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실종의 MB시대 진보진영의 대응 방향

노동사회

정치실종의 MB시대 진보진영의 대응 방향

편집국 0 2,949 2013.05.29 10:50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1년 동안 ‘민주적 타협’이라는 의미의 정치는 없었다. 아니 협상과 타협의 전제가 되는 소통조차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자신의 입장을 밝힌 뒤 이견이나 반대가 있으면 설득하고 협상하기보다는 그것이 수적인 우세이든 대통령의 권한이든 힘으로 밀어붙였고, 이를 비판하거나 항의하는 야당이나 시민단체 또는 일반 국민은 경찰력으로 군사작전 하듯 완전제압하려고 했다. 

물론 미국과 일본 등 강대국, 재벌과 대형언론사 그리고 부유층 등의 기득권층,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등 자신의 인맥에 대해서는 퍼주기의 정치를 구사했다. 이러한 MB식 정치스타일에 대처하기 위해서 개혁적 정당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국민들도 국회점거, 장외투쟁, 대중집회 등 비상례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생파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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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정치에서 기본적인 '소통'조차 하지 않는 MB식 정치스타일은 모든 야당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다. 1월6일 국회 본회의장 점거를 푼 직후 민주노동당의 기자회견 모습.    ▷ 참세상 ]

MB시대, 정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향과 정치스타일은 대통령 당선 이전에 이미 그 모습을 드러냈으나, 경제 살리기에 온통 관심을 쏟았던 국민들은 그런 MB의 정치스타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서 대통령으로 뽑아 주었다. 그러나 MB의 친미 ‘고소영’ 성향과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정치스타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국민들이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취임 후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2008년 5월에 광우병 발생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기로 결정하기까지의 과정과, 이후 국민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위험천만한 결정에 항의하는 국민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서 MB식 정치스타일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중고 학생들과 유모차 부대를 포함하여 연인원 수백만 명이 몇 개월 동안 길거리로 나와 정부의 결정에 항의하자, 이명박 정권이 내놓은 것은 고작 ‘명박산성’이고 물대포였다. 한때 어쩔 수 없이 대국민사과를 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정치스타일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 MB가 보여준 행동이 이를 입증한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 노력하기보다 대국민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홍보기획실을 새로 만들고 직접 라디오연설에 나섰다. 소통 부족을 인정한다면서 이렇듯 대국민 ‘홍보’만을 강화한 것은, 자기의 진심을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해서 반대하고 나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소통은 일방통로가 아니라 대화와 상호설득의 쌍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휘관은 부하에게 지시만 하고 어떠한 문제제기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소통이라고 MB가 믿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용산 재개발지역에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에 대한 경찰특공대의 진압방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대처방식은 MB의 정치스타일이 촛불시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강대국과 부자를 위해서는 자기 국민이나 서민이 희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믿는 것도 그렇고, 자신이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어떠한 토씨도 달지 말고 무조건 따라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이익에도 해로운 ‘MB 스타일’

MB식 정치스타일로 인해 고통이나 소외를 당한 것은 일반국민뿐만이 아니다. 북한, 진보정당과 시민단체, 온건야당, 심지어는 한나라당 내부의 ‘비MB계 의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은 대미 공조강화를 통한(즉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미국을 통한) 북한 핵 문제해결과 북한체제 변화를 전제로 하는 남북관계 진전을 일방적으로 내세웠고, 또한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설치한 통일부의 폐지를 계획하는 등 자신의 대북정책이 대화와 협상보다는 압력행사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정권의 이와 같은 ‘대미 의존적-비타협적 대북정책’은 결국 북한의 남북경협 및 직접대화 전면 중단, 남북기본합의서 파기 등을 유발하였고, 급기야는 상황이 북한의 ‘전쟁가능성’ 발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또한 MB정권은 비판적인 시민단체나 네티즌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로 대응했다. 국회에서 강경하게 저항하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전쟁을 치르듯 대응했다. 작년 정기국회에서 2009년도 예산안을 통과하자마자 MB로부터 ‘지시’를 받은 한나라당 지도부는 ‘입법전쟁’을 속도전으로 승리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의원들에게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이자”고 주문하기도 했다. 누구를 대상으로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고, 대화와 타협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이자는 것은 무슨 뜻이었겠는가. 

결국 ‘적’(敵)으로 몰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전쟁을 치르듯, 한나라당 외교통상위 소속 의원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단독으로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획책하자 회의장을 해머 등으로 부수고 들어가기도 하고, 국회의원장실, 정무위, 문방위, 행정안전위를 점거하기도 했으며, 본회의장에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회의장을 점거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기 어렵게 되자 MB는 초강수로 대응했다. 본회의장 앞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두 야당을 강제해산하기 위해 경호·방호원 100여 명을 동원하기도 하고 국회 바깥에 900여 명의 전투경찰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두 야당의 전술이 일단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집권당과 쟁점법안에 대한 이견이 워낙 심한 데다가 MB의 정치스타일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MB의 ‘전쟁하듯 정치하는 방식’은 계속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와 같은 정치스타일은 ‘자기 식구’가 아닌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도 적용됐다. 소위 ‘박근혜계 의원’들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처럼 적 취급은 받지 않았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인사에서 소외당하는 수모는 당했다. 그런데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MB계 의원들이 무리수를 두면 둘수록 자신들이 당의 주도권을 잡는 데 유리하다는 생각에서인지, 입법전쟁 등 MB계가 추진하는 무리한 작전에는 적극 참여하지 않고 약간의 거리를 두려 하고 있다. MB계 의원들이 입법전쟁을 치루는 동안 강 건너 불 보듯 하다가 가끔씩 “지나치지 않나”, “타협하지 그래” 등과 같은 훈수나 두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MB식 정치는 미국 등 강대국, 재벌과 대형언론사 그리고 부유층 등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 ‘고소영’ 등 자신의 인맥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명박 정권은 이전 정권과는 달리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이들을 위한 정권이라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이를 대기업이 잘 돼야 중소기업인과 노동자의 소득도 올라간다는 식의 ‘수도꼭지론’(trickle-down theory)이라는 레이거노믹스(Reagnomics) 또는 공급중심 경제학(즉 신자유주의)의 논리로 정당화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MB리더십의 원천은 금전만능주의 국민의식

지금까지 본 것처럼 MB식 정치스타일은 1987년 이후 20년에 걸쳐 어렵사리 뿌리를 내린 소통과 타협의 민주주의를 완전히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 주체성과 한반도 평화마저도 위협을 받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한나라당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당의 결속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정도 문제지, 어쩌자고 이명박 대통령과 MB계 의원들은 이런 식의 정치에 집착하는 것일까? 

우선, 이명박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이 민주주의를 실천해본 경험이 매우 적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 별도의 설명이 불필요할 것이다. 다음으로, 집권당이 국회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거대여당이라는 점이다. 자신들만으로도 회의 성립 및 의결 정족수를 다 채울 수 있는 조건에서, 야당과의 협상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다수결의 원칙을 빌미로 일방적으로 입법을 처리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김영삼 정권 때도 그랬다. 더구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MB계 의원들이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고, 사실상 당 총재인 대통령이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 1년간은 이러한 조건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의식’을 들 수 있다. 진보진영의 대안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탈법 의혹과 독재자적 성향에도 MB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나 재벌대기업, 부유층이나 기독교 내 보수세력 등 기득권층의 지지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이들이 여론주도층인 만큼 선거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지만, 민초들이 지지하지 않았다면 MB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일반유권자 대다수가 왜 탈법의혹과 독재자 성향이 강한 MB를 지지했을까? 그것은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이들이 금전만능주의 내지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나 인권, 법이나 약속 지키기, 환경이나 평화 등 인간관계와 인격과 관련된 가치보다는 소득의 보전이나 증대와 같은 물질적인 가치를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국민들이 민주주의나 인권 또는 환경을 경시하게 된 데에는 지난 10년의 ‘민주정권’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경험들은 모든 국민이 물질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런 국민들도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나치게 훼손되거나 특권계층만을 위해 악용될 경우 직접행동으로 항거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산 쇠고기수입 결정에 대한 항의로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3개월 이상 지속된 것이나, 얼마 전 용산 재개발지역 철거민에 대한 강경진압과 그에 따른 희생에 항의하는 촛불집회에 시민들이 대거 참여한 것 등은 우리 국민이 아직 민주주의와 인권을 잊지 않고 있다는 징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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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에서 희생된 철거민들의 추모대회에 시민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우리 시민들이 아직 민주주의와 인권을 잊지 않고 있다는 징표다. 1월31일 추모대회 모습.    ▷ 참세상 ]

MB정권의 가장 약한 고리, 이명박 대통령

MB시대의 정치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이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의 역량을 강화하고 효과적인 전략전술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약한 고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MB정권의 가장 약한 고리는 ‘이명박 대통령’ 바로 자신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빈곤하여 민주주의보다는 빈곤 탈피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냉전체제하에서 보호무역과 국가의 경제개입 등 일국적 자본주의가 규범이었으며, 세계경제가 팽창하고 있었던 시대에나 적합할 수 있는, ‘비민주적이기는 하나 불도저식으로 경제성장이라는 국가적인 목표를 일사불란하게 추진하는 리더십’은 지금 이 시대에는 더 이상 맞지 않다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약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많은 국민들이 민주주의나 인권보다는 경제성장을 중시한다고 하나, 후자를 위해 전자를 지나치게 희생하는 것까지 용인할 정도는 아니다. 즉, 경제를 중시하더라도 분배의 정의를 완전히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정치군사적 환경도 이전과 달라, 국가의 경제개입이 쉽지 않고 그 효과도 약해졌으며 보호무역은 용납되지 않는다. 게다가 MB가 가장 믿고 국제표준(global standard)으로 삼았던 미국마저도 민주당의 오바마가 집권하면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 분배와 복지를 좀 더 중시하는 케인스주의적 자본주의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 모든 측면에서 소수의 기득권만을 위한 불도저식 MB리더십은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처럼 MB는 시대와 환경에 맞지 않음에도 자신의 정치스타일을 고집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자기 기반을 와해시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즉 대선 때 자신을 지지했던 국민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으며, 한나라당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스타일을 바꾸거나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친박연대’로 넘기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MB가 보여준 행태로 미루어 볼 때 자신의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다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약간 자제할 가능성은 있다. 후자, 즉 친박연대에게 자발적으로 정국주도권을 넘겨주는 방안을 택할 가능성은 더욱 적어 보인다. 그렇게 하는 순간 MB는 당내 추종자들을 거의 잃어버려 허수아비 대통령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후자가 현실화되더라도 박근혜가 주도권을 잡은 한나라당이 얼마나 다른 내용과 형식의 정치를 할지는 의문스럽다. 따라서 MB식 정치의 위기상황이 계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권의 위기, 진보진영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명박 정권의 위기는 진보진영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회가 왔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부적 조건을 갖추어야만 이명박 정권의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진보진영이 2004년 총선 시기와 같은 지지를 현재에는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봄으로써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작년 촛불집회 무렵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여론지지도는 20%대를 넘어선 적이 없고, 한나라당 역시 30%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그 어느 진보정당도 이명박 정권의 대안으로 부상하는 것은 고사하고, 여론지지도조차 모두 모아야 같은 기간 내내 10% 남짓으로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 정당투표에서 얻은 득표율에도 못 미치고 있다. (물론 이 점에서는 자유민주주의정당인 민주당도 오십보 백보다. 한나라당 지지율도 못 넘어서고 있다.) 

왜일까? 이에 대한 설명은 지난 2005년 중반 이후 많이 제시되었다. △‘과격’,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실현가능성이 없는 정강정책’ 등과 같은 당의 이미지나 정책노선, △‘민주노총당’ 등과 같은 이미지로 인한 이미지 추락 내지 대중조직과의 관계설정문제, △‘정파갈등’ ‘분당’ ‘원외정당과 원내정당의 괴리’ 등과 같은 당내 조직상태 내지 조직운영방식, △‘풀뿌리 조직과 운동의 취약성’, ‘의정활동과 대중투쟁의 괴리’ 등과 같은 대중(운동)과의 관계, △‘민주당 이중대론’ 등과 같은 자유주의정당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가 이유들이 제시되었다. 

이 모두가 진보진영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그 어느 진보정당도 이런 문제들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갈래갈래 흩어져 있는 진보정당들의 단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섣부른 선거연합론은 토대 없이 지붕부터 올리는 꼴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민주대연합론’ 내지 반한나라당전선을 연상시키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선거연합론’이 제기되는 것은 기초 없이 지붕부터 올리자는 꼴이다. 물론 일회성 선거전술로서는 채택해볼만 하다. 그러나 일회성의 선거전술로서도 실현가능성이 적다는 점에서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재보선이든 지방선거든 후보결정은 해당지역 정당과 당원의 몫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정당조차도, 중앙당이 선거연합을 결정하더라도 당규를 보나 정치적으로나 지역에서 받아들이게 만들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굳이 선거연합을 해야 한다면 선거가 있는 해당 지역 풀뿌리 정당조직들과 당원들이 주도해야 할 것이다. 진보정당들이 설령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성사시킨다고 하더라도 후속조치, 즉 국가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연대와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 때 민주당과 진보정당 간의 정책협력이 제대로 된 적은 별로 없었다. 된 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일부 정치제도에 대해서 뿐이었다. 

따라서 MB식 정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와 민생을 회복하기 위한 진보진영의 첫 번째 과제는 진보세력 각자의 내부문제 해결과 진보세력 간의 연대협력방안 마련이다. 진보진영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태로 볼 때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할 것이다. 이제는 선거 때 잠깐 연대를 논한 뒤 평상시는 서로 갈등하는 모습은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