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성심병원 사측의 노동인권 유린을 제소하며

노동사회

청구성심병원 사측의 노동인권 유린을 제소하며

편집국 0 3,562 2013.05.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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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집단산재 인정과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청구성심병원노조의 집회 모습. ▶ 오마이뉴스 ]

한동안 ‘인권’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인권은 사람의 권리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로서 받아들여지기보다 ‘이익’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건 아마도 기득권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확대를 위해 ‘권’자를 붙여왔던 관행 탓일 게다. 그러나 ‘권’자가 붙는다고 모두 인권은 아니다. 인권이란 권력이 없는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의 언어이다. 타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박탈하는 것은 인권일 수 없다. 

우리가 누려야 할 많은 인권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려면 여러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나의 인권이 제한당하면 다른 인권조차 침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휠체어장애인의 투표권을 생각해 보자.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려면 장애인이 투표할 수 있도록 교통편의시설, 활동보조인 제도 등으로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가능하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이동의 어려움으로 참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한국에서 노동권은 인권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오히려 ‘이익’처럼 인식된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이익집단의 활동으로 호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이렇게 그릇된 판단이 널리 퍼진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노동권을 인권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기업의 태도 때문이다. 

청구성심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사례를 보면 이는 확실하게 드러난다. 병원측은 노동조합의 활동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나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 등을 제약하고 있었고, 더 나은 노동조건에서 일할 권리 등의 다른 권리들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청구성심병원은 1999년 식칼을 휘두르고 똥물을 뿌리는 등의 반인권적인 병원측의 태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2003년 우울증으로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산재 인정을 받았던 사업장이다. 

자살시도까지 하게 만든 병원측의 인권침해

2003년 우울증이 집단산재로 인정받을 정도로 조합원들에 대한 괴롭힘은 매우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도 그러한 괴롭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관리자들의 변하지 않는 태도는 산재인정을 받았던 조합원 1명이 다시 자살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게다가 병원측 관리자들 중 일부가 간호사 출신이라는 것은, 우울증으로 단기간 요양을 받은 사람의 상태를 고려할 때 심리적 압박을 주는 행위가 불러올 엄청난 결과(자살가능성 등)를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어서 가슴을 써늘하게 한다.

한 사람이 자살까지 시도하는 상황이 벌어져 인권단체들은 청구성심병원의 인권침해를 조사하게 되었다. 방식은 인권침해 당사자들을 직접 심층면접을 하는 방식과 노동자들 전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진상조사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업장에서 인권침해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조합원만이 아니라 비조합원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진상조사단이 분류한 인권침해 유형은 크게 여섯 가지였다. ①사생활 감시 등의 자유권 침해(사생활 감시, 전화도청), ②전근대적 노동통제로 인한 인격권과 노동권 침해(잔반검사, 청소검열 과정에서 인격 모독), ③상시적 폭력·폭언·괴롭힘으로 인한 신체의 자유 및 인격권, 건강권 침해(폭언과 폭행, 따돌림과 괴롭힘), ④조합원들에 대한 차별(조합원 개인에 대한 승진·인사고과에서의 차별, 아침 친절조회에서의 조합원 차별, 조합원이 많은 부서에 대한 집단 차별), ⑤여성에 대한 성희롱, ⑥부당노동행위로 인한 노동권 침해(부당배치, 조합원을 괴롭히는 방식의 부당한 업무 지시) 등이었다.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에게 우울증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복합적인 인권침해가 전근대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CCTV만으로 조합원들에 대한 감시를 하는 게 아니라 비조합원이 조합원들을 감시하도록 하였다. 이는 부당한 업무지시일 뿐 아니라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조합원만이 아닌 비조합원들에게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었다. 실제 진상조사발표회에서 증언한 A씨는 자신이 수간호사 위치에 있을 때 부당한 지시에 따라서 조합원들을 괴롭혔던 일로 인해 정신적 압박을 받았다고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한 잔반검사라는 전근대적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사적 영역까지 통제하고 있었다. 설문조사에서 응답한 노동자 중 82%가 인격권 침해라고 답한 정도로 노동자들에게 심한 모독감을 주고 위축되게 만들었다. 초등학생조차 잔반검사는 자유로운 선택권을 제한한다고 하여 일선 학교에서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 큰 어른들에게 잔반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사생활 및 신체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병원의 간섭이자 통제이다. 마치 노동자들의 두발을 제한하던 개발독재 시기의 노동자통제와 너무나 흡사해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듯하다. 문제는 이러한 감시와 통제가 조합 활동을 막기 위해서는 개인의 인권은 침해해도 된다는 사측의 발상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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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17일 인권단체 연석회의가 연 '청구성심병원 인권침해 진상조사 발표회' 모습.  ▶ 인권단체 연석회의 ]

노동권 제약을 위한 괴롭힘이 정신질환까지 불러와

청구성심병원에서 일어난 노동권 침해는 아주 광범위하고 의도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할 권리,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 등 노동권이 인권으로 인식되지 않는 한국 현실에서 병원측은 노골적으로 조합원들을 차별하고 폭력과 폭언으로 괴롭혔다. 이러한 괴롭힘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심하게 훼손하였음은 의사단체가 실시한 의료실태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의료실태조사 결과 정신질환 위험군으로 의심되는 이들은 무려 58.3%에 달할 정도로 많았으며 간호사의 경우 66.7%로 더 높았다. 또한 상시적인 폭언, 폭행 따돌림과 괴롭힘이 많았던 조합원들의 정신질환 의심군이 비조합원의 1.8배인 68.3%였다.

또한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은 일상 업무활동에서만이 아니라 인사고과와 승진, 업무 배치에서도 이루어졌다. 진상조사 발표회에서 어느 피해자의 증언과 심층면접과정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병원측은 수간호사였던 A씨 등에게 조합원이었던 간호사에 대한 인사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줄 것을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열심히 일 잘하는 간호사”에게 가장 낮은 점수를 줄 때까지 평가는 계속 반환되었고, A씨는 이러한 부당한 지시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과 따돌림은 조합원들과 친한 사람들에게까지 이뤄졌다. 인권침해 조사과정에서 간호조무사들에게 조합원들과 말을 하거나 같이 밥을 먹지 못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어기면 해당 조무사까지 따돌림을 당했다는 사례가 많이 드러났다. 그 외에도 전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80.7%가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차별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병원에서 차별이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기업의 인권침해 막을 제어장치가 없는 현실

앞의 언급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병원측은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서슴지 않고 개인의 사생활, 건강권, 신체 및 표현의 자유까지 침해했다. 거꾸로 말하면 노동권 보장이 한국의 낙후한 사회권 현실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한국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사회권 규약)’에 가입한 지 18년이나 지났음에도 사회적 권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척박한지를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 신체 및 표현의 자유 제한 등은 인권침해이기 때문에 함부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기업에게 부족하기 때문에 시대착오적인 인권침해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기업의 인권침해를 제어할 현실적인 장치가 없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국제사회도 ‘기업과 인권’을 새로운 도전이자 과제로 인식하며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거꾸로 인권보호의 의무를 방기하고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며 인권침해에 대한 규제조차 완화하려고 있다.

현재 청구성심병원에 대한 인권침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권 침해당사자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에 인권침해를 진정한 상태이다.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조사가 막 시작된 상황이지만, 국가인권위의 조사는 주로 차별을 중심으로 한 인권침해에 대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청구성심병원의 광범위한 인권침해보다는 한정된 영역과 유형에 대해서만 조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 청구성심병원 인권침해 진정을 계기로 조합원에 대한 의도적 차별과 노조 활동 방해가 인권침해라는 권고가 내려져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길 기대해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3호