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금융위기, 신자유주의의 조종인가

노동사회

미국금융위기, 신자유주의의 조종인가

편집국 0 4,994 2013.05.29 10:25

2007년 6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2008년 3월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베어스턴스의 구제금융으로부터 다시 폭발한 최근의 금융위기는, 결국 양대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구제금융, 그리고 158년의 역사를 지닌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이어져 전 세계 금융시장을 대혼란에 빠뜨렸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미연준)의 의장을 지냈던, 한때 ‘마에스트로’로 불리기도 했으나 이번 사태의 주범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한 앨런 그린스펀은, 최근의 사태를 “백년에 한번 있을 법한 위기”라고 지적하며 그 심각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도 이라크 전쟁경비에 맞먹는 규모에 해당하는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지원을 의회에 요청해 놓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영국의 세계적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국가의 귀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국가 대 시장’의 관점에서 그동안 국가개입을 축소하고 시장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던 지난 30여 년간의 역사가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스티글리츠는 구체적으로 이를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의 종언”이라고 단언하였다. 좀 더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월러스틴은 장기역사적 맥락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neoliberalism globalization)의 종언”이라고 평가했다.

상당한 권위를 지닌 이들의 이런 평가들은, 비록 그 표현이나 정도가 다를지라도, 레이거니즘과 대처리즘으로 시작하여 현재까지 전개되어 왔던 커다란 역사적 과정들의 공통된 실체를 드러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신자유주의의 조종(弔鐘)’이라는 맥락에서 이 실체의 의미들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 우선, 신자유주의의 등장 및 전개과정과 관련한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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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출을 갚지 못한 사람들은 주택을 압류당했다. 미국 북버지니아 머내서스시의 주택가에서 주민들이 힘없는 표정으로 앉아있다. ▶ 한겨레 ]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자본의 대반격’

1979년 영국의 대처 수상, 그리고 1980년 미국의 레이건 정부의 집권으로 시작한 신자유주의는 형태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적 뿌리는 이미 19세기 말에 시작해 대공황으로 막을 내렸던 자유주의에 바탕하고 있다. 대공황 이전까지 자유주의의 핵심은 ‘자유방임주의’(laissez faire)로 상징되는 최소국가적 시장주의였다. 시장의 신축적 가격조정에 의한 균형론적 사고가 자유방임주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1929년에 시작해 1933년까지 약 4년 동안 지속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에 의해 파국을 맞게 되었다. 시장근본주의의 실패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 형태의 국가주의, 즉 러시아 및 동유럽의 볼셰비키 공산주의와 독일 등의 파시즘을 탄생시켰다. 둘 다 자본주의적 시장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강력한 도전들이었다.

이처럼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출한 것은 그 명칭이야 어떻든 자본주의적 질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자본주의의 강화를 위해서 국가의 강도 높은 개입을 요청하였던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였다. 케인즈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복지국가 수립, 나아가 1970년 전후까지 이어진 ‘자본주의 황금기’(The Golden Age of Capitalism)를 위한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케인지안 복지국가’(Keynesian Welfare State)는 스태그플레이션, 즉 ‘경기침체하의 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위기와 함께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와 함께 강력한 사회민주당과 연계된 노동조합의 힘에 눌려 이윤압박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불만과 위기감이 고조된 ‘자본의 대반격’이 개시된다. 

누가 ‘워싱턴 컨센서스’ 목에 방울 달 수 있었을까

레이건과 대처로 상징되는 보수세력의 정치적 집권은 이러한 자본 대반격의 분수령이 되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 구체적 내용이었다. 신자유주의는 대체로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 △국공유기업의 민영화와 규제완화, △사회복지부문의 감축 등 국가지출규모의 축소를 주 내용으로 하였다. 이는 케인지안 복지국가가 개별국민경제의 대내적 자율성에 기초하여 설정했던 완전고용 목표달성과, 이를 위한 국가개입에 의한 총수요관리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대신 유자산계층의 직접적 이해에 기초한 통화가치의 안정,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시장경쟁강화에 의한 생산성 증대, 그리고 이에 따른 공급 중심의 목표가 설정되었다. 이는 ‘슘페테리안 근로국가’(Schumpeterian Workfare State)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가속적인 기술혁신과 세계화에 의한 경쟁격화는 노동시장을 재편했고 특히 전통제조업 생산직 중심 노동조합의 정치력을 약화시켰다. 따라서 노동은 과거와 같이 시장 및 자본을 제어하지 못했다. 특히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1989년 동구공산주의 진영의 몰락과 함께 더욱 더 강화되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는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그리고 IMF와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가 연합하면서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구축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그동안 공기업 민영화, 자본과 교역 장벽의 철거, 복지부문의 감축이라는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시장주의적 성공은 동시에 극심한 소득불균형과 전 지구적 양극화, 반복되는 전 지구적 금융위기를 초래하면서 반세계화의 저항을 낳기 시작했다.

‘취약한 신자유주의’, 금융위기로 폭발하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 시기 신 경제붐(IT버블)에 의한 미국자본주의의 대호황국면이 끝나면서 9·11 테러참사 등과 함께 미국자본주의의 위기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위기를 미연준은 저금리에 의한 경기부양으로 모면하고자 했다. 2000년 5월 6.5%였던 미연준금리는 2003년 6월까지 13차례에 걸쳐 1%대 수준의 초저금리로 떨어져 과잉유동성을 키웠다. 불안정한 경기상황 속에서 과잉유동성은 결국 상당부분이 투기적 주택시장 및 파생상품 시장으로 흘러들었다. 통제되지 않은 시장근본주의는 복잡한 금융시스템과 맞물리면서 금융 불안정성을 증대시켰다.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한 복잡한 대출권 시장은 주택가격의 지속적 상승을 전제로 금융시장 전체의 연쇄사슬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시스템 리스크’는 강화되었던 것이다.

결국 2006년부터 본격화한 주택경기의 하강은 비우량 주택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문에서부터 문제를 터뜨렸다. 이 최초의 격발은 주택가격의 상승이라는 전제하에 거대한 수익창출의 환상에 빠져 증폭되어 갔던, 그러나 은폐되어 있었던 시스템 전체의 취약성을 일거에 드러냈다. 따라서 최근 발생하고 있는 거대한 금융위기는 지난 30여 년 동안 지속된 시장근본주의의 약점을 정점에서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위기에 빠진 시장은 결국 국가가 구제한다는 ‘국가의 귀환’으로, 또한 시장근본주의가 내포한 허약성을 폭로한 ‘시장근본주의의 종언’으로, 더 나아가 지난 20세기의 역사 속에서 포착된 시장자유주의의 새로운 형태인 ‘신자유주의의 조종’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의 귀환’ 없이는 신자유주의 규제 불투명

그러나 우리는 과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종식되고 있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다시금 고삐 풀린 이윤추구적 사기업 및 사금융을 공적 권위에 의해 규율하고, 대내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국의 규제장치를 강화하며,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거대한 빈부격차 및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복지국가적 능력의 강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인가? ‘규율된’ 새로운 국제통화질서체제는 가능할 것인가?

적어도 무정부적 시장경쟁의 사회적 위협에 대응해 국가와 사회의 강도 높은 시장규율이 이루어질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종언으로 단언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케인지안적 복지국가가 등장할 때와 몇 가지 측면에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동의 힘’이 아직 약하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형성된 정규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의 조직화가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노동이, 그리고 노동에 기반한 국가가 자본과 시장을 규율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또한 대공황에 의한 시장의 폭력성이 국가주의에 의해 제어된 이후 오랫동안 동유럽 공산주의 및 서유럽 사회민주주의는 계속해서 시장주의를 견제하는 힘이었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신자유주의 등장 이래 서유럽 사민주의가 약화되고 동유럽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형성된 미국 중심의 일국체제는 여전히 강고하다.

신자유주의, 혹은 미국 일국체제의 종언?

그러나 어떻게든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가 향후 세계자본주의의 새로운 변형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음의 세 가지는 이 변형의 방향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준거가 될 것이다. 첫째, 이번 금융위기는 실물부문의 지연된 위기가 증폭되어 나타난 결과로 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금융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실물부문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의 실물부문으로 전이되는 정도,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들은 신자유주의 이후의 새로운 경제질서 형성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화폐의 최종적 지불수단으로서 공적 성격 및 역할은 다시 강조될 것이다. 사실 화폐는 공공재이지만 그것의 창조와 보유는 거의 사적으로 이루어진다.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대로 전통적으로 지불수단의 창조는 상업은행의 핵심영역이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는 이를 기타 비은행영역으로 확장시켰는데, 이번 사태도 바로 이에 따른 부작용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최근의 사태수습에서 보듯이 ‘최종 대부자’로서 중앙은행의 유동성 제공과 은행의 신용창조 역할에 대한 재평가가 다시 강화될 것이다.

끝으로, 세계자본주의의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지위변동과 관련한 문제가 남는다. 대공황과 금본위제 붕괴, 그리고 영국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패권국가로 등장했던 미국처럼, 과연 이번 사태가 새로운 국제통화질서의 수립과 미국의 지위를 대체할 새로운 세력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확인하기에는 적지 않은 역사적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이 과정은 매우 혼돈스런, 따라서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