세력이 아직은 정치적 통로로서 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요구들이 그나마 해결될 수 있도록 하려다보니 조직 내에서도 주로 ‘방법론’을 두고 논의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 언론이나 국민들도 전교조가 제기하는 근본적인 의제들보다는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한 행위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고요. 그런 상황 속에서 일부 언론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전교조가 제시하는 요구들은 교원정책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면 경쟁교육에 대한 비판 등 국민적 요구, 사회적 요구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전교조는 교육의 문제는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문제이고, 다수 국민들이 의지를 가질 때 교육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입장과 전략을 가지고 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일부 세력에게는 불안감을 자극했던 거죠.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게도 영향을 주는 집단으로서의 전교조, 촛불집회에 나온 학생들이 다음 선거의 유권자가 되는 현실 속에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교조의 능력에 대한 불안이 존재하는 것이고, 때문에 가능한 전교조를 국민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교조 소속 교사 명단을 공개하느니, 전교조를 반국가이적단체로 고발을 하느니 하는 비상식적 행동도 이런 불안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럴수록 전교조는 제기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공론화하고, 정치화하고 관철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도 더욱 열린 자세로 드넓은 공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이 전교조에게 요구되는 필연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주환: 어느 노조나 마찬가지겠지만, 전교조 조직의 현장과 중앙의 괴리가 심각하다는 지적들이 있습니다. 조합원들의 조직몰입도 약화 및 고령화 속에 대부분의 현장분회 활동은 죽어 있고, 공식적인 조직체계를 통해 새로운 활력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들입니다. 당면한 MB정부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현장의 소통을 활성화하고 단결로 모아내는 것이 절실한데,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진후: 전교조의 조직운영과 소통의 틀은 20년 전과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많이 낡았다는 지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죠. 특히 본부-지부-분회-조합원 등 조직의 수직적 행정체계를 통해서만 정보가 소통이 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내용도 골자만 남고 형해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결정이 전달됐을 때 그 맥락과 배경이 되는 논의와 정보는 거세되는 경우가 많았던 거죠. 

아시다시피 노동조합의 결정과 사업은 조합원들의 구체적인 의식과 참여에 바탕했을 때 힘이 실릴 수 있습니다. 해서 전교조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한 끝에 작년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디지털 조직운영시스템을 도입을 했습니다. 올해 본격적으로 운영이 될 텐데, 이 시스템을 통해서 이제 계선체계를 거치지 않고도 조합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직접 전달받거나 수집할 수 있고 또 제안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조금은 침체되어 있는 현장을 활성화하고 조직을 역동성 있게 운영하도록 하는 데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양한 성원들로 정책위 구성해 정파 간 이견 수용할 것

이주환: 이번 선거도 각 정파세력들의 특별히 서로 다르지 않은 주장들의 대립이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또한 전교조가 과잉정치화 돼 대중들의 이해를 반영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선거에서 떨어진 진영들 혹은 그 외에 정치적으로 입장을 달리하는 각 세력들과의 소통을 어떻게 조직할 생각입니까? 

jhlee_02.jpg정진후: 저는 이번 선거 결과가 현재의 상황 속에서 전교조가 헤쳐 나가야 할 방향과 조건을 아주 절묘하게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들이 제가 제시한 기조를 선택하면서도 (결선에서 대결한 후보가 제시한) 엄중한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싸워서 돌파하는 모습도 전교조가 갖춰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거죠. 한편, 선거에서 다른 후보들이 제시했던 계획들을 조직이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 후보들과 뜻을 같이하는 분들의 앞으로 활동이 전체 조직의 성과로 축적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위원장 산하에 정책위원회를 두고 좋은 생각을 가진 분들을 30명 내외로 모셔서 정책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온 정책적 성과들을 조직이 받아 안아 조합원들에게 곧바로 제시하고, 당면한 상황에서 몇 가지 방안 중 선택이 필요하다면 조합원들이 직접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할 때 조직적 통합력과 단결을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지난 선거에서 표출된 조합 내 이견들을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주환: 지난해 말 치러진 대의원대회에서는 투쟁계획 중 ‘시험감독 거부’를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대립이 발생했는데요. 따지고 보니 부결된 안건들의 찬반 격차는 약 4%로 선거에서 정진후 후보조와 차상철 후보조 간의 결선 투표 격차와 거의 일치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또한 3번 안건이었던 공동투쟁 결의문이 채택되지 못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주십시오.

정진후: 일제고사를 불과 이틀 앞두고 소집된 상황이었습니다. 이 대의원대회는 일제고사 반대 등의 투쟁계획을 다루는 자리였는데, 거기서 결정된 사항을 조직 전체가 실천하기란 물리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현실이었죠. 그래서 그 대의원대회는 이미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확정된 투쟁계획에다가 몇 가지 추가할 사항을 가지고 논의하는 자리였고, (‘시험감독 거부’ 전술 추가의 부결이라는) 대의원대회 결과는 기존에 확정된 투쟁계획에 집중하자는 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의결기구에서 결정된 사항을 노동조합은 어쨌든 실천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하신 찬반격차 문제는 크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라고 봅니다. 투쟁결의문 채택을 하지 못하고 대의원대회가 유회가 된 것도, 그 결의문이라는 것이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확정된 투쟁계획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대의원들이 투쟁결의를 거부하는 의미는 아니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확정된 투쟁방침을 기반으로 이미 결의를 모아가고 조직적으로 준비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양한 학교 만들기’ 대 ‘학교교육 다양화하기’

이주환: 다음으로 연대 관련 질문들입니다. 진지한 ‘소통’이 참교육운동 및 노동운동의 바닥을 다지는 것이라면, 연대는 참교육운동과 노동운동이 목표(대안)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방식’이자 근본적인 ‘삶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조금 뜬금없는 질문일 텐데, 정진후 위원장 개인에게 연대란 무엇입니까? 

정진후: 연대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변화를 가능케 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변화를 완성시켜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죠. 그래서 만들어지는 것이 대중조직이고, 대중조직이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다못해 변화를 위한 발판이라도 마련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감을 사회적으로 확대해가는 작업 즉 연대가 필요합니다. 저 개인에게 있어 연대는 그런 맥락에서 체득된 삶의 방식이자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이주환: 일제고사 반대 및 서울시 교육감 선거 주경복 후보 지원 등의 문제와 관련해 MB정권의 ‘직접적인 공격’에 직면해 있을 뿐만 아니라, 이어질 국회에서도 교원평가제법, 교원노조법, 교육세법 등 전교조의 입장에서 개악안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대와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어떠한 핵심을 가지고 당면한 상반기의 흐름 속에서 연대와 투쟁을 조직해나갈 생각인지요?

정진후: 교원평가, 교원노조법, 교육세법 등 사안들 하나하나에 대해서 전교조는 싸울 겁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안 투쟁들이 전교조가 처한 어려운 국면을 타개해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반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 실정을 종합적으로 파고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해서 이명박 취임 1주년을 계기로 전교조가 주도하고 제 정당들과 교육단체,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거시적인 평가를 진행하고, 그 본질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대를 넓혀갈 생각입니다. 

현안 하나하나 대응해서 폭로하고 선전해봤자 국민들만 혼란스러워요.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최대공약수를 뽑아내서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것으로 재해석해내고 인식시켜낼 때만이 주체세력들을 형성할 수 있고, 또 하나하나의 현안들에 대한 대응도 더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경쟁체제에 기반한 ‘다양한 학교 만들기’라는 1%의 소수특권층을 위한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과, 더불어 사는 삶에 기반한 ‘학교교육 다양화하기’라는 전교조의 교육정책이 맞부딪치도록 할 겁니다. 그렇게 교육 영역에 있어서 반이명박 연대 전선을 만들어 국민들이 심판하도록 하는 그 중심에 전교조가 서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략전술이고, 또 이후 정치적 교섭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상 전교조를 대화상대로 인정치 않고 있는 저들에게 맞서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런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를 2010년 지방자치선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2010년 선거에서는 16개 시·도교육감 선거도 함께 치러지거든요. 기간의 여러 단체들과의 연대활동 속에서 공통분모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책연대를 포함해 모든 것들이 다 가능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러한 계기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심판하자는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만이 큰 줄기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주환: 이번에 진행된 참교육실천대회는 특히 ‘참교육운동의 강화’가 강조되었습니다. 전교조가 부딪치고 있는 어려움의 핵심을 ‘참교육운동의 약화’에서 찾는 입장도 있는데, 전교조는 이와 관련 농어촌 지역사회와 결합해 ‘새로운 학교 만들기’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사회와의 연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진후: 근본적으로 지역사회에 토대를 갖지 않은 자치란 불가능합니다. 교육자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운영에는 지역사회가 참여해야 합니다. 지역사회와 결합하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교육은 천편일률적인 입시경쟁교육밖에 없죠. 입시교육을 ‘공정한 경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공정한 경쟁이 아닙니다. 서울과 시골 아이, 부잣집과 가난한집 아이는 이미 출발 전부터 주어진 조건이 확연히 다르죠. 그런데 똑같이 출발선에 세워놓고 100미터 달리기를 한 번 하게 해서 죽 서열을 매긴 다음, 1등하고 꼴등하고 너무 차이 난다며 ‘앞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자고 하는 게 저들이 이야기하는 ‘다양한 학교 만들기’입니다. 

전교조는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입시경쟁교육을 지양하고, 각 학교들이 주어진 조건에 맞게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전교조는 농촌지역 제도교육 공간의 작은 학교들에서 ‘학교교육 다양화하기’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도 중요하지만 공교육 공간에서 그러한 교육들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이를 위한 토대를 닦아나가고 있는 것이죠. 그런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지역사회와 결합하게 됩니다. 이것이 전교조가 실시한 ‘새로운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입니다.     

또 한편으로 이렇게 학교교육이 변하기 위해서는 학교관리자의 역할도 무척 중요한데요. 그래서 전교조는 지금처럼 교육과 무관한 점수를 쌓아 승진하는 게 아니라 교육활동을 정말 열심히 한 사람들이 학교운영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의 의견을 반영해서 교장을 선출하는 제도를 도입코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직 도입이 안 됐고 그 전 단계로서 ‘교장공모제’가 실시됐는데요. 이 제도를 통해 전교조 출신 교사 20여분이 교장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전교조에서 연구하고 만들어낸 내용과 주장들을 실천하고 있고, 이를 통해 다른 학교들에서도 수용할 수 있는 모범사례들을 축적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모델들이 꾸준히 확대되어 갈 때 학교를 구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제2의 참교육운동’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 더 적극적으로 함께 가야죠

이주환: 학교라는 조직 안에 소속된 이들은 교사만이 아닙니다. 학교 비정규직 등 교사보다 사회적으로 약자들이 다수 존재하는데요. 이들과의 연대는 사실 개별 학교 선생님들에게 방치되어 맡겨진 측면이 있습니다. 이들과의 연대를 위한 고민과 방안이 있습니까? 

정진후: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학교 비정규직 문제에 전교조가 전체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단지 일선 교사들이 개인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건 함께 해야죠. 사실 ‘법정 정원수 확보’ 등을 요구하며 학교 비정규직의 문제를 가장 먼저 지적했던 것도 전교조입니다. 지금도 새 학기 이전 인사 이동철에는 집중적으로 시도교육청을 통해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요. 그러나 실효가 없었던 것이고, 어쨌든 이를 조직적으로 사업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습니다.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구조를 바꿔내는 것일 텐데요. 그런데 학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해도 공무원총정원제도나 예산책정 문제 등에 걸리게 됩니다. 정말 필요한 인원을 정규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총정원제도를 폐지하고 법정 정원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또 다행히도 학교 비정규직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어느 정도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됐는데요. 이후에는 확실하게 고용이 보장되고 노동조건이 개선될 수 있도록 연대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교원평가제도, 저들의 프레임에 말리지 않을 것

이주환: 이제 몇 가지 중요 현안 및 거시적 제도변화에 대한 ‘대안’을 물어보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교원평가제 대한 입장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진후 위원장은 이에 대해 “근무평정을 없애면 정부와 교원평가제를 두고 건설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이 조합원들에게 수용될 것이라 자신합니까? MB정부의 입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정진후: 중요한 것은 이 국면을 우리가 주도하는 겁니다. 지금 교원평가제도를 둘러싼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서 전교조가 근거 없는 여론의 질타와 비난을 받고 있거든요. 제 제안은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전교조와 우리 교육의 변화에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실 교사들은 교원평가제도가 없어도 이미 근무평정을 통해서 개별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평가는 제대로 된 기준도 없고, 또 가르치는 활동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왜 그런 점수를 받았는지 자신도 모르는 채 교사들은 일등부터 꼴등까지 서열이 매겨지고, 또 그 점수는 승진에 반영됩니다. 그런 평가에 따라 교장이 된 사람들의 근속년수는 2년 이하이고요. 제대로 된 학교개혁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지금 이걸 그대로 두고 교사능력 제고를 위해 교원평가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이건 잘못된 평가를 2중, 3중으로 받으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좋다, 근무평정부터 완전히 없애고 얘기하자는 거죠. 이걸 완전히 뜯어고쳐서 획기적인 승진제도를 만들자는 겁니다. 상향평가도 도입하고 교사의 교육활동능력 제고에 엄밀하게 맞춰진 평가제도라면, 학생과 학부와 교사들이 교육력 제고를 위해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라면 얼마든지 열어놓고 논의할 수 있다는 거죠. 이러한 입장은 교원평가제도에 대한 단순한 찬반을 넘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입장에 기반한 제 제안이 정부가 입장을 바꾸도록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습니다. 다만 교원평가만 되면 공교육의 질이 높아질 거다, 사교육에 들여야 하는 노력이 줄어들 거다 하는 식으로 호도하는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해, 국민들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의제를 던져놓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러한 입장을 조합원들이 수용할 수 있는가 문제는, 앞서 언급한 전제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조직적으로 논의해볼 수 있으리라, 또 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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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에 기반한 전교조 교섭창구 단일화 요구의 배경

이주환: 교원노조법 개악안이 국회에 상정됐습니다. 교섭창구 단일화문제가 핵심일 텐데, 이는 최근 만들어진 뉴라이트의 ‘대한민국 교원조합’을 비롯하여 ‘한교조’, ‘자유교원노조’ 등 소수로 구성된 우익 노조들과의 논의를 요구하며, 또 전교조의 단체교섭권을 지극히 제한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전교조로서는 참교육운동단체로서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으로서의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을 텐데, 이 문제를 헤쳐나갈 대한 복안이 있습니까?   

정진후: 교섭권은 전교조가 변형시키거나 포기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창구단일화 조항의 미비점에 막혀 제대로 된 교섭이 진행되고 있지 못하죠. 이와 관련 이미 지난 17대 국회에서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논의됐었습니다. 이 개정안은 창구단일화 조항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교섭의제를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쨌든 조합원 수에 따라 교섭위원을 배정함에 따라 그나마 단체교섭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개정안이었기에, 전교조는 지속적인 협의와 압박을 통해 독소조항을 빼고 통과되도록 노력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통과 직전에 한 교원단체의 항의와 한나라당의 보이콧으로 무산됐습니다. 

이번 제18대 국회에서도 교원노조법상 창구단일화의 미비점을 비례제도에 기반해 보완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민주당 의원이 발의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노조 전임자 선정을 사용자에게 ‘승인’받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습니다. 전교조는 이 내용이 위헌이라고 판단하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고, 또 입법을 넘어서 다른 방향에서도 교섭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국내외적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구단일화와 관련해서 조금 더 설명을 드리면, 원칙은 (민주노총의 방침과 마찬가지로) 전교조도 자율교섭입니다. 그런데 뉴라이트 등이 소수 노조를 마구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고, 때문에 비례대표도 수용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노조법이 아니라 교원노조법이라고 하는 특수한 틀에 의해 전교조가 통제되고 있다는 상황과 교섭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전교조가 처한 어려움들이 이러한 판단에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전교조가 일반 노조법으로 자율교섭을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요.

이주환: 일제고사와 관련해 벌써 많은 조합원들이 해직돼 징계절차를 밟고 있고, 서울시 교육감 선거 주경복 후보 지원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800여 명의 전교조 조합원을 조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로 보이는데요. 여기에 어떠한 입장과 원칙을 가지고 대응할 것입니까? 

정진후: 핵심은 일제고사와 서울시 교육감 선거 두 가지인데요. 먼저 잘못된 경쟁을 강요하는 일제고사에 대해서, 전교조의 입장은 ‘폐기’입니다. 그런데 금년만 하더라도 일제고사가 3번 치러지는데 당장 3월에 치러지는 시험을 계기로 이를 폐기시키기는 어려울 겁니다. 매번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단계적으로 ‘폐기’로 힘을 모아갈 수 있도록 준비된 사업을 마련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교육감 선거와 관련해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학원업자에게 돈을 받은 공정택은 가만히 두고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아 가면서 정치자금을 십시일반해 모은 분들을 처벌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죠. 또 떨어진 후보를 이렇게까지 집중적으로 괴롭힌 사례는 없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전교조가 위협적이라고 인식하고 앞으로 선거에는 전교조가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사전조치이고, 또 공정택에 버금가는 득표를 한 주경복 후보에게 사법적 올가미를 씌워 이후 선거를 못 치르게 하려는 움직임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전교조 죽이기’라는 거죠. 

일제고사 탄압과 전교조 죽이기 속에서 양심적으로 행동한 것으로 인해 파면당하고 구속당한 분들과 관련해서 당면한 법률싸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할 테고, 또 2010년 지방자치선거와 교육감 선거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준비해 갈 것입니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전교조는 외압을 받으면 더 단단해졌지 무너진 적은 없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외압이 오히려 우리가 원칙과 목표를 벼리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학교와 교실부터, 작지만 구체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이주환: 전교조가 출범한 지 꼭 20년입니다. ‘비합법의 길 10년’, ‘합법화의 길 10년’을 겪었는데요. 이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또한 정진후 위원장을 비롯하여 전교조 내 다수의 활동가들이 향후 10년 이상의 장기적 비전으로서 강조하는 ‘제2의 참교육운동’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정진후: 제가 위원장 하면서 화두로 갖고 있는 게 “교실과 학교를 변화시키자”는 겁니다. 추상적인 요구를 넘어 조그만 거라도 구체적인 현장의 변화를 만들어가자는 것이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질적으로 변화시켜야 그것이 자신감이 되고 이후의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새로운 학교 만들기’ 등을 통해 참교육 학교 모델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을 준비하고 있고, 또 학급운영과 교과운영에 대한 다양한 모델들을 갖춰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계속 엮어 나갈 때, 전교조가 만들고자 하는 학교교육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10년은 이러한 학교의 상을 실질적으로 완결시키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합법화 이전 10년은 대학민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전교조가 교육의제를 주도한 시기였죠. 전교조 합법화가 되면 정말로 참교육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했고요. 전교조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 교육의 모순점을 발견하고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을 찾아가기 위한 시기, 전교조에게는 피와 땀과 눈물의 시기였지만 사회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교육적 에너지가 넘쳤던 시기였습니다. 한편, 합법화 이후에는 이러한 에너지가 구체적인 변화로 나타났어야 함에도, 너무 많은 요구들이 쟁점화되면서 또 많은 성과들이 있었음에도 시행착오와 견제 속에서, 좌충우돌이 주로 부각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노력하고 애쓴 만큼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그것도 소중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전교조가 지향하는 제2의 참교육운동은 이러한 부분까지도 끌어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주환: 어쨌든 전교조는 정진후 집행부를 선거를 통해 조직의 ‘대안’으로 선택했습니다. 이는 정진후 후보조의 각 현안들의 대응방향에 대한 선호도 작용했겠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입니다. 답하기 쑥스러운 질문일 텐데, 본인 개인의 리더십 스타일을 말해 주십시오. 

정진후: 저는 제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왔어요. 제가 맡은 업무 영역을 조직 내에서 확장시키고, 제 역할을 증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일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근 20년간 전교조에서 갖가지 역할을 거치면서 그런 자세로 일을 하다보니까, 덜 겪어도 되는 아픔도 겪기도 했고……. 그런 부분들이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저와 함께했던 분들에 대한 신뢰가 더 컸고요. 저에게 조금이나마 설득력이 있었다면, 제가 선거 기간에 떠들었던 말들보다는 조직에서 20년 동안 일해 왔던 모습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위원장을 하면서는 핵심적인 방향과 중요한 부분에 집중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함께하는 분들이 제가 그래왔던 것처럼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믿음을 기반으로, 제가 많은 이야기를 해서 실무자 분들의 창의성과 노력을 제한하기보다는 가능한 말을 줄여서 다른 분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주환: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