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와 교사, 그리고 엄마

노동사회

활동가와 교사, 그리고 엄마

편집국 0 3,379 2013.05.29 10:16

교육은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나눌 수 있고 공교육은 대부분 학교라는 기관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학교가 공교육기관의 대표격인 셈인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학교교육만 믿고 아이들을 맡기는 학부모는 사실 드문 것 같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사교육기관에 의존하는 학부모가 많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는 최근 사교육비 지출 실태에 대한 통계청과 교육과학기술부의 조사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월 20만 원, 연 300만 원… 사교육의 나라

내용을 살펴보면 전국 초중고생의 사교육비 규모가 약 20조 400억 원에 이르고, 예상한대로 사교육 참여율은 4분의 3이 넘는 77%나 되며, 학생 1인당 월 사교육비는 22만 2천 원이라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초등학생은 272만 원, 중학생은 281만 원, 고등학생은 288만 원을 연간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있고,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총 12년간의 사교육비는 학생 1인당 평균 3,340만 원을 쓴다고 한다. 물론 개인마다 편차가 매우 심하겠지만 대단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일단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엄청난 금액이 공교육에 투입된다면 학교교육의 질이 얼마나 달라질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우리나라가 공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은 GDP의 4.8%이고 사교육비는 GDP의 3.4%인데, OECD 평균이 공교육 4.6%, 사교육 1.3%인 것과 비교하면 사교육비에 들어가는 돈은 세 배가 넘는다. 게다가 한국은 공교육비 중 학부모의 부담률이 OECD 회원국 중 최고라고 한다.

대학교까지 무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핀란드와 비교해 보면, 핀란드는 국가예산의 약 14%를 교육 분야에 할당하고 GDP의 7%를 공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비가 가계지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처럼 살기 힘든 때에도 전체 가계소비지출 가운데 교육비가 6.2%를 차지한다고 하니 말이다.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주부들이 하고 있다는 이런저런 다양한 알바들은 이미 온 국민이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내 알량한 교육철학, 그렇게 이상한가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고 그에 대해 일정한 희생들을 감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초등학교 때에 피아노나 태권도, 바둑, 수영을 가르치기 위해서 학원을 이용하긴 했지만, 공부하는 학원에는 두 아이 모두 보낸 적이 없다. 그 흔한 학습지도 시킨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에는 책을 많이 읽고 자기 방어적 수단으로 수영이나 태권도 등의 운동을 할 수 있으며,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쯤 배울 수 있다면 인생이 풍요로울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교육철학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알량한 신념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초등학교 때 학교를 마치고 와서 느닷없이 자기도 보습학원에 보내달라고 떼를 쓴 적이 있다.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면 모두 다 학원에 가는데 자신만 집으로 오기 때문에 심심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학원은 놀러가는 곳이 아니고 공부가 하고 싶으면 학교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을 더 집중해서 듣고 그 내용을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고 타일렀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의 지인들에게 했다가 “가기 싫다는 아이가 대부분인데 아이가 원할 때 보내지 그러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집으로 보내 온 설문지에 학부모로서 솔직하게 답을 해서 보냈는데 그 내용으로 인해 아들아이는 오히려 학급친구들로부터 박수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아이들이 학급별 통계를 내기 위해 거수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설문내용에 대한 답변을 일일이 집계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내 설문 답변만 다른 학부모들과 달리 아이들의 마음과 같았나보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시행하는 시험은 연간 몇 회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타 학부모와는 달리 가장 적은 횟수에 체크를 하고, “학교교육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내용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에는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기”나 “인성 기르기” 등등의 주관식 답변을 냈었던 것도 같다.

활동가와 교사와 엄마, 학원에서 충돌하다

그러나 작은아이가 중학생이 된 지금은 우리 아이도 사교육기관인 학원에 보내고 있다. 이는 스무 살이 된 딸아이의 충고로 이루어진 것이다. 큰아이는 본인이 중학생이 되고 6개월 후에 스스로 학원에 보내달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마 과학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모든 학생들이 선행학습을 시키는 학원에 다닌다고 판단해서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 학습내용에 대한 설명 없이 학습을 시켰던 모양이다.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전부여서 기본 개념에 대한 사전 학습 없이 공부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도 선생님한테 다시 가르쳐달라고 이야기하고 모르는 것은 질문을 하라고 이야기했다가 “질문을 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는데 나만 그러기 힘들어”라며 투덜거리는 아이를 처음으로 학원에 보내고 난 뒤, 착잡한 심정으로 며칠 동안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알량하다면 알량한 신념과 철학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 같았고, 무엇인가에 참패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공교육기관에 종사하는 초등학교 교사이자, 공공성 강화에 기반을 두고 참교육을 실천해야 하는 전교조 활동가이다. 이런 다양한 정체성들이 충돌하는 상황이 바로 내 아이의 교육 문제였고, 교사이자 활동가로서 지향해야하는 이상과 내가 처한 현실이 부딪치는 부분이 바로 아이들 학원 문제였다. 

이제 작은 아이가 학원에 다닌 지 세 달이 되어간다. 지금도 학원비를 낼 때마다 갈등한다. 그리고 아이가 학원에 다니지 않겠다고, 그냥 혼자 공부하겠다고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내가 가진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게 아이들이 도와주기를 바란다. “그런 나의 신념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하나의 압력일 것”이라는 자기변명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그러나 주장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같아야 하고, 아직도 나의 교육철학과 신념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난 계속해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채 지금도 아이는 옆집에 놀러 가듯이 학원에 간다.  

정부 교육정책의 이중적 태도, 그 씁쓰레한 뒷맛

사교육을 담당하는 학원이 없는 것은 물론, 과외도 피아노 등 예술 분야에 한해 소수만이 받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이 이루어지는 나라! 그 무엇보다도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공동체 시민으로의 성장’이라는 교육철학을 가진 핀란드의 모습은 우리가 감히 꿈꿀 수 없는 요원한 사회인가? 

국제중학교 설립을 주장하며 그 행보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는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국제중학교 수업은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하지만 영어시험으로 입학자를 선발하지 않으니 사교육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에서 보이는 이중적 태도는 가히 소도 웃을 만하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사교육을 줄이는 정책을 내오라고 주문을 하면서 국제중학교 설립에 대해서는 공정택 교육감에게 소신껏 하라는 격려성(?) 멘트를 날린 것을 보면, ‘이중적 태도’는 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나름대로의 교육철학을 접은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개인적 비겁함을 이상적 교육현실을 가진 나라와 우리의 현실에 견주어 구차하게 변명해 보지만, 그러나 참으로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