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약에 정한 것보다 무거운 징계를 내릴 수는 없다

노동사회

단체협약에 정한 것보다 무거운 징계를 내릴 수는 없다

편집국 0 3,977 2013.05.29 10:24

원고 해고근로자(해고자)는 1992년 11월경 정해진 직종 없이 사용자 병원에 입사해 2005년 7월경까지 중환자실 등에서 간호보조원으로 근무했다. 해고자는 간호조무사 자격증 없이 일했지만 일하는 동안 2호봉의 특별승급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사용자 병원은 2005년 7월18일자로 해고자를 간호부 중환자실 간호보조원에서 영양팀 배선원으로 전보조치했다. 병원이 나중에 밝힌 전보조치의 이유는 △2004년 2월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한병원장협회에 “간호보조업무는 소정의 전문교육과정을 이수한 간호조무사가 수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기관 무자격자 고용시정 협조 요청’을 해 왔고, △간호등급제에 따른 입원비 차등수가제 실시에 따라 비전문인력인 간호조무사와 간호보조원의 수를 최소화하고 병동 간호인력을 늘리기 위한 경영적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자격증 없다며 전보조치 해놓고 후임자도 무자격증

그러나 병원은 해고자의 후임으로 해고자와 마찬가지로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없는 간호보조원을 배치했다. 이에 대해 해고자와 노동조합은 “해고자가 13년간 간호보조원으로서만 일해 왔는데 아무런 연관이 없는 영양과 배선원으로 배치한 것은 그간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 탈퇴를 압박하는 등의 행태를 보여 온 사용자의 태도를 봤을 때 노동조합 대의원으로서의 활동을 열심히 한 해고자에 대한 보복적인 부당 전보조치”라며 병원로비 등에서 피켓시위를 했다. 이에 병원은 △전보조치일로부터 해고일까지 무단결근을 하고, △업무상 지시명령에 부당하게 항거했다는 이유로 해고처분을 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제24조는 병원이 제시한 해고 사유인 무단결근과 업무상 지시명령 부당항거에 대한 징계는 감봉과 정직처분만을 내릴 수 있도록 그 종류와 기준을 제한하고 있었다. 또한 해고처분 이후 2006년 1월11일부터 2006년 7월24일까지 6개월에 걸친 파업이 종료될 때 “노사는 파업을 이유로 해고처분을 하지 않고 다른 징계도 최소화한다”는 합의가 있었지만 병원은 노동조합 지부장을 해고하고 다른 간부들에게는 정직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해고자는 파업기간에도 파업에 적극 참여했다. 

단체협약 기준보다 무거운 징계는 ‘위법’

해고자는 2005년 10월26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는데 경기지노위는 부당해고 부분만을 받아들여 원직복직과 임금지급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병원은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고, 중노위는 부당해고 구제신청마저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1심인 서울행정법원에서는 해고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취지의 핵심은 단체협약에 정해진 것보다 더 무거운 징계를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단체협약은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유지 개선하고 복지를 증진하기 위하여 노동자의 자주적 단체인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사이에 근로조건에 관하여 단체교섭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 명문의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하여 해석할 수 없으므로, 징계의 종류와 기준을 제한하고 있는 단체협약의 명문 규정에 반하여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더 무거운 징계의 종류로 질적인 가중은 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처럼 단체협약에서 정직·감봉처분만이 가능하도록 한 무단결근과 업무상 지시명령의 부당항거의 징계사유에 대해서는 해고처분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징계위원회에서 거론되지 않은 징계사유는 무효

이에 병원은 항소심에서 △해고자가 해고 이후 병원로비 등에서 피켓시위를 한 행위는 단체협약상 해고사유인 “종업원으로서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부당한 행위”에 해당하고, △해고 이후 6개월여의 불법파업에 참여한 것을 징계양정에서 참작하면 해고처분은 정당하며,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의 종류보다 더 가벼운 징계를 하는 등 꼭 단체협약대로 징계를 하지 않는 관행이 있었다는 주장을 추가적으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병원의 피켓시위 관련 주장에 대해서는 징계처분의 옳고 그름은 징계위원회에서 징계사유로 삼은 사유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므로, 징계위원회에서 거론되지 않은 징계사유를 포함시켜서 해고처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6개월의 불법파업참여 주장 부분에 대해서도 징계처분의 사유로 삼지 않은 비위행위를 징계양정의 참작자료로는 사용할 수 있어도, 이를 단체협약에 정해진 징계의 종류인 정직·감봉에서 더 무거운 징계종류인 해고처분으로 질적으로 가중하는 사유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체협약대로 징계를 하지 않는 관행이 있었다는 주장 역시 단체협약에서 징계의 종류와 기준을 제한하는 것은 징계종류의 ‘상한’을 정한 것이므로 그 상한보다 더 가벼운 징계를 했던 적이 있다고 해서 징계의 종류와 기준을 단체협약과 다르게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노사 간의 관행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후 사용자측은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병원의 상고가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단체협약 내용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없다!

단체협약은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작성되는 문서가 아니다 보니 규정 내용이 추상적, 포괄적이어서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서로 달리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단체협약은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유지·개선하고 복지를 증진하여 그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목적으로 노동자의 자주적 단체인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사이에 근로조건에 관하여 단체교섭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명문의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명확히 밝혀준 판결이다. 특히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징계가 빈발하는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에서 징계사유를 특정하고 징계사유별로 징계의 종류와 기준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사용자가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의 기준을 넘어 자의적으로 더 중한 종류의 징계를 내릴 수 없다는 점이 판례로서 정립된 점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