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언

노동사회

교육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언

편집국 0 2,934 2013.05.29 10:15

교육노동자 운동은 사실상 전교조의 활동을 말한다. ‘교육노동자’는 일반 명사에 해당하고 ‘전교조’는 고유 명사라는 차이점 말고 이 둘을 구분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글은 교육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어떠한 운동을 전개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꿔 말하면 전교조의 현재와 향후 활동 방향에 관한 얘기인 셈이다. 

전교조라는 단체의 사회적 인지도는 매우 높다. 특정 단체가 이 만큼의 인지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 사회적 인지도와 사회적 영향력은 대체로 비례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교조가 교육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인지도에 비해 매우 낮다. 그것은 전교조 바깥의 변수가 작용한 결과일 수 있으나, 내부 요인도 적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이 글에서는 전교조의 활동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교육노동자 운동’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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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노동자 운동은 사회 변혁 주체로서 교사의 노동자 계급성을 확인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전교조의 전신인 민주교육추진 전국 교사 협의회(전교협)이 전개했던 교련탈퇴운동 선전물. ▶ 교육희망 ]

인지도와 영향력 비례 않는 전교조의 현실

교육노동자 운동을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노동자 운동이란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해 둘 필요가 있다.

노동자 운동은 노동 조건의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본디 노동자 운동내지 노동 운동은 자본 운동에 대항하는 상대적 개념으로 출발하였다. 자본 운동은 그 속성상 흔히 노동 착취로 이어진다.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노동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자 운동은 노동 조건의 개선뿐만 아니라 자기 노동 분야의 발전을 목적으로 삼는다. 자기 노동의 결과가 자기를 배반하는 일, 즉 노동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 운동 또한 정당하다. 이러한 논리에서 교육노동자가 노동 조건의 개선과 아울러 교육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에서 교육노동자 운동은 “공공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노동 조건의 개선과 교육의 발전을 위해 벌이는 조직적인 활동”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노동자 운동은 1961년 결성된 이른바 ‘4?19교원노조’가 처음이다. 4?19교원노조가 5?16군사쿠데타 정권의 탄압에 의해 소멸된 지 27년 만인 1989년 전교조가 출범하였다. 1999년 교원노조가 특별법에 의해 합법화되면서 기존의 전교조 외에 한교조가 등록함으로써 현재는 복수 교원노조 시대이다. 

‘계급성 확인’, ‘교육연대’ 동시에 지향하는 교육노동자 운동

교육노동자 운동이 가지는 의의는 노동 운동 측면과 교육 운동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노동 운동 측면에서, 첫째, 교육노동자 운동은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한국 노동자들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크게 높였다. 이 무렵 교사가 ‘교육노동자 선언’을 한 것은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로 작용하였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을 교육하는 학교 현장에서 이러한 메시지는 노동의 가치를 교육적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였다. 교육노동자 운동은 전체 사회 변혁 운동에 교육노동자가 참여하는 경로를 확인시켜주었으며, 나아가 사회 변혁 주체로서의 노동자 계급성을 확인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둘째, 교육노동자 운동은 스스로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교원에 대한 경제적 처우가 나아지고 근무 여건이 일부 개선되는 등의 성과를 가져왔다. 더불어 교사들이 교육노동자로서의 권리 의식을 갖게 되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다음으로 교육 운동 측면에서, 교육노동자 운동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닌다. 첫째, 교육노동자 운동은 교육민주화를 진전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학교 분위기가 80년대까지 지속되던 각급 학교에서, 교육노동자 운동을 계기로 학교 운영과 교육 내용 측면에서 개혁이 이루어졌다. 교육민주화의 진전은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학부모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1996년부터 학교별로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을 제도화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교육 내용 면에서도 반사회적, 반노동자적 관점으로 서술된 교과서 내용이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많은 부분 바로잡히게 되었다. 

둘째, 교육 노동의 특수성을 확인한 점이다. 교육 노동은 아동과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을 돕는 노동이라는 점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노동과는 다르다. 따라서 노동의 결과 역시 즉각적으로 나타나기보다 긴 시간을 두고 다양한 결과로 나타난다. 교육 노동의 이 같은 특수한 성격에 따라 운동의 방식에 있어서 다른 분야 노동자들과는 다른 방식과 태도가 요구되었다. 즉 교육노동자는 노동자 계급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계급과 계층을 넘어선 교육 연대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뜨거운 한국사회의 교육열에 어찌 대응할 것인가

이제 교육노동자 운동을 본격적으로 평가해보자. 그런데 교육노동자 운동을 평가하기 전에 우선 한국 사회의 ‘교육열(敎育熱)’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른 국가, 다른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과열된 교육열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한 그간의 사회적 진단은 학벌사회, 학력 간 임금격차, 전통적인 인문 숭상주의, 기득권 집단 강화,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욕구 등 다양하다. 실로 한국 사회의 교육열은 다양한 원인과 계기가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판단된다. 문제는,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설명하려는 태도가 가지는 한계와 위험성이다. 또 교육열 자체를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거기서 긍정적 요소를 발견하여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듯이, 어떠한 주장에도 귀 기울이어 한국 사회의 교육열 문제를 깊이 있고 신중하게 분석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교육노동자 운동이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역대 어느 정부도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며 교육학계 등 교육전문가 집단 역시 설득력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교육 문제는 어려운 주제이며,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일로로 빠져드는 교육 문제를 보면서 학부모, 국민의 교육 불만은 누적되어 왔다. 그런데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큰 만큼 교육노동자 운동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감이 크냐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듯 교육노동자 운동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시각은 차갑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유연한 교육 연대 고민해야, 학생 변화 읽어내야 

교육노동자 운동은 사회주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인간 존중과 사회 정의(正義)의 관점을 존중하고 있다. 이들 관점을 존중하는 것과 현실 교육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는 다양한 조합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한대로 교육 노동은 그 특성상 여러 계급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노동자 집단의 관점만을 가지고 문제 상황에 대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종종 교육노동자 운동이 특정 사안에 대처하는 논리가 지나치게 좁고 경직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였다. 어떤 수준의 협상도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는 다수 사람들을 설득해낼 수 없다.  

교육노동자 운동은 또 학생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의 심리와 정서에는 시대 변화가 담겨있다. 학생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놀라울 정도의 적극성을 보이기도 한다. 개인주의적 성향은 이기적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인권 존중 의식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아동과 청소년의 모습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면을 사회비판의 소재로 삼는 데 익숙한 게 그간의 태도였다면, 앞으로는 아동과 청소년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 이들과 소통할 능력이 부족한 게 오히려 문제라는 자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력도 커진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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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사회에서의 노력을 통해 교육노동자 운동은 소외계층의 교육 문제를 가장 가까이서 챙기는 집단으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학원을 갈 여유가 안 되는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는 모습. ▶ 프레시안 ]

지역사회에서, 소외계층에 대한 책무성을 자각하라!

이러한 평가 속에서 앞으로 교육노동자 운동이 지향해야 할 과제를 하나 제안하도록 하겠다. 즉, 교육노동자 운동은 우리 사회 누구보다 소외계층에 대한 ‘책무성’을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계층 간 교육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주장만을 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소외계층의 교육 문제를 실제적으로 해결하는 일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 

교육 격차를 줄이는 일은 교육적 측면뿐만 아니라 복지, 문화 등 생활 전반에 관계된 일이다. 교육노동자 운동이 이러한 일을 사업으로 설정하고 물질적, 조직적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군구 또는 읍면동 지역 단위로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노동자 운동은 여러 계층과 접촉하게 될 것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복지 사업을 위해 공공 기관 및 단체, 대학 등과 교류하며 때때로 이들의 협력과 지원을 이끌어 내기도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육노동자 운동은 소외계층의 교육 문제를 가장 가까이서 챙기는 집단으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노동자 운동은 ‘새로운 학교 모델’을 만드는 사업에도 관심을 모아야 한다. 교장 공모제 시범실시를 계기로 하여 공립 학교를 혁신하는 사례가 작년부터 만들어지고 있다. 비록 소수 학교에 불과하지만 한국 사회의 특성상 파급력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 새로운 학교 모델을 만드는 사업은 학교를 통째로 놓고 고민해야 가능하다. 학교 운영 체제와 학교 교육과정을 전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즉, 개별 교육노동자들이 학급 단위, 교과 단위로 교육전문성을 키우는 노력도 의미가 있지만, 학교 차원으로 시각을 넓혀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방안을 찾아보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노동자가 원하는 새로운 학교는 결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법과 제도상의 문제 제기만으로 상황이 교육노동자의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역 단위 운동의 중심에서 소외 계층의 교육과 복지를 헌신적으로 챙기며, 지역민으로부터 자질과 역량을 인정받는 만큼 정치사회적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교장 공모제 등 통해 ‘새로운 학교 모델 만들기’ 시도하라!  

한편, 교육노동자 운동은 정부 및 교육청과 명실상부 ‘정책 경쟁’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교육노동자 운동은 중앙 및 지역 단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1990년대만도 못 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 및 지방 교육청과 정책 경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이론적 근거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든, 현장 실천 사례에 근거한 데이터를 쥐고 있든 둘 중에 하나 이상은 해야 한다. 

특히 지방에서 교육노동자 운동이 교육정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지역 단위 교육 사업을 전개하는 중심에 서야 한다. 나아가 지방 교육 권력의 획득 차원으로 운동의 지평을 한 차원 넓혀내야 한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호된 경험을 했듯이, 이러한 권력 기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외계층에 대한 책무성 실현, 지역 단위 교육 운동 역량 구축 등 과제 실천과 병행해야 한다. 최소한 10년 과제로 삼고 준비해야 가능한 일이다. 

노동 문제든 교육 문제든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제는 없으나 교육노동자 운동의 정책 역량은 매우 부족하다. 교육노동자들은 현장 상황을 파악하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으나 이론적 논의에서는 취약하다. 전문 연구자들은 그와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교육노동자들과 연구자들의 창조적 교류가 요청된다. 정부 정책을 비판만 하는 운동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집단으로 인정받으려면 운동의 방식과 내용 전반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수성(守成) 단계의 전교조, ‘사회 공헌’ 통해 성장해야

소위 ‘1987년 체제’가 20년을 경과하였다. 그 사이 민주화 세력의 일부가 10년간 국가권력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교육노동자들의 조직, 전교조는 조직의 뿌리를 내렸다. 

창업(創業)보다 수성(守成)이 어렵고, 수성보다 경장(更張, 고쳐서 확장함)이 어렵다고 했다. 교육노동자들의 조직, 즉 전교조는 빛나는 창업 이후 혹독한 수성의 단계를 지나 어느덧 경장을 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고 본다. 어려울 때일수록 바깥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하기보다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내부를 살펴야 한다.

전교조의 사회적 영향력은 더 이상 사회적 인지도에 기대어 성장할 수 없고, 앞으로는 사회적 공헌도를 높임으로써 확보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