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 노동자의 눈으로 영화보기

노동사회

여성의 눈, 노동자의 눈으로 영화보기

편집국 0 5,589 2013.05.29 10:23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일하는 여성의 손과 지혜가 미치는 곳에 무한한 생명력이, 일하는 여성의 힘찬 함성이 있는 곳에 눈부신 사회 발전이 있다”는 믿음으로, 일하는 여성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곳이다. 특히 일하는 여성이 알아두면 힘이 되는 다양한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들이 일터와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기 위한 무료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직장 내 모성보호, 당연한 권리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 이제 그만!” 등의 주제로 월 1회 신촌, 여의도, 신도림역 같은 곳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정책 수립과 적극적인 실행·정부의 행정지도 강화를 촉구하는 활동이나, 비정규직 실태조사와 토론회를 진행하고 비정규직의 법적권리를 홍보하는 ‘비정규직 여성 권리 찾기 운동본부’ 등 다양한 활동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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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여노독립영화상영관'의 상영 전 운영진과 관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서울여성노동자회 ]

우리도 영화 좀 보고 살자구요!

그런데 서울여성노동자회는 한 달에 한 번씩 ‘극장’으로 변신한다. ‘서울여노독립영화상영관’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일하는 여성들은 돈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 시간도 많지 않아 마음 내키는 영화 한 편을 보기가 쉽지 않다. 좋은 영화는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경험을 풍성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상처를 치료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영화를 가까이 자주 접할 수 없어 늘 문화에 목마르다. 대부분의 일하는 여성들의 현실이 그렇기에 서울여노독립영화상영관은 여성, 노동, 인권, 생태 등 다양한 주제로 만들어진 독립영화들을, 참석하는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상영한다.

현장에서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밤잠 못자며 영화를 찍었는데 막상 영화를 틀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한 아마추어 현장 감독들에게도 서울여노독립영화상영관은 꼭 필요한 공간이다. 단지 영화를 틀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 상영 후에는 회원들의 ‘수다 공간’을 만들고 감독 또는 출연진과의 대화 시간을 제공한다. 일명 “여성의 눈, 노동자의 눈으로 영화 보기” 프로젝트다. 서울여노독립영화상영관은 『서울여노클럽: 여성과 일 카페』란 프로그램 중 일부이며,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여성노동자회는 한 달에 한 번 <공간 여성과 일>의 교육장을 극장으로 개조(?)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나 보다. 사무실에 극장을 열어도 영화를 보여주는 딱 그 시간에, 딱 그 공간으로 찾아오기 힘든 사람들이, 일하는 여성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그래서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일반 극장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노동자의 삶, 진보적인 삶을 다룬 영화들을 가지고 직접 여성들의 일터로 찾아간다. 한창 투쟁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은 물론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 주민들이 모여 있는 지역 속으로 들어간다. 이른바 ‘찾아가는 영화상영회’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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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랜드노조 농성장에서 열린 '찾아가는 영화상영회' 모습.  ▶ 서울여성노동자회 ]

여성, 노동, 환경… 내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노마 레이』,『별별이야기』, 『수퍼맨의 하루』 『대지의 소금』, 『주문, 우리는 더 강해질 거야』, 『다섯은 너무 많아』,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타인의 삶』, 『우리에겐 빅 브라더가 있었다』, 『이랜드 투쟁 영상』, 『노스컨츄리』, 『살기 위하여 - 어부로 살고 싶다』, 『세 번째 시선』, 『쇼킹패밀리』, 『대추리 전쟁』, 『식코』, 『쥐코』 등이 지금까지 상영된 영화들이다. 위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간혹 극장에서 상영된 적이 있으나 베스트셀러는 되지 못한 메이저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은 제목조차 생소한 구하기 힘든 영화들이다. 찾아가는 영화상영회에서는 우리가 일반 극장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들의 주제도 매우 다양하다. 1970년대 미국 방직공장을 배경으로 한 여성노동영화의 고전이라 할 『노마 레이』는 물론 1970년대 동일방직 사건을 다룬 『우리들은 정의파다』와 같이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노동영화도 있고, 최근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생생한 현장 노동영화까지, 노동자의 시선으로 노동 현장의 삶과 투쟁을 담은 영화들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찾아가는 영화상영회가 영화들의 주제가 ‘노동’ 하나에만 한정된 단선적인 프로그램은 아니다. 『생리해서 좋은 날』, 『‘별별 이야기』, 『쇼핑패밀리』 등은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 영화들이다. 그 밖에도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을 다룬 『대추리 전쟁』처럼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물론, 미국의 민영 건강보험 문제를 다룬 『식코』, 인간과 자연이라는 공식을 넘어 다른 생명체의 눈으로 지구를 보는 생태 환경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와 같은 작품들도 상영한다. 이렇게 다양한 영화들을 구해 상영하기 위해서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영화진흥위원회와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다. 

영화가 다리를 놓아 준 사람들 

지난 5월에는 김미례 감독의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라는 영화를 들고 한국노총을 찾았다. 방송국 구성작가, 학원 강사, 골프 경기보조원, 파견 사무직 등 비정규직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루고 있는 영화를 매개로 한국노총 여성노동교실의 노동자들과 만난 것이다. 7월부터는 월드컵경기장역 앞 이랜드 투쟁이 한창인 농성장에서 이랜드 노동자들과 이랜드 투쟁에 연대하러 온 사람들, 그리고 홈에버 월드컵점 주변지역의 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이랜드 노동자를 응원하는 수요주민영상제’를 열었다. 적게는 12명에서 많을 때는 70명의 관객들이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관객들은 영화 감상이 끝난 후에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현실과 관객들이 살고 있는 현실을 비교하며 열띤 수다를 나누기도 했고,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출연진을 직접 만나 영화의 세계로 빠져들어 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영화를 들고 찾아간다. 지금까지 세종대학교 경영대학 생활협동조합, 성균관대학교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수업, 고양시여성민우회,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등의 요청으로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영화라는 매개로 사람들이 만날 때,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과 처지가 달라도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된다. 가령 이랜드 노동자들은 투쟁 현장에서 열린 영화상영회를 통해서, 늘 투쟁 발언과 연대 발언, 민중가수의 공연으로만 진행되던 집회 분위기를 벗어나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그들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특별한 선전전 하나 없이 영화를 통해 어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제는 의미가 충분했다고 할 수 있겠다.

성별과 세대, 제작자와 관객의 벽을 넘는 소통

물론 서울여성노동자회도 처음에는 참여 인원이 적어서 어차피 늘 만나는 사람들끼리나 만나는 게 아닌가 염려도 했지만 사람이 적을 때는 역설적으로 더욱 알찬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회를 거듭할수록 참여 인원이 늘어나 이제는 고정 관객까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연세대학교에서는 총여학생회의 요청으로 영화를 상영했다. 총여학생회의 행사 기간 중 열린 상영회여서 주로 여학생들만 참여할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남학생들도 꽤 관심을 갖고 찾아왔고, 무엇보다 공공서비스노조 서울경인지부 연세대학교비정규직분회 노동자들이 영화를 함께 보았다. 이 날은 『우리는 정의파다』를 상영했는데, 영화를 본 학생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1970년대 동일방직 사건에 대해 그렇게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감독과의 대화 시간엔 2008년을 살고 있는 학생들로부터 “어떻게 저 시대에 지금도 따내기 힘든 권리들을 따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는데, 인터뷰 중심의 영화이기에 다 담을 수 없었던 투쟁 과정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오고갔다. 그리고 그때 싸웠던 노동자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후일담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영화를 함께 본 뒤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뒤풀이 자리에서도 계속되었고, 학생들과 연세대분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2008년 노동자들의 현실에 함께 분노했다. 영화를 만든 사람, 영화를 함께 본 50~60대의 여성노동자들, 아직 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미래의 노동자들이 영화를 통해 한국 노동자의 삶과 미래, 노동자들의 불안에 대해 함께 느끼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영화 하나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

이렇게 서울여성노동자회의 영화 교육은 문화의 장이자 다양한 만남의 장이다. 영화를 매개로 다양한 문화와 만남의 통로를 제공하면서, 그 안에서의 소통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생생한 교육의 장이다. 동참하고 싶은 분은 서울여성노동자회에 문의하시라. 혹시 아는가? 어쩌면 당신이 만나고 싶은 영화를, 그리고 현실에 튼튼히 발 딛고 서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영화처럼 만나게 될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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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서울여성노동자회  
http://www.equaline.or.kr, 02-3141-3011 
담당자 빨간거북 010-9288-4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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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