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운동과 지역사회의 유쾌한 공존을 꿈꾼다

노동사회

진보운동과 지역사회의 유쾌한 공존을 꿈꾼다

편집국 0 3,200 2013.05.29 10:24

요즘 민중의 집에 방문하는 분들은 꽤 많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대전에서도, 마산에서도, 부산에서는 1박2일로 왔다. 이들은 대부분 지역운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이다. 민중의 집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에는 언론에 보도자료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바빴지만, 최근에는 지역 케이블 방송을 비롯해 일간지, 주간지 등 다양한 언론 매체들도 민중의 집을 다뤄주고 있다. 강연요청이나 자료요청도 정신없을 정도로 폭주하고 있다.

jojik_01.jpg“1층 술집, 2층 강연장, 3층 노조와 진보정당 사무실”

좀 이상한 느낌도 든다.

사실 이렇게까지 각광을 받을 만큼 민중의 집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월 운영비도 앞으로 한두 달은 적자구조를 면치 못할 것이고, 프로그램이 시작됐지만 수용인원이 40명을 넘지 못하는 공간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희망’을 주고 있고,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중의 집’은 알려진 것처럼 원래 이탈리아와 스웨덴에서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만든 지역 생활문화의 거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노동회관이 민중의 집으로 발전됐다고 하는데, 처음 민중의 집이 만들어질 때는 “잔돈의 집”으로 불렸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과 노동조합이 돈을 조금씩 모아서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지역에서 민중의 집은 꽤나 강력한 거점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솔리니가 민중의 집을 “파시스트의 집”으로 명명했다고 하는 데서 그 영향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때 이탈리아에서 민중의 집이 성행할 때는 1천여 곳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탈리아보다는 스웨덴에서 더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료가 많지 않아서 어떤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최근 민중의 집 준비모임에서 이탈리아 민중의 집을 방문한 결과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유도와 어학이라 하고, 정치 프로그램은 조금 퇴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민중의 집은 1층이 술집, 2층은 강연장, 3층은 노조 사무실과 진보정당 사무실로 구성되어 있는 게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점에서, 생활과 문화, 그리고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선거 때만 지역 찾기’와 ‘파업 때만 지지 요청’을 넘기 위해

민중의 집 준비모임에서 이탈리아와 스웨덴 민중의 집을 한국에 접목시키려고 한 이유는 노동조합이 지역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1년 전 민중의 집 준비모임은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의 개입전략』(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행)이라는 책을 접했는데, 노동조합이 지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해외의 사례는 있을지언정 한국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총선에 두 번 출마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말들 중의 하나가 바로 “왜 선거 때만 오느냐”였다. 만약 정치인이 선거 시기에만 지역을 찾는다면 정치할 마음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노동조합도 파업 때만 지지를 획득하려고 하면 안 된다. 평상시에 지역과 호흡하는 사업이 없으면 대중들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파업이란 극히 드물다. 더구나 언론은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조합이 일상적으로 지역사업을 펼칠 수 있다면 지역 대중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고, 그것이 파업 같은 시기에는 지역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형성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은 민중의 집을 세우는 데 중요하게 고려되었던 부분이었다. 마포 지역에서도 모든 노동조합이 함께 한 것은 아니지만 노동조합이 지역의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5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장학금으로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있었고, 그것조차 노동조합별로 따로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부분을 한데 묶을 수는 없을까? 마포지역의 노동조합 이름으로 지역주민들을 위해 사업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지역에 새로운 노동조합이 생길 때 지역 대중들이 오히려 연대해 그 신생 노동조합을 지지하고 엄호해 줄 수는 없을까? 그리고 지금처럼 노동조합의 위원장들만 서로 소통하는 하는 걸 넘어서서, 조합원과 조합원이 함께 만나고 부대끼는 그런 공간을 만들 수는 없을까?

jojik_02.jpg요리사노조는 요리강좌, 공무원노조는 세무 상담

지난 7월19일 민중의 집의 문을 열면서 이런 문제의식을 프로그램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노총 소속인 가든호텔노동조합에게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요리강좌를 부탁했다. 조합원의 다수가 요리사임을 감안해 자신의 전공 분야인 요리를 매주 한 차례씩 부탁한 것이다. 가든호텔노동조합에서도 흔쾌히 받아들여서, 9월경부터는 매주 화요일에 요리강좌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마포지부에도 “단순히 월회비만 내지 말고 무언가 공무원노조가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무원노조 마포지부가 내부 회의를 거쳐 진행하기로 한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세무 상담, 사회복지 상담 등이다. 요리강좌에 공무원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도 있고, 세무 상담에 가든호텔 노동자가 참여할 수도 있다.

민중의 집은 노동조합의 참여가 핵심이다. 지역 노동조합이 조직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부분이 바로 민중의 집이 마포에만 특수한 자원들이 있기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건립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조합의 지역사회 개입전략 이외에 또 하나 민중의 집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정치의 중요성’이다. 지역은 적어도 10년 전부터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많은 활동가들이 지역으로 들어갔고, 지역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 성과가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단 한부분에 있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바로 지역이 정치적으로 보수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경우 특히 그 정도가 심해서 특정 정당이 지방권력을 싹쓸이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간의 지역운동이 정치와 괴리되어 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지역의 공동체 운동은 분명 성과를 거뒀지만,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를 배제하거나 혹은 정치중립적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공동체에서 정치 얘기는 구성원들 간에 갈등적 요인이 된다는 이유로 정치는 설 곳이 없었다. '민중의 집의 정치'는 특정 정당의 지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운동에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토론하는 정치프로그램을 주요하게 배치하는 것이다.

jojik_03.jpg노조운동과 정치운동, 공동체운동의 유쾌한 공생

민중의 집이 제시하는 비전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개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교육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함께 줄 수 있는 것은 주고,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고, 받을 것은 받자는 것이다. 또 단체와 단체를 네트워킹해서 서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끈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민중의 집이다. 생협운동과 노동운동이 만나고, 노동운동과 생태가 만나는, 그래서 서로가 가진 부분을 나눠 그 힘을 지역에서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민중의 집이다.

마포 지역에 심리상담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민중의 집에 접수된 사람에 한해서 무료로 심리 상담을 해 준다. 아동 상담, 청소년 상담, 부부 상담, 우울증 상담, 독거노인 집단 상담 등이 이뤄진다. 노조를 비롯해 각 단체에서도 민중의 집에서 진행하는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그 단체로 상담이 접수되면 민중의 집으로 연결시켜 준다. 단체들 간 네트워킹의 작은 시작일 수 있다.
만약 민중의 집이 새로운 지역운동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노동조합운동과 정치운동이 그리고 기존 지역 공동체운동이 함께 결합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마포지역에도 진보적인 가치를 지향하며 활동하는 수많은 단체들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 단체 간에는 상층부의 네트워크만 있었지, 그 구성원들 간의 교류나 구성원을 위한 프로그램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쩌면 작은 지역단체가 지닌 한계일 수도 있다. 

민중의 집을 통해 각 단체(노동조합도 물론이거니와)의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현재 지역운동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단체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과 단체의 구성원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민중의 집이다. 현재 방학기간 동안 실시하는 청소년 대상 시범 프로그램 역시 이랜드 노동조합의 자녀와 생협 조합원의 자녀, 그리고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자녀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마포 민중의 집은 이제 겨우 출발선에 있을 뿐이다. 앞으로 무척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 수많은 오류를 극복해 낼 수 있게 될 즈음에는 마포가 아닌 다른 지역 내에서도 다양한 진보세력들의 즐거운 결합이 더욱더 확산되어, 제2, 제3의 민중의 집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