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희망 여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힘겨운 장기투쟁

노동사회

노동의 희망 여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힘겨운 장기투쟁

편집국 0 2,835 2013.05.29 10:20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한계와 그 역사적인 수명을 보여주고 있으며, 죽어가는 신자유주의 체계를 고착화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의 몸부림은 노동운동을 포함한 진보진영 운동에 더욱 전향적인 고민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역동하고 있는 정세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절박한 상황에서 목숨을 건 치열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비정규 장기투쟁을 통하여 진보운동의 가능성과 방향을 가늠하여 본다. 

왜 그/녀들은 목숨을 건 투쟁을 질기도록 이어갈까

“우리는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결심하였습니다.” 1,000일이 넘는 파업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투쟁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금속노조 기륭분회의 조합원들은 100일이 다하도록 생사를 넘나드는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자본은 책임 회피와 냉소로 일관하였을 뿐이다. 결국 김소연 분회장의 목숨을 담보로 한 단식은 주위의 만류로 중단되었고, 암으로 투병 중이던 권명희 조합원은 험난한 투쟁이 새로운 고비를 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으로서 고달픈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또한 800여일이 넘는 투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KTX 여승무원의 고공농성도, 결국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지 못한 가운데 마무리되었다. 비정규직법을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로서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이랜드 투쟁의 노동자들은 두 해의 추석을 길거리에서 보내야만 했고 다음 추석을 집에서 보낼 수 있을지도 기약하지 못한 상태다. 아울러 코스콤과 재능교육의 비정규 노동자들 역시 자본의 불법파견과 탄압에 맞서 수백 일을 길거리 천막농성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전국에서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힘겹게 장기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 고단한 하루하루가 더해지는 투쟁 과정에서 그/녀들과 가족들의 생활은 만신창이가 되고 있고, 이미 가정 파탄과 집단적인 정신질환으로까지 나가는 사례들이 빈번하다. 그럼에도 왜, 그/녀들은 그 험난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을까?  

비정규직 투쟁은 한국사회의 미래 향해 열린 창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890만 명에 이르고 있음에도 고용구조는 더욱 악화되고 있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심각한 차별은 나아질 기미도 보지 않은 채 구조화되었다. 또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고용관계를 넘어 금융거래와 인간관계 등 일상생활으로 확대 및 심화되고 있다. 이미 정상적인 생활의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본적인 생존권조차도 위협 당하게 되면서, 비정규직들은 마지막 선택으로서 투쟁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비정규직들의 절박한 투쟁에 대하여 자본과 정부는 대대적인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투쟁들이 장기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생존권의 위기에 내몰려 있는 비정규직들에게 ‘투쟁의 장기화’는 곧 자신과 가정의 생존을 걸라는 요구와 같다. “아이들 학원을 보내지 못하는 아픔”을 넘어, “전기조차 끊겨 늦은 밤 촛불을 켠 채 기다리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결국 극단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건 극단적인 선택으로 저항하고 있으며, 감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한편, 장기투쟁으로 점철되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의 양상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전술적 혹은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장기투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비정규직의 어려움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결국 어려운 장기 투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의 처지가 워낙 절박하였거니와 자본과 정부의 탄압이 ‘타협’의 여지조차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기륭과 KTX의 경우 사측은 기존의 안에서 후퇴하는 태도로 일관하였으며,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나섰던 뉴코아 노조의 경우에는 결국 간부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투쟁을 마무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문제의 핵심에는 ‘상황의 절박함’이 놓여 있고, 절실한 것은 치열하게 버티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실질적인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밑바닥 비정규직의 생존뿐만 아니라 전 사회구성원의 삶을 위기로 내몰고 있으며, 이에 맞서 비정규직들이 선두에서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가장 낮은 곳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갈수록 광폭해지는 자본주의와 한국사회의 희망과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창문이다. 과연 우리는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쇠락해가는 민주노조운동의 희망, 비정규직 조직화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정규직 조합원들의 지원과 연대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으나, 아직 투쟁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전개되고 있지 못하다. 민주노총이 이랜드 투쟁에 대하여 유례없는 지원을 하였음에도 결국 자본과 정부의 탄압을 넘지 못했고, 오히려 그 투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현재 비정규직 투쟁을 수많은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이 주목하고 있으며, 이후 비정규직 조직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과 정부가 비정규직의 장기투쟁에 대해서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총자본은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대응하고 있는 반면 총노동전선은 가시화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투쟁을 장기화시키는 구조이기도 한 것이다. 

현재 자본의 공세 속에 현장의 노동자들이 위축되어 있으며 각 조직이 어려운 상황인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투쟁을 비켜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민주노조운동의 역량을 다시 모아야 한다.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의 문제는 단지 그 사업장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를 가름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고통을 희망으로 만드는 정치적 연금술 요구돼

1987년 이후 노동자들의 함성과 함께 터져 나온 민주노조운동은, 병영적 관리체계에 의하여 질식되었던 한국사회 민주화의 새로운 계기였으며, 사회 경제적 민주화로 나아가는 구심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1998년 IMF 관리체제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공격에 무기력하였고, 결국 유례없는 구조조정에 노동자들의 삶은 나락으로 추락하였으며 민주노총의 사회정치적 영향력은 유실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형성된 1990년대 후반의 실리적 조합주의 노조활동은 결국 노동자의 자주성과 연대의식을 잠식하였고, 결국에는 조합원의 실리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일상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투쟁을 배제한 실리주의는 노동의 미래를 팔아 현재를 연명하는 것에 불과하였음이 증명되었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분할 지배를 용인한 결과 비정규직 고용의 구조화를 막지 못하였으며, 결국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조직으로서 노동계급의 대표성과 사회정치적 영향력의 위축을 목도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위기에 처한 민주노조운동의 대안으로 산별노조 건설이 제시되었으나, 아직까지는 조직을 전환하는 수준이고 기업노조운동의 관성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별 노조의 지주였던 ‘경제적 조합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산별운동의 주요한 과제이며, 그 핵심 과제가 바로 ‘비정규직 조직화’이다. 노동계급의 생존은 자본과의 거래가 아닌, 연대를 통한 조직과 투쟁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신자유주의에 맞서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진보정치운동 역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이 역시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 핵심에는 ‘밑바닥 삶’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밑바닥 삶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비정규직 주체의 정치운동이 활발하게 되지 못하는 한 진보운동의 미래는 닫힐 수밖에 없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초 역시 비정규직의 조직화라는 것이다. 

또한 기존 보수정치 구조가 갖는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밑바닥으로부터의 정치’를 위해서는 선거와 의회에 머무르지 않는 운동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즉, 비정규직의 대중적 조직화와 노동기본권 보장을 주요 축으로, 직접행동과 연대전선의 확장을 통하여 신자유주의 고착화에 맞선 투쟁을 진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수정치 체제에 파열을 내고, 정치체제의 재편과 ‘비정규직의 정치세력화’를 진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돌아볼 필요 있는 비정규직 주체들의 지난 활동

그러나 한편으로, 비정규직 장기투쟁의 주체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역할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비록 비정규직 운동의 역사가 짧고 어려운 조건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존 노조운동의 관성과 한계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해온 주체로서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초 비정규 투쟁사업장들이 스스로 교착되어 있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공동투쟁을 모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급단체의 역할에 대한 평가보다 훨씬 중요한, 투쟁하고 있지 않는 비정규직의 상황에 대한 진단과 조직적인 적극적인 대응은 가시화되지 못하였다. 결국 어려운 조건을 공동투쟁을 통하여 돌파하려는 결의를 모아내지 못한 것이다. 

산별노조를 기축으로 움직이고 있는 민주노총의 구조를 고려하더라도, 장기투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주체들의 사업과 업종을 넘는 적극적인 태도와 결의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주체들이 일상적인 노조활동과 사회 정치활동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는 것을 구실로 기존의 경제적 조합주의 노조운동의 한계를 반복한다면, ‘비정규직 철폐’는 요원한 구호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현실이 너무 캄캄해 한치 앞도 안 보이더라도 ‘미래’를 준비하는 투쟁과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의 미래를 씁쓸한 희극으로 만들지 않기 위하여!

이명박 정부는 현재 공공연하게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또한, 민간 부문의 구조조정을 위해서 국가권력의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반면에 노동에 대하여서는 ‘관용 없는 원칙’을 강조하며, 경제성장을 위한 노동기본권의 포기를 종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유연화를 명목으로 노동시장은 황폐화 될 것이며, 이에 따라 노동의 전반적인 불안정화 속에서 비정규 노동의 문제는 확대 및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단순한 노동의 문제가 아닌, 사회 양극화의 핵심으로서 한국사회의 주요 해결과제가 되어있다. 이렇게 관심이 커지는 것은 긍정적인 흐름이나,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비정규직 주체와의 연대로 적극적으로 구체화되고 있지 못하다. 그동안의 실천이 비정규직 실태를 드러내고 이슈화하는 것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비정규직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전망과 실천을 모아야 할 때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비정규직 조직화의 중요성이다. 이는 정규직 중심으로 뒤틀린 한국의 노조운동을 바로 잡고, 나아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및 시민사회의 저변을 확대함으로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현재 기존 노조조직들은 ‘산별노조로의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만약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배제된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산별노조는 한국노조운동에서 노동권 발전의 계기가 아닌 기득권 수호를 위한 후퇴로, 한바탕의 씁쓸한 희극으로 기억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진보운동의 전망은 신자유주의로 고통 받고 있는 핵심 주체인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통하여서만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창은 지금 마지막 힘을 쥐어짜고 있는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의 절박한 투쟁 속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두의 연대가 절실한 이유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