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왜곡으로 기록될 MB식 역사교과서 교체

노동사회

역사의 왜곡으로 기록될 MB식 역사교과서 교체

편집국 0 3,363 2013.05.29 10:53

지난해까지는 가끔씩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너희들이 배웠다시피 우리나라는 이제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선배들처럼 거리로 나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너희들은 너희가 선 자리에서 경제적인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양심과 함께 할 사람들을 지키면 된다.” 

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난 아이들에게 거짓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았고, 초등학생마저도 거리로 나와야 하는 비참한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목 놓아 ‘자율화’를 외치던 정부이건만, 학교에서 자율화는 학교장의 자율화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교육학에서 ‘학교의 3주체’라고 가르치는 교사, 학부모, 학생은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강화된 학교장의 힘은 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를 뒤에 엎고 교사, 학부모, 학생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 학교에서 시작되다

jaju_01.jpg12월2일 교육청으로부터 공문이 하나 내려왔습니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포함한 교과서의 변경 기한을 12월10일까지로 연장하니 학교 현장에서는 착오 없이 교과서를 주문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12월3일에는 교육청에서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사용하는 학교장들에 대한 연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개의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다음해에 사용할 교과서는 6개월 전에 주문해야 한다는 ‘교과용 도서에 대한 규정’(대통령령)을 명백히 어겼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과서 선택의 최종 권한은 학교장에게 있는데 권한도 없는 교육청이 명백한 월권행위를 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봅니다. 정부와 대통령은 심심하면 ‘법치(法治)’를 이야기 합니다. 법치란 무엇일까요? 법에 의한 통치, 즉 권력을 지닌 자가 자신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를 수 없도록 법이 정한 바에 따라 통치행위를 하도록 규정한 것이 ‘법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와 대통령은 법치를 “시민들이 법을 지켜야 하는데 법을 지키지 않을 때 법에 따라 강력하게 처벌한다”라고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는 법치라기보다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에서 시행되었던 법가(法家)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기원전의 역사가 되살아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법과 규정이 그 책임자들에 의해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12월4일 학교장으로부터의 면담 요청이 있었습니다. 6명의 역사교사들은 학교 측으로부터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교체해야만 하는 이유를 들었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라는 게 사회적 논란이 되어서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교체하지 않으면 학교에 행정, 재정, 인사상의 불이익이 온다는 협박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역사교사들은 현재의 교과서에 대한 논란은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며, 현재의 교과서는 내용상으로 문제가 없고, 그런 상황에서 교체하는 것은 정치에 교육이 휘둘리는 일이기 때문에 교체할 필요성이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학교장은 역사교사들이 반대한다면 학교운영위원회에 직권으로 상정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교과서 선정과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각 교과 담당교사의 의견이 무시된 적이 없었는데, 역사교사들의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교체하겠다는 포고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이 전혀 수렴되지 않고 오직 상급기관의 지침만이 학교 운영의 잣대로 사용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또 아이들에게는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렇게 민주주의의 위기는 학교에서, 교육에서 시작되었습니다. 

jaju_02.jpg역사교과서는 역사교사가 선택해야

12월4일 학교장과의 면담 후에 6명의 역사교사들은 교과협의회를 가졌습니다.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전체 역사교사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학교장의 강력한 교과서 교체 의지 표명에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6명 모두 지금의 교과서 교체 압력은 부당하며 교육적으로 옳지 않다는 의견에 공감하였고,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는 데 합의하고 학교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기로 했습니다.

첫째, 교육청의 지시로 교과서 변경이 이루어지는 불법적 상황으로 학교 자율성이 무시되는 것.
둘째, ‘교과용 도서에 대한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 6개월 전 교과서 주문 사항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는 것.
셋째, 학내 구성원의 민주적 의사 수렴을 통한 결정 과정이 무시되는 것.
넷째, 외부의 정치논리를 학내에 끌어들여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는 것.
다섯째, 교실 현장에서 수업을 담당할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는 것.
여섯째, 좋은 교과서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


12월5일 이러한 역사교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교재선정위원회에서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교체 논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학교장은 직권으로 학교운영위원회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교체 안건을 상정했습니다. 또한 역사교사들 한명 한명을 따로 불러 각 출판사의 교과서 순위를 매겨줄 것을 요구하며 회유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경력이 짧은 선생님도, 긴 선생님도 끝까지 역사교사들의 의견을 존중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12월6일부터는 부당한 교과서 교체 압력을 동료 교사와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1인 시위와 전체 교사 서명을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토요일 아침이었지만 춥지만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정권이 바뀌었다고 역사도 바꾸려 하나? 역사교과서는 역사교사가 선택해야 합니다”라는 피켓을 쳐다보았고, 동료교사들은 따뜻한 차, 목도리, 장갑을 건네주면서 격려의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학교 안에서 1인 시위가 벌어진 일은 최근 5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이번 사건의 부당성을 인정하기에 어떤 개입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끔씩 교무실에 여러 가지 서명용지를 돌리면 서명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보통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부당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교체에 반대하는 서명에는 전체 교사 중에서 85%의 교사가 참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메신저 대화명 바꾸기를 통해 교과서 교체의 부당성을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교과서는 교사가 선택해야합니다”로 몇몇이 시작한 투쟁에 많은 교사들이 메신저 대화명을 바꾸며 지지 입장을 전해 주었습니다. 

12월8일에는 1인 시위에 역사교사들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 선생님들도 참여하여 힘을 실어 주었고, 이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교체 문제는 학교 내에서 뜨거운 이슈로 변해갔습니다. 교사가 자신이 가르칠 교과서를 자신이 선택하지 못하고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선택한 교과서로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분노했습니다. 문제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들의 선택이었습니다. 아마도 교장선생님은 이미 학부모 위원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교과서를 바꾸지 않으면 학교 경영이 어렵다는 논리로 밀어붙일 것이 예상됐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학교사회의 상식을, 학부모들의 상식을 믿기로 하고 학부모들을 설득할 자료와 논리를 준비했습니다. 

12월9일 학교운영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저를 포함한 역사 교사 2인이 참관하여 준비한 자료를 나눠드리고 왜 지금의 교과서 교체 논의가 부당한지를 설명했습니다. 특히 우리 학교 학교운영위원회 규정의 “학교운영위원회는 법령, 조례, 규정, 지침 등을 위배하거나 기타 교육적으로 현저히 문제가 있는 사항은 심의·결정할 수 없다”라는 부분을 설명하면서, 지금의 교과서 교체 논의가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대한 규정’을 위배하기 때문에 안건 상정 자체가 규정 위반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에도 “교과서를 교체하지 않으면 교육청으로부터의 행정, 재정, 예산상의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학교장의 말 한 마디에 표결도 없이 교체가 결정됐습니다.
 
참으로 허탈한 마음이었고 울분이 끓었습니다. 법이 지켜지지 않고, 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며, 상식도 통하지 않는 학교에 분노했습니다. 또한 아이들한테 미안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었고,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임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제자들아 미안하다! 교과서를 못 지켰구나, 우리 이제 수업에서 이야기하자!”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결코 지금이 끝이 아님을, 새로운 싸움의 시작임을 마음먹었습니다. 그 새로운 시작은 나의 노동의 장소인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자, 힘을 합치다!

사실 교과서는 역사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교과서가 바뀐다고 해서 역사교사의 수업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한국 근·현대사 수업에서 가르치는 민주주의를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비록 실패했지만 이 실패조차도 역사임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해 볼 생각입니다. 

그래도 참 가슴 아픈 것은 내가 가르치고 있는 부천 지역 학교사회의 현실입니다. 부천에 19개의 고등학교 중에서 17개의 고등학교에서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17개 학교 중 16개의 고등학교에서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남은 1곳의 학교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독재 시절도 아닌데 거의 100%에 가까운 교체 비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래서 분노와 비참함을 동시에 느끼던 부천의 역사교사들이 모였습니다. 이미 교체 과정에서 9개 학교 정도의 선생님들이 몇 번의 모임을 가지면서 나름대로의 공동대응을 했지만 역부족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 역사교사들이 힘을 합쳐서 함께 역사를 공부하고 수업을 이야기해보자는 논의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부당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교체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리고 마무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12월18일 부천의 송내역에서 부당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교체에 대해 항의하는 촛불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부천지역의 역사교사뿐만 아니라 동료교사, 학생을 포함한 약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주머니 속의 손을 빼서 선전지를 받아주는 시민들의 모습에 고마웠고, 자신이 배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지 않았음을 주장하는 학생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반가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부천의 역사교사들은 이후에 ‘부천역사교사선언’을 통해 교과서 교체의 부당성을 알리고 백서를 제작하여 정권의 역사왜곡과 부당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교체를 역사로 기록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역사를 보면 대중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은 침묵과 굴종을 강요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저항의 계기가 된 경우가 많습니다. 부천의 역사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교사 개인이 아닌, 개별 학교 단위가 아닌, 부천역사교사모임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칠 내용과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고자 합니다. 정권은 유한하나 역사는 무한하며, 거짓은 언젠가는 어둠속에 묻히고 만다는 역사의 진리를 아는 역사교사이기에, 학교 현장에서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가르치며 아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