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 발생한 사고도 산재다

노동사회

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 발생한 사고도 산재다

편집국 0 3,677 2013.05.2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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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가 단속을 피하기 위한 피신행위 도중 입은 상해는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는 경우에 입은 상해로 볼 수 있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부산고등법원 2008. 6. 20. 선고, 2008누792 - 요양불승인처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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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는 중국인으로서 2005년 3월5일경 유학비자로 대한민국에 입국해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받다가, 2006년 2월경에 위 대학을 무단이탈하여 같은 달 6월경부터 전기기기 및 전기전자 부품조립업체인 ○○전자의 근로자로 근무해 왔다.

그러던 중 2006년 5월2일 15:30경에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이 불법체류자 단속을 위하여 ○○전자에 오게 됐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전자의 관리부장이 당시 외근을 하고 있던 ○○전자의 사업주에게 이를 보고하자, 사업주는 원고를 비롯한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피신시키라고 지시했다. 이에 관리부장은 원고로 하여금 다른 불법체류자 2명과 함께 ○○전자 2층 사무실로 피신하도록 지시했다.

사장의 지시로 단속 피해 도주하다 추락한 이주노동자

원고는 관리부장의 지시에 따라 다른 불법체류자 2명과 함께 위 2층 사무실로 피신했지만, 때마침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이 불법체류자를 수색하기 위하여 2층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러한 광경을 본 ○○전자 소속의 한 내국인 근로자가 원고 등에게 수신호로 이를 알려줬고, 원고는 다른 불법체류자 2명과 함께 2층 사무실 창문을 통해 외벽의 에어컨 배관을 타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했으나 에어컨 배관을 고정한 핀이 빠지는 바람에 8미터 아래 1층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했다(이하 ‘이 사건 재해’라 한다).

원고는 이로 인해 두개골 골절, 급성 뇌경막하 혈종, 외상성 뇌지주막하 출혈, 중증 뇌좌상 등의 상병을 입게 되자, 같은 해 5월8일 근로복지공단에 대하여 위 상병에 대한 요양신청을 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건 재해가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하기 위해 도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2006년 6월13일에 위 상병에 대한 요양을 불승인하는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했다.

이에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처분에 대해 심사청구를 하였으나 이마저 기각되었고, 결국 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불승인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도주하는 행위를 업무수행이나 그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과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업무상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청구를 기각하였고(창원지방법원 2008. 1. 15. 선고, 2006구단3262 판결), 이에 원고는 고등법원에 항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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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보상보험법령상의 ‘업무상 재해’의 의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관련 조항
제4조(정의)
  1. “업무상의 재해”라 함은 업무상의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 이 경우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에 관하여는 노동부령으로 정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시행규칙」 관련 조항
제32조(업무상 사고) 사고로 인한 근로자의 사상이 다음 각 호의 요건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재해로 본다.
  1.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의한 업무를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수행하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사업주가 관리하고 있는 시설물의 결함 또는 관리상의 하자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하여 사상하였을 것
  2. 사고와 근로자의 사상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을 것
  3.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상이 아닐 것
제34조(작업시간 중 사고)
 ① 근로자가 사업장내에서 작업시간 중에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되는 행위를 하고 있던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하여 사상한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사고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없음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작업
   2. 용변 등 생리적 필요행위
   3. 작업준비·마무리행위 등 작업에 수반되는 필요적 부수행위
 ② 근로자가 사업장 내에서 천재지변 또는 화재 등의 돌발적인 사고가 발생하여 사회통념상 예견될 수 있는 구조행위 또는 긴급피난행위를 하고 있을 때 발생한 사고로 인하여 사상 한 경우에는 제1항 본문의 규정을 준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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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발생한 사고”인지가 핵심 쟁점

학계에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당해 사고가 업무 수행 중에 발생한 사고일 것,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사고일 것(업무기인성), △마지막으로 업무와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을 것(상당인과관계) 등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 사건의 경우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출입국관리공무원의 불법체류 단속을 피해 스스로 도피하다가 추락하여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과연 이러한 사고가 업무와의 관련성 즉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사고로 볼 수 있는지(업무기인성), 그리고 업무수행과 사고 발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지(상당인과관계)가 쟁점이다.

이러한 쟁점과 아울러 불법체류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가 추락한 사고가 과연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2조 1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의한 업무를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수행하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에 해당하는지, 또한 동법 제34조 제1항 3호에 규정된 “작업에 수반되는 필요적 부수행위”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토끼몰이식 강제단속에 제동 걸다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에 대해서 대법원은 “근로자가 어떠한 행위를 하다가 재해를 입은 경우 그 재해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당해 근로자의 본래의 업무행위 또는 그 업무의 준비행위 내지는 정리행위,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것으로 인정되는 생리적 행위 또는 합리적·필요적 행위이거나, 사업주의 지시나 주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행사 또는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기타 관행에 의하여 개최되는 행사에 참가하는 행위 등 그 행위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 사건은 “불법체류 단속을 피해 도피하는 행위가 과연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는 행위과정인가”가 핵심쟁점이고, 재판부는 이에 대해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 단속반에 의해 단속되지 않도록 피신시키는 행위와 미등록이주노동자의 피신행위는 사업주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부수행위라는 점에 착안하여 불법체류 단속을 피하기 위한 행위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사업주의 입장에서 미등록이주노동자를 고용할 당시 불법체류 단속이 나올 경우 사업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영위를 위해 미등록이주노동자를 피신시켜야 한다는 것은 이미 예견가능한 것이고, 이러한 피신행위는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필요한 행위이므로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는 행위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인 것이다(물론 이 사건의 경우처럼 사업주의 ‘도피지시’가 있었다는 점은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었다는 점에 대한 중요한 요건이 될 것이다).

이 사건 판결은 비록 고등법원의 판결이기는 하나 불법체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도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이 사건 판결 이전에는 불법체류 단속을 피해 도피하다 발생한 사고에 대해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하는 데 다소 소극적인 법해석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판결은 불법체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도피하는 행위과정은 사업주와 근로자의 업무의 연속성을 위한 필요한 행위라는 점에 착안하여 업무상 재해의 인정범위를 확대한 획기적인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공무원들의 토끼몰이식 강제단속에 경종을 울리는 취지의 판결로 주목할 만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