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만의 첫 파업 부른 알리안츠생명 사측의 일방통행

노동사회

47년만의 첫 파업 부른 알리안츠생명 사측의 일방통행

편집국 0 5,178 2013.05.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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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여 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했던 알리안츠생명노조의 파업은 180일이 지난 지금도 700여 명이 함께 하고 있다. 2월11일 알리안츠 본사 앞에서의 집회 모습.  ▶ 알리안츠생명노조 ]

지난 7월17일,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310일째 파업을 이어오던 코스콤비정규지부 조합원들이 서울남부지법으로부터 위장도급 판결을 얻어내기 바로 전날,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알리안츠 파업사태의 진상규명과 조속해결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바로 옆 국회의사당에서는 당일 저녁에 있을 제헌 60주년 경축기념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날 경축기념식에서는 1억5천만 원어치의 폭죽이 제헌 60주년을 축하했지만, 정작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권 보장은 여전히 요원하다. 알리안츠생명노조는 회사측이 노조와의 논의 없이 성과급제를 도입한 것에 항의하며 지난 1월23일부터 파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알리안츠는 독일계 자본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본으로 인식되는 성과급제가 외국계 회사에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는 점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수도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 알리안츠생명은 제일생명이었다.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1999년에 독일계 자본인 알리안츠에게 인수된 알리안츠생명은 그 이후 10년 내내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8년 4위였던 업계 순위는 2007년에는 20위로 내려앉았고, 시장 점유율도 역시 1998년과 2007년 기준으로 6%에서 3%대로 떨어졌다. 제일생명 시절 약 2,700명/13,000명이었던 정규직원과 보험설계사는 이제는 약 1,600명/5,00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성과급제 도입, 합의는 했지만…

제일생명 시기까지 포함해서 노조 설립 47년 역사상 한 번도 파업을 해 본 적이 없었던 알리안츠생명노조가 파업에 나선 근본적인 이유는 성과급제 때문이다. 사측은 “노조는 성과급제 도입에 동의해 놓고도 회사가 제안한 성과급제 회의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며 올해 1월21일자로 성과급제를 일방적으로 도입·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의 이런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우선 노사가 성과급제 도입에 합의한 것은 사실이다. 2005년 9월14일 알리안츠 노사가 합의한 임단협 노사잠정합의서에는 “노사는 2006년에 성과급을 도입한다. 단 구체적인 성과급제도는 노사 간 합의한 후 실시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노사는 성과급 도입을 위한 TFT(어떤 사안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위해 각 부서에서 선발된 사람들이 임시 팀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를 노사동수로 구성하고 TFT에서 구체적인 절차 및 방법, 내용 등에 대해서 교섭한다”고도 되어 있다.

그러나 지지부진한 협상으로 2006년에 성과급제는 도입되지 않았고 노사는 다시 2006년 12월12일에 합의서를 냈다. 주 내용은 “성과제 도입은 2005년 9월 합의사항을 재확인”하며 “노사는 노사 양측이 수용 가능한 성과제를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2007년 임금인상액은 성과급제 도입과 동시에 지급되며, 2007년 4월1일부터 소급적용한다. 이를 위해 노사는 성과급제를 우선 완성한 후 2007년 임금인상을 논의하기로 한다”는 조항에도 합의해 2007년까지 노사 합의로 성과급제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성과급제를 도입하는 데에는 합의했으나, ‘어떤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운영할 것인지는 노사 간 교섭으로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노조의 논의 요구 무시하더니 ‘구조조정 성과급’

하지만 “노조가 회사가 제안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측의 주장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노사 간의 합의들을 바탕으로 2007년에 성과급제 논의 움직임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성과급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것은 노조보다는 사측의 책임이 더 커 보인다. 노조 쪽에서 먼저 회의를 요청한 것만 수차례다. 변성민 알리안츠생명노조 홍보실장은 “2007년 초에 우리 쪽에서 먼저 회의를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회사의 요구에 따라 성과급제 논의를 위한 컨설팅 프로젝트 안을 만들어 2차례나 제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노조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노조는 2007년 2월20일에 “성과급제 논의를 위한 TFT 미팅 요청” 공문을 보내면서 노조에서 참여할 사람의 구체적인 명단까지 통보했다. 그러나 사측이 회의에 나오지 않으면서 무산됐고, 이후 2007년 3월12일과 4월10일에는 성과급제에 대한 노조의 제안서를 두 차례 보냈지만, 사측은 노조의 1차 제안서는 “(성과급제 설계를 위한) 컨설팅 비용이 과다하고 컨설팅 기간도 너무 길다”는 이유로, 2차 제안서는 “(노조의) 현 집행부의 임기 안에 프로젝트가 완료되기 힘들고 완료된다 하더라도 차기 집행부가 거절을 하면 소용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게다가 알리안츠생명 사측은 2006년 12월로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노조의 교섭요구도 거부하고 현재까지도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다.

결국 성과급제의 내용에 관한 알리안츠생명 노사의 협상은 결렬됐다. 2007년 막바지까지 노조는 대한생명 등 동종업계에서 시행되고 있는 ‘집단 성과급제’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2006년에 독자적으로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만들었던 안을 고집했다. 그 다음부터는 많은 언론에 알려진 대로다. 회사는 지난 1월21일에 취업규칙을 변경해 개인별 업무평가를 토대로 S·A·B·C·D 등급으로 나눠 성과급을 차등해 지급하는 안을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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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리안츠생명은 지점장 조합원 99명을 해고함으로써 갈등을 증폭시켰다. 파업에 참가한 알리안츠생명노조 지점장 조합원들이 결의를 다지는 모습. ▶ 알리안츠생명노조 ]

알리안츠 본사도 ‘신채널’ 추세에 구조조정 중

이 방안에 따르면, S등급을 받은 사람은 기준금액의 200%를 받게 되지만 D등급을 받은 사람은 성과급이 0%다. 뿐만 아니라 임금 인상분 역시 업무평가 등급에 따라 차등 지급됐다. 변성민 실장은 “기존의 호봉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승진과 직급수당, 월동비 등의 복리후생까지 모두 성과급제로 녹여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성과급제 지급 기준이나 운영에 있어서 노조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어 자의적으로 이뤄질 것이 뻔하다. 실제로 (올해에도) 5등급으로 나누는 기준이나 비율, 심지어 3.5%의 임금 인상률까지 모두 회사 마음대로 정했다”며, “이렇게 되면 임금이 동결되는 사람이 나온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임금이 삭감되는 것이다. 오히려 나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게 ‘구조조정 성과급’이 아니고 뭐냐”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의미에서 노조는 회사의 성과급제 시행이 구조조정의 사전 정지작업이거나 그 일환이라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보험업계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영업을 하던 ‘전통채널’ 방식은 인건비가 많이 드는 고비용 구조인 데 반해, 방카슈랑스나 홈쇼핑, 텔레마케팅 등을 통한 ‘신채널’ 방식은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최근에는 중소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신채널 방식의 영업을 늘려가는 추세다. 

변성민 실장은 “유럽에서도 신채널을 선호하고 있다. 독일 알리안츠 본사도 이에 따라 5천여 명을 구조조정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나마 본사는 베르디(Ver.di, 독일통합서비스노조)와 협의해 구조조정 인력의 재교육·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교섭 중에) 회사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도 ‘구조조정이 필요 없도록 하기 위해 성과급제가 필요하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회사가 도입한 성과급제도대로라면 3년 뒤에는 B등급에 해당돼도 성과급이 전혀 없는 0%가 되고 D등급은 사실상 보직대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하위 등급 직원들의 자연 퇴사를 유도하는 구조조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점장 조합원 집단해고에 직장폐쇄까지

이렇게 쌓인 갈등 속에 4월에는 사상 초유의 지점장 집단해고 사건이 더해졌다. 알리안츠생명 사측이 “지점장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것은 불법”이라며 4월1일자로 99명의 지점장을 해고한 것이다. 지점장은 관리자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가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에 해당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노조는 지점장 역시 회사의 관리감독을 받는 노동자라고 주장한다. 변성민 실장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 지점장으로 일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나이가 많으신 분이 새로 들어오자마자 지점장이 되는 경우도 있고 젊은 직원들이 발령을 받아 나가는 경우도 있다. 대리급에서 부장급까지 다양하다. 보통 생각하는 은행의 지점장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각 영업소에서 보험설계사들의 영업업무를 관리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그는 “원래는 직함도 영업소장이었는데, 올해 1월1일자로 직함의 이름이 지점장으로 바뀌었다. 영업할 때에도 직함이 더 높게 나가면 좋은 점도 있고 해서 처음에는 우리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노동조합 가입 문제가 걸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노조의 주장대로라면 지점장들의 알리안츠생명노조 가입은 문제될 것이 없다. 알리안츠생명노조 규약 제5조는 “조합원은 알리안츠생명보험주식회사 종업원으로 한다. 다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에 의한 사용자는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가 지점장들의 노조 가입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단체협약 제10조에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자를 제외한 종업원은 조합원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그 대상에는 “점포장”도 열거되어 있다. 

하지만 노조는 “동종업계 대부분이 지점장들은 노조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지점장 신분이 보험설계사인 ‘사업가형 지점장’과 신한생명만이 가입하지 않았을 뿐이다”고 말한다. 본안 소송 사건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된 법원의 판단도 나왔다. 지난 5월20일 서울 남부지법은 알리안츠생명이 노조를 상대로 낸 집회·시위금지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단체협약에 지점장을 조합원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이 조항은 단체협약의 적용범위에 관한 것일 뿐 그 자체만으로 지점장의 노동조합 가입이 금지된다고 볼 수 없다”며 노조가 사측의 지점장 집단해고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한 표현이 허위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설상가상으로 알리안츠생명 사측은 5월16일에 직장폐쇄 조치를 취하고 “서울 여의도 본사를 비롯한 전국의 당사 사옥을 대상으로 파업 직원에 대한 회사 출입금지 조치(직장폐쇄)를 실시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고객 서비스와 영업활동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집니다”라고 공고하기도 했다. 노조는 “노조법상 직장폐쇄는 파업 불참자에 대해 취하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법에는 “쟁의행위라 함은 파업·태업·직장폐쇄 기타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즉 직장폐쇄는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여야 하는데,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직원들로 정상적인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은 직장폐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도 적극 중재, 충분한 내부 동력

알리안츠생명노조의 파업이 길어지면서 시민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월17일의 “알리안츠 파업사태의 진상규명과 조속해결을 위한 토론회”는 ‘알리안츠생명 파업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대책위)의 주최로 열렸다. 대책위는 이광택 국민대 교수와 강수돌 고려대 교수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대책위는 이날 토론회 말고도 6월19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해고자 복직, △징계 및 고소고발 취하, △임금·성과급제·지점장 노조 가입 등과 관련한 성실 교섭을 요구하기도 했다. 대책위는 알리안츠 독일 본사와 독일의 정당,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시민사회가 나서서 중재를 한다 해도 어차피 파업의 해결은 노사의 노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 처음 발단이 됐던 일방적인 성과급제의 결정과 도입,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지점장 조합원들의 집단 해고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알리안츠생명노조의 파업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듯하다. 변성민 실장은 “1,300여 명의 조합원 중 1,000여 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참가했고, 아직도 700여 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내부 동력은 충분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최근 벌어지는 파업은 한 번 시작했다 하면 100일, 200일을 넘기기가 일쑤다. ‘어떻게든 시간만 끌면 제 풀에 지칠 것’이라는 사용자들의 무책임한 대응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알리안츠생명노조의 파업 투쟁이 사용자들의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고 승리하는 투쟁을 만들 수 있을까? 알리안츠생명노조의 파업은 7월20일 현재 180일째를 맞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