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운동의 방향을 다시 생각한다

노동사회

전교조 운동의 방향을 다시 생각한다

편집국 0 3,025 2013.05.29 10:14

전교조는 합법화를 전후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결과, 합법화 이전 1만 조직에서 한때 10만을 내다보는 거대 대중조직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성장 추세가 점차 수그러들더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조합원이 감소하는 추세로 접어들고 있다.

더군다나 2006년부터 본격화된 수구·보수세력의 전교조에 대한 공격은 전교조의 사회적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촛불집회의 열기가 잦아들고 이어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결과 공정택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이명박 정권의 전교조에 대한 공격은 가히 전방위적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lkskjr_01.jpg“요즘, 전교조 교사인 게 자랑스럽지 않다”

그런데 진보운동을 파괴하기 위한 수구·보수세력의 공격은 언제나 있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정작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문제는 ‘전교조 스스로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튼튼한 힘과 역량을 갖고 있는가?’이다. 어떠한 공격이 밀려오더라도 조합원들이 높은 의식과 강한 활동력, 그리고 단결된 조직력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러한 공격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더욱 단결하고 더 높은 수준의 활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문제로 여겨야 하는 지점은 현재 전교조가 그런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 결과가 이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전교조 활동가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듯이 현재 전교조의 현장은 비어가고 있다. 조합원들의 전교조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많이 약화되어 있다. 어느 정도의 이슈파이팅은 아직까지 가능하지만,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현장활동과 분회활동은 공동화되고 있다. 분회장을 비롯한 새로운 현장활동가들의 배출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전교조는 ‘위기’인가? 그렇다, 위기이다. 전교조에 대한 외부의 공격이 유례없이 날카롭기 때문에가 아니라, 전교조 스스로가 조합원을 묶어세우지 못하고 있고 사회적인 명분과 정당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위기이다. 외부적 상황이 초래한 위기는 어느 정도 숨을 고르면서 참아낸다면 다시 회복할 가능성이 있지만, 내부적인 위기는 전교조 운동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극복해 나갈 수 없다.

전교조의 위기를 진단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그 모든 측면의 근저에는 ‘조합원들이 전교조를 내 몸같이 여기고 전교조 조합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기풍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지겹도록 많았던 ‘저지와 반대’ 투쟁… 지친다

학교 현장에 있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본부와 지부로부터 수많은 투쟁 사안이 밀려 내려온다.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논리적으로(!) 옳고 정당한 것들이다. 그런데 막상 분회원들은 시큰둥해 한다. 분회장들은 그야말로 고군분투, 투쟁 선전지와 서명용지를 들고 조합원을 찾아다니지만, 자신 있게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하지 못한다.

지난 기간 동안 전교조는 참으로 많은 투쟁을 해왔다. 정말 지겹도록 많은 ‘저지와 반대’ 투쟁을 해왔다.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던 대표적인 사례로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반대투쟁’, ‘교원평가 저지투쟁’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투쟁을 거치면서 전교조가 더욱 강해지고 단결력이 강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조직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들이 더 많아 보인다. 학교 현장의 조직력은 점점 더 약화되고 조직의 규모는 축소되어가고 있다. 이런 투쟁을 하면 할수록 전교조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은 좋아지지 못하고 있다.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 잔이라도 할라치면 전교조에 대한 비판의 칼날 앞에서 논쟁을 벌이다 헤어지기 일쑤이다. 전교조에 우호적이었던 많은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이제 전교조를 마냥 지지하지만은 않는다. ‘투쟁을 통해 조직이 강화 발전된다’는 진리는 전교조에서는 예외가 되고 있다. 왜 그럴까? 속 시원하게 승리하지 못해서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저지와 반대’ 투쟁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런 투쟁 역시 논리적인 연관(!) 아래서는 한국 사회의 교육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어나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국민들 사이에서 전교조의 지지도와 영향력은 나날이 감소하는 것일까?

그때 그, 교육노동자 선언과 참교육을 향한 ‘진정성’

1,800명의 대량 해직사태를 불러왔던 전교조 결성 당시, “교사도 노동자다”라는 선언이 지극히 생경해 보이던 당시에도, 막상 전교조 선생님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이 있었다. 또 학교 현장에서도 알게 모르게 전교조를 후원하고 지지하던 선생님들이 있었다. 그들은 전교조가 합법화된 이후에 대량으로 전교조에 가입했고 그 결과 전교조는 급속하게 조직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왜 전교조를 지지했을까? 그들이 과연 교사도 노동자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전교조의 주장을 십분 이해하고 전적으로 동감했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그리고 평범한 교사들은 전교조가 내건 주장보다 학교 현장에서 헌신하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참교육’에 대한 진정성을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전교조 교사들이 내세운 ‘촌지 거부운동’에서 학부모들을 괴롭히던 한국 교육의 병폐를 읽어냈고, 그것을 오롯이 실천으로 극복해 나가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진정성에 감동했을 것이다.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대의명분을 따르는 떳떳한 투쟁에, 전교조 교사들은 일신의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다. 아이들을 향한 전교조 교사들의 참된 사랑과 열정이 녹아 있는 참교육의 정신에 지지를 보낸 것은 아닐까? 

그들이라면 다소의 공과는 있더라도 이 땅의 교육을 아무런 ‘사심 없이’ 올바르게 끌어가려는 진정성을 가진 세력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교조야말로 이 땅에서 철저히 굴절되고 왜곡된 교육 현실을 진정으로 혁신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교사 넘어서 국민 전체가 염원하는 교육을 대변하자

아무리 정당한 투쟁이라도 그 투쟁의 주체세력인 조합원들이 흔쾌하고 신명나게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떤 힘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무리 올바른 투쟁이라도, 그것이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더욱 모아나가고 또 누구나 투쟁의 중심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세력 간의 분열과 회의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어떻게 올바른 투쟁이 될 수 있겠는가?

투쟁에서 대의명분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것은 대내적으로는 조직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조합원들이 투쟁의 명분에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묶어세울 수 있는 중요한 무기이다. 물론 이러한 대의명분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전교조만의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불만을 대변하고 전체의 염원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전교조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아무리 논리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 다수가 지지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공허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전교조의 투쟁이 국민들의 지지를 획득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을 단순히 “국민들이 아직 전교조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자문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내용을 만들어내고자 분투하는 것이 임무이다.

그리고 전교조가 교육당국의 잘못된 교육정책에 대항해서 싸우더라도 그 방법으로 일방적인 ‘저지와 반대’라는 칼만을 휘둘러서도 안 된다. 그 칼이 제대로 힘을 쓰기 위해서는 전교조의 실천이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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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이명박 정부의 거센 공격은 전교조가 국민과 어깨 걸 것을 요구한다. 지난 9월23일 열린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시민모임” 기자회견.▶ 교육희망 ]

‘감동을 주는 정책대안’ 내걸고 싸우자

국민들이 전교조를 지지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을 통해서일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전교조야말로 한국 교육의 모순된 현실과 또 그로부터 입게 되는 국민들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안”이라고 인정받을 때이다.

전교조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그럴듯한 명분을 세운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철밥통을 지키기 위한 조합이기주의’로 판단한다면 국민들을 무식하다고 비난할 것인가? 국민들이 아직 제대로 몰라서 그런다고 코웃음 칠 것인가?

전교조 운동의 중심정책은 철저히 잘못된 교육정책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한 경쟁체제에 휩쓸려 들어가 맹목적인 줄 세우기와 지옥 같은 입시경쟁 체제에 신음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고통, 빈부의 격차에 따라 교육의 우열이 정해지고 그것을 다시는 바꿀 수 없는 막막한 체제, 무한정 들어가는 사교육비 부담에 가뜩이나 어려운 가정 경제를 등골이 휘도록 압박하는 체제. 전교조는 국민들의 고통과 한숨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이러한 교육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투쟁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물론 전교조의 모든 투쟁은 이러한 한국 교육의 현실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NEIS 반대투쟁도 교원평가 저지투쟁도, 그 투쟁의 대상들이 한국교육의 미래를 밝게 하기보다는 어둠의 길로 이끌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자명하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투쟁은 논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투쟁의 주체 스스로에게, 그리고 지지 세력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박제된 논리일 뿐이다.

전교조는 국민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의제를 만들어내고 이를 전면에 내걸고 싸워야 한다. 그리고 전교조는 이러한 한국 교육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당국의 정책과 전교조의 대안을 맞걸고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 어느 길이 ‘진정한 교육개혁의 길’인지를.

전교조가 이러한 정책을 만들어내고 이를 중심으로 싸워나갈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다소간의 오류나 실수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투쟁과정에서는 언제나 모자랄 경우도 있고 과도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바탕이 정당하고 그 진정성이 다가온다면 국민들은 너그럽고 우호적인 시선으로 전교조를 격려하고 지지할 것이다.

불이익 감내하고 꿋꿋이 버티는 조합원들을 위하여

또한 이러한 정책들은, 조합원들로 하여금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자각하고 전교조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도 절실히 필요하다. 전교조 해서 남들보다 밥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전교조 해서 일신의 영달은커녕 오히려 승진에 불이익만 당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조합원들이 전교조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그래도 전교조라도 있어야 우리 교육이 진흙탕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부심 하나로 살던 조합원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제까지 힘껏 투쟁했는데 언제부턴가 주눅 들고 힘들어하는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철밥통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 과연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일까 회의하고 있다. 아니, 당장 주위에서 점점 동지들이 떨어져 나가는 현실에 고뇌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이 몇 명 되지도 않던 옛날에도 주눅 들지 않고 직원회의에서 당당하게 일어나 발언하고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치 싸움닭처럼 덤벼드는 투사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요즘에는 학교에서 조합원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상황인데도 예전같이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과 요즈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누구 말대로 이제는 교사들이 배가 불러서? 승진을 앞두고 몸을 사리느라고? 개별적으로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분명한 것은 조합원들이 전교조를 예전만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조합원들이 전교조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전교조의 정책이 단순히 우리 교사들만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국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국민들의 염원을 대변하고 있는 조직임을 자부할 수 있을 때, 우리의 투쟁은 당당할 수 있고 또 헌신적일 수 있다.

막막할 테지만, 시야 넓히자! 국민과 어깨 걸자!

참으로 어려운 날들이 될 터이다. 이명박 정권의 거센 공격은 더욱 더 날을 세워갈 텐데, 우리는 아직 제대로 준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앞으로도 많은 고난과 시련이 우리 앞에 불쑥불쑥 다가설 것이다.

이러한 시련을 전교조 교사들만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교육의 세 주체인 교사·학부모·학생이 튼튼하게 연대하여 흔들림 없는 대오를 갖췄을 때 우리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조합원들도 우리 주위에 우리를 지지하는 수많은 세력과 함께할 때 힘을 내고 당당해질 수 있다.

아직 막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전교조가 이제 시야를 더 넓게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눈을 돌려 한국 교육의 모순을 직시하자. 그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의 한숨을 경청하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어깨를 걸고 나갈 수 있는 품 넓은 전교조가 되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