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동자들이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만나다

노동사회

문화노동자들이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만나다

편집국 0 3,602 2013.05.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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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6일 <콜트/콜텍 위장폐업 철회 및 노동권 쟁취를 위한 문화제에서 청계광장에 걸려 있던 현수막  ▷ 노동사회 ]

지난 10월21일 오후 7시, 청계광장에서는 “기타 Guitar 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 돌려주고 싶습니다”라는 주제를 내걸고 <콜트/콜텍 위장폐업 철회 및 노동권 쟁취를 위한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드럼의 일종인 아프리카 전통악기 젬베 합주, 홍대 앞 밴드들의 공연, 문화노동자 연영석과 命人(명인)의 노래.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을 이 조합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기타 만드시는 분들께 음악을 돌려드립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600일이 넘도록 싸우고 있는 동안, 이 투쟁이 너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 문화노동자들이 이심전심 마음을 모은 게 시작이 됐습니다. 기륭투쟁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경동 시인, 이런저런 투쟁마다 노래로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문화노동자 연영석, 역시 장기투쟁사업장에 노래와 교육으로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 담당이자 가수인 命人, 홍대 앞에서 ‘빵’이라는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등 대표, 문화연대 등이 ‘일단 모여서 뭐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문화노동자 모임’(문화노동자 모임)을 만들었지요. 이 모임은 자연스럽게 일종의 기획단이 되었습니다. 지난 10월21일에 열린 문화제는 그 기획단의 첫 사업이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삶의 노래’를 돌려주고 싶다고 한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콜트악기는 통기타를, 콜텍은 전자기타를 만듭니다. 두 회사 모두 박영호 사장이 1인 주주로 있는데, 콜트악기는 전 세계 기타시장의 30%가량을 점하고 있습니다. 모두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 결과 콜트악기는 1992년부터 2005년까지 연속 순이익을 냈고, 그 누적흑자만도 191억 원에 달합니다. 게다가 콜텍은 단 한 차례의 적자도 없이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누적흑자 878억 원의 성과를 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박영호 사장이 2007년에 경영악화를 이유로 56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것입니다. 그 후 복직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싸움이 계속되자 아예 국내회사를 폐업시켜버렸지요. 그래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600일이 넘도록 싸워오고 있습니다. 이번 문화제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작은 자리였습니다. 장인 정신을 가지고 기타를 만드는 일에 헌신해 왔던 노동자들에게, 이제는 그 기타를 사용해 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삶의 노래’를 돌려주겠다는 취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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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럼서클>과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젬베 합주 ▷ 노동사회 ]

‘팔뚝질’만 하는 행사는 그만, 홍대 밴드도 같이 하는 문화제

그런데 문화노동자 모임은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삶의 노래를 돌려주겠다는 것 말고도 또 하나의 뜻을 모았습니다. 모두들 이런저런 투쟁 문화제와 집회에 익숙한 사람들이다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화제의 형식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모은 것이지요. 그동안 여기저기서 진행되어온 노동자들의 투쟁 문화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있었습니다. 

우리네 삶과 투쟁이 모두 비슷비슷해 보여도 사실 알고 보면 노동자들의 삶도 투쟁도, 그리고 그들의 문화 역시도 모두 다양한데, 그동안 투쟁 현장에서 진행되어 온 문화제는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이어서 참 재미가 없지요. 대부분 위원장 등의 노동조합 간부들이 나와서 격한 발언을 몇 차례 하고, 국회의원이나 상급단체 간부들이 나와서 매번 비슷한 연대 발언을 몇 차례 하고, 민중 가수나 율동패 몇이 나와서 공연을 하면 참가자들은 그저 관객이 되어 수동적으로 공연을 지켜보는 식의 문화제 말입니다. 

그래서 문화노동자 모임은 지난 문화제를 기획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문화제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최대한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제를 만든다는 것이었지요. 둘째는 노동조합 간부들이나 국회의원, 상급단체 간부 등 집회나 문화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른바 ‘급’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 조합원’이 솔직한 자기 생각을 발언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팔뚝질과 천편일률적인 말투로 대표되는 집회 형식의 문화제를 최대한 벗어나, ‘이야기 마당’은 토크쇼 하듯이, ‘공연 마당’은 콘서트 하듯이, ‘참여 마당’은 대동놀이 하듯이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투쟁 영상을 활용하거나 참여자마다의 개성 있는 구호와 발언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투쟁의 결의를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중 가수뿐만 아니라 홍대 앞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공연 활동을 하고 있는 가수나 밴드가 이 문화제에 함께 하도록 하겠다는 원칙도 있었습니다. 한 번쯤 콜트 기타를 사용했을 법한 문화예술인들이 이 투쟁을 알게 되고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장기간 투쟁하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TV에서는 볼 수 없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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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제 마지막에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노래하는 모습  ▷ 노동사회 ]

“투쟁에서 이기면 더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러 갈 거예요”

그렇게 준비된 문화제의 시작은 <드럼서클>이 열었습니다. <드럼서클>의 이영용 씨는 아프리카 전통악기 젬베 수십 대를 청계광장에 설치하고,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간단한 젬베 연주법을 가르쳐 준 뒤 자유로운 합주 시간을 가졌습니다. 젬베 합주에는 콜트/콜텍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시민들, 청계광장에 놀러왔던 외국인들까지도 함께 참여해 한바탕 흥겨운 판을 만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문화제 첫 마당은 사진작가 노순택 씨가 공장에 직접 찾아가서 찍은 사진들로 만든 영상물 상영이었습니다. 命人 씨는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토크쇼’를 진행하고, 투쟁과정을 담은 영상이 돌아가는 동안 ‘사랑 노래’라는 곡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투명인간’을 부른 가수 소히 씨는 “콜트는 음악 하는 이들은 한번은 거쳐 가는 기타”라며 이런 충격적인 일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놀랍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들을 알려내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지요. 흡사 만담을 주고받는 듯한 입담과 흥겨운 노래, 기타 솜씨로 무대를 장악한 밴드 <위기의 삼촌들>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어서 무대에 올라온 연영석 씨는 콜트/콜텍 농성장을 찾았을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농성장에 도착한 연영석 씨의 기타가 콜트가 아니라는 것을 본 노동자 한 분이 “우리 악기도 좋은데…….”라며 말끝을 흐리더라는 겁니다. 비록 회사는 자신을 해고했지만, 노동자는 자신이 만든 악기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콜트악기가 세계 시장의 30%를 점유할 만큼 인정을 받을 수 있던 것이었겠지요.

문화제의 마지막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나섰습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소양강 처녀’를 개사한 노래로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했습니다. 특히 한 노동자가 울먹거리며 했던 이야기는 지켜보던 이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보다 똑똑한 분들, 아니 똑똑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내 옆에만 있어줘요. 열심히 투쟁해서 꼭 이길 거예요. 나 투쟁에서 이기면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러 갈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처럼 쭉 연대해 주세요. 함께 가 주세요. 믿어도 되죠?”

서태지의 불매 운동, 엘튼 존의 일인 시위… 상상력을 발휘하라!

장기투쟁에 지친 노동자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예술계와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문화제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문화제를 준비했던 문화노동자 모임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 돼서 다행이라는 심정입니다. 이 정도로 노동자 분들이 즐거워하실 줄도 몰랐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잘 치를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었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문화노동자 모임은 이렇게 한 번 문화제를 연 것으로 모임의 할 일이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감정을 다독여주는 음악, 그 음악을 연주하는 기타를 만들어왔던 이 노동자들에게, 이제는 우리도 무언가 돌려줘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대는 이제 시작이고, 기타 노동자들에게 삶의 노래를 돌려주기 위한 기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결의를 다집니다. 문화노동자 모임은 10월28일에 지난 문화제를 평가하고 향후 사업 계획을 의논하는 회의를 가졌고, 농성장 결합부터 문화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일까지 계속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문화노동자들의 연대가 더 많은 문화노동자들의 연대로 이어져, 누군가의 꿈처럼 “서태지가 콜트악기 불매 운동”을 벌이고(이원재 문화연대 활동가), “엘튼 존이 국회 앞에서 일인 시위”(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를 하진 못할지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투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타를 만드는 우리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노래’를 되찾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