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야만은 노동자의 영혼을 잠식한다

노동사회

사회의 야만은 노동자의 영혼을 잠식한다

편집국 0 2,906 2013.05.29 10:18

조사 직전까지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조사를 하는 게 맞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현재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이런 조사가 과연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 과정은 반드시 지금의 어려움을 드러내야 하는 과정일 텐데, 그로 인해 조합원들이 더 힘들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힘든 조건 속에서도 싸움을 근근이 이어 왔는데, 이들의 사기를 올려줘도 모자랄 판에 조사 결과가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었다.

두 번째는 ‘정신건강이 좋지 않다’는 표현을 곧바로 ‘미쳤다’고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에서 정신건강 평가를 수행하는 것 자체가 갖는 어려움과 관련된 것이다. 조합원들의 현재 정신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미쳤다’고 여길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긴 투쟁을 이어오는 이들을 흘겨보는 사람들에겐 이러한 조사 결과는 좋은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저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라니까…….”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투쟁으로 정신 건강이 피폐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사람들이니까 오랜 투쟁을 벌인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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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5일 열린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 모습. ▶ 오마이뉴스 ]

장기투쟁 노동자들의 당부 “진실의 힘을 믿어요”

그래서 조사 대상 노동조합을 선정하고 몇몇 간부들에게 조사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고 조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조사 대상 노동조합으로는 철도노조 KTX·새마을호 승무지부, 이랜드 일반노조, 증권노조 코스콤 비정규지부를 선정했다. 모두 1년 가까이 혹은 3년이 되도록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비정규직 사업장이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는 조사 대상으로 선정하려 했으나 조합원들의 단식 투쟁으로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단식 투쟁 중에 정신 건강 상태를 조사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견을 물어본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일부 노동자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노조 간부들은 대부분 조사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부위원장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진실의 힘을 믿어요. 우리가 힘들어하고 있다면 진실이 있는 그대로 알려져야죠. 진실은 투쟁에 도움이 되건 안 되건 진실이니까요.” 이 한마디에 힘을 얻고 조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조사를 시작하면서 조사의 목적으로 세 가지로 명확히 했다. 첫째, 조사 과정과 결과 발표를 통해 사회적으로 잊혀져 가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다시 부각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간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이들의 삶 자체에 초점을 두어 사회화하고자 했다. 둘째, 조사 과정과 발표 그리고 후속 사업이 실질적으로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조사 결과를 함께 공유하고 현재 상태를 냉정히 파악함으로써, 향후 투쟁계획을 세워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사를 기획했다. 그리고 후속 사업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했다. 셋째, 조사 결과가 이들 조직과 연대하고 있거나 연대할 계획이 있는 조직에 참고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랐다. 연대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연대할 조직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마음만 앞서는 연대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 연대하고 있거나 연대를 계획하고 있는 조직이 이들의 상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경제적 타격, 사회적 배신감, 육체적 어려움의 3중고

조사는 각 노조의 일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로 시작되었다. 각 조직별로 일반 조합원과 간부 4~5명을 각각 인터뷰했다. 이는 이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파악하여 설문 문항으로 녹여내기 위한 작업이다. 인터뷰에 응한 노동자들은 투쟁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을 제일 먼저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조합원들이 상암 월드컵 경기장 앞에 다시 천막을 치고 농성을 개시한 직후에 이루어졌다. 이랜드 조합원들은 뭐니 뭐니 해도 현재 가장 힘든 것은 경제적 문제라고 얘기했다. 이랜드에 입사하게 된 것도 형편이 좋지 않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한 것인데, 현재 거의 수입이 없는 상태가 되다보니 타격이 크다는 것이다. 더불어 자식들 걱정이 많았다. 자신들의 투쟁으로 자식들 교육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는 이들이 많았다. 가족들이 자신의 투쟁을 이해해 주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대화가 줄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난생 처음 ‘투쟁’이라는 것을 해보며 세상이 무섭다는 걸 새삼 느꼈다는 이들도 많았다. 

KTX·새마을호 승무지부의 조합원 역시 서울역에 다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할 즈음에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힘들다고 얘기했다. 주변의 친구들은 다 직장을 갖고 있거나,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는 등 자신을 위한 투자에 열심인데, 자신들은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투쟁 와중에 틈틈이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투쟁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마음이 불안하여 그것조차 그리 쉽지는 않다고 얘기했다. 오랜 기간 합숙을 하며 투쟁을 하는 와중에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뷰에 참가한 이들 모두가 은연중에 공유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사회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선택한 이곳에서 이들은 뼈저린 배신을 경험했다.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사회를 믿지 않게 된 듯했다.

코스콤 비정규지부 조합원에 대한 인터뷰는 여의도의 노숙 농성장에서 진행되었다. 이들은 다른 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투쟁 탓인지, 아니면 대부분의 구성원이 남성이어서인지 다른 조직 인터뷰 참가자들에 비해 투쟁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강조했다. 힘든 게 있다면 오랜 노숙 생활로 인한 육체적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그리고 이랜드 조합원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했다. 이랜드 조합원과 또 다르게 이들은 대부분 집안의 가장인 경우가 많다. 이들의 수입이 가정의 주수입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적 어려움은 익히 예상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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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는 KTX·새마을호 승무원지부 조합원들이 오랜 투쟁기간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건강 상태가 가장 나빠진 것으로 분석됐다. ▶ 철도노조 서울본부 ]

서울역 노숙인보다 심각한 상태… 우울증, 적대감에 시달려

인터뷰를 끝내고 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마련된 설문지와 정신 심리검사 도구를 활용해 본격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는 설문지에 조합원 본인들이 직접 응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설문지 배포와 수거에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응답된 설문지는 빠르게 수거되어 내 앞에 놓였다. 분석을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힘들어한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인데, 힘든 조건 속에서도 잘 버텨내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으면…….’

그러나 분석 결과는 내 바람과 같지 않았다. 이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된 서울역 노숙인들보다 좋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 중 지금 현재 정신질환이 의심되어 정신과 의사의 면담이 필요하다고 평가된 이들의 비율은 18.3%에 달했다. 이는 일반 인구 집단에 비해 7.3배나 많은 것이다. 한편, 지금 당장 면담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이들의 비율도 35.0%에 달했다. 조합원들 10명 중 3~4명은 정신적으로 힘든 조건을 견디면서 현재 생활과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증상별로 보면, 전체적으로 우울, 적대감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우울 증상으로는 △매사에 걱정이 많다, △기분이 울적하다, △기운이 없고 침체된 느낌이다, △허무한 느낌이 든다고 응답한 이들이 많았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응답한 이들도 전체의 35.9%나 되었다. 이 역시 일반 인구에 비해 2~3배 높은 수준이다. 응답자 중에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고 응답한 이들도 많았고, “슬픈지 잘 모르겠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응답한 이들도 많았다.

적대감 증상으로는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자신도 걷잡을 수 없이 울화가 터진다고 응답한 이들이 많았다. 이는 소위 말해 ‘화병’ 증상이다. 화가 맘에 응어리져 있어 쉽게 화를 내게 되고, 말과 행동도 쉽게 공격적이 되는 것이다. 화가 이렇게 응어리져 풀리지 않는 것은 화를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울분을 호소할 데가 없어 아무도 없을 때나 밤중에 벽을 보고 하소연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 보기가 무섭고 불안한 미래에 떤다

정신건강 수준과 주요한 정신 증상을 조직별로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전체적인 정신 건강 수준은 KTX·새마을호 조합원들이 가장 안 좋았고, 이랜드 조합원들이 그나마 좋은 편이었다. 코스콤 조합원들은 중간이었다. 이는 투쟁 기간과 조합원의 성별, 연령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투쟁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신 건강은 더 나빠질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나이가 젊을수록, 결혼을 한 사람보다는 안 한 사람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건강 수준 저하가 더 심하다. 

주된 정신 증상을 살펴보면 KTX·새마을호 조합원과 이랜드 조합원은 비슷한 양상이었다. 이들은 우울과 적대감이 주된 증상으로 나타났다. 다른 점이 있다면 KTX·새마을호 조합원들의 경우 강박증, 편집증, 불안 증상들도 상당히 높다는 것이었다. 이는 세 조직 중 투쟁이 가장 장기화되면서 투쟁 결과에 대한 강박이나 불안이 더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코스콤 조합원의 주된 정신 증상은 두 조직과 좀 다른 양상이었다. 코스콤 조합원들도 우울이나 적대감 증상이 높았지만, 다른 조직과 다르게 대인예민성과 공포불안 증상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는 사람을 대하기가 어렵거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증상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코스콤 조합원들이 이동 인구가 많은 여의도 한 가운데에서 노숙을 하며 투쟁을 이어왔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어제까지 똑같이 같은 차림으로 일하던 사람들을 흡사 노숙인의 몰골을 하고 대해야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더불어 코스콤 조합원들은 여러 가지 신체 증상들을 호소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는 오랜 노숙 생활과 용역직들과의 일상적 마찰로 신체 건강 상태도 나빠졌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소견이다.

조직별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느끼는 영역도 같으면서 약간 달랐다. 이랜드 조합원과 코스콤 조합원은 역시 경제적 어려움을 가장 많이 호소했다. 그에 비해 KTX·새마을호 조합원들은 미래에 대해 준비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 주되게 스트레스를 느끼는 영역의 차이는 성별 차이보다는 연령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연령이 높은 이들은 이랜드 조합원과 코스콤 조합원 모두 경제적 어려움과 자식 걱정을 가장 염려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연령이 낮은 이들인 KTX·새마을호 조합원이나 코스콤 조합원 중 20~30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 주변 친구 관계의 단절로 인한 어려움 등을 많이 호소했다.

영혼을 잠식하는 야만을 당장 멈춰라!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정규직 투쟁이 장기화되면 당사자의 삶뿐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투쟁이 장기화되면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비정규직에게 이러한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날 것임은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가 더욱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투쟁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겠는가?  투쟁이 장기화되기를 바라는 조합원들은 없다. 이번 조사에 참여했던 조합원들 모두 며칠이면 투쟁이 끝날 줄 알았다고 한다. 길어 봐야 한 달 정도면 해결이 될 줄 알았던 이 싸움들이 길어지면서 더욱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이들의 책임이 아니다. 이는 온전히 해당 자본과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현재 상태를 해결할 책임도, 앞으로 이러한 마음 아픈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할 책임도 모두 자본과 정부에 있다.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몇몇 분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힘든 싸움을 왜 계속 이어 나가십니까?” 대답은 단순하고 간명했다.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고, 옳은 것은 승리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 건데 싸우나 안 싸우나 마찬가지다.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 이상 끝까지 간다”는 대답도 돌아왔다.

이들은 평범한 40대 가정주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대 청춘, 가족과 함께 조그만 꿈을 그려보던 40대 가장 등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아줌마, 아저씨, 언니, 동생이다. 이들이 더 이상 ‘비극적 투사’의 삶을 이어가지 않도록 자본과 정부가 나서야 한다. 노동자의 몸뚱아리만으로 부족해 영혼과 가족의 삶까지 잠식하려는 야만과 불합리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