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미래는 있는가

노동사회

노동운동의 미래는 있는가

admin 0 3,763 2013.05.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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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1년 10월 17일(수)
곳: 사무금융노련 교육장
발표자: Lasse Lindstrom 스톡홀름대학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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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발표 ]

forum_01_5.jpg여러분과 함께 노동조합운동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지금 스톡홀름대학 정치학과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을 비롯한 제3세계 노동운동과 정치발전에 대해 연구해왔습니다. 제 박사 논문 역시 한국 노동운동에 관한 것입니다. 

요사이 '노동운동이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 옵니다. 산업 노동자계급이 사라지고, 노조 협상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시장이 모든 걸 지배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저는 UN 산하 연구소의 요청으로 다른 학자들과 함께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나라에서 노동운동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노동운동의 사망선고가 적절치 않다는 기존의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한 기회였습니다. 

일부 논자들은 세계적인 규모의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의 결과 초국적 자본은 강화되는 반면, 국가의 힘과 역할은 약화되어 왔다고 강조합니다. 이들은 유럽의 코포라티즘 체제가 대표적인 예라고 말합니다. 사실 노동자계급이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대가로 자본주의 안에서의 사회정치적 안정을 수용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국가의 약화와 국제 경쟁의 강화는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점점 줄여가고 있습니다. 이제 초국적 자본과 시장의 힘이 국가의 힘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는 것일까요? 저는 국가와 노동의 관계를 다시 검토해봄으로써 노동운동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점을 오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

지금 시민사회(civil society)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이 개념은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프랑스계 미국인이었던 토크빌 이래 국가와 시민사회를 바라보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세워졌습니다. 이 계보는 존 로크, 존 스튜어트 밀, 막스 베버 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시민사회를 절대주의 국가와 가부장적 가족 관계 외부에 존재하는 영역으로 규정했습니다. 

억압과 비민주의 상징인 국가와 가부장제적 가족 밖에 있는 영역을 시민사회라 규정하고, 이것을 국가와 가족에서 분리된 자유의 영역이라 설정했습니다. 

시민사회를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국가와 가족 밖에 존재하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로 본 것이지요. 이런 입장에서 보면, 국가와 시민사회는 항상 적대적이며, 국가와 시민사회는 서로 따로 기능하고 움직이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영역인 시민사회가 억압적이고 반민주적인 국가를 항상 감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시민사회가 국가의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논리에 따라 국가의 역할을 국방, 치안, 시민적인 계약관계의 보증으로 한정하려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국가에 대립하는 시민사회 안에는 갈등이 없다고 전제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시민사회는 민주적이고 국가는 비민주적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연장선에서 로버트 파트남은 시민사회 안에 여러 가지 그룹과 조직들이 많을수록 민주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노동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노동은 시민사회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민사회 안에 자리잡은 노동은 민주적이기 때문에 비민주적인 국가와 대립적일 수밖에 없고, 시민사회 안의 다양한 세력과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국가와 노동의 관계가 항상 적대적·대립적이라는 주장은 자유주의자들의 것입니다. 

자유주의 대 맑스주의

이런 흐름에 맞서는 다른 입장이 있습니다. 바로 헤겔에서 시작해 맑스와 그람시로 이어지는 전통입니다. 헤겔은 시민사회는 민주적이거나 자유롭지 않으며, 그 안에 갈등과 모순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시민사회가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결과임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죠. 그는 시민사회 안에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과 충돌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대신 국가는 일반 이익(general interest)을 대표한다고 봤습니다. 통일체로서의 국가가 시민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입장에서 보자면, 시민사회가 민주적인지 아닌지는 경험의 문제이지 개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맑스와 그람시에 의하면, 시민사회의 대표적인 갈등인 자본과 노동의 갈등은 국가 자체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기업들이 다르면 그 이해관계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자본의 이해관계의 차이도 국가에 반영됩니다. 다시 말하면 시민사회의 민주성은 경험적인 문제고, 이것은 그대로 국가에 반영됩니다.

노동의 전략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했을 때, 노동의 전략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에 반영되는 노자간의 대립, 자본간의 대립이라는 시민사회의 갈등 구조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노동의 전략이란 시민사회의 계급관계가 국가에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자유주의자의 입장에 서면 국가와 노동은 항상 대립적이기 때문에 국가와 노동의 동맹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맑스주의 전통에 서면 시민사회 내부의 대립관계를 활용한 노동과 국가의 동맹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남아프리카로 가봅시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경험은 자본들간의 갈등을 이용해서 인종차별체제, 즉 아파르트헤이트를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한 경우입니다. 이미 말씀 드렸듯이, 자본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국내 시장을 목표로 하는 자본도 있고, 국제시장을 목표로 하는 자본도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의 경우, 인종차별에 따른 경제제재로 국내시장을 목표로 한 수입대체생산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아프리카 국내 자본은 경제제재 때문에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국제 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대신 국내 시장에 대한 보호주의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본의 성격은 국가와 정당구조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집권당이었던 국민당은 바로 이런 국내 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정당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당의 정책은 1980년대 들어 틈새를 보이기 시작했던 국내 시장에 만족하는 자본, 국제 시장으로 나아가려는 자본, 남아프리카 시장을 넘보는 외국 자본의 이해를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남아프리카의 경제를 둘러싼 상황이 변함에 따라 자본과 노동은 물론, 자본 내부에서도 힘 관계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ANC는 이러한 국가 내부의 모순관계를 분석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민주세력과 동맹 하에 국민당과 협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94년 민주주의로 이행하게 됩니다. ANC는 국가란 모순으로 가득 찬 유기체며, 어느 지점에 어느 공간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ANC는 운동 세력이 기존 국가 안의 세력과 대립할 수도 있고, 연합할 수도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한국의 노동은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

이제 한국으로 돌아옵시다. 한국경제의 상황을 1985년까지 살펴보면 국내 자본에게 보다 우호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경제 개방과 더불어 초국적 자본이 국내시장에 침투하게 되지요. 외국 자본의 침투는 현실적인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기도 했습니다. 경제개발이 시작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가 국내 자본에 우호적인 환경이었다면, 이제는 외부 영향의 결과, 국제 자본에 우호적인 환경으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노동운동이 이런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내 자본끼리의 갈등과 대립은 물론 국내 자본과 외국 자본 사이의 갈등과 대립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은 당연하게 국가에 반영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힘듭니다마는, 한국의 노동은 이러한 갈등과 대립 국면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에 대해 노동은 두 가지 입장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자유주의의 시각에서(이것은 신자유주의의 논리이기도 합니다) 국가를 투쟁의 대상으로만 설정하고, 항상 대결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를 시민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반영되는 장으로 보고, 대결과 조정(accommodation)이라는 양면 전략을 구사할 것인가.

신자유주의가 국가와 노동을 약화시켜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국가가 가진 갈등과 대립의 요소들을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노조가 전략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저는 멕시코, 남아프리카, 한국에서 그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한국 노동운동의 국가에 대한 입장이 자유주의에 경도된 측면이 있습니다. 국가는 항상 노동에 적대적이라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듯이, 국가가 항상 자본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며, 항상 노동에 적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시민사회는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이 갈등하고 투쟁하는 장이며, 이러한 상황은 국가에 반영됩니다. 한국의 노동은 국가 안에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의 구체적인 계기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토론 ]

우리 시민운동은 정치적 민주화의 연장선에서 시장의 자유화를 요구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민운동을 어떻게 보십니까? 

신자유주의는 시민사회의 만개를 가져왔습니다. 아주 많은 시민운동 조직이 시민사회 안에 존재합니다. 이 가운데는 민주적인 조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조직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자유주의자의 시민사회론은 현실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개념입니다. 이들은 국가는 비민주적이고, 시민사회는 민주적이기 때문에 민주적이라는 동어반복을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한국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는 여러분들의 몫이지 저의 몫은 아닙니다. 

자본끼리의 이해관계가 틀리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의 재벌은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한국인들은 재벌이 초국적 자본과 다른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한국의 재벌은 초국적 자본입니다. 이런 점에서 크게 보아 한국 재벌이 다른 나라의 초국적 자본과 다른 속성을 갖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양자 모두 자본의 일반적인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자본끼리의 갈등과 대립을 활용해야 한다는 전략이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한국 자본의 성격을 볼 때 한국의 국가가 자본의 갈등과 대립을 반영하기보다는 자본의 이해관계가 단일하게 관철되지 않는가 싶은데요. 

한국의 상황은 다른 나라와 틀립니다. 하지만 한국만 틀린 게 아닙니다. 모든 나라가 다 틀립니다. 모순들도 다 틀리고, 맥락과 상황도 틀립니다. 물론 한국은 민족 분단이라는 특이성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에 구체적인 전략을 적용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일 겁니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과도하게 자본 편을 들고 있어요. 이 점은 유럽과는 커다란 차이라고 봅니다. 

국가 내부의 갈등을 이용하자는 말과 국가가 자본의 편을 든다는 말은 사실 다른 게 아닙니다. 그것은 시민사회의 갈등구조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시민사회의 힘 관계에서 자본이 압도적일 때 국가는 당연히 자본 편만 들겠지요. 한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한국은 공권력 투입을 규탄하지만, 남미에서는 노조지도자가 암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자의 천국'이라 불리는 스웨덴에서도 집권 사민당이 비밀경찰을 동원해서 노동운동 안의 공산주의 세력을 감시하는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의 동맹 전략을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경우 노동운동이 동맹 전략을 취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노동조합이 동맹, 즉 연대 전략을 취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노동운동은 한국의 민주주의 지지 세력, 사회운동 세력과 연대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저는 '사회운동 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를 지지합니다. 정규직 중심의 전통적인 노동운동은 비정규노동자 및 실업자와 연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나라의 노동운동 역사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를 들어, 값비싼 한국의 농산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두고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연대할 수 있습니다. 산지 가격은 낮은데 소매가는 높은 현실을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함께 문제제기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습니다. 

노조운동에 있어서 국제 연대가 중요합니다. 국제회의에만 참가하는 관광이나 여행 중심의 국제연대가 아니라 실질적인 국제 연대를 조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남미의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사용자들이 노조 활동을 이유로 공장을 노조가 허용되지 않는 무역자유지역으로 옮기려 하자, 독일 본사의 노조가 나서서 이를 무산시킨 적이 있습니다. 이는 노동자의 협상력이 일국 차원에선 약하지만, 국제적으로 확대되면 커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의 초국적 자본인 현대나 대우에서 노조가 외국의 노동 형제들을 위해 이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저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협력을 높이는데 있어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사례가 없을까요?

제가 구체적인 전략을 말씀드릴 위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제조업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 나아가 민중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