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노트]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노동사회

[연구노트]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편집국 0 8,503 2013.05.2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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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7년 12월 노사정위원회 연구용역으로 작성한 글과, 2008년 6월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 2008 제주인권회의’에서 발표한 글을 요약 및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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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1993년 2월에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노동정책 제1과제로 추진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평생직장에서 평생고용으로”를 슬로건으로,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도 높게 추진했다. 2003년 2월에 출범한 노무현 정부도 이러한 정책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노동시장은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수량적 유연성과 임금불평등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한국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노동정책 제1과제로 추진한 것은 “한국의 노동시장은 경직적이다. 더 많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가능했다. 이러한 담론이 형성되기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1994년 일자리 연구」(Jobs Study)가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다”는 담론을 뒷받침할만한 실증분석 결과가 제시된 적이 없다. 최근에는 OECD 스스로 「1994년 일자리 연구」에서 정책권고가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고(OECD 2004, 2006), 유럽연합 각국은 기존의 유연성 논의가 갖는 한계를 넘어서 유연성과 안정성을 결합시키는 방향에서 ‘유연안정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글의 제2절에서는 “한국의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다”는 지배적인 담론과는 달리, “한국의 노동시장이 매우 유연하다”는 실증분석 결과를 살펴본다. 제3절에서는 유럽연합에서 진행하고 있는 유연안정성 논의를 살펴보고, 제4절에서 한국은 수량적 유연성을 제어하고 기능적 유연성과 안정성을 제고하는 방향에서 유연안정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할 것이다.

2. 노동시장 유연성 추정 결과

가. 고용보호법제 경직성 지표


[표1]은 OECD가 2004년에 발표한 28개 회원국의 고용보호법제 경직성 지표이다. 한국을 중심으로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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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1990년대 후반과 2003년은 대량해고와 임시고용이 급증한 시기이다. 그렇지만 이 시기 한국의 고용보호법제는 4개 지표 모두 변함이 없다. 이것은 고용보호법제 경직성 지표와 현실 사이에 상당한 갭이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2003년 한국의 고용보호법제 경직성 지표는 OECD 28개국 중 12위로 유연한 편에 속한다. 정규직 고용보호는 16위, 임시고용 규제는 17위로 중간 정도이고, 집단해고 규제는 뉴질랜드, 일본에 이어 3위로 매우 유연하다. 

셋째, 고용보호법제가 가장 유연한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도 집단해고는 우리보다 훨씬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나. 노동시장 유연성 추정

OECD의 고용보호법제 경직성 지표는 해고관련 법률조항에 점수를 매겨 비교한 것으로, 경제학적 의미에서 노동시장 유연성을 추정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규정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법률과 현실은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근로기준법은 사실상 최고(또는 표준)기준으로 작용하지만, 유럽에서는 단체협약으로 노동시장을 규율하기 때문에 해고관련 법제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경제학적 의미에서 노동시장 유연성은 “경제가 변동할 때 노동시장이 얼마나 유연하게(탄력적으로, 빠른 속도로) 조응하는가”를 의미하며, 기능적 유연성과 수량적 유연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 유연성 개념에 근접하는 지표로는 (장단기)탄력성과 조정속도, 변동성과 상관성이 있다. 주요 실증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김유선(2004), “한국과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성 비교”
오차수정모형을 사용해서 한국과 미국의 노동시장, 고용, 임금의 장단기 탄력성과 조정속도를 추정한 결과,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OECD 국가 중 1위를 자랑하는 미국보다 크게 높다. 노동시장, 고용, 임금의 장기 탄력성과 단기 탄력성, 조정속도 9개 지표 가운데, 고용의 단기탄력성만 미국이 높을 뿐, 나머지 8개 지표는 모두 한국이 미국보다 높다.

② 칠레 중앙은행 알바그리 등(2005), “칠레 노동시장 유연성 평가: 국제비교”
벡터자기회귀 모형을 사용해서 18개 국가 노동시장의 탄력성을 추정한 결과, 한국과 홍콩의 노동시장이 가장 유연하고, 칠레, 멕시코, 미국이 다음으로 유연하며, 독일, 스페인, 스웨덴, 콜롬비아가 가장 경직적이다.

③ 한국노동연구원 이인재?이연정(2005), “노동시장 유연성 국제비교” 
60개 국가의 고용조정속도를 추정한 결과,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60개 국가 중 9위이고, OECD 국가 중 1위다.

④ 김유선(2004),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구조변화”
한국의 정규직은 비정규직보다는 안정적이지만, OECD 국가 중 노동시장이 가장 유연하다는 미국 노동자(정규직과 비정규직 포함)보다 고용 변동성, 노동시간 변동성, 임금 변동성 모두 높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극심한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정규직은 미국 노동자들보다 노동시간 상관성, 임금 상관성이 높다. 고용조정이 본격화될 때까지 2개월가량 시차가 있을 뿐이다.

다. 고용안정성

국제노동기구(ILO)는 고용안정성의 지표로 근속년수를 사용한다. OECD 국가들의 근속년수 평균값을 살펴보면, 유럽대륙은 8.5~13.3년이고, 영미권은 6.7~8.3년인데, 한국은 4.5년으로 가장 짧다. 그만큼 한국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3. 유럽연합에서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논의

사용자들은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탈규제화를 요구하고, 노동자들은 급격한 구조조정과 일자리 재배치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용불안 해소를 목적으로 고용안정을 요구한다. 최근 유럽 각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유연성(flexibility)과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안정성(security) 양자를 결합해서 노동시장정책과 사회보장정책을 운용하는 방향에서 유연안정성(flexicurity)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사용자를 위한 노동시장 유연성과 노동자를 위한 고용안정성이 반드시 모순관계는 아니며 보완관계가 될 수 있다는 인식과, 이들 양자를 적절하게 결합할 때만이 기업의 경쟁력과 노동의 안정성 및 사회통합을 동시에 증진시킬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 유연안정성 정의

유연안정성 개념을 처음 도입한 빌트하겐은, 유연안정성은 “한편으로는 노동시장, 작업조직, 노사관계의 유연성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취약계층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높이는 정책전략”(EC, 2006)으로 정의한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유연성과 안정성을 분리시켜 사고한다든지, 주변부만 유연성을 증대시켜 노동시장의 분단을 촉진하는 (노동시장) 개혁전략은 부적절한 것이 된다.

빌트하겐은 유연성을 △외적 수량적 유연성, △내적 수량적 유연성, △기능적 유연성, △임금 유연성 등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안정성을 △직장안정성, △고용안정성, △소득안정성, △결합안정성 등 네 유형으로 구분한다([표2] 참조). 유연성과 안정성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유연안정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고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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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연성

빌트하겐은 유연성을 다음 네 유형으로 구분한다. 
① 외적 수량적 유연성: 해고와 채용을 쉽게 하고 기간제 고용을 사용할 수 있는 정도
② 내적 수량적 유연성: 해고와 채용에 의존하지 않고 기업이 사용하는 노동의 양을 변경하기 쉬운 정도(예: 노동시간 변경, 파트타임/초과근로 사용 등) 
③ 기능적 유연성: 작업조직을 재편하기 쉬운 정도, 노동자와 기업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예: 다기능화, 직무순환 등) 
④ 임금 유연성: 경제 환경에 따른 임금비용 적응 정도 
구즈워드 등(2000)은 기업의 유연성 전략을 수량적/계약 유연성, 생산/지리적 유연성, 일시적/재정 유연성, 기능적/조직 유연성 네 유형으로 구분한다([표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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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에서 유연성 증가는 노동자에게 실직 등 사회적 위험의 증가를 의미한다. 사회적 위험의 증가는 사회적 보호 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하며, 이러한 사회적 보호 시스템은 탈상품화와 취업가능성 두 목표를 충족시켜야 한다([표4] 참조). 여기서 탈상품화는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고서도 개인과 그 가족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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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은 “황금 삼각형”으로 불리는 등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그림1> 참조). 덴마크 노동시장은 영미권과 비교될 만큼 외적 수량적 유연성이 높으면서도, 사회보장제도와 적극적 노동시장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고용보호입법은 느슨하고 노동이동은 활발한 데 비해, 실직자에게 높은 수준의 실업급여가 제공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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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를 한국과 비교하면서 살펴보면, 첫째 고용보호법제 경직성 지표는 OECD 28개 국가 중 8위로 한국(12위)보다 조금 더 유연한 편에 속한다. 세부항목별로 살펴보면 정규직 고용보호는 5위, 임시고용 규제는 14위로 한국보다 유연하다. 그렇지만 집단해고 규제는 23위로 한국보다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표1] 참조).

둘째, 덴마크에서 연간 노동이동은 입직률과 이직률 모두 평균 30%이고, 일자리 창출율과 소멸률도 12%에 이른다. 이처럼 활발한 노동이동과 직장이동은 대기업에 비해 경영사정이 불안하고 수명이 짧은 중소기업 비중이 높기 때문인데, 500인 미만 중소기업이 전체 노동자의 80%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근속년수 평균은 8.5년으로 OECD 국가 중 여섯 번째로 짧고, 임시직 비율은 10%로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도 활발한 노동이동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2006년 월평균 입직률과 이직률은 각각 2.5%와 2.4%로 연간 30%에 이르고, 300인 미만 중소기업이 전체 노동자의 88%를 고용하고 있다. 근속년수 평균은 4.4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짧고, 임시직은 전체 노동자의 53%(기간제는 22%)를 차지한다.

셋째, 덴마크는 노동조합이 실업보험을 관리·운영하고,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생산직은 실직 전 임금의 70%를 실업급여로 지급받고, 저소득계층은 순소득대체율이 90%에 이른다. 이에 따라 덴마크 노동자들이 누리는 소득안정성은 매우 높고, 노동자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정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실업급여 수급기간은 총 4년으로, 처음 1년은 소극적 기간(passive period), 다음 3년은 적극화 기간(activation period)으로 구분된다. 소극적 기간 중에 실업자는 아무런 의무 없이 실업급여를 지급받지만, 적극화 기간 중에는 노동사무소가 제공하는 대책, 특히 직업훈련에 참여해야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실업급여는 법률상 평균임금의 50%를 3개월 ~ 1년간 지급하는 데 불과하다. 실업급여의 실제임금대체율은 28.7%(2004년)로 매우 낮다.

넷째, 덴마크에서는 1994년부터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해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가운데서도 특히 직업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GDP 대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지출이 1991년 1.46%에서 2004년 1.74%로 높아지고, 전체 노동시장정책 지출(GDP 대비 4.42%)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에서 2/5로 높아졌다. 

한국에서 GDP 대비 노동시장정책 지출은 0.36%(2004년)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고, 이 가운데 GDP 대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지출은 0.17%밖에 안 된다.

다. 유럽연합 25개 국가의 유연안정성 추정 결과

[그림2]는 요인분석과 군집분석 기법을 사용해서 유럽연합 25개국의 노동시장 유연안정성을 추정하고 유형화한 결과이다. 6개 집단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첫째 집단은 사회적 모델을 대표하는 서유럽 국가들(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로, 사회적 보호수준이 높고 근속년수가 길며, 이동성이 낮고 노동시장은 경직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② 둘째 집단은 자유롭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대표하는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파트타임 비중과 노동이동성이 높고 실업률은 낮다.
③ 셋째 집단은 유연안정성을 논의할 때 벤치마킹 모델로 자주 얘기되는 덴마크와 핀란드, 스웨덴으로, 유연성과 안정성 모두 높다.
④ 넷째 집단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아일랜드, 키프로스 등 최근 성장률이 매우 높은 나라들로, 노동시장은 상대적으로 유연하지만 사회적 보호와 소득보호 수준 모두 낮다. 
⑤ 다섯째 집단은 남부유럽 또는 지중해 모델을 대표하는 그리스, 이태리, 몰타, 포르투갈, 스페인으로, 노동시장 적응성은 낮고 소득보호 수준은 낮다. 교육훈련 지표도 낮고, 고용률은 낮고 실업률은 높다.
⑥ 여섯째 집단은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체제전환국들로, 노동시장 이동은 낮고, 장기실업률은 높고, 고령자 고용률은 낮다.   

이상의 분석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각국의 사회정책과 노동시장 상황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국가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이다. 첫째 집단에 속하는 유럽대륙 국가들은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므로 유연화를 추구해야 한다. 다섯째와 여섯째 집단에 속하는 남부유럽 국가와 동유럽 체제전환 국가들은 사회적 안정성과 노동시장 유연화 양자를 추구해야 한다. 아일랜드 등 넷째 집단에 속하는 국가들은 노동시장은 유연하지만 사회적 안정성은 낮으므로 사회적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이처럼 유럽 각국은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고 유연안정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유럽 수준에서 하나의 공통된 노동정책과 사회정책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각국의 노사정 3자가 상호 신뢰와 협력에 기초하여 사회적 합의를 추구할 때만이 유연안정성 정책은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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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맺는 말 

1) 노동시장 유연성을 수량적 유연성과 기능적 유연성으로 구분하면, 지난 15년 동안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수량적 유연화(고용조정, 비정규직 확대, 아웃소싱)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성은 “경제가 변동할 때 고용, 임금, 노동시간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 하는가”를 의미하는 바, 기업에게는 경제적 효율성을 의미하지만 노동자에게는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운용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저해함은 물론 사회불안마저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기능적 유연성은 “노동자의 교육훈련, 작업조직 재편 등을 통해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을 의미하므로, 노동자에게는 고용안정과 생활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고 기업에게는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의 원천을 보장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고성과-참여적 작업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며, 수량적 유연성을 추구하는 기업일수록 기능적 유연성을 끌어올릴 능력은 제약된다(Atkinson 1987). 앞으로 한국의 노동시장 정책은 수량적 유연성을 제어하고 기능적 유연성과 안정성을 제고하는 방향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2) 지금까지 한국의 노동운동은 수량적 유연성은 물론 기능적 유연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해 왔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기능적 유연성(동태적 유연성)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동태적 유연성을 추구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일지라도, 기업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의사결정 참여를 허용하지 않고, 집단적·공식적 참여보다 개별적·비공식적 참여를 선호하며, 선진국에 비해 훨씬 전제적(autocratic)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Deyo 1997). 

기업은 사람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전제 아래, 기업의 전략을 ‘비용(인건비) 절감을 통한 단기수익 극대화’에서 ‘사람을 중시하는 장기수익 극대화’로 전환하고, 노동조합은 사람 중시 경영철학, 경영 투명성 보장, 노동조합 의사결정 참여 등을 전제로 기능적 유연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고용과 생활의 안정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3)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노동정책과 사회정책은, 노동시장은 유연화하면서도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노동시장 불평등과 소득분배구조 악화는 기정 사실(또는 ‘시장’이라는 불가항력적 힘에 의한 결과)로 받아들인 채,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이를 사후적으로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책방향은 ⑴ 사회적 안전망 구축 등 사후적 보완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고 단기적으로 효과가 가시화되기 어려우며, ⑵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노동소득 분배구조를 방치한다면 수많은 노동자가 저임금과 빈곤의 덫에 빠져 설령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된다 하더라도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우며, ⑶ 노동소득은 전체 요소국민소득(노동소득+사업소득+자산소득)의 60%를 차지하고 개인 또는 가구소득의 주요 원천임을 감안할 때, 분명한 한계가 있다.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성을 제어하고,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 제어, 최저임금 수준 현실화, 연대임금정책, 연대복지정책, 교육훈련시스템과 연계된 숙련급 체계 형성, 산업별 단체교섭 촉진과 단체협약 효력확장’ 등의 노동정책을 통해 노동시장 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소득안정성과 고용안정성을 제고할 때만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고 소득분배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자세한 것은 김유선 2005 참조).

4) 그동안 정부 정책방향은 얼핏 보면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과 비슷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덴마크 실업자는 실직 전 임금의 70%를 4년 동안 지급받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우리의 경우와 다르다. 한국에서는 앞으로도 덴마크처럼 높은 소득안정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의 구체적 실정에 대한 검토에 기초해서 한국에 적합한 유연안정성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국이 시행하는 정책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잉태된 것이므로 어느 한 나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그 정책이 곧바로 다른 나라에 쉽게 이전되지 않는다. 모든 나라, 모든 기업에 적용 가능한 하나의 최선의 방안은 존재하지 않으며, 구체적 조건에 따라 적합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서로 다른 적용수준(노동자, 가계, 기업, 부문, 국가)과 상호작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노사정 3자의 타협에 기초해서 스스로에게 적합한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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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